2.
이 모든 건 정확히 1시간 하고 30분 전.
“계급장 떼고 한 판 붙자!”
자진 전역을 각오한 노아의 호기로운 결투 신청에서 시작되었다.
“…….”
그리고 결투 신청을 받은 레토는 차게 굳은 표정을 지은 채, 서늘한 시선으로 노아를 지그시 응시했다.
“누가, 말려야 하는 거 아닙니까?”
머리를 짧게 깎은 밤송이 같은 남자가 웅얼거렸다.
단련된 체격에 비해 얼굴엔 어린 티가 가시지 않았다.
“아서라, 야.”
심드렁한 목소리가 반박했다.
“치티아 중위님….”
“괜히 끼어들다가 물려 죽고 싶냐.”
그녀는 노아와 같은 해에 들어온 동기였다.
가슴에는 중위 계급장과 ‘아미 치티아’라는 명찰이 달려 있었다.
“하지만 이러다 벨로 대위님이 하극상으로 불명예 전역이라도 당하면 어떡합니까!”
불명예 전역은 모든 군인에게 있어 최악의 결말이다.
그간 군에서 쌓은 업적과 명예,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며, 제대 후 받을 수 있는 모든 혜택과 권리를 잃게 된다.
지금 노아가 하는 짓은 하극상에 가까웠고, 자진해서 전역하기 전에 레토가 먼저 불명예 전역을 시켜 버린다면 다 끝이었다.
“호네스 메라 일병.”
“일병, 호네스 메라!”
이름을 불린 젊은 군인이 자세를 똑바로 하며 빠르게 관등성명을 했다.
단숨에 군기가 바짝 들어간 모습을 퍽 귀엽다고 생각하던 아미가 짧게 물었다.
“그대가 본 벨로 대위는 어떤 사람이었나?”
“훌륭한 분이십니다. 불의를 참지 못하시고, 강자에게 강할 수 있는 용기를 지니셨습니다.”
호네스의 대답은 막힘이 없었다.
마치 이 모든 것을 예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던 것처럼.
“주변에 흔들리지 않는 굳센 심지도 대위님의 장점이십니다. 특히 입대 첫날에 참여한 해적 소탕의 업적은….”
“그만.”
대충 들을 만큼 들었다, 싶은 아미가 호네스의 말을 끊었다.
“그럼 충분히 알 거 아냐.”
“잘 못 들었습니다?”
“노아가 얼마나….”
아미가 뒷말을 잇는 대신, 제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가리키고는 빙글빙글 돌렸다.
호네스의 눈이 커졌다.
하지만 끝내 아니라는 반대 의견은 내지 못했다.
꾹 다문 입술이 그 증거였다.
“이건 미친개와 미친개의 싸움에서 한 마리가 진 거야.”
제국에서 가장 유명한 미친개는 레토 오케아누스 중장이지만, 해군 내에선 새로이 급부상 중인 또 한 마리의 미친개가 존재했다.
그리고 그 미친개가 누구인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지금 자신들의 눈앞에 있으니까.
“하지만 미친개가 그냥 가겠어?”
“…….”
“갈 땐 가더라도 한 대는 쳐야지.”
아미는 그런 노아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했다.
더욱이 지난달, 노아가 겪었던 일을 생각하면 더더욱.
‘물론….’
저 반응은 좀 과하다 싶지만.
“…노아.”그때였다.
여태 침묵으로 일관하던 레토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웃어…?’
한껏 노려보던 노아가 눈살을 찌푸렸다.
‘드디어 미쳤나?’
경험상, 저놈이 저렇게 웃을 때면 열의 열은 끔찍한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게 소원이라면.”
어깨를 가볍게 으쓱거린 레토는 옆에 있던 보좌관에게 눈짓했다.
“준위, 가서 검 가져와.”
얼 나간 표정으로 지켜보던 보좌관은 이제 입까지 쩍 벌렸다.
그의 선홍빛 목젖이 훤히 보였다.
“목검을 말씀하시는 거라 판단해도….”
“넌 지금 저 미친개가 목검으로 만족할 것 같나?”
“…어떤 검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마스’.”
노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중장님. 그건…!”
보좌관이 안 된다고 반박했지만, 결국은 레토의 시선에 기가 눌려 어쩔 수 없이 검을 가지러 갔다.
‘인재를 이렇게 잃나….’
노아는 불세출의 인재였다.
저 어린 나이에 벌써 대위까지 특진한 것이 증거였다.
사관학교에서부터 수많은 기대를 받았던 저 영특한 군인을 너무 허무하게 떠나보내는 것이 아쉽기만 했다.
그러나 아무리 훌륭한 인재여도, 레토의 앞에서는 평범한 사람일 뿐이었다.
대신 보좌관은 불명예 전역만큼은 최대한 막아 주기로 다짐했다.
그녀에게 죄가 있다면, 저 미친개의 마음에 든 것밖에 없었으니까.
‘그런데 중장님은 대위를 그만큼 귀히 여기시면서….’
왜 그러셨던 거지?의문을 뒤로하며, 보좌관은 들고 온 검을 레토에게 넘겼다.
“야.”
그 사이, 아미가 노아에게만 들리게끔 속닥였다.
“너 이러다 진짜 죽는 거 아냐?”
“…저리 가.”
노아가 치근덕거리는 아미를 향해 뒷발길질을 했다.
그러나 닿지도 않는 헛발길질엔 이상하게 힘이 없었다.
노아의 시선은 오로지 저 붉은 검에 쏠려 있었다.
“지금이라도 대결은 무르자고 해.”
“그건 안 되지.”
어느새 성큼 다가온 레토가 싱긋 웃었다.
“치티아 중위.”“
중위, 아미 치티아….”
“뒤로.”
“뒤로….”
웅얼거리며 뒤로 물러가는 아미는 참으로 멋없었다.
“즐거운 시간을 이렇게 방해받아서야 쓰나.”
그렇지 않냐고 물으면서, 레토는 들고 있던 검을 노아에게 던지듯 건네었다.
깔끔한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진 검을 받아낸 노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줄게.”
“예?”
“계급장 떼고 한 판 붙자며. 너 나 죽일 정도로 싫어하잖아.”
“그 정도까지는 아닙니다.”
노아가 정색했다.
그 반응에 더 놀란 건 레토였고, 노아는 또 그 모습에 한 번 더 연달아 놀랐다.
“생사를 함께한 아군을 죽일 만큼 아둔하지는 않습니다.”
“…….”
그러자 레토가 뭐라고 중얼거렸다.
노아는 듣지 못했으나, 레토의 가까이에 있던 보좌관 파스트는 끔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전 그냥….”
이왕 이렇게 된 거, 노아가 솔직히 말했다.
“중장님의 그 웃는 면상에 주먹 한 대만 꽂을 기회를 가지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미친….”
뒤로 물러갔던 아미가 중얼거렸다.
다른 사람들의 반응도 이와 비슷했다.
저러니 중장님이 일부러 괴롭히는 거지, 미친개는 미친개한테 끌린다더니, 라는 등의 수군거림이 제법 크게 들렸다.
‘내가 왜 미친개야.’
진짜 미친개는 제 눈앞에 있는 저놈이고, 그런 놈에게 휘둘렸던 자신은 불쌍한 피해자일 뿐이었다.
미친개란 별명도 휘말려 불린 것뿐이었다.
“벨로 대위.”
잠시 억울했던 노아가 부르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그렇게나 너의 흔적을 내게 남기고 싶은 건가?”
한 대 치고 싶다는 말을 뭘 또 저리 징그럽게 표현해?
노아는 떨떠름했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거렸다.그러자 레토가 묘한 웃음을 지었다.
“그럼 기회를 주지.”
순간 머릿속에서 경종이 울렸다.
위험하다고.
하나 가까스로 얻은, 저 망할 놈의 면상에 주먹을 꽂을 기회가 너무 탐스러웠다.
그래서 노아는 제 본능의 경고를 일단 무시했다.
“검은 치우겠습니다.”
“그건 진짜로 준 거니까 가져.”
“잘 못 들었습니다?”
“선물로 주겠다고.”
노아가 튀어나올 듯한 두 눈으로 손에 들린 검을 내려다봤다.
그러곤 냅다 허리춤에 걸어 뒀다.
‘멍청한 놈.’
자기가 준다는데, 거절할 필요가 있을까.
‘그래도….’
슬그머니 검집을 훑는 노아의 손가락엔 무수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레토는 그것을 보고도 일부러 못 본 척했다.
“대신.”
레토가 대결에 조건을 붙였다.
그의 손에는 다 낡아빠진 목검이 들려 있었다.
아까 노아가 집어 던졌던 것이었다.
“서로의 소원 하나씩 들어주는 건 어떤가?”
“싫습니다.”
노아가 즉답했다.
“할머니가 말씀하셨습니다. 쓸데없는 도박은 명줄을 재촉하니 하지 말라고.”
정 명줄을 단축하고 싶거든 내가 직접 잘라 주겠단 말도 덧붙였지만, 노아는 굳이 거기까진 말하지 않았다.
“내가 뭐 이상한 거라도 말할 거 같나.”
피식 웃던 레토가 목검을 고쳐 쥐며 말했다.
“상식선에서 할 수 있는 수준의 소원으로 하자고.”
“…….”
“여기 있는 모두가 증인이 될 터인데, 그래도 의심 가나?”
“그거야….”
네 상식이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상식이 아니니까 걱정이지.
“…….”
잠시 고민하던 노아는 허리춤에 찬 검 대신, 근처에 있던 목검을 들었다.
‘어차피 내가 진다.’
노아는 제 실력을 자부하지만, 저 괴물 앞에서는 범인에 불과했다.
그런 실력 차를 두고 이 검으로, ‘마스’로 싸우는 건 오히려 제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꼴이었다.
“금전 문제나 신체 훼손 따위는 안 됩니다!”
노아가 마지막으로 외쳤다.
그리고 달려들었다.
가볍게 발을 디디며 빠른 속도로 접근한 노아는 재빨리 검을 휘둘렀다.
“내가 돈이 없어 보이나?”
레토는 그런 노아를 보며 고개를 비스듬히 움직였다.
“게다가 신체 훼손이라니….”
그리고 그제야 검을 움직였다.
“신부님한테 그러면 쓰나."
***
“…….”
“…….”
일말의 사정을 전해 들은 클라레와 아스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렇게 제가 이겼고.”
레토는 이보다 위대하고 아름다운 사랑 노래는 없단 듯이, 아주 달콤하고 매혹적인 표정으로 조금 전 상황을 회상했다.
“상대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약속했으니, 노아는 제 소원인 ‘청혼’을 받아들인 겁니다. 참으로 낭만적이지 않습니까?”
“…….”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자칭 예비 신랑 옆에는, 세상에서 가장 암울한 타칭 예비 신부가 있었다.
두 손에 얼굴을 파묻은 채 침묵으로 일관하는 노아는 비련의 주인공이었다.
그리고 레토는 그런 주인공을 악의 수렁텅이로 유혹하는 간사한 악마였고.
“…으이구!”
찰싹찰싹!클라레가 앙증맞은 손으로 노아의 팔뚝을 때렸다.
“나이를!”
찰싹!
“어디로!”
찰싹!
“먹은 거야!”
동네 창피해서 진짜!
클라레의 옹골찬 맴매와 잔소리는 한참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