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 낮과 밤. (7/17)

7. 낮과 밤.

장례식장은 자정이 다 되도록 조문객으로 붐볐다. 복도는 정·재계에서 보낸 근조화환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기자들은 출입구 쪽에 진을 치고 있었고, 장례식장은 삼엄한 경비로 아무나 들어갈 수 없었다. 그룹 의전팀에서 상황을 통제 중이었다.

빈소는 지나치게 넓고 황량했다. 제단은 흰 백합꽃으로 화려하고 웅장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화사한 노란 백합에 둘러싸인 채 세욱은 편안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얼마나 상심이 크십니까.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뭐라 위로해 드릴 말이 없습니다.”

검은 상복을 입고 하얀 리본 핀을 꽂은 지안이 두 손을 모은 채 고개를 숙였다.

조문객을 향해 굽어지는 등이 꼿꼿하면서도 한없이 가늘었다. 비틀거리면서도 그녀는 절대 쓰러지지 않았다.

한때 잘나갔으나 이제는 망해버린 집.

세욱을 찾아오는 지인들은 별로 없었다. 그의 제자들, 혹은 연락 끊겼던 친척들이 세욱이 졌던 빚을 받기 위해 나타났다. 그러나 대부분은 서정후와 그의 집안에 예의를 갖추러 온 사람들이었다.

빈소를 지키고 있는 건 지안 혼자였다.

조문객들은 혼자 서 있는 지안을 향해 뭐라 말을 더 보태려다가도 어색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고 자리를 떠났다.

지안의 안색은 창백했다. 눈과 코끝이 붉게 충혈되어 있었고, 입술에 핏기가 하나도 없었다. 손대면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것 같은 모습으로 그녀는 빈소 한편에 서 있었다.

“지안아.”

급한 걸음으로 들어온 건 민영이었다. 정신없이 달려왔는지 어수선한 모습이었다. 민영은 황망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지안 앞에 섰다.

민영은 제단 위 흰 국화꽃을 들어 꽃봉오리를 세욱을 향해 놓았다. 가까스로 울음을 삼키며 한동안 묵념하던 그녀는 지안에게 다가와 덥석 손을 잡았다.

“선생님, 좋은 곳으로 가셨을 거야. 지금 편히 쉬고 계실 거야.”

갑작스럽게 찾아온 죽음이었다.

다 함께 웃으며 병실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게 엊그제 같았다.

“…와줘서 고마워.”

지안이 힘없이 입을 열었다. 민영은 울먹이는 눈으로 제 친구를 바라보았다. 지안의 체구가 이렇게 작았나 싶었다.

“너 진짜…!”

민영은 손을 뻗어 지안을 끌어당겼다. 오랜 친구의 품은 따뜻하기만 했다.

내내 차가운 몸을 떨던 지안은 그제야 얼굴을 무너뜨리며 울기 시작했다. 민영은 소리를 내어 우는 지안을 꼭 끌어안았다.

“…민영아, 나 이제 괜찮아.”

한동안 슬픔을 토해내던 지안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들었다. 민영이 가방에서 손수건을 꺼내 지안의 손에 쥐여주었다.

“…그런데 정후 선배는?”

민영은 뒤늦게 생각났다는 듯 지안에게 물었다.

“왜 너 혼자 있어? 상주가 자리 비워도 돼?”

지안은 대답하려다 말고 애써 마음을 가라앉혔다. 상주가 지나치게 흐느끼는 건 보기 좋지 않았다.

“베트남에서 태풍 때문에 항공편이 전부 취소돼서….”

“뭐?”

민영이 무섭게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이 와중에 해외로 출장을 갔단 말이야?”

민영은 성난 표정으로 지안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하며 터져 나오는 욕을 겨우 삼키는 얼굴이었다. 지안이 민영의 팔을 잡았다.

“갑자기 이렇게 된 거라 경황이 없었어.”

예고된 죽음이란 없었다. 이미 흘러간 시간처럼 죽음 또한 되돌릴 수 없었다.

지안은 저를 둘러싼 상황을 객관적으로 생각하려 애썼다.

세욱의 마지막을 의연하게 지키는 것. 그것이 지금 그녀가 해야 할 일이었다.

그러나 가슴 속 가득 밀려 들어오는 원망만은 어쩔 수 없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지안의 연락을 받은 김 실장은 30분 만에 병원에 도착했다. 일사천리로 빈소를 마련하고 상황을 정리해갔다. 곧이어 골프복 차림의 서강욱 회장 내외가 도착했다. 지방에서 급히 올라오는 길이라고 했다. 그들은 지안의 얼굴만 살피고 옷을 갈아입기 위해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정후는 오지 않았다.

그는 빠져나올 수 없는 회의에 참석 중이라 확인이 늦었다 했다. 소식을 듣고 급히 귀국하려 했지만, 기상악화로 인해 항공 일정이 전부 취소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군요.’

김 실장은 지안의 얼굴을 차마 바라보지 못했다. 지안은 표정 없는 얼굴로 빈방에서 홀로 상복을 갈아입었다.

간병인의 전화를 받을 때만 해도 이렇게 갑작스럽게 아버지를 보내게 될 줄은 몰랐다. 머릿속이 새하얬다.

거울을 바라보며 흰 리본 핀을 꽂고 있는데, 휴대폰에 길고 낯선 번호가 찍혔다.

‘…미안해.’

휴대폰 너머로 들려왔던 낮고 건조한 목소리. 지안은 대답 대신 긴 침묵을 돌려주었다. 수 분 후, 통화는 끊어지고 액정화면은 검게 물들었다. 실낱같던 정후에 대한 마음 어딘가가 툭, 끊어지는 듯했다.

“민영아, 이제 가봐.”

민영은 말없이 친구의 손을 잡았다. 그녀의 두 눈엔 안쓰러움이 가득했다. 늘 어른스러웠던 친구였다. 그래서 더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다시 한 무리의 조문객들이 밀려 들어왔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사람들을 향해 고개를 숙이는 지안의 옆모습이 담담했다.

영정사진 속의 세욱과는 일생 단 한 번도 마주쳐 본 적 없는 사람들이 빈소를 가득 메웠다. 위로의 말을 쏟아내는 사람들을 향해 지안은 기계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 * *

영희는 새벽 3시가 가까운 시간이 되자 잠시 눈을 붙일 요량으로 유가족실 문을 열었다. 온종일 접객실을 누비고 다녔던지라 입이 다 아팠다.

소파 위엔 이틀 내내 쉬지 않고 아버지의 영전을 지키던 지안이 누워있었다. 내일이 발인이라 조문객의 발길은 뜸했다. 빈소에는 세욱의 먼 친척이 서 있었다.

“어머님.”

영희를 발견한 지안이 부스스 일어나 옷매무새를 추슬렀다.

“피곤할 텐데 그냥 누워있어라.”

영희는 손을 내저으며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지안은 괜찮다고 말하며 메마른 얼굴을 쓸었다. 두 눈이 퉁퉁 부었고, 피골이 상접했다.

“식사는 좀 했니?”

영희는 관자놀이를 짚으며 지안을 바라보았다. 정후의 행방을 묻는 사람들로 인해 영희는 진이 빠졌다. 일이 꼬여도 또 이렇게 꼬이는지. 이 집과는 끝까지 뭐가 안 맞는다고 영희는 속으로 푸념했다.

“네. 먹었어요.”

도통 나와서 뭘 먹는 모습을 보지 못했지만, 지안은 먹었다고 했다.

“잘 먹어둬야지, 안 그러면 몸 상한다. 이럴 때일수록 잘 먹고 힘을 내야지.”

“네.”

조용히 대답하는 지안을 영희가 살피듯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혹여나 정후 탓 말아라. 걔가 일부러 못 왔겠니? 태풍으로 전세기고 비행기고 아무것도 못 뜬다는데 그걸 어떡하겠어. 천재지변을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영희는 지안을 향해 못 박듯 말했다. 나중에 뒷말이 안 나오려면 책임소재를 단단히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안의 무감한 눈동자가 영희를 향했다. 이 와중에도 영희는 오직 제 식구들만 챙길 따름이었다.

지안은 영희와 더는 말을 섞고 싶지가 않았다. 이곳은 아버지의 빈소였고, 지안은 그저 세욱의 죽음을 애도한 뒤 조용히 보내고 싶었다.

지안이 정후의 부재에 대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영희가 이내 눈빛을 바꾸며 가까이 다가와 앉았다.

“그래, 아버님이 그렇게 갑자기 가버리셨으니 마음이 얼마나 쓸쓸하니.”

“…….”

“그래도 살 사람은 살아야지, 안 그래?”

지안은 고개를 들어 영희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또 무슨 말을 하려나 싶었다.

영희는 지안의 기색을 엿보며 미리 준비했던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날짜 받아뒀다. 아주 좋은 날이야.”

영희의 뜬금없는 서두에 지안이 입을 열었다.

“무슨 말씀이세요?”

갑자기 좋은 날이라니. 지안은 영희를 황당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영희는 그런 지안의 손을 잡아끌며 가볍게 손등을 두드렸다.

“한두 달 정도 푹 쉬고 나면 너도 좀 기분이 나아지지 않겠니? 나랑 같이 운동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니자. 다들 필드에 며느리 데리고 다니는데 내 체면도 좀 세워주고. 그렇게 회복하면서 올가을쯤 같이 준비해야지.”

나긋하게 속삭이는 영희의 모습은 더없이 자애로운 시어머니 같았다.

“준비요?”

지안이 짓무른 눈가를 매만지며 물었다.

“뭐긴. 너랑 정후 애 말이다.”

영희는 고개를 꼿꼿이 세우며 지안을 바라보았다. 지안은 바로 표정을 굳혔다.

여기까지 와서 그 이야기라니.

“어머님, 저 당분간은 병원 갈 생각 없어요. 몸도 안 좋아서 시술도 어렵고요.”

지안은 정색하며 입을 열었다. 딱 잘라 말하지 않으면 원하는 대답이 나올 때까지 영희는 멈추지 않을 것이었다.

“어렵긴 뭐가 어려워. 그냥 난자 채취만 하면 되는 건데.”

영희는 천진한 얼굴로 지안을 응시했다.

“네?”

지안은 두 눈을 크게 뜨고 영희를 바라보았다.

난자채취라니.

영희는 아직도 그 황당한 발상을 포기하지 않은 듯했다.

“내가 저번에 한 말, 그냥 웃자고 한 소린 줄 알았어?”

영희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

“…어머님.”

지안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영희는 갑자기 목소리를 한 톤 낮추며 어르듯 말하기 시작했다.

“얘, 지안아. 네가 품는 것도 아닌데 도대체 무슨 걱정이야?”

아직도 제 논리를 이해 못 했냐는 듯 영희는 답답한 표정이다.

“그냥 눈 딱 감고 1년만 좀 참아봐라. 껄끄러우면 잠깐 외국이라도 나갔다 오든가. 나머진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영희는 지안의 팔을 붙잡으며 간절한 얼굴로 속삭였다.

“그렇게 1년 딱 참으면 얼마나 좋니? 잠깐 다른 사람 몸에 들어가 있다가 나온다고 생각하면 되잖아. 걔가 정후랑 네 아이지, 그 여자랑 정후 아이겠어? 요즘 기술이 얼마나 좋아졌는데 다 활용을 해야지. 어르신 그렇게 가시면 너도 속 허전할 거 아니야. 정후 저건 바빠서 제대로 집에 오지도 못하는데.”

잠깐 다른 사람의 물건이라도 빌리는 것처럼 영희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리모 이야기를 했다.

수년간 아이를 갖기 위해 노력했고, 그 과정에서 몇 번의 유산을 겪은 지안은 심한 모욕감을 느꼈다.

“어머님, 어떻게 그게 제 아이예요? 그게 말처럼 그렇게 쉽게 받아들여지는 일이 아니잖아요.”

영희는 지안을 보며 한숨을 푹 내쉬다 소파에서 일어났다. 지안은 치밀어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며 영희를 설득하려 애썼다.

“혹시라도 이 일이 밖에 알려질 경우, 정후 씨가 받을 타격은 생각해보셨어요? 회사 이미지에도―.”

“너 나 못 믿니?”

영희의 얼굴이 무섭게 변해있었다. 지안은 그게 아니고요, 어머님. 하며 그녀의 팔을 잡았다.

그러나.

“그러게 누가 애 못 가지랬어?”

영희는 금테안경을 빛내며 차갑게 웃었다. 심장에 비수를 꽂는 듯한 말에 지안의 손이 그대로 굳었다.

“나랑 정후가 막말로 너한테 못 해준 게 뭐가 있어? 임신 못 해서 우울해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왜 밖에서 일하는 남자 신경 쓰이게 만들어? 그렇게 속상하면 무슨 대책을 마련하든가. 미적거리길래 아예 답안지를 만들어서 앞에 갖다줬는데. 어디서 못 배워먹은 사람 취급이야?”

지안은 두 눈을 크게 뜬 채 영희를 바라보았다. 어떤 서러움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이제껏 산부인과에 다니면서 정후의 스케줄 한번 어긋나게 한 적이 없었다. 처절한 외로움과 고통을 견디다 못해 속으로 곪아버린 상처에 영희는 마구 소금을 뿌려대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못 배워먹었으면 넌 은혜도 모르는 년이지. 너희 집에 들어간 돈이 어디 한두 푼인 줄 알아?”

지안은 더는 참지 못하고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영희와 같은 곳에 있다가는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았다. 영희가 밖을 향해 걸어나가는 지안의 어깨를 잡아당겼다.

“네 생각만 고치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이야. 그깟 생각 한 번 고쳐먹는 걸 왜 이렇게 못 하니? 모든 건 마음 먹기 달렸다, 이런 말도 몰라?”

지안은 소름 끼치는 표정으로 영희를 바라보았다.

영희의 두 눈 가득 서려 있는 욕망과 집착이 끔찍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자신의 목표를 향해 피도 눈물도 없이 모든 것을 고치며 살아온 여자였다.

본인도, 그리고 자신의 아들도.

지안은 극심한 피로감을 느꼈다.

아버지를 그렇게 떠나보낸 지 이제 막 48시간이 지났을 따름이었다. 아직도 병원 어디선가 햇빛이 잘 들어오는 병실에서 세욱이 웃으며 자신을 반겨줄 것 같았다.

“지안아, 아주 좋은 날 받아왔다. 네가 딱 한 번만 눈감고 지나가면 정후도 잘되고 그다음 후대도 잘 되고 앞으로 우리 집안 대대로 큰 문제 없이 살 수 있을 거다.”

영희는 지안의 얼굴을 보며 간절히 속삭였다.

“이건 부탁도 아니고 시어머니로서 명령이야. 이 부분은 네가 희생해.”

지안은 한동안 말없이 서 있다 천천히 입을 뗐다.

“아뇨, 전 못 해요.”

“뭐?”

“절대 안 돼요.”

영희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게 어떻게 제 아이가 되나요? 어머님 요구 들어줄 며느리, 아마 이 세상에 없을 거예요. 적어도 이제까지 제가 살아온 상식에선 그래요.”

“너, 이…!”

영희는 말문이 막혔다. 두 눈이 분노로 이글거렸다. 금방이라도 지안의 뺨을 올려붙일 듯 주먹 쥔 손이 부르르 떨렸다.

말이 통하지 않으면 물리적인 힘을 쓰는 것이 영희의 버릇이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지금 여기엔 영희가 던질만한 물건이 없었다.

“너 나중에 나랑 어떻게 보려고 이렇게 막말을 퍼부어?”

영희는 지안을 바라보며 꽥 소리를 질렀다.

“이게 무슨 소란이야?”

순간 유가족 실의 문을 열고 서강욱이 들어왔다. 그는 두 사람을 매서운 눈으로 훑으며 영희를 바라보았다.

“당신은 지금 생각이 있는 거야? 여기가 어딘 줄은 알고 그러는 거야? 당장 그만둬.”

워낙 조용한 곳이라 그런지 영희의 목소리가 문밖까지 들렸다. 서강욱의 엄중한 목소리에 영희는 입을 싹 다물었다.

“잠깐 며느리랑 얘기 좀 한 거 가지고 뭘 그래요?”

영희는 헛기침하며 우두커니 서 있는 지안을 힐끔 바라보았다.

서강욱의 눈이 곧 쓰러질 것 같은 지안을 향했다. 그는 며느리 혼자 빈소를 지키는 상황이 마음에 차지 않았다. 세욱은 평소 서강욱을 볼 때마다 지안을 잘 부탁한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나쁘지 않은 사돈 관계였고, 그는 며느리가 마음에 쓰였다.

“그 정도로 하고 이만 나가지. 지안이는 좀 더 쉬고 있거라.”

서강욱은 영희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지안은 다시 혼자가 되었다.

‘네 생각만 고치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이야. 모든 건 마음 먹기 달렸다, 이런 말도 몰라?’

영희가 할퀴고 간 말이 지안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녀를 둘러싼 상황이 하나의 결론으로 수렴되어 갔다.

“…….”

더는 인생의 남은 날들을 하염없이 무언가 기다리는 시간으로 채우고 싶지 않았다.

세욱 또한 지안이 그렇게 살기를 바라지 않을 것이었다.

* * *

서울을 빠져나와 국도에서도 한참을 더 들어간 외곽지역. 제법 높다란 산등성이 너머로 해가 기울고 있었다.

산 중턱쯤에 있는 잿빛 건물을 향해 빠르게 다가오는 차 한 대가 있었다. 공항에서 이곳까지 쉴 틈 없이 달려온 참이었다.

끼이익.

매끈하게 빠진 검은색 세단은 건물 입구에 멈춰 섰다. 문 옆에 대기하던 김 실장이 빠르게 달려 나왔다.

“부사장님, 오셨습니까.”

정후는 싸늘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발인은?”

“지금 막 끝났습니다.”

김 실장은 송구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검은색 정장을 입은 그는 말없이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서정후는 4시간 걸리는 거리를 10시간을 돌아서 왔다. 태풍으로 인해 인천으로 가는 항공편이 연달아 연착되었다. 뜬눈으로 하루를 지새우고, 바로 출발하는 비행기를 찾아 중국을 경유해서 왔다.

비서는 반나절 더 기다리면 직항 운행이 가능할 것이라 했다. 그러나 정후는 무시하고 비행기에 올랐다. 그가 판단하기에 쉬이 괜찮아질 것 같은 날씨가 아니었다. 퍼스트건 이코노미석이건 빨리 한국으로 복귀해야 했다.

좁아터진 좌석에 다리를 구겨 앉았고, 항공기 점검 문제로 베이징에서 3시간을 소비했다.

불안정한 대기층을 뚫고 날아오른 항공기는 두 번 정도의 극심한 터뷸런스를 겪었다. 복귀하던 음료 카트가 기울어지며 그의 바지와 구두를 적셨다. 좌석 시트와 바닥 전부가 주스 액으로 흥건했다.

‘…안 가면 안 되겠죠.’

그를 바라보던 지안의 눈빛이 자꾸 떠올랐다.

생과 사의 문제는 그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 밖의 일이었다. 갑자기 닥친 태풍처럼. 그러나 그의 신경을 갉아 먹고 있는 건 다른 부분이었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장지로 직행했다. 달리는 차 안에서 엉망이 된 옷을 갈아입었다.

납골당 특유의 서늘하고 건조한 공기가 맴돌았다. 그의 예상을 벗어난 평이한 추모 시설이었다. 지안의 고집으로 이곳을 택했다는 김 실장의 설명을 들었다.

대체 무슨 생각인 건지.

정후는 서둘러 그녀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빈소에서 영희와 큰 소란이 났다는 보고를 들었다. 일단 지안을 집에 직접 데려다준 뒤 회사에 가서 급한 불을 꺼놓고, 일주일 정도 스케줄을 전부 비울 생각이었다.

지난 스캔들 기사 건부터 해서 정후는 요즘 지안의 심리를 종잡을 수가 없었다.

익숙한 얼굴의 사람들이 그를 향해 인사를 하거나 다가왔다. 정후는 차갑게 굳은 표정으로 말을 아꼈다. 지금 그의 눈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휴대폰을 꺼내는 팔을 누군가 잡았다. 고개를 돌리니 지안의 친구 민영이었다.

“정후 선배.”

“오랜만이다.”

정후는 기계적으로 대답하며 민영을 바라보았다. 흔한 안부 인사조차 없이 그는 제 용건부터 물었다.

“지안이는?”

민영은 짧게 한숨을 내쉬며 건물 밖을 가리켰다.

“발인 끝나자마자 혼자 있고 싶다고 밖으로 나갔어요. 건물 밖 오른쪽 의자 있는 곳으로 가보시면―.”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정후는 문을 향해 사라졌다. 여전히 인간미 없는 뒷모습을 보며 민영이 작게 혀를 찼다.

정후는 단숨에 건물 모퉁이를 돌았다. 그가 내내 찾아 헤맸던 인영이 드디어 눈앞에 있었다.

아직 하늘은 밝았다. 하얀 달이 떠 있었다. 햇빛이 약해지며 달의 일부가 어설프게 하늘 위로 드러났다.

지안이 벤치에 앉아 제 발끝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상복이 큰 건지 몸이 작아진 건지 마치 검은 천으로 푹 싸인듯한 모습이었다. 한동안 그녀를 바라보던 정후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지안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갔다.

옆모습만 봐도 그 새 얼굴이 많이 상해 보였다.

그는 지안의 슬픔에 강한 책임감을 느꼈다. 남편으로 해야 할 도리를 못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지안.”

지안이 고개를 들었다.

까칠하게 일어난 뺨엔 눈물이 말라붙어 있었다. 온몸의 수분기가 증발해버린 듯 버석한 눈빛이었다.

이곳으로 오는 길 내내, 정후는 지안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러나 그의 기억 속에 있던 생기 넘치고 포근한 모습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지금 그 앞에 남은 건 완전히 허물어져 버린 그녀의 껍데기였다.

“…늦었네요.”

그의 눈을 바라보며 지안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생각보다 차분한 어조였다.

이럴 땐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정후는 알 수 없었다.

“…….”

시간 내에 오지 못한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입술을 달싹였지만, 말을 잇지 못했다.

언제나 예정된 그의 부재는 두 사람에겐 이미 처음부터, 그리고 오래전부터 정해진 하나의 전제이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그렇게 누적된 시간이 만들어낸, 어떤 결과였다.

정후는 그제야 뭔가 크게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중요한 것을 놓쳤고, 본능적으로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음을 깨달았다. 이제껏 그가 달려왔던 견고한 바닥이 얇디얇은 빙판으로 변해 쩍쩍 금이 가고 있었다.

매 순간 생동감으로 빛나던 여자의 두 눈은 슬픔과 분노와 원망으로 가득했다.

지안은 체념의 눈으로 정후를 바라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조용히 그를 스쳐 지나갔다.

정후의 눈이 소리 없이 지안의 궤적을 좇았다.

그대로 끌어안고 싶었다.

이대로 사라져 없어질 것 같은 저 뒷모습을.

그러나 그건 혼자만의 욕망일 따름이었다.

어떤 걸음으로 다가가 손을 잡고, 그녀의 눈을 들여다보며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그는 방법을 몰랐다.

“…지안아.”

정후가 지안에게 가까이 다가가자 그녀는 걸음을 멈추었다. 몸을 돌려 정후를 바라보았다. 하늘이 점점 어둑해지고 있었다.

지안의 하얀 얼굴이 어슴푸레 물들어 갔다. 밝은 곳에서 드러났던 것들이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지안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은 채 정후를 바라보다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이혼해요, 우리.”

묻는 말이 아니었다. 통보였다.

“뭐?”

정후는 굳어버린 표정으로 지안을 응시했다.

“이혼 서류는 당신 서재 책장, 맨 아래 칸 서랍 열면 있을 거예요.”

지안은 마치 일상 대화를 하듯 조용히 읊조렸다.

“…무슨 소리야.”

정후는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거 거기 둔 지 꽤 됐어요.”

정후는 대답하지 않았다. 지안은 우뚝 서 있는 그를 바라보며 생각을 고르는 듯 잠시 입술을 달싹이다 다시 입을 열었다.

“정후 씨한테 하고 싶었던 얘기가 있었어요. 이렇게 꺼내게 될 줄은 몰랐지만….”

짙어지는 어둠 속에서 점점 또렷해지는 눈동자가 그를 올려다보았다. 언제나 정후의 곁에 있었던 지안의 올곧은 시선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왜 우는 얼굴처럼 보이는 걸까.

“정후 씨를 오랫동안 좋아했어요. 결혼하기 전부터.”

“…….”

정후는 대답이 없었다. 그를 향한 지안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슬퍼 보였다.

“나한테 늘 뭐가 필요하냐고 물었었죠. 난 정후 씨가 무얼 해줘서가 아니라 그냥… 있는 그대로의 당신이 좋았어요. 서정후라는 사람이요.”

“지안아.”

정후는 지안에게 다가가려 했지만, 지안은 더 가까워지는 걸 거부하는 듯 몸을 물렸다.

“근데 점점 더 견딜 수가 없어져요, 정후 씨랑 있는 게.”

“…….”

“너무 지쳐서 당신을 사랑하는 감정이랑 미워하는 마음이 구분이 안 돼요.”

지안이 힘겹게 내뱉은 말이 정후의 폐부를 찔러왔다.

“정후 씨는 그냥 옆에 있어주면 된다고 했지만 난… 그게 제일 힘들어요. 정후 씨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있을 수가 없어요, 당신 옆에 있으면.”

이게 마지막 기다림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의 빈소에 오지 않는 그를 기다리며.

혼자 가지런히 정리한 생각들을 지안은 정후에게 담담히 내밀었다.

“…끝내요, 우리.”

“지안아.”

“이제 더는 못하겠어요.”

“그만…, 그만 말해.”

“원하는 게 뭔지 물었죠. 정후 씨가 이혼해주는 게 지금 내가 바라는 거예요.”

“…이렇게는 안 돼.”

정후가 한 발짝 다가와 지안의 손목을 잡자 그녀가 힘겨운 시선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이렇게라도 나, 이 결혼 그만두지 않으면 정말 말라죽을 것 같아요.”

잡힌 손목이 육안으로도 보일 만큼 떨리기 시작했다. 지안의 호흡이 점차 가빠졌다. 지안은 제 입을 틀어막으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나 좀 놔줘요, 제발. 숨 좀 쉬면서 살게 해줘요.”

지안은 제 가슴을 마구 쳐대며 숨을 헐떡였다. 정후는 울부짖으며 아픔을 토해내는 그녀가 낯설었다.

산속은 이제 완전한 어둠이 내렸다. 지안이 흐느끼는 소리가 귓전을 울려댔다.

정후는 황망한 얼굴로 제가 만든 감옥에 갇힌 지안을 바라보았다.

그를 기다리다, 오지 않는 그를 보며 스스로 변명을 늘어놓다, 언젠가 그가 달라질 거라는 희망의 벽을 쌓아 올리다 끝끝내 그 감옥에 갇혀 질식해가는 그녀의 모습을.

“…….”

그는 언제나 제 옆엔 지안이 있다고 느꼈다. 그녀의 손을 잡고 두 사람은 함께 앞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느 날 돌아보니 그의 손은 텅 비어있었다.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먼 곳에서 그는 지안을 놓아둔 채 혼자 달려나가고 있었다.

서정후는 이제야 깨달았다. 그가 지안을 소유한 것이 아니라 그녀가 그의 곁을 선택했다는 걸. 그녀가 머물러주었다는 것을.

그들은 같은 공간, 서로 다른 시간 속에 살고 있었다.

메울 수 없는 시차가 두 사람 사이를 가로질러 어느 한 사람도 섣불리 건너갈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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