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저 사람 류정우 아니야?”
“그러게? 그런데 무슨 일 있나 봐.”
“야, 괜히 아는 척하지 말고 눈으로만 봐. 큰일이라도 있는 것 같아.”
창백한 표정으로 급하게 골목을 가로지르는 류정우의 모습에 지나가던 행인들이 수군거렸다. 한겨울의 추운 날씨임에도 외투 한 장 제대로 걸치지 않고 와이셔츠에 슬랙스만 입은 모습은 누가 봐도 제정신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그의 소식을 접한 매니저가 어떻게 그를 찾아낸건지 불이 나게 달려와 류정우를 쫓아오기 시작했다.
“류정우!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외투는 입고 다녀! 남들이 보면 약이라도 한 줄 안다고!”
매니저의 부름을 무시하던 그가 마지막 말을 듣고서야 걸음을 멈췄다. 헉헉거리며 그를 따라붙은 매니저는 류정우에게 외투를 건네며 입을 열었다.
“야, 도대체 무슨 일인데 그래?”
그러나 류정우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는 그저 알 것 없다는 듯이 저를 걱정해 오는 매니저를 뒤로하고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러다 문득 무언가 잊었다는 듯이 매니저에게 돌아와서는 손을 뻗으며 말했다.
“모자는?”
그런 그의 물음에 매니저는 예상했다는 듯이 검정 볼캡을 건넸다.
“여기.”
류정우는 매니저에게 건네받은 볼캡을 꾹 눌러쓰며 다시 뒤돌아 걸음을 재촉했다.
지금은 제 유명세 같은 게 문제가 아니었다. 그런 걸 모두 잃게 되더라도 상관없었다. 권래희. 권래희를 다시 만나야 한다는 생각만 그의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었다.
다만 매니저의 말대로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쓸 필요가 있었다. 혹시라도 이 길 끝에서 만난 래희가 저 때문에 피해를 입으면 안 되니까.
왜 기억이 다시 돌아온 시점이 지금인지 모르겠다.
연예인이 되기 훨씬 전에 돌아왔다면 이 길을 다시 선택하지 않았을 거다. 그랬다면 자신 때문에 그녀가 피해 입을까에 대한 걱정 따위 하지 않았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며 걷던 류정우는 잠시 길 한복판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
그의 시선이 어딘가에 고정이 되어 있었다.
류정우의 시선을 따라 도달한 곳은 저 골목 끝에 위치한 분홍색 주택이었다.
“아…….”
그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작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익숙한 건물이었다.
* * *
모든 기억을 되찾은 후 맞이한 ‘초기화’된 지구는 자신이 겪었던 이전의 풍경과는 매우 다른 세상이었다.
이전의 세상에서는 게이트로 인한 건물 붕괴 위험을 줄이기 위해 30층 이상의 고층 빌딩 건설을 금하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이 세상의 기준으로 이전의 지구는 조금은 촌스러운 도시의 모양새를 가지고 있었다.
초기화된 지구는 게이트나 몬스터의 위협이 없어서인지 평화로움 속에 완전히 다른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서울 한복판에 세워진 100층 이상의 건물 하며, 지상으로 다니는 전철과 무너질 일 없다는 듯 테라스 없이 유리창으로만 구성된 빌딩들.
도심뿐만 아니라 외곽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전의 지구는 외곽 지역의 위험성 때문에 인적이 매우 드물었지만, 이번 세계는 ‘핫 플레이스’라는 명목으로 외곽 지역에도 유동 인구가 매우 많았다.
모두들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게이트로 인한 죽음 같은 건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는, 평화로움이 당연하다는 듯한 편안한 표정으로 거리를 거닐고 있었다.
류정우는 놀란 표정을 감추며 언젠가 래희의 가게가 위치해 있었던 골목을 걷고 있었다. 이곳은 현재 카페 거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가게들과 많은 관광객으로 붐비고 있는 상태였다.
‘…너무 다른데.’
귀환자가 몇 년 만에 돌아온 지구의 변화로 인해 적응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던 그때, 류정우의 시야에 유일하게 익숙하다고 느껴지는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건 바로 작은 분홍색의 2층 주택이었다.
‘…여기인가?’
이름은 기억 속의 것과 약간 달랐다.
‘야미베어 베이커리’라고 적혀 있던 간판은 어디로 사라지고 그곳에는 ‘곰순이네 빵집’이라는 간판이 달려 있었다.
그러나 기억과 다른 가게 이름에 류정우는 실망하지 않았다.
“…곰순이.”
곰순이라니. 보통 곰돌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는 데 반해 곰순이는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관용적인 표현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러니 ‘곰순이’이라는 이름이 과연 우연일까?
아닐 가능성이 컸다.
이 가게의 사장은 높은 확률로 권래희의 것이거나 아니라면 그녀와 관련되어 있을 확률이 높았다.
‘…우연이 아닌 게 분명해.’
류정우는 숨을 크게 한번 들이쉰 뒤, 가게를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크리스마스 전날이지만 월요일 오전이라 그런지 가게 안은 손님이 없었다. 밖에서 가게 내부를 확인한 류정우는 망설임 없이 가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곰순이네 빵집입니다!”
카운터 쪽에서 젊은 남성이 인사해 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류정우는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에 곧장 고개를 돌렸다.
‘…희우?’
희우. 곰순이이자 래희의 친구였던 몬스터.
롬바르나의 생명체가 멀쩡한 사람이 되어 류정우의 눈앞에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인물에 류정우가 당황하며 가만히 서 있자 아르바이트생으로 보이는 희우는 의문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물었다.
“손님? 찾으시는 게 있으신가요?”
그에 류정우가 당황하며 저도 모르게 물었다.
“저기, 사장님은……?”
“네?”
희우는 아침부터 찾아온 손님이 가게 사장을 찾는 모습에 의아했다. 그러다 문득 모자 아래로 보이는 얼굴을 발견한 이후 충격을 받은 듯 제 입을 가리며 비명 지르듯 말했다. 그는 이전의 희우와는 생판 다른 성격을 가진 듯해 보였다.
근육질을 가진 건장한 체격을 가진 남성의 모습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 제법 깜찍한 표정과 자세였다.
“어어어? 류정우?!”
찰나의 순간이지만 모를 수 없었다. 요즘 인기 있는 드라마의 주인공이라서가 아니라, 희우 그의 호적 메이트가 미치도록 좋아하는 연예인이었기 때문이었다.
류정우를 향해 삿대질하며 놀라던 희우는 가게 주방 쪽을 향해 소리 질렀다.
보통은 이런 태도는 매우 무례한 것이었으나 류정우는 그 행동을 무례라고 느낄 새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희우의 입 밖으로 나오는 이름은 그에게 기쁜 충격을 선사했기 때문이었다.
“누나! 권래희 빨리 나와 봐!”
권래희.
바로 류정우 그가 그토록 절실하게 찾아 헤매던 주인공이었다.
“……!”
이내 류정우는 가게 뒤쪽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는 사람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양 갈래로 땋아 단정하게 묶은 검은 머리칼.
하얀 셔츠 위로 가게 안에서 일할 때면 항상 입고 있던 분홍색 앞치마.
순하고 동그란 눈매와 별빛을 박은 듯 반짝이는 까만 눈동자.
그녀는 바로 그가 열렬하게 사랑했던, 사랑하는, 사랑할… 다른 누구도 아닌 권래희였다.
류정우는 벼락이라도 맞은 듯 그 자리에 서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
혹시라도 눈을 깜빡이면 그녀가 사라질까, 눈도 깜빡이지 않았다.
그저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서 그녀를 하염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물방울이 턱 아래로 떨어지며 목을 간질였다. 저도 모르게 류정우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던 거였다.
“아…….”
류정우는 입을 벌렸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나오는 건 말이 아닌 신음뿐이었다.
“어……. 지금 무슨 큰일 난 거 아니죠?”
한동안 두 사람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흐르자 얼떨떨한 목소리로 권희우가 물어 왔다. 그도 그럴 것이 절대로 눈물이 많아 보이지 않는 류정우가 사연 있는 사람처럼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혈육을 서글픈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 중 그 누구도 희우의 의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덕분에 긴장이 조금 풀린 듯한 류정우가 그제야 눈물을 닦으며 입을 움직여 말을 할 수 있었다.
“래희 씨……. 이제 와서 미안해요. 많이 기다렸어요?”
여전히 물기 가득한 목소리였다. 그러나 그런 물기 어린 목소리와 달리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그의 미소에 조용히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던 래희의 표정이 서서히 풀어지며 그를 따라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입을 열었다.
“아뇨.”
류정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움직이는 그녀의 입술을 조용히 응시했다.
잠시 한 템포 쉬는 것처럼 보이던 래휘는 작게 숨을 들이켠 뒤 뒤이어 말했다.
“이렇게 찾아와 줬으니까. 괜찮아요.”
그렇게 말한 래희의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뚝 떨어졌다.
보고 싶었던 얼굴. 보고 싶었던 미소.
제 마음을 모두 앗아 간 주인이 다시 자신에게로 돌아왔다. 정말로 많이 보고 싶었다.
류정유는 다시 만나는 순간에 우는 모습만 보여 주고 싶지 않아 애써 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안녕. 내 팬.”
이번 생도 잘 부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