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화
[라치패치] 피에타 류정우 주연의 ‘더 디스토피아’플랙스 세계 시청률 순위 1위 달성. K-콘텐츠 파워를 다시 한번 알려…….
지난 3월 OTT 서비스 플랙스에서 공개된 오리지널 시리즈 ‘더 디스토피아’가 세계 시청률 순위 1위를 달성했다.
아이돌 출신의 배우 류정우의 첫 번째 데뷔작으로 연기력 논란을 딛고 흥행에 성공해… (중략).
‘더 디스토피아’는 동명의 원작 웹소설을 드라마화한 내용으로 그동안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헌터물’이라는 장르를 처음으로 다룬 작품이다.
모종의 이유로 멸망해 가는 지구와 자신의 능력을 숨기는 남자가 지구를 구하는 내용으로… (중략) 원작 작가 체자레는 “영웅이 되기를 원치 않은 남자가 의도치 않게 지구를 구하게 되는 것이 주 포인트”라고 했으며, 이번 드라마화 과정을 맡은 김유한 감독은…….
[더 디스토피아] 시즌 1 선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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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정우 연기 못할 줄 알았는데 잘하네.
└인정. 진짜로 겪어 본 사람처럼 절규하는데 개쩔었음.
└연기 활동한다고 아이돌 접은 건 좀 슬프다.
- Jung Woo Oppa!
- 헌터물을 드라마로 만든 건 처음이라 걱정했는데 확실히 투자 많이 하는 플랙스라 그런지 CG가 자연스러워서 좋았음.
└ 진짜. 확실히 투자하는 만큼 퀄리티가 올라가는 듯.
- 2:11에 등장하는 슬라임 진짜로 키우고 싶다.
└저거 굿즈로 만들어 주면 많이 팔릴 것 같은데?
-그런데 원작에는 여주도 등장하지 않음?
└드라마는 스토리 상 남주 원톱으로 가기로 했나 봄. 감독이 로맨스는 없다고 못 박았음.
└어차피 로맨스 없어도 스토리에 문제없으니까 상관없다고 봄.
- 류정우 신인인데 어떻게 주인공하냐. 소속사가 대형이라 그런가?
└CG에 공들여야 해서 배우로는 몸값이 싼 아이돌 출신을 쓴 거지. 망하더라도 팬은 볼 거다, 이런 전략 아니었을까.
└응~ 뇌피셜.
류정우는 뮤튜브에 업로드된 영상을 확인하려다 댓글을 모두 읽어 내린 뒤 피곤한 기색으로 휴대전화 화면을 끄고는 소파에 기대 누웠다.
“…이게 이렇게 잘 될 줄은 몰랐는데.”
얼마 전 7년간의 피에타 활동을 마무리한 뒤 그룹 해체를 선언했다.
일부 멤버가 이제는 가수가 아닌 배우 같은 다른 활동을 하고 싶어 한 게 주 이유기도 했고, 대부분 20대 후반에 접어들어 군대도 가야 하고 머리도 커서 단체활동이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물론 요즘 1군 아이돌이 계약 기간이 끝났다고 해서 해체하는 경우는 드물었기 때문에 팬들은 한바탕 뒤집어지긴 했지만, 5년 차부터 단체 활동이 거의 없었기 때문인지 이러한 결과를 예상했다는 듯 여론은 금방 사그라들었다.
그렇게 그룹 해체 뒤 현재 소속된 소속사와 재계약에 성공한 류정우에게 소속사 대표는 아까운 얼굴을 가수로서만 썩히지 말고 ‘배우’ 활동을 하는 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그러나 류정우는 곧바로 거절했다.
“저, 한 번도 연기를 한 적이 없어서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만.”
“아니, 그렇다고 솔로 활동만 하게? 너, 군대 다녀오면 어린애들이 계속해서 치고 올라와서 힘들어. 그러지 말고 연기도 하자. 노래 부르고 싶으면 중간중간 음반도 내 줄게.”
“뮤직비디오 찍을 때도 저 혼자 연기 못한다고 지적 많이 받은 건 아실 텐데요.”
“그건 배운 적 없어서 그런거고. 최고의 선생으로 붙여 줄게. 아니 진짜 네 얼굴이 아까워서 그래~”
계속해서 거절하는 류정우에게 사장은 여전히 아쉬운지 그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애원했다.
“아니, 너는 네 얼굴이 아깝지도 않냐? 나이 들어 더 성숙해 지면서 지금이 딱 배우하기에 적합한데 아무것도 안 한다니…….”
매번 만날 때마다 귀찮게 구는 사장을 피하던 어느 날, 그는 우연히 사장의 사무실 테이블에 올려진 ‘더 디스토피아’의 대본을 발견했다. 그건 류정우에게 제안이 들어왔던 작품으로 우연히라도 발견하기를 바란다는 듯이 사장이 대놓고 그의 눈에 띄도록 올려 둔 대본이었다.
원래라면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았겠지만 저도 모르게 뻗어진 류정우의 손은 기어코 그 대본을 손에 쥐고 말았다.
‘…뭐지?’
‘더 디스토피아’의 내용은 류정우의 흥미를 끄는 데 성공했고 결국 그는 충동적으로 배우로서의 길을 걷겠다고 결정하고 말았다.
그리고 오늘날 류정우는 그 순간을 후회하고 있었다.
[사장님: 시즌 2 제안 왔다. 정우야, 이건 무조건 해야 해.]
꺼져 있는 휴대전화 화면 위로 사장으로부터 온 문자메시지가 나타났다.
그는 귀찮은 일이 생겼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뒤로 젖혀 눈을 감았다.
“뭐든 적당히 해야 한다고…….”
류정우는 드라마를 촬영하는 동안 주인공이 정말로 저 자신이라도 된 듯 몰입하고 있었다. 촬영을 마친 날이면 어김없이 드라마 ‘더 디스토피아’ 배경과 같은 공간에서 살아가는 꿈을 마치 현실인 것처럼 꿨기 때문에 제 정신 건강을 생각한다면 시즌 2는 무리인 듯했다.
‘하지만,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시즌 2는 찍어야겠지.’
그는 문득 드라마의 원작이었다는 소설이 생각났다. 원작 내용에서 많이 각색되는 바람에 참고할 필요가 없다고 여겨 구매해 두고 읽지 않았지만, 시즌2의 내용은 원작과 많이 비슷하다는 작가의 언질을 들었기 때문에 읽어야 할 듯했다.
그래서 그는 책장으로 다가가 종이 책으로 출간된 ‘더 디스토피아’의 1권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책장에 꽂혀 있던 파일 하나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촤르륵.
파일에 꽂혀 있던 종이들이 여기저기 흩어지며 바닥을 어지럽혔다.
류정우는 한숨을 내뱉으며 떨어진 종이를 정리하기 위해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그 순간. 지나치기 힘든 내용의 종이 한 장을 발견했다.
‘혼인신고서.’
내가 왜 이런 걸 가지고 있지?
류정우는 순간적으로 드는 호기심에 혼인신고서를 들어 내용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는 거기에서 그가 잊고 있었던 익숙한 이름 하나를 발견했다.
[권래희.]
“아……. 이거.”
고3이라 입시 때문에 1년 뒤 다시 돌아오겠다고 약속하며 제 팬이 내밀었던 것 아니었나. 그러나 기껏 사인까지 꼼꼼하게 해 줬더니 탈덕했는지 지금까지 보이지 않는 괘씸한 팬이기도 했다.
“쯧.”
류정우는 혀를 한번 차고는 혼인신고서를 제 책상 위에 올려 뒀다. 일단 이건 나중에 처리하기로 하고 집어 든 소설부터 읽을 생각이었다.
* * *
……?
새하얀 천장이 보였다. 매일 아침마다 보는 광경이라 딱히 새로울 것도 없었다.
하지만 오늘따라 느낌이 달랐다.
류정우는 갑작스럽게 떠진 눈에 멍하니 눈을 깜빡거렸다. 뭐지?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아침인데 늦잠을 잔 것처럼 위화감이 들었다.
뭔가 중요한 것을 놓친 것 같았다.
그리고 그때, 류정우는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 그가 몸을 일으키는 것과 동시에 그의 가슴 위로 펼쳐져 있던 책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더 디스토피아.’
전날 소파 위에서 읽다가 잠들었던 소설책이었다.
류정우는 책이 바닥에 떨어지는 것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은 채 거친 호흡으로 소파 위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성큼 거리는 발걸음을 옮겨 창가로 다가갔다.
50층 이상의 높디높은 고층 빌딩이 빼곡하게 들어선 풍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달라.”
무엇이? 류정우의 눈앞에는 어제와 다를 바 없는 풍경이 펼쳐져 있는데 뭐가 다르다는 걸까?
그러나 류정우의 눈동자는 어딘가 충격을 받은 듯 빠르게 떨리고 있었다.
그는 탁상 위에 올려져 있던 휴대전화를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포털 창을 켜고 빠르게 무언가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각성자.
그러나 검색되는 건 각성자라는 설정이 있는 웹소설 뿐이었다.
“아…….”
이곳에는 각성자가 없다. 그리고 헌터도 없다. 몬스터도 없으며 게이트도 없다.
그런 개념은 모두 소설 속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내용이었다.
“꿈인가?”
너무 꿈이 생생해서 착각한 건가?
아니다. 그것과는 다르다.
지난밤 자신이 꿨던 꿈은 여태껏 꿔 왔던 것과는 달랐다.
시간이 지날수록 희미해지는 여타 다른 꿈들과는 달리 정신을 차리면 차릴수록 기억들이 선명해지고 있었다.
꿈이 아니다.
류정우는 제 발치에 떨어져 있는 소설책을 집어 들었다.
‘더 디스토피아.’
이 소설에 나오는 내용과 저가 지난날 꿨던 꿈속의 내용이 놀라울 정도로 흡사해, 순간 전날 읽었던 책의 영향으로 제가 비슷한 꿈을 꿨다고 착각한 거였다.
…어떻게 된 거지?
“…실패라도 한 건가?”
아니다. 그럴 리 없다. 되돌아온다면, 아니 모든 걸 초기화한다면 분명 각성자니 게이트니 그런 문제들과 함께 지구가 멸망할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설명대로 이번 생의 제 기억 속에 그런 문제들은 결코 이 평화로운 지구에서 일어난 적이 없었다.
류정우는 창백한 표정으로 휴대전화 속 오늘 날짜를 확인했다.
20XX년 12월 24일.
항상 제가 회귀했던 날짜보다도 몇 년이나 훨씬 지난 후였다.
‘실패는 아니야.’
하지만 왜 기억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나는 기억하게 된 걸까.
류정우는 일단 지금 자신에게 일어난 제 상황을 먼저 받아들였다.
지금 그는 이제껏 ‘회귀’를 거쳐 와 래희가 선택한 ‘초기화’된 세계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때 혼란스러움을 겪고 있던 그의 머릿속으로 그동안 잊고 있던 지난 삶의 기억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왔다. 순간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 와 류정우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류정우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시점에 그의 몸은 식은땀으로 온통 젖어 있었다.
“하아…….”
그는 신음을 내뱉으며 바닥을 짚고 몸을 겨우 일으켰다. 방금 제게 일어난 상황에 대한 충격으로 정신이 멍했다.
그리고 무언가를 발견한 듯 눈을 크게 끄며 그곳으로 손을 뻗었다.
거기에는 그가 바닥으로 쓰러지다 부딪힌 책상에서 떨어진 ‘혼인신고서’가 널브러져 있었다. 혼인신고서에 적힌 내용을 확인한 류정우의 두 눈에서 눈물이 툭 떨어졌다.
“…권래희.”
내가 이 이름을 어떻게 잊고 살았던가.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될 이름이었다.
그러다 류정우는 눈물을 흘리다 환희에 찬 얼굴로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과거의 제 목소리가 귓가로 스쳐 지나갔다.
‘모든 걸 다 잊게 되더라도 이번에는 제가 먼저 당신에게 찾아갈게요. 언제나 래희 씨가 제게 먼저 찾아와 줬던 것처럼요.’
제 손 아래로 눈물을 흘리던 래희의 얼굴이 잔상처럼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는 그녀의 얼굴을 만지기 위해 손을 뻗다가 사라진 잔상이 남아 있는 허공으로 손을 쥐었다 폈다. 그리고 이내 제 양손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약속은 지켜야지.
조금 늦은 것 같지만. 아니, 많이 늦은 것 같지만 지금이라도 그녀를 찾아야 했다.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으니까.
이번에는 제가 먼저 찾아가기로 약속했으니까, 제가 먼저 그녀를 찾아야 할 때였다.
류정우는 모든 것이 뒤바뀐 세상에서 권래희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전혀 모르면서. 그녀를 찾기 위해 무작정 집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