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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네 빵집은 언제 오픈하나요-114화 (114/120)

114화

* * *

체자레는 미친 듯이 연구했다. 그날 그대로 래희를 데리고 영지로 돌아온 그는 누구의 접근도 하지 못하게 래희를 방 안에 가둬 두고 그녀를 되돌려 놓기 위해 연구에 매진했다.

롬바르나가 멸망해 가는 건 그의 안중에 없었다.

다른 데드보디들과 다를 바 없이 짐승처럼 울부짖던 래희도 문득문득 이지를 되찾는 순간이 있었다. 그리고 바로 지금이 그때였다.

“이번에도 아닌가?”

“…네.”

“정말 아무런 효과가 느껴지지 않는 건가?”

그러나 대답할 힘도 없는지 래희는 그의 말에 그저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체자레는 래희에게 공격받을 거라는 생각도 않고 그녀를 끌어안았다. 마치 소중한 딸을 잃을까 봐 불안한 것처럼 힘껏.

“조금만 더 참아 주렴. 포기하지 말고, 정신을 붙잡기 위해 조금만 더 노력해 줄 수 있겠니? 내가, 내가 빨리 방법을 찾아보도록 하마.”

“…….”

“래희야, 제발…….”

이제는 레이가 아닌 래희라고 정확하게 발음하며 그녀의 이름을 중얼거린다. 그러나 래희는 그런 그의 부탁을 들어줄 수 없다는 듯 그를 살짝 밀어냈다.

“이제, 저를 놓아주세요.”

래희는 힘없는 손을 겨우 들어 체자레의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녀의 차가운 손바닥에 체자레의 따뜻한 눈물이 묻어났다. 저도 모르게 울고 있었던 거였다.

“이 정도면 충분히 노력하셨어요.”

“…….”

“알고 계셨잖아요. 언젠가 이렇게 될 거란걸.”

그랬다. 체자레는 예감하고 있었다. 가뭄이 극심해지고 오염 지역의 범위가 늘어나며 몬스터의 개체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을 때부터.

언젠가 읽었던 예언서 내용처럼 롬바르나의 멸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그는 100여 년이 넘는 세월을 살아가면서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다만, 처음으로 생긴 가족과 그에 뒤따른 행복을 놓치고 싶지 않아 부정하고 있을 뿐이었다. 부정한다고 닥치지 않을 미래가 아니란 걸 알고 있었음에도.

그는 젊은 시절에 자신이 놓쳤던 기회를 떠올리며 매일 밤 죽도록 후회했다. 그때 레지나의 말을 순순히 들어주지 않았어야 했다.

단순히 지적 호기심이 아닌 지배 계층의 책임을 지고 멸망을 막을 방법을 찾았어야 했다.

하지만 후회하기에는 너무 멀리 와 버렸다.

그러나 래희의 소원대로 그녀를 놓아줄 수 없었다. 세상 어느 부모가 제 자식을 제 손으로 포기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가 세상의 멸망을 외면하는 사이 이 세상엔 체자레와 그의 딸 래희 그리고 인간이 아닌 로봇인 집사 알베르토만이 남아 있었다.

“싫다.”

싫었다. 세상에 셋만 남았다는 의미는, 래희의 끝을 만들어 줄 수 있는 건 자신 하나뿐이었다는 뜻이다. 다른 데드보디처럼 2차 진화를 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그리고 그녀에게 안식을 주기 위해서는 제 손으로 래희를 죽이고 그녀를 불태우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체자레는 그럴 수 없었다.

“아버지.”

래희의 손등 위로 뜨거운 물방울이 하나둘 뚝 뚝 떨어졌다. 그녀의 손이 미처 닦지 못해 떨어진 눈물이었다.

“아빠…….”

아빠. 단 한 번도 불린 적 없던 호칭으로 래희가 체자레를 불러왔다. 래희의 얼굴 위로 어렸던 13살의 래희 얼굴이 겹쳐졌다. 그가 처음으로 사랑을 느꼈던 그 순간이.

“미안해요.”

체자레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그녀를 품에 안고 소리 내어 울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흘리는 눈물이었다.

* * *

결국 별다른 이변 없이 래희는 죽었다.

차마 제 손으로 끝내지 못한 체자레는 알베르토의 손을 빌려 그녀의 숨을 끊었다. 그리고 푸른 불꽃으로 롬바르나라는 세상에 흔적도 없이 그녀를 불태웠다.

체자레는 표정을 잃었다. 그리고 반쯤은 아니 완전히 미친 것 같았다.

롬바르나의 세상 모두가 죽었음에도 그는 죽지 못한 채 살고 있었다.

그는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복기하고 또 복기했다. 왜 멀쩡한 수도 한복판에 데드보디가 나타난 건지, 아니 그보다 훨씬 전부터 왜 롬바르나의 멸망이 시작된 것이었는지.

그러다 그는 롬바르나의 신관들이 사라진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멸망으로 인해 죽은 것이 아니라 사라진 것이었다.

그들은 어디로 사라진 건가. 신전의 개들은 그동안 무슨 짓을 벌여 온 것인가.

그리고 그는 깨달았다. 신전 지하에 널브러져 있던 이계인들의 육신. 그리고 한때 래희의 몸에 박혀 있던 마석과 그 마석의 기억. 세계수와 신전에 위치한 이계로 통하는 길.

신전의 개들은 이계인의 육신을 빼앗아 멸망하는 롬바르나를 포기하고 이계로 도망쳤다. 그리고 그 과정에 멸망의 속도가 앞당겨져 예상보다도 일찍 롬바르나에 재앙이 덮친 것이었다.

그뿐일까. 애초에 롬바르나의 멸망은 신의 힘을 빌린다는 그 신관들 때문이었다.

롬바르나라는 세상의 에너지 균형을 유지하는 세계수의 힘을 빼앗아 그들이 신력이라는 힘으로 사용하고 낭비함으로써 롬바르나의 균형이 깨어지고 말았다.

한번 깨어진 균형은 더는 되돌릴 수 없었고 그 결과가 오늘날 그가 겪은 롬바르나의 멸망으로 돌아왔다.

이 모든 일의 원인인 그들은 이계로 도망갔는데 애꿎은 제 딸과 다른 롬바르나 인들이 희생됐다. 그래서 체자레는 죽지 못했다.

권선징악을 이뤄내야 한다는 정의감 때문에?

아니, 그의 가슴은 복수심으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제 손으로 자식의 목숨을 거둔 아비의 복수심은 그 무엇도 막을 수 없었다. 그래서 체자레는 어떤 수를 써서든 이계로 도망친 그들에게 복수하기로 결심했다. 그게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체자레 홀로 남은 롬바르나는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재앙과는 달리 천천히 죽어 갔다.

절망으로 가득찬 하루하루를 버텨 가던 어느날, 그는 롬바르나가 끝을 맞이하기 직전 세상의 이치를 발견했다. 그를 둘러싼 모든 세상은 처음 보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0과 1이 반복된 일종의 프로그램처럼 구성된 세상은 그를 새롭게 이끌었다.

그 깨달음의 순간 모든 게 바뀌었다. 그의 시간이 거꾸로 흐르기 시작했다. 래희가 죽는 순간, 그녀가 성인이 된 순간. 그리고 어린 래희를 처음 만난 순간 그리고 더 뒤로 가 어린 세계수를 다시 만난 순간과 증오스러운 신전의 주인 레지나를 만난 순간.

시간의 태엽은 그 뒤로 계속 다시 감겼다. 그의 탄생 순간 그보다 훨씬 그 이전 롬바르나라는 세상이 창조되는 순간까지. 그리고 그는 다시 래희를 처음 만나는 순간으로 되돌아왔다.

아이의 두 눈을 마주한 순간, 그는 환희에 휩싸였다.

* * *

그러나 롬바르나의 멸망과 동시에 도망간 신전의 개들을 모두 죽여도, 실패했다는 것처럼 시간이 돌아갔다. 하지만 체자레는 포기할 수 없었다.

8번 정도 실패했을까, 그는 방식을 바꾸기로 했다.

래희를 돌려보낸다.

‘롬바르나’에서의 변화가 어렵다면 그와 연결된 이계에서의 변화는 어떨까.

결국 그곳도 롬바르나에 의해 멸망할 게 뻔했지만 원래 그곳은 멸망할 운명이 아니었기에 가능할지도 몰랐다.

그리고 지구에는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가 하나 있었다.

‘류정우’

롬바르나의 멸망으로 인해 래희가 넘어왔던 ‘지구’라는 차원에 오류가 생겼다. 일종의 버그였다.

그리고 그 버그는 그 오류가 생기는 순간 예정되어 있지 않았던 죽음을 맞이한 ‘류정우’라는 인간에게 생기고 말았다.

계속된 실패 원인을 찾기 위해 눈을 ‘지구’로 돌렸을 때야 발견할 수 있었다. ‘류정우’라는 인간도 삶을 끊임없이 반복했다. 그건 류정우의 예정되지 않은 죽음이 바로 버그 그 자체였기 때문에, 반복하지 않으려면 ‘류정우’라는 버그를 제거해야 하는 문제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래서 체자레는 자신은 넘어갈 수 없어 래희를 이용하기로 했다. 자신의 딸이니 뭐든 할 수 있을 게 분명했다. 그렇게 체자레의 의도대로 래희는 지구로 돌아가자마자 류정우와 엮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래희 홀로는 상황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래서 체자레는 방법을 찾았다.

첫 번째는 바로 그동안 일어났던 일들을 압축하여 래희에게 전달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방대한 양의 기억을 어린아이에게 넘기면 부작용이 극심했기에, 그는 그동안의 이야기를 ‘류정우’를 중심으로 만든 하나의 책으로 엮었다. 그러고는 그 책을 전생에 읽었던 책으로 가장해 그녀의 기억 속에 심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바로 자신이 ‘성좌’가 되는 것이었다.

‘성좌’란 멸망한 차원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세상의 비밀을 엿본 이들에게 주어지는 신과 같은 권한이었다. 그래서 체자레는 지난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사용한 적 없던 권한을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차원 ‘롬바르나’의 생존자 ‘체자레 몬페라토’에게 ‘성좌’의 지위가 부여됩니다.]

[닉네임을 입력하세요. ‘랜덤 | 직접 입력하기’]

‘이런 건 대충 지어도 되겠지.’

체자레는 귀찮음에 ‘랜덤’이라는 선택지를 눌렀다.

[닉네임 ‘운명의 길잡이’가 설정되었습니다.]

[축하합니다! 후원자 선택이 가능합니다. 원하는 차원에 접속하여 후원자를 선택해 주세요!]

망설임 없이 지구라는 차원을 검색한 체자레는 곧바로 후원자를 찾았다.

[‘권래희’님을 후원하시겠습니까?]

그는 화면 위로 나타난 래희의 이름을 두 눈에 담았다.

* * *

“아…….”

래희는 터져 나오는 비명을 참았다. 류정우에게 건네받은 열쇠를 쥐고 주문을 외운 순간 잊고 있던 모든 과거가 눈앞에 스쳐 지나갔다. 아무것도 모르던 첫 번째 삶부터 체자레에 의해 환생한 줄로만 알았던 바로 지금 이 순간까지.

“왜…….”

의미 없는 질문이었다. 왜냐니. 자신도 알고 있지 않은가. 그들의 평화로운 생이 될 수 있었던 걸 망친 이들을 향한 체자레의 복수였다는 것을.

그리고 체자레의 입장에서 보여 주는 지난 과거를 엿본 건 류정우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는 드디어 왜 자신의 삶이 끝나지 않고 계속해서 끊임없이 반복되어 왔는지 알게 되었다.

‘버그라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원래대로라면 죽지 않고 행복하게 생을 보낼 수 있었음에도 우연이 겹쳐 생긴 버그 때문에 그러한 고통을 겪게 되었다니. 그는 이 이해되지 않는 상황을 애써 이해해 보려 노력했다. 그는 갑작스럽게 너무 많은 정보를 받아들여 어지러운 머리를 부여잡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주변을 살폈다.

“여기는…….”

래희도 그녀의 곁에서 일어난 류정우의 손을 꽉 붙잡은 채로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칠흑같이 어두운 이 공간은 빛 한 줌 허락하지 않는다는 듯이 당장 바로 앞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 그들과 함께 이동해 온 알베르토가 입을 열었다.

“여기는 몬페라토 영지의 본성입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내부가 환하게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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