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얌전히 체자레의 손아귀에 잡혀 있던 아이가 그의 손에서 벗어나려는 듯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
“$&@:!(이것 좀 놔!)”
아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소리치자 체자레는 가만히 지켜보다 자신이 쓰고 있던 로브를 벗어 내렸다.
보통은 자신의 외모를 확인한 순간 얌전해지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체자레 자신의 타고난 외모가 이세계인인 아이에게도 먹히는 외모인 건지 아이는 반항하는 것도 잊고 멍하니 자신을 올려다봤다. 마치 살면서 이렇게 잘생긴 사람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듯한 얼빠진 표정이었다.
“연구감이네, 일단 나랑 가자.”
아이는 반항할 틈도 없이 그의 옆구리에 끼워진 채 뒷골목에서 자취를 감췄다.
그날이 바로 체자레와 래희의 첫 만남이었다.
* * *
마석. 푸른 빛으로 빛나며 일정한 양의 마력을 품고 있는 돌을 바로 마석이라고 부른다. 보통 마석은 기계나 마법적 장치를 유지하기 위한 동력원 또는 부족한 마력을 보충하기 위해 사용되어 왔다.
롬바르나에서 마석이 발견된 지 500여 년이 지난 오늘날, 마석은 조명이나 생활용품 등 다양한 쓰임새를 가지고 롬바르나의 생활 곳곳에 전반적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하지만 마석은 살아 있는 생명체에 쓰일 수 없었다. 죽은 동물의 사체를 이어 붙여 다시 살아 움직이게 하는 키메라를 만들기 위해 실험하고는 했지만, 매번 그 실험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쯧. 저런 역겨운 짓을…….’
그는 한때 마법을 교육받으며 생활했던 마법사의 탑 지하 실험실을 방문할 때마다, 키메라 실험에 실패한 흔적을 보며 쓸데없는 실험이라 여기며 오히려 기괴한 취향이라고 혐오스러워하기도 했다.
체자레가 대공이 된 이후에는 그가 마탑에 방문할 일이 따로 없었기 때문에, 그는 오랜 세월 동안 ‘마석’으로 키메라를 만드는 실험에 대해서는 잊고 살았다. 하지만, 우연히 주운 이세계 꼬마의 몸에 박혀 있는 ‘마석’을 발견했을 때는 그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마석?’
마석이 왜 사람 몸에 박혀 있는 거지? 내가 신전에서 만든 키메라를 주운 건가? 그리고, 키메라 실험이 성공했다고?
그리고 그는 동시에 아이의 검은 눈동자 아래 물결에 비친 별빛처럼 반짝이는 황금빛이 소용돌이치며 천천히 맴도는 걸 발견했다. 그래서 그는 아이를 제 제자로 삼는 것과 동시에 아이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마력이 있다면 마법사의 자질을 갖추고는 있다는 뜻이었다. 게다가 몸에 박힌 마석. 그는 키메라에 대한 역겨움과 동시에 처음으로 마석이 박힌 채 살아 있는 인간을 발견했다는 호기심으로 아이를 거두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100여 년 전, 한때 그의 연인이었던 레지나가 새로운 젊은 여성의 몸을 빼앗아 오랜 세월 동안 신전을 지배해 왔다는 사실과 여성의 몸을 빼앗기 위해 마석이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역겨운 신전의 개들 같으니라고.’
그는 그 사실을 알게 되자마자 곧바로 래희에게서 마석을 제거하기로 했다. 대마법사란 명성답게 그는 곧바로 안전하게 마석을 제거하는 방법을 알아냈다.
아직 롬바르나의 말이 능숙하지 못한 어린아이가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채로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니, 어쩔 수 없었다니까? 너, 이거 계속 달고 다니면 큰일 나.”
그러니까 이걸 네 몸에 계속 달고 다니면 네 육신과 영혼과의 결합이 옅어지고 그사이에 다른 영혼이 네 몸을…….
그러나 그의 자세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그의 말을 하나라도 알아들은 기색이 아니었다. 아이는 눈치를 보듯 눈을 굴리다 곧이어 작게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런 아이의 모습에 체자레는 어이가 없었지만, 아직 8살짜리 둔재가 천재인 자신의 설명을 알아들을 리가 없었으므로 그가 이해하기로 했다.
‘다른 것에 한 눈 팔린 사이에 제거하는 게 훨씬 낫겠지.’
아무래도 마석이 몸의 신경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마취 마법으로 고통이 전부 제거되는 건 아닐 테니까.
나이가 들어서인지 아니면 과거의 실수 탓인지 체자레는 눈앞의 어린아이에게 마음이 약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아이가 다른 생각에 잠긴 건지 눈에 초점이 사라지자, 망설임 없이 아이의 팔에 박힌 마석을 순식간에 제거했다.
“악!”
아이가 한차례 늦은 비명 소리를 내며 눈물을 그렁그렁하게 달고 그를 노려봤다. 하지만 그는 그런 래희를 전혀 신경을 쓸 수가 없었다.
“하하하하하하!”
마석에 담겨 있던 마력을 통해 누군가의 기억이 눈앞에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그의 웃음에는 어쩐지 마석 제거에 대한 기쁨보다는 분노가 담겨 있었다.
“미친 신관 새X들…….”
마석에는 아이의 몸을 빼앗으려다 실패한 신관, 아니 누군가의 기억이 담겨 있었다.
- 어린아이의 몸에 마석을 심는 것은 처음 아닙니까? 그래서 성녀님의 육신도 혹시 몰라 갓 성인을 넘긴 여성의 몸에 마석을 심지 않았습니까.
- 여태껏 이 나이 대의 살아 있는 이계인이 떨어진 것을 처음이 아닙니까. 그리고 이왕이면 어린아이가 훨씬 났겠지요. 성공만 한다면 남들의 의심을 살 일 없이 훨씬 쉽게 저들 사회에 파고들 수 있지 않겠습니까.
마석에 갇혀 버린 영혼의 기억 속에서 누군가가 설득하는 어조로 말을 이었다.
- 실패할 확률은 낮을 겁니다. 우리가 지난 50년 이상을 이 실험에 쏟아부었지 않습니까. 그리고 최근 10년 동안에는 실패 확률이 높아 봐야 2할 정도였습니다.
- 그렇다면 믿겠습니다. 어차피 제 영혼을 쪼개어 담은 마석이 두어 개는 더 있으니 부담은 덜 되겠지요.
그 기억을 끝으로 체자레의 손아귀에 쥐어진 마석은 빛을 잃었다. 푸른 빛을 품고 있던 마석의 중앙에는 검붉은 빛깔의 기운이 빛을 잃은 채로 그 안에 갇혀 맴돌고 있었다.
* * *
그는 신전의 눈을 피해 그의 영지 중에서도 가장 인적이 드문 오지의 마을에 신분을 속이고 아이와 함께 정착했다. 물론 그는 단 한 번도 누군가의 시중을 받지 않는 삶을 살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의 집사이자 로봇인 알베르토와 함께였다.
하지만 체자레는 마석에 관한 연구를 하느라 하루 종일 아이를 돌볼 수 없었고 알베르토 또한 어린아이를 제대로 양육하기에는 인간이 아니기에 부족한 부분이 있었으므로, 그는 마을의 주민들에게 아이를 맡겼다. 적어도 다들 아이를 양육해 본 경험은 있었기 때문에 그보다는 낫다는 생각이었다.
다행히 아이는 제 또래 한 명 없는 시골 마을에 잘 적응하는 듯했다. 조숙한 것인지 아니면 원래 조용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철이 들었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눈치가 빠르고 얌전했다.
아이는 체자레가 마법 수업이 끝난 후 제 실험실로 박혀 나오지 않을 때면 알아서 그의 책장에서 책을 꺼내 읽거나 숙제를 하는 둥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모습에 마을 주민들이 보이지 않는 체자레 대신 그의 집사인, 대외적으로는 그의 하인인 알베르토에게 타박하듯 말했다.
“이보게 자네, 아이를 저렇게 혼자 둬서야 되나? 똑똑하다고 다가 아니라 제 또래 애들과도 어울릴 줄 알아야 나중에 커서 마을이건 도시건 사기 같은 거 안 당하고 잘 살지.”
“그러게 말이야. 알베르토, 애 삼촌이라는 마법사 양반한테 말 좀 해 봐. 저기 좀 봐. 혼자 외로워서 맨날 뒷산이나 공터에 앉아 있기만 하지 뛰어놀지도 않고 쯧쯧.”
알베르토는 인간일 적의 기억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로봇이었으므로, 그들의 감정에 동의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래희를 혼자 두는 게 이상하다는 판단은 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날 제 주인에게 물었다.
“주인님. 아이는 혼자 둬서는 안 된다고 마을 주민들의 항의가 빗발칩니다.”
“무슨 소리야.”
그날도 여전히 연구에 매진하던 체자레에게 알베르토의 말은 뜬금없는 소리였다. 그러나 알베르토는 그동안 자신이 들었던 주민들의 말을 그대로 전하며 말했다.
“아이를 키워 본 적이 없어 본가의 저택에 있는 육아 서적을 구해 왔습니다. 제가 확인한 바로 육아 서적에는 아이의 사회성을 기르기 위해 친구가 필요하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사회성?”
친구라니?
그는 자신의 어릴 적을 떠올렸다. 대공의 유일한 적자로써 그의 주변에 있는 또래라고는 배동으로 들어온 가신 가문의 어린아이거나 피가 어느 정도 섞인 방계의 아이들뿐이었다. 그와 비슷한 위세를 가진 가문에는 그의 또래 아이가 없었으므로 대등하게 대할 수 있는 ‘친구’라는 존재는 그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자연스럽게 체자레는 래희에게도 당연히 ‘친구’라는 존재가 필요하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게다가 어디서 ‘친구’를 구해 올 것인가? 마탑? 마탑에도 저렇게 어린아이는 없다. 그리고 그의 제자든 훗날 그의 양딸로 소개하든, 양쪽 모두 자신과 마찬가지로 남들이 말하는 평범한 ‘친구’라는 존재를 사귀기에는 그 사회적 위치로 인해 어려울 것이었다.
“음…….”
하지만 순간 그의 눈앞에 언젠가 자신 때문에 불행해진 어린 존재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세계수. 그의 잘못된 선택 때문에 영원히 자라지 못한 상태로 외롭게 살아가게 될 존재.
그 아이는 자신의 삶을 둘러싼 환경과는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에 자연에 어울려 살아가는 제피로스에 맡긴 게 벌써 몇십 년이 지나갔다.
어린 세계수의 존재 때문일까. 예전의 그였다면 알베르토의 말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겠지만, 체자레는 외롭게 지내고 있는 세계수의 모습 위로 래희의 모습을 겹쳐 보았다.
“친구라…….”
하지만 아까 전 그가 생각한 대로 친구를 구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평민 아이를 데려오자니 아이의 교육 수준을 고려하면 평민과는 맞지 않을 게 분명했고, 그렇다고 이런 오지에 귀족 아이를 데리고 올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신전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지금 당장 래희를 데리고 수도로 돌아가 제 양딸이나 제자라고 소개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때였다.
“아.”
방법이 하나 있었다. 몬스터. 애완 몬스터 중 가끔 일부 종의 지능은 인간에 버금갈 만큼 높다고 하지 않던가. 그는 마수를 기르는 것에 취미를 가지고 있던 한 마법사를 떠올렸다.
“그 인간이라면 수준 맞는 몬스터 하나 정도는 데리고 있겠지.”
그리고 다음 날 체자레는 아침부터 래희를 불러 세워 그녀에게 곰 인형 하나를 품에 안겨 주며 말했다.
“자 이제부터 얘가 네 친구야.”
걔 이름은 곰순이라고 하니까, 둘이서 잘 지내보도록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