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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네 빵집은 언제 오픈하나요-110화 (110/120)

110화

래희에게 알베르토 대한 소개를 들은 직후 두 사람은 그동안 겪은 일들에 대해서 서로에게 간단하게 설명했다.

“…그래서, 류정우 씨는 아무런 잘못도 없이 몇 번이고 회귀하게 되었던 거예요.”

래희는 차마 류정우의 눈을 마주치지 못하겠다는 듯 시선을 내리깔고 이어서 말했다.

“미안해요.”

정말… 정말로 미안해요.

본인의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미안하다며 눈물을 흘리고 회귀에 대해 사과해 오는 래희를 류정우는 조용히 안아 줬다.

“당신 잘못 아닌 거 알잖아요.”

오히려 고마운걸요. 저를 구하려고 모든 걸 감수했으니까요.

“아뇨, 아무것도 못 한 걸요.”

래희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러나 류정우는 그런 래희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며 미소 지었다.

“래희 씨가 의도한 건 하나도 없잖아요. 오히려 래희 씨는 포기해 버릴 수 있었음에도 절 구하기 위해 그 기나긴 시간을 반복해 온 거잖아요.”

저는 알거든요. 그 선택이 얼마나 외롭고 고통스러운지.

그의 위로에 오히려 더 눈물이 왈칵 터져 버린 래희는, 류정우가 어린 래희를 만났었다는 이야기를 할 틈도 없이 엉엉 울어 버리고 말았다.

그런 모습을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알베르토가 큼큼거리며 헛기침을 했다. 그제야 둘만의 세상인 것처럼 서로에게만 집중하던 두 사람이 그에게로 시선을 돌리자, 알베르토가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남편이신 류정우 님께서 아가씨를 잘 다독여 주셔야 합니다. 아가씨께서는 어릴 때부터 무언가 고민이 있거나 하시면 주변 어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보다는 늘 혼자서 끙끙 앓으셨거든요. 그래서 보호자셨던 주인님도 고민이 많으셨죠.”

그런 아가씨께서 어린 나이에 그렇게 갑작스럽게 사라지셔서 걱정이 많으셨는데… 이렇게 든든한 남편이 계신다는 걸 알면 안심을 하실지도 모르겠군요.

아까 전의 고백 같은 대화를 들었음에도 두 사람을 여전히 부부로 착각하고 있는 것인지, 알베르토가 조언하며 뜬금없이 류정우에게 ‘남편’이라고 언급했지만, 류정우는 그를 굳이 지적하지 않고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로써 두 사람은 사귀기도 전에 알베르토에게 결혼한 사이로 오해받게 되었다.

래희는 엉엉 울다 문득 생각났는지 훌쩍이며 류정우에게 말을 걸었다.

“아직 퀘스트가 완전히 끝난 건 아니에요. 마지막 퀘스트로 체자레를 만나러 가야 하는데, 그를 만나려면 제가 늘 가지고 있던 열쇠가 필요하거든요. 하지만 이전에 설명했다시피 지금 제가 열쇠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서…….”

아무래도 망한 것 같은데요……?

래희가 곤란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그에게 설명했다.

“아, 열쇠.”

그에 류정우는 잊고 있었다는 듯 인벤토리를 열어 이곳으로 오기 직전 만났던 어린 래희에게서 얻은 ‘차원의 열쇠’를 래희에게 건넸다.

“래희 씨, 이게 필요한 거죠?”

“어? 그걸 왜 정우 씨가……?”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에게서 발견한 아이템 때문에 놀란 건지, 어느새 울음을 그친 래희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봤다.

눈가와 코끝을 빨갛게 물들인 채 의문 가득한 모습으로 그를 올려다보는 모습이 너무나도 귀여워서 류정우는 그녀의 눈 위로 가볍게 입을 맞추곤 대답했다.

여전히 그의 스킨십에 적응이 되지 않은 건지 래희가 파르르 떨며 놀란 듯해 보였지만 류정우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저도 어린 래희 씨를 만났거든요.”

“저를요?”

류정우는 한 손으로는 여전히 래희의 손을 꽉 잡으며 깍지를 낀 채였고, 다른 한 손으로 래희의 눈물 자국을 닦아 주며 입을 열었다.

“네. 멜빵바지에 밀짚모자.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래희 씨도 꽤 귀엽던데요?”

그러고 보니 나는 래희 씨 초중고 시절을 다 봤구나. 우리 진짜 오래된 것 같네요. 대학 시절은 어땠을지 궁금하다.

래희는 추억에 잠겨 있다 갑작스럽게 들리는 ‘대학’이라는 단어에 몸을 흠칫 떨었다. 저거 일부러 저러는 건가? 그 시절즈음에 탈덕했던 거 아직도 삐져 있어서?

그러나 류정우는 정말 순수하게 궁금했던 것뿐인지 그의 표정은 여전히 흐뭇해 보였다. 어딘가 모르게 안정감이 느껴지는 얼굴이었다.

“어린 저랑은 어떻게 만났어요?”

래희는 괜히 찔려서 그렇다는 생각에 질문을 던졌다. 옆으로 새던 주제를 다시 바로잡을 목적이었다.

“음… 래희 씨가 지구로 귀환하기 직전인 것 같았어요.”

“그래요?”

그러나 래희는 전혀 기억나는 일이 없었다. 아무리 어린 저라도 저 정도 얼굴이면 기억하고 있을 게 분명한데 잊어버렸다니. 어떻게 된 일인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그때였다.

“지구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는데, 여기서 다시 만나네요?”

“뭐, 귀환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피에타 덕질도 시작했으니까 그때 제가 한 약속도 어긴 건 아니죠.”

“그런가.”

류정우는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그들이 무슨 대화를 나누건 그냥 그저 래희와 함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좋았다.

“그래서, 이제는 오빠라고 안 불러?”

그러니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지금까지 꽁해 있던 부분까지 래희에게 말하고야 말았지.

“아니, 이제 와서 오빠라니.”

뻔뻔하다 정말.

래희의 중얼거림에도 류정우는 개의치 않고 이어 말했다.

“아니 그럼 언제까지 류정우 씨 할 건데?”

아예 이제는 예전처럼 말까지 놓아 버린다. 래희는 어린애처럼 떼쓰는 그에게 살짝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여기서 나가면요.”

적응할 시간 좀 주시죠.

부끄러운지 눈을 똑바로 맞추지도 못하고 불퉁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래희가 귀여워 류정우는 작게 웃었다.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 온 세상이 꽃밭이었다.

* * *

래희가 열쇠를 손에 쥐고 퀘스트 창을 다시 확인한 순간 무언가 새로운 메시지를 발견한 건지 제자리에서 펄쩍 뛰어오르며 래희가 소리쳤다.

“야 이 망할 시스템!”

그러나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이미지 관리라도 하는 건지, 래희는 뒤에 자연스레 따라올 욕설을 결코 내뱉지 않았다. 그 모습에 류정우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애써 참았다. 여기서 웃으면 큰일 난다.

웃음을 갈무리한 류정우가 래희에게 무슨 일이냐는 듯 과장된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곤란한 일이라도 생긴 건가요?”

그 말에 래희가 한숨을 내뱉더니 대답했다.

“아, 그건 아니고요. 별건 아닌데…….”

그러곤 말끝을 흐리더니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또 이상한 주문을 외워야 체자레를 만나게 해 준다고…….”

그에 류정우는 언젠가 래희가 요술봉을 쥔 채 주문을 외우던 장면을 떠올렸다. 그리고 터져 나오는 웃음을 겨우 참으며 표정 관리에 힘을 썼다. 여기서 웃으면 진짜로 큰일 날지도 몰랐다.

“처음도 아닌데 어때서요. 이상하지 않으니까 그냥 해요.”

“하…….”

하지만 그 말이 더 화가 나는지 래희는 크게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이내 어쩔 수 없다는 듯 류정우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웃지 마요.”

“알았어요.”

“진짜로.”

“네.”

몇 번의 질문 끝에 확답을 얻은 래희가 두 눈을 질끈 감고 외쳤다.

“뾰로뾰로 뾰로롱!”

“큽.”

다행히 래희의 신경이 다른 곳에 팔려 있어 그의 웃음소리는 묻힌 듯했다.

그리고 래희의 주문이 끝남과 동시에 밝은 빛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 언젠가 겪었던 것처럼. 눈 부시게 터져 나오는 빛은 래희와 류정우, 그리고 알베르토까지 세 사람을 집어삼켰다.

빛이 사라진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는 듯 그 어떠한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 마지막 선택 】

체자레 몬페라토 35세.

그는 롬바르나의 대마법사로 비교적 젊은 나이에 대공이라는 자리에 올랐다. 물론 선대 몬페라토 대공이 늦은 나이에 아들을 얻어 그가 남들보다도 이른 나이에 대공이 된 것이긴 하지만, 대공위라는 작위는 나이와는 상관 있는 자리가 아니니 문제는 없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는 대공령을 돌보거나 대공으로서의 책무를 수행하거나 위엄을 보이는 행위에는 일절 관심 없이, 오로지 ‘마법’에만 관심을 두고 있었다. 오죽하면 그가 결혼 적령기가 지나도록 결혼을 하지 않고, 결혼할 생각도 없어 보였기에 자식도 없어 대를 잇지 못할 게 뻔히 보이자, 그를 만만하게 생각한 방계들이 제 자식을 들이밀며 양자로 입적하기를 바랐을까.

그러던 어느 날, 대공저 구석에 있는 한 금서를 발견한 그는 마법사로서의 지적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금서 내용의 확인을 위해 신전을 방문했다.

그게 바로 한때 그의 연인이었던 레지나 성녀와 체자레 몬페라토의 첫 만남이었다.

휘이이잉―!

시리도록 거센 바람이 불고 있었다.

롬바르나의 수도는 북쪽에 있어 그 어느 곳보다 겨울이 추운 곳이었다.

원래라면 따뜻한 대공령에 박혀 있을 체자레였지만 그의 연인과의 ‘실험’을 완성하는 날이 바로 오늘이었으므로 어쩔 수 없이 이 추운 겨울날, 수도에 위치한 신전을 방문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것도 이번이 끝이겠네. 당분간 대공령에 박혀서 한 10년 동안은 수도로 돌아오지 말아야겠어.’

아니다. 그러면 레지나를 보지 못하니 겨울을 제외하고 다른 계절에는 수도로 올라올까?

혹은 대공령에 위치한 신전에서 지내라고 그녀를 설득하는 방법도 있겠지.

평생 남을 배려하지 않고 배려받으며 살아왔던 체자레는 역시나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며 앞으로의 미래를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그렇게 잠시 후. 체자레는 오랜 기다림에 지쳐 성녀의 응접실 한편에 마련된 소파 위로 드러누웠다.

그가 어릴 적 죽은 선대 집사의 영혼석으로 만든 알베르토가 그를 발견한다면 기함할 모습이었지만, 어차피 이곳으로 들어올 이는 레지나밖에 없었으니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흠…….”

그러다 문득 체자레는 오늘 있을 마지막 ‘실험’에 대해 떠올렸다.

이론대로라면은 실패할 일이 없겠지만 만약 실패하게 된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 예언서에 따르면 롬바르나의 미래는 머지않아 끝날 것이었다.

‘실패할 리가 있겠나. 여태껏 아무도 못 한 걸 내가 해냈는데.’

엘프 마을에서 얻은 세계수는 우연한 계기로 싹을 틔우기 시작해 체자레 자신과 레지나의 손에서 무럭무럭 자랐다.

원래 이미 세계수가 존재하는 이 땅 위에서는 키울 수 없는 존재지만 신전 아래에 위치한 이세계로 통하는 작은 공간에서는 무리 없이 키울 수 있었다.

마침 롬바르나의 세계수의 수명이 다해 롬바르나 외곽을 시작으로 오염 지역이 발견되기 시작했고, 새로운 세계수의 필요성을 느낀 신전이 이 실험에 동의했기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일이었다.

게다가 어린아이를 키우는 건 그의 삶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귀찮은 일이었지만 학문적 호기심이 컸으므로 체자레는 처음으로 인내심을 가지고 어린 세계수를 정성껏 보살폈다.

‘내가 어떻게 키웠는데.’

무사히 오늘 롬바르나에 뿌리를 내려야만 지난 고생이 빛을 발한다고 볼 수 있었다.

타박타박.

문밖에서 빠르게 걸어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걸음 소리가 얼마나 경박한지. 신전 밖의 인간들이 자신들의 성녀가 얼마나 교양 없는 사람인지 알아야 할 텐데 말이지.

어차피 체자레는 예의를 따지는 부류가 아니었으므로 제 연인이 교양 있건 없건 그런 것 따위는 상관없는 사람이었다.

체자레는 성녀인 레지나가 빠르게 걸어오는 소리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소파에 드러누운 자세 그대로 꼼짝도 않고 있었다. 만사 귀찮았으므로 일어날 의지도 없었다.

‘하나, 둘, 셋.’

속으로 정확하게 셋까지 센 순간, 응접실 문이 벌컥, 하고 열렸다. 금발의 녹색 눈을 가진 성스러운 분위기의 여성이 생긴 것과는 다르게 성큼성큼 거칠게 방 안으로 들어와 드러누워 있는 체자레의 소파 앞으로 다가왔다. 체자레는 누워 있는 자세 그대로 그를 내려다보는 레지나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그의 황금빛 실타래 같은 머리칼이 청록색 벨벳 소파 위로 흐트러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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