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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네 빵집은 언제 오픈하나요-109화 (109/120)

109화

“권래희!”

괴물이 래희를 내려치기 직전 류정우는 그녀를 제 품으로 낚아챘다.

극적인 상황에 갑작스럽게 누군가 자신을 잡아당기는 느낌이 들어 순간적으로 그녀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발버둥 쳤다.

“쉬―”

이제 괜찮아요.

익숙한 목소리였다. 목소리의 주인은 바로 래희, 그녀가 바라고 바라던 사람. 바로 류정우였다.

‘어떻게……?’

어떻게 이 남자가 여기에 있는 거지?

래희는 갑작스러운 류정우의 등장에 놀라 버둥거리는 것을 멈추고 얌전히 그의 품에 안겨 있었다. 덕분에 이동하기가 훨씬 편했던 건지, 곧바로 류정우는 그녀를 비교적 안전한 곳에 내려놓은 뒤, 뒤돌아 괴물을 향해 총구를 겨눴다.

저건 끝부분을 하나하나 잘라 낼수록 강해지므로 순식간에 갈기갈기 찢어 버려야만 했다.

탕―! 탕―! 탕―! 탕―!

순식간에 연속으로 발사된 총탄들이 괴물의 몸 곳곳에 박혀 들어갔다.

류정우는 속으로 숫자 셋을 세며 래희를 번쩍 들어 올리고는 곧이어 저 괴물 몸속에서 터질 총탄의 충격을 피하기 위해 멀리 떨어진 곳으로 전력을 다해 뛰었다.

그리고 그의 옆으로 아까까지 래희를 보호하며 괴물을 공격하던 한 남자가 뒤따라 붙었다. 그러나 류정우는 그를 신경 쓸 새도 없이 래희를 품에 안고 앞으로 뛰어나가기 바빴다.

콰앙―!

그들이 어느 정도 거리를 벌렸을 때, 괴물이 있던 곳에서 폭탄이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류정우는 혹시라도 래희가 다칠까 염려하여 안전한 위치에 내려놓고는 그녀의 두 귀를 막아 주곤 마주 바라봤다.

래희가 놀란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류정우 씨?”

류정우는 래희를 만나면 꼭 전해야 할 말이 있었다. 내가 당신을 좋아한다고. 그러니까 앞으로 같이 있어 주면 안 되겠냐고.

하지만 막상 그를 올려다보는 래희의 두 눈을 마주하자 머릿속이 새하얀 백지가 된 듯 아무 생각도, 아무런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류정……!”

그러다 그는 충동적으로 래희를 제 품에 꽉 껴안았다. 래희가 놀라 그의 품 안에서 버둥거리는 것이 느껴졌지만 힘을 풀기는커녕 그녀를 껴안은 팔에 더욱 힘을 주었다. 절대 놓칠 수 없다는 듯이.

익숙하고도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자 류정우는 처음으로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아, 나는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된다.

제 감정을 직시함과 동시에 잃을 뻔한 걸 겨우 되찾았다는 깊은 안도감과 벅차오르는 감정에 그의 호흡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래희는 갑작스러운 포옹에 놀라 버둥거리다 그녀를 감싸 안은 류정우의 몸이 덜덜 떨려 오는 것을 느꼈다. 그 떨림에 래희는 몸에 힘을 풀었다.

애처로울 정도로 떨려 오는 류정우의 몸이, 말하지 않아도 어떤 감정을 내포하고 있는 것인지 그녀에게 전해졌다. 래희는 그를 밀어내는 대신 그의 등 위로 제 손을 올리고는 마주 끌어안았다.

류정우는 저를 밀어내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끌어안아 오는 래희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품에 가두고는 한참을 그러고 서 있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미칠 듯이 뛰던 심장도 차분히 가라앉고 몸의 떨림도 잦아드는 듯했다.

“…권래희.”

그는 래희의 이름을 나지막하게 부르며 그녀를 안은 팔에서 힘을 풀고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그러자, 자신의 이름을 들은 래희가 의문이 가득한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류정우 씨?”

그러나 류정우는 대답 대신 그저 제 이름을 부르며 달싹이는 래희의 붉은 입술에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그러다 그는 그녀의 입술을 제 입술로 덮어 버리고 말았다. 충동적인 행동이었지만 결코 후회하지는 않았다.

뺨 안 맞으면 다행이지. 뭐, 맞아도 어쩔 수 없고.

하지만 예상과 달리, 갑작스런 그의 키스에 잠시 놀란 듯 움찔한 래희는 이내 눈을 감고는 그의 목에 제 팔을 둘렀다.

그는 응답하듯 래희의 뒷머리를 쓸어내리며 그녀의 호흡을 삼켰다. 그러다 숨이 찬 탓에 래희가 입술을 떼고 그를 살짝 밀어내며 몸을 살짝 떨었다.

아쉽지만 아직 괴물을 해치운 상황이 아니었으므로 류정우는 순순히 그녀에게서 떨어졌다. 그러나 그녀를 품속에 안고 있는 건 그대로였다.

래희는 그제야 방금 자신이 무엇을 한 건지 깨달은 듯 귀를 붉게 물들이며 바르작거리며 벗어나려 했으나, 류정우는 그녀를 껴안은 팔에 힘을 주어 벗어나지 못하게 했다.

그러고는 그녀의 목덜미에 제 얼굴을 묻고는 뜨거운 숨을 한번 크게 내쉬었다.

알 수 없던… 아니, 회귀하기 위해 죽음을 선택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 적은 처음이었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저도 모르게 느꼈던 불안감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듯했다.

권래희가 자신의 구원이었다.

“…보고 싶었어요.”

나직하게 중얼거리는 류정우의 목소리가 래희의 귓가에 맴돌았다. 그리고 래희는 그의 목소리에 눈을 감았다.

‘…저도요.’

하지만 순간적으로 울컥한 바람에 대답 대신 그를 마주 꽉 끌어안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부끄러움에 밀어내기 바빴지만, 막상 류정우의 목소리로 저 말을 들으니 밀어낼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이제 내숭 따위는 의미 없었다. 덕후의 마음이라는 것도 핑계였다.

지난 류정우의 수많은 회귀를 함께한 지금 래희에게 있어서 류정우에 대한 마음은 더는 최애를 향한 마음이 아니었다.

그는 이제 그녀에게 그저 좋아하는 사람을 넘어서 절대 없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얼마간 그들이 껴안고 있기를 몇 분이 채 지나지 않았을까. 저 멀리서 괴물이 포효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끼에에에에에에!

하지만 이전과는 달리 매우 작은 울음소리였다.

류정우는 제 충족감을 방해하는 괴물에 신경질이나서 작게 한숨을 내쉬며 아쉬운 듯 제 품속에 얌전히 안겨 있는 래희를 내려다봤다.

이 작은 몸을 이제야 완전히 제 품에 가뒀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눈치도 없이 이 분위기에 끼어들다니.

물론 고작 몇 발의 사격으로 괴물을 해치울 거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지만, 예상한 상황이라 하더라도 짜증이 치밀어 오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빨리 처리하고 나서 하던 거 마저 하는 수밖에.

류정우는 아쉬움에 탄식을 내뱉으며 래희를 품속에서 떼어 냈다. 그리고는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맺힌 래희의 얼굴을 발견하고는 작게 미소 지었다.

나만 당신이 보고 싶었던 게 아니었구나. 확인을 통한 안심이었다.

류정우는 그들의 뒤쪽에서 팔짱을 끼며 두 사람을 삐딱하게 바라보고 있는 남자를 흘끗 바라봤다. 찢어진 옷 사이로 드러난 팔이 로봇처럼 기계로 구성되어 있었다.

뭐, 적으로 보이지는 않으니까. 지금은 저 남자의 정체가 중요한 건 아니지.

그는 곧바로 남자에 대한 관심을 무른 채 래희의 이마에 짧게 입을 맞췄다. 담백한 입맞춤과 다른 더 진한 키스까지 했으면서, 이제야 래희의 얼굴이 붉게 화르륵 타올랐다.

도대체 저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은 언제 어떻게 생기는 건지는 몰랐지만, 류정우는 늘 예상을 벗어나는 래희의 모습 자체가 좋았으므로 그마저도 귀여워 보였다.

할 말이 많지만 저것부터 처리하고 해도 되겠지.

방금의 키스로 래희의 마음을 어느 정도 확인한 류정우에게 이제는 약간의 여유가 생겼다.

그는 래희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살짝 넘겨 주고는 그녀에게 나직하게 속삭였다.

“나머지는 다녀와서 하죠.”

저가 방금 무엇을 한 건지 깨달아 버린 래희의 머릿속은 이미 백지가 되어 버렸으므로 그가 하는 말이 곧바로 해석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래희의 상태를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이 눈웃음을 한 번 지어 보인 류정우는 망설임 없이 뒤돌아 괴물에게 달려들었다.

우선 저것부터 빨리 처리해야 래희와 뭘 하든 할 수 있을 테니까.

* * *

휘이익―

“와우―!”

류정우가 사라진 쪽으로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래희의 뒤로 경쾌한 휘파람 소리와 함께 감탄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화들짝 놀란 래희가 뒤를 돌아보자 그곳에는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는 알베르토가 서 있었다.

“아가씨, 성숙한 어른이 되었군요.”

이 집사는 아가씨의 성장에 매우 기쁩니다.

“…….”

간신히 가라앉혔던 래희의 얼굴이 터질 듯이 붉게 물들었다.

아니, 저 로봇이 뭔 줄 알고 감탄하는 거지?

사람도 아닌 존재에게 수치심을 느끼며 래희는 고개를 푹 숙였다. 아무리 로봇이라 하더라도 그가 살아 있는 생명체라 여기던 래희는 지금 이 상황이 매우 민망했으므로 어디로든 당장 몸을 숨기고 싶었다.

그리고 그런 래희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알베르토는 그녀를 놀리듯 이어 말했다.

“그런데, 주인님은 아가씨께 연인이 생긴 것을 아시는 겁니까? 가만히 있지 않으실 텐데요.”

체자레? 지금 저가 무얼 하는지도 모를 양반이 자신이 연애하든 말든 무슨 상관이겠는가. 그것보다 연인이라니.

“연인 아니에요.”

“연인이 아니라니요, 그럼 어떻게… 아! 아가씨께서는 이미 혼인을 하셨군요!”

중세 유럽 배경의 사상이 심어져 있는 집사다웠다. 래희는 어떻게 설명하든 그가 이해하지 못할 거란 생각에 대꾸도 없이 한숨을 내뱉었다.

연인을 부정하다 졸지에 결혼까지 해 버리다니. 그러나 여기서 결혼도 아니라 하면 저 집사가 어떻게 나올지 몰랐다. 그 체자레가 만든 집사이니 류정우를 공격할 수도 있겠지.

쓸데없는 생각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던 그때였다.

콰앙―!

저 멀리서 격렬한 전투를 벌이는 듯 치열한 류정우와 괴물의 모습이 보였다.

류정우는 저 괴물을 해치우는 법을 아는 듯, 고군분투하던 래희와 달리 능숙하게 괴물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그리고 몇 번의 공격 끝에 이제야 크기가 작아진 괴물을 향해 시리도록 푸른 불을 붙여 활활 태우며 마무리했다.

“손속이 꽤나 무섭군요.”

뒤에서 지켜보던 알베르토가 한마디 얹었다.

그러나 래희는 류정우와 함께 수많은 회귀를 반복해 왔기 때문에 알베르토의 무섭다는 발언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이미 그녀로서는 저 모습이 익숙할 대로 익숙해졌기 때문이었다.

화르륵 타오르는 불꽃을 뒤로하고 류정우가 저벅저벅 그녀에게로 걸어왔다. 그의 눈동자는 뒤쪽의 불꽃과 마찬가지로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래희는 저도 모르게 류정우에게 잡아먹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침을 꿀꺽 삼켰다.

‘숨이 막혀.’

긴장한 탓에 숨 쉬는 법도 잊은 듯했다. 그만큼 지금 류정우의 존재감은 압도적이었다. 제 호흡이 잠시 멈춘 것을 알아차리고 나서야 래희는 겨우 크게 한번 숨을 들이쉴 수 있었다.

류정우는 저를 멍하니 바라보는 래희를 조용히 응시했다.

급한 건 다 해결했으니 하던 걸 마저 이어 해야지. 지금이 아니면 언제 또 기회가 올지 몰랐다.

매번 확신하지 못하고, 아니면 혹시라도 부담을 느낀 권래희가 도망갈까 전전긍긍하며 천천히 다가갔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전부 무의미하지 않았나.

다행히 아까 전 충동적인 키스로 류정우는 래희 또한 저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는 혹시라도 실수할까 조급한 마음을 애써 억누르며 래희에게 말했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런 예감이 들었다.

“래희 씨.”

류정우는 그녀에게 성큼성큼 다가가며 손을 뻗었다. 어느새 다시 그녀의 볼을 간지럽히고 있는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 주며 한번 쓸어내린 그는, 그동안 억눌러 왔던 감정을 겨우 토해 내듯 말을 내뱉었다.

“나는 어때요?”

“…….”

두 사람 사이에 숨 막히는 듯한 침묵이 맴돌았다. 그는 그에 전혀 개의치 않는 듯 이어 말했다.

“…사랑해요.”

“…네?”

래희는 저도 모르게 바보처럼 대답했다.

그런 래희의 모습에 귀엽다는 듯 살짝 웃으며 류정우가 그녀의 양 뺨을 부드럽게 감쌌다.

금빛을 머금은 검은 눈동자. 햇빛을 받으면 호박빛깔로 빛나지만, 이런 어둠 속에서는 금가루를 뿌린 듯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어린 래희를 마주했을 때보다 더 감격스러웠다. 이 눈. 이 반짝이는 두 눈을 다시 한번 마주하고 싶었다.

그러나 막상 두 눈을 마주하니 지금뿐만이 아니라 평생을 제 눈에 담아 두고 싶었다.

더는 회귀를 반복하지 않고 그녀와 함께 앞으로 나아가고 싶었다.

한 번도 도달하지 못했던 미래에 그녀가 있었으면 했다.

그러나 눈앞의 래희는 아까의 화답과 달리 망설이는 듯 입술을 오물거리며 눈동자를 잘게 떨고 있었다.

하지만 류정우는 확답을 듣기 전까지 그녀를 순순히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슬금슬금 그의 눈을 피하는 래희의 눈동자를 조용히 들여다보며 그녀가 대답하기를 기다렸다.

얼마간 어색한 침묵이 그들 사이를 지났을까.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래희가 입을 열었다.

중얼거리는 듯한 아주 작은 목소리였지만 류정우가 듣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저도요.”

그 대답을 끝으로 류정우의 얼굴이 그녀에게 가까워졌다. 어색해하던 아까와 달리 래희는 자연스럽게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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