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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네 빵집은 언제 오픈하나요-106화 (106/120)

106화

* * *

사막의 뜨겁고 건조한 날씨와 달리, 류정우가 떨어진 이곳은 비교적 선선했다. 롬바르나의 여름은 한국의 여름처럼 무덥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류정우는 자신이 휘말린 곳이 어딘지는 몰랐으나 적어도 지구가 아니란 사실은 알 수 있었다.

그가 떨어진 숲속은 딱 봐도 지구에서는 볼 수 없는 신기하게 생긴 식물들로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신기하네.’

반딧불이에서 불빛이 나오는 것처럼 은은한 빛을 비추는 덩굴 식물들이 높은 키의 나무들을 감싸고 있었다.

류정우는 저도 모르게 감탄하며 발길이 이끄는 대로 숲속을 걸어갔다.

지난 수많은 회귀 중에서 단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상황이었다.

“차원의 열쇠라면, 래희가 항상 끼고 다니던 반지 아닌가?”

언젠가 자신이 게이트에서 얻었던 아이템이 우연히도 래희에게 종속되고 말았다. 공식적으로 습득한 아이템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냥 일이 벌어진 김에 그녀에게 조용히 넘긴 거였는데, 그걸 과거의 래희에게서 다시 얻으라고?

‘퀘스트 내용을 보면 원래부터 그게 래희 것이었다는 건데…….’

분명 그때 처음 보는 것처럼 굴었던 건 거짓말이었나?

류정우는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리며 과거를 회상했다. 그러고 보면 놀란 표정으로 그의 손 위에 올려진 열쇠에서 눈을 떼지 못했던 것 같기도 했다.

그는 래희의 호박색 눈을 떠올리며 미간을 폈다.

그녀가 그에게 거짓말을 했든, 원래 그 열쇠가 권래희 것이었든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중요한 건 지금 그가 처한 상황을 극복하고 권래희를 다시 만날 수 있는가 아닌가였다.

그 생각을 하자 류정우는 답답한 심경에 얼굴을 거칠게 쓸어내렸다.

분명 게이트 브레이크가 중단되고 게이트가 소멸되었는데, 래희는 무사한 게 맞는 거겠지?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본능적으로 그녀가 괜찮을 거란 예감이 들었다. 아마도 괜찮겠지.

“후…….”

원래 그였다면 이런 상황에서 다시 시작하기 위해 스스로의 목숨을 끊었을 거였다. 기껏 수많은 회귀를 거쳐서 여기까지 왔는데 실패라니. 그렇다고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었으니까. 그래서 이전에 한 번 비슷한 선택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럴 수 없었다. 이전에는 그의 곁에 없었던 권래희라는 존재가 있고, 퀘스트를 완료한다면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있으니까.

죽음을 통해 또 한 번의 회귀를 선택한다 해서 다음 회차에서도 그녀를 만날 수 있다는 보장도 없었다.

“…X발.”

뭐 하나 쉽지 않은 상황에, 그는 잘 쓰지 않던 욕설을 나직하게 내뱉었다. 지금 기분을 적절하게 표현할 만한 단어는 그것 하나뿐이었으니까.

걷다 보니 숲속 끝자락에 밝은 빛이 들어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저기가 이 신비한 숲의 끝인 듯해 보였다.

‘여기서 우선 과거의 래희부터 찾아야 하는 거겠지.’

지구가 아닌 것 같으니 예전에 그녀가 이야기했던 롬바르나라는 세계일 것이다. 어릴 적 귀환하기 전에 5년 동안 그곳에 지냈다고 말한 적이 있던 걸 류정우가 기억해 냈다.

그녀에 관한 생각을 하며 걷자 어느덧 밝은 시야가 눈에 들어왔다.

넓은 밭과 작은 외양간. 그리고 저 끝에 지어져 있는 투명한 온실과 그 옆에 있는 아담한 이층집.

그와 래희가 함께 살고 있는 장소와 거의 흡사한 풍경이었다.

“아…….”

래희가 가끔 그리워하는 눈빛으로 주변을 훑어보곤 하던데 여기였던 걸까?

그러나 그가 살아가는 곳과 다른 점이라면 저기 1층 테라스에 한 노인이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는 점이었다. 언젠가 래희가 이야기했던 그녀를 키워 준 마사 할머니라는 사람인 듯했다.

그는 그녀의 보호자로 보이는 사람이 경악한 표정으로 집 뒤쪽을 바라보며 소리치는 걸 들었다.

“레이!”

레이, 래희. 비슷한 발음에 곧바로 그 이름이 권래희를 뜻하고 있다는 걸 알아챈 류정우가,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까 놀라며 노인이 목이 터져라 외치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을 바라보니 숲 쪽에서 검은 연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산불이 난 것 같았다.

‘설마, 래희가 저쪽으로 올라간 건가?’

그렇다면 큰일이었다.

예전에 들었던 래희의 이야기대로라면 여기서 나이가 많아 봐야 기껏해야 13살일 텐데, 어린아이 혼자서 불이 난 숲속에 있는 건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물론 어른이라고 다를 바 없겠지만.

류정우는 확신을 가지고 곧바로 숲속으로 뛰어갔다. 사람을 쫓거나 흔적을 찾는 스킬 따위는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S급 각성자의 본능은 무엇보다도 정확했다.

그는 작은 발걸음 소리에 집중하며 하얀 연기로 감싸인 숲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발걸음 소리가 두 개야.’

하나는 가벼운, 그리고 하나는 딱딱한.

아마도 가벼운 발걸음은 곰순이일 게 분명했다. 그는 본래 인형이었기 때문에 솜으로 채워져 있어 크기가 아무리 커지더라도 무게는 여전히 가볍기 때문이었다.

류정우는 판단을 마치자마자 탁탁거리는, 어린아이가 뛰어다니는 듯한 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왔다. 그리고 그는 망설임 없이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몸을 돌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하얀 안개 너머로 뜀박질을 멈춘 작은 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보이지 않았지만 류정우는 바로 앞에 있는 이가 어린 래희라는 것을 확신했다.

그는 안개 사이로 천천히 걸어 나갔다.

그리고 한 소녀를 발견하자 류정우는 그 자리에서 굳어 버리고 말았다.

“…어린…애?”

저도 모르게 어린 래희라고 말할 뻔한 것을 겨우 틀었다. 저 아이는 자신을 모르는데 낯선 어른이 아는 척하면 무서워할지도 몰랐다.

류정우는 저를 올려다보는 래희의 눈을 홀린 듯이 응시했다. 금빛 섞인 검은 눈동자. 호박색 눈은 그를 한순간에 사로잡고 말았다.

‘아…….’

살아야겠다. 살아남아서 권래희를 다시 만나야겠다.

머릿속에는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

* * *

“아저씨! 한국 사람이에요?”

밀짚모자에 멜빵바지. 누가 봐도 시골 농부처럼 보이는 옷을 입고 있는 어린 래희는 그의 바지 자락을 붙잡고 반갑다는 듯이 소리쳤다.

래희가 말했던 대로 13살 정도로 보이는 어린 소녀는 과할 정도로 반짝이는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언젠가 거의 10년 전 팬 사인회 때 봤던 눈빛이었다.

‘그때도 이랬던가…….’

하지만 당시에는 자신도 어린 건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정확하게 기억이 나는 건 없었다. 그가 그녀를 인지한 건 첫 번째 그룹이 망하고 피에타로 재데뷔했을 때부터였으니까. 그때도 래희가 어린 건 마찬가지였지만 고등학생이었으므로 이렇게까지 어린 모습은 아니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내가…….’

“아저씨라니…….”

류정우가 감상과 충격에 젖은 채 대답 없이 어린 소녀를 내려다보고 있자 답답했던지 어린 래희가 다시 한번 그에게 되물었다.

“아저씨, 정말 한국 사람이에요?”

그제야 류정우는 자신만의 생각에서 벗어나 자신을 올려다보는 래희를 다시 한번 보았다.

이상하게도 목이 메는 느낌에 그는 대답 대신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그리고 그 긍정에 래희는 기쁘기라도 한 건지 그의 바지를 붙잡고 있던 손이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표정을 보니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보였다.

“…아저씨,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집 가는 길 아저씨는 알아요?

‘아…….’

류정우는 저도 모르게 지은 안타까운 표정을 숨길 수 없었다. 집……. 그가 회귀를 반복한 건 성인이었기에 어떻게든 버틸 수 있었지만, 어린 래희는 부모님과 떨어져 혼자서 5년을 낯선 곳에서 보낸 게 아닌가. 그는 그 외로움이 어떨지 짐작이 갔다.

그때였다.

[게이트가 열립니다.]

눈앞에 갑작스럽게 게이트가 열렸다는 알림 메시지가 나타났다. 그리고 에너지 파장이 느껴지는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하얀 안개 너머로 익숙한 말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 S급 게이트가 열렸습니다! 우선 선발 인원부터 빠르게 게이트 쪽으로 와 주십시오!

일사불란한 소리를 들으니 저 앞에는 이미 많은 헌터들이 모여 있는 듯했다.

그들이 이곳에 들어오기 전에 래희를 내보내야 했다. 그녀가 귀환할 당시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들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류정우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바로 이 시점이 래희가 지구로 돌아가는 그때였다.

류정우는 소녀의 시선에 맞춰 쭈그리고 앉았다. 그리고는 그녀의 뒤쪽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저쪽으로 조금만 쭉 걸어가면 지구로 돌아갈 수 있어.”

미안하지만 아저씨는 여기서 할 일이 있어서 같이 가줄 수 없을 것 같네?

류정우는 몸을 낮추기 전 래희의 발치에 떨어진 목걸이를 발견했다. 그 목걸이 끝에는 그가 찾고 있던 차원의 열쇠가 걸려 있었다.

‘굳이 래희에게서 직접 이걸 받을 필요는 없어 보이네.’

이대로 그녀를 내보내고 그가 이 열쇠를 줍기만 하면 퀘스트는 그대로 끝이 날 테니까.

어린 래희는 류정우의 말에 표정이 밝아지더니 괜찮다는 듯이 고개를 힘차게 끄덕이며 대답했다.

“혼자서 걸어갈 수 있어요! 이제 저도 13살이거든요!”

소녀의 씩씩한 대답에 류정우는 저도 모르게 래희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었다. 어릴 때도 밝은 모습을 보니 그녀의 밝고 낙천적인 성격은 타고난 것처럼 보였다.

그는 그리운 사람의 어릴 적 모습에서 익숙한 모습을 발견해 반가운 기분에, 저도 모르게 어린 래희에게 말했다.

“많이도 컸네.”

그리고는 속으로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아쉽지만 이제는 빨리 보내야지. 어린 래희보다는 하루빨리 성인인 자신의 래희가 보고 싶었으니까.

“저 앞에 군인들이 많이 있을 수도 있는데 너무 놀라지는 말고. 천천히 걸어 나가면 괜찮을 거야.”

어린 래희는 그 말에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에게 인사했다.

“아저씨, 알려 주셔서 감사해요. 나중에 지구에서 봐요!”

지금은 볼 수 없는 멜빵바지를 입은 귀여운 모습을 하고 손을 흔들어 인사해 오자 류정우는 저도 모르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나중에 보자 래희야.”

그는 안개 너머로 소녀가 나가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봤다.

그리고 얼마 뒤, 그녀가 밖으로 나가자마자 게이트가 닫힌 후에야 그곳을 한없이 응시하던 시선을 거두고 제 발치에 떨어진 열쇠를 주워 들었다.

띠링―!

[‘차원의 열쇠’를 획득하였습니다.]

[‘히든 퀘스트: 차원의 열쇠 획득하기’를 성공적으로 완료하였습니다!]

퀘스트 완료 메시지가 나타나자마자 그의 바로 앞에 작은 균열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 균열은 순식간에 크기가 커지더니 사람 한 명이 지나가기 충분할 정도의 통로를 만들어 냈다.

류정우는 그 뜨거운 열기를 내뿜는 어두운 균열 속으로 망설임 없이 몸을 던졌다.

자신의 권래희를 만나러 갈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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