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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네 빵집은 언제 오픈하나요-101화 (101/120)

101화

항상 그 붉은 색의 마지막 선택지가 문제였다.

물론 지구가 파괴되고 자신이 곧 있으면 죽게 될 것이라는 결과 앞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게 누구라도 ‘리셋’이라는 선택지를 선택하게 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래희를 놀리는 듯 나타난 마지막 선택지는 어딘가 오류라도 난 것처럼, 선택지를 눌러 볼 기회도 없이 항상 자동으로 ‘리셋’ 버튼을 선택하고 있었다.

“시X…….”

회귀 8번이면 세상이 멸망하든 말든 류정우를 위해서라도 ‘리셋하지 않는다’를 선택하려 했다. 반복된 회귀로 인해 점점 얼굴에서 표정이 없어지고 있는 그를 보고 있노라면 방관자인 저도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

그러나 래희에게는 그 어떤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결과, 그녀는 게이트 브레이크로 류정우가 죽게 되는 7번의 배드 엔딩과 류정우가 자살하는 1번의 노멀 엔딩을 두 눈 뜨고 바라보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8번의 고통스러운 회귀 끝에 9회차에 들어서야 히든 엔딩을 만날 수 있다고 한들 과연 바뀌는 게 있을까? 래희는 자신이라는 존재가 나타났다고 해서 그동안 바꾸지 못했던 결말을 하루아침에 바꿀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분명 자신도 한 번의 회귀를 겪었던 것을 보면 ‘히든 엔딩’을 발견한 것과는 별개로 이번 회차에서도 저 리셋 창 오류 때문에 실패할 게 분명해 보였으니까.

그래서 그녀는 일단 이번 회차에서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되든지 간에 오류가 나타난 리셋 선택지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래희는 허공에 띄워 둔 퀘스트 창에 시선을 고정했다.

사용자 ‘류정우’의 시스템 오류를 해결해야 합니다.

아마도 퀘스트에 적혀 있는 이 문장이 리셋 선택지가 자동으로 선택되는 오류를 해결하라는 의미일지도 몰랐다.

“…아.”

그때였다. 래희의 머릿속에 문득 의문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지난 회차에서 게이트 브레이크로부터 살아남았음에도 류정우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리셋이 되었던 순간이.

“설마.”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지만 그동안 자동 리셋이라는 오류가 일어나던 순간은 단 하나뿐이었다. 그건 바로 류정우의 죽음.

아마도 그녀의 추측대로라면 류정우가 죽는 순간 자동으로 리셋 버튼이 선택되는 걸지도 몰랐다.

그동안 매번 같을 결말을 맞이했기에 눈치채지 못했지만 8번째 회차를 떠올리니 실마리가 잡히는 것 같았다.

이 추측대로라면 류정우의 죽음 혹은 류정우라는 존재 자체가 시스템 오류라는 뜻이었다.

래희는 말도 안 되는 결론에 눈을 감았다. 스스로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동안 실패한 지난 회차들을 떠올려 보면 짐작 가는 건 그것 하나밖에 없었다.

그동안 외부 요인으로부터 시스템 오류가 발생한 것으로 추측해 원인을 찾으려 했던 것 자체가 잘못된 선택일지도 몰랐다.

회귀부터 지금까지 주어진 모든 선택지가 류정우를 중심으로 일어난 사건이었다. 그렇다면 분명 원인은 류정우에게 있는 게 분명했다.

“윽!”

래희는 머리가 복잡해지면서 밀려오는 편두통에 양손으로 제 머리를 감싸 쥐며 주저앉았다.

‘…그렇다 해도 이제는 어디서부터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오류가 무엇인지는 알아냈지만, 도저히 해결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자신은 이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시스템에 관해서 아무것도 알고 있는 게 없지 않은가.

‘아냐, 포기하지 말고 생각을 해 봐 권래희. 우선, 단순하게 접근하자. 다시, 하나하나 차근차근 접근하는 거야.’

일단 류정우의 죽음 때문에 리셋이 선택되는 거라면 어떻게 해서라도 류정우를 살려 놓아야만 했다. 지금으로써는 래희가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은 그것 하나뿐이었다.

‘…하지만 이제껏 게이트 브레이크나 류정우의 죽음을 막는 것부터 실패해 왔잖아.’

“휴…….”

답답한 심정에 래희가 헝클어진 제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녀의 미간 사이로 골이 깊어졌다. 그리고 그때였다.

띠링―!

[다음 챕터로 넘어갑니다.]

과거의 권래희가 류정우의 등에 업혀서 게이트를 빠져나옴과 동시에 시스템 알림 메시지가 눈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곧이어 매번 그래 왔듯이 시야가 일그러지며 눈앞의 장면이 변했다.

* * *

[히든 퀘스트: 히든 루트를 향한 새로운 선택!]

[히든 퀘스트: 류정우(9)에게 ‘차원의 열쇠’ 전달하기.]

과거의 당신이 무사히 열쇠를 전달받을 수 있도록 류정우에게 슬쩍 건네줍시다. 단, 정체를 들키지 마세요.

‘이건 또 뭐야?’

생각지도 못한 퀘스트에 놀란 래희가 인상을 쓰며 퀘스트 창을 응시했다. 그리고 고개를 아래로 내려 제 손에 끼워져 있는 반짝이는 분홍빛 다이아몬드 반지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래서, 이걸 뭐 어떻게 전달하라는 거야?”

그녀가 기억하기로는 처음 류정우에게서 이 반지를 열쇠 형태로 건네받았을 때는 그가 게이트에서 막 빠져나온 직후였다. 대던전 토벌을 대비하기 위한 훈련으로 참가했던 게이트 앞 휴게 막사에서 열쇠를 들고 관찰하고 있었더랬지.

류정우에게 건네받은 차원의 열쇠에 관한 설명에는 분명 ‘주인을 잃어버린 열쇠’라고 적혀 있었던 게 기억이 났다.

“잃어버린 열쇠?”

그럼 그냥 건네주는 게 아니라 잃어버린 척이라도 해야 한다는 건가?

물론 이번 퀘스트에도 류정우에게 정체를 들키지 말라는 조건이 걸려 있으니 몰래 그에게 열쇠를 전달해야 한다는 뜻인데…….

“퀘스트 때문에 별 지랄을 다 하는구나.”

류정우가 게이트 안에서 반지를 주웠으니 그 말은 즉 래희 자신도 게이트 안에 들어가 류정우의 눈에 띄도록 열쇠를 슬쩍 흘려야 한다는 뜻이었다.

래희는 어이가 없었다.

넓디넓은 게이트 안에 들어가서 무슨 수로 류정우의 눈에 띄도록 아이템을 바닥에 던져둔다는 말인가. 심지어 류정우는 S급 각성자이기 때문에 일정 거리 이상 가까이 다가가면 제 존재를 들킬 위험이 컸다.

그동안은 멀리 떨어져서 지켜봤다지만 이번에는 들키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데, 아무리 스탯이 올랐어도 지금 래희의 능력으로는 무리였다.

“음…….”

몬스터에 묶어 두고 슬쩍 몬스터 부산물인 것처럼 꾸며?

생각은 그럴싸하더라도 래희에게는 그렇게까지 상황을 만들 능력도 없었다. 고민이 깊어질 무렵, 그런 래희의 상황을 다 안다는 듯이 시스템 창 위로 메시지 하나가 떠올랐다.

[도움이 필요한 당신! 당신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몬스터로 위장하기 티켓]

- 랜덤 / 1회권 / 30분

[무해한 몬스터로 변해 류정우에게 반지를 슬쩍 전달해 주세요!]

“아…….”

미친. 하다 하다 시스템도 뇌절을 하는 것 같았다.

몰래카메라인가? 아니면 트루먼 쇼?

과거로 와서 퀘스트랍시고 미연시 게임을 하게 된 것뿐만 아니라 하다 하다 이제는 몬스터로 변하라고?

아무래도 이제 내 입에서 ‘굿 모닝, 굿 애프터눈, 굿 나잇’이라는 대사가 나올 차례인 듯했다.

그러나 상황은 래희가 더는 얼빠진 채로 있을 시간이 없다는 듯 급변하기 시작했다. 시야가 변한 이후 래희가 떨어진 곳은 바로 게이트 안.

주변을 살피니 바로 이곳은 류정우가 래희에게 열쇠를 건네주기 직전 들어왔던 정글형 게이트였다.

“이쪽입니다!”

근처에서 헌터들이 몰려오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수풀을 헤치는 소리가 근처까지 들려오자 더 망설일 시간은 없었다.

류정우에게 제 정체를 들켜서는 안 된다는 제한이 걸려 있었으므로, 래희는 제 입술을 짓씹으며 어쩔 수 없이 손을 들어 몬스터 위장 티켓 사용을 눌렀다.

티켓 사용과 동시에 순식간에 래희의 시야가 낮아지기 시작했다.

사락. 나름 얼굴을 가리기 위한 용도로 뒤집어쓰고 있던 두건이 래희의 시야를 가렸다. 래희는 제 몸 전체를 감싸는 천에 부르르 떨며 몸을 털었다.

‘뭐로 변했길래 이렇게 작아진 거야?’

신경질적으로 몸을 털고선 기지개를 켜며 천이 떨어지며 간질인 제 뒷목을 뒷발로 긁었다.

‘으, 간지러워…….’

…뒷발?

그러다 문득 든 위화감에, 래희는 시원함에 본능적으로 감고 있던 눈을 슬쩍 떴다.

눈동자를 굴리자 제 몸의 털빛이 시야에 들어왔다.

‘…흰색?’

풍성한 하얀 꼬리가 먼저 보였다. 그리고 그 밑으로 개의 것과 비슷한 모양의 발이 보였다.

‘강아지?’

그러나 정글 안에 갯과의 몬스터가 살고 있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런 래희의 의문은 곧이어 들려오는 발걸음의 주인 덕에 금방 풀렸다.

“…여우?”

방심하고 있던 찰나 들리는 목소리에 래희는 서 있던 자세 그대로 굳은 채 움직이지 못했다. 목소리의 주인은 바로 류정우였다.

류정우는 풀숲을 바스락거리며 헤쳐 와 래희의 바로 코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래희는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하며 어찌할 줄 모른 채 제게 가까이 다가온 류정우의 군화를 멍하니 응시했다.

그리고 곧이어 뒷덜미가 잡힌 채로 류정우의 머리 높이까지 들어 올려졌다.

“끼잉!”

변한 모습이 어린 개체라 그런 건지 잡힌 목덜미가 아프지는 않았지만, 저도 모르게 엄살 피우듯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류정우는 무표정한 모습으로 조용히 관찰하고 있었다.

“…C급 화이트폭스 같은데… 몬스터치고는 작은데?”

몬스터 새끼는 처음 보는군.

나직하게 중얼거리는 그의 목소리는 꽤나 차가웠다.

‘설마, 죽이는 건 아니겠지.’

아니지 애초에 헌터는 게이트를 토벌하러 왔으니 몬스터를 죽이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래희는 오랜만에 정면으로 마주한 류정우가 매우 반가운 한편 지금 상황이 너무나도 두려웠다. 이러다가 최애 손에 이 세상을 하직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반사적으로 온몸이 떨려 왔지만 래희는 목숨이 위태롭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지금 제가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다는 것도 자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새끼 여우의 모습을 한 래희를 신기하다는 듯 관찰하던 류정우는 애처로울 정도로 떨고 있는 화이트폭스를 보고서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금빛 섞인 화이트폭스 새끼의 눈동자를 보니 누군가의 모습이 겹쳐서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평소였다면 망설임 없이 처리했겠지만 한 번 떠오른 얼굴의 주인 때문인지 그럴 수 없었다.

‘…다른 헌터들이 오기 전에 풀어 주든가 해야지.’

도망가다 눈에 띄어 죽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 그가 그것까지 배려해 줄 수는 없었다.

류정우는 조심스럽게 여우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러나 너무 겁먹은 탓인지 새끼 여우는 움직이지 못하고 그대로 굳어 있었다.

그는 그 모습을 보고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여우의 작은 뒷발을 발끝으로 조심스럽게 툭 밀었다. 그와 동시에 여우는 깜짝 놀라며 꼬리털을 바짝 세우고는 풀숲으로 뛰어 들어갔다.

“하…….”

왜, 순간적으로 권래희 그 여자가 생각난 건지.

류정우는 제 머리칼을 거칠게 쓸어 올리며 한숨을 내뱉었다.

그때였다.

사락사락.

새끼 여우가 사라진 풀숲 쪽에서 작은 움직임이 느껴졌다. 류정우가 그쪽으로 시선을 돌림과 동시에 풀 사이로 하얗고 작은 여우의 머리가 툭 튀어나왔다.

류정우는 맑은 눈으로 저를 응시하는 새끼 여우의 황금빛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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