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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네 빵집은 언제 오픈하나요-99화 (99/120)

99화

“…됐다.”

천영은이 대답하려는 의지가 없어 보이자 김주현은 그녀의 대답을 듣기를 포기했다. 어떤 이유든 간에 권래희만 무사하면 상관없으니까.

그래서 그는 입술을 굳게 다문 천영은을 빠르게 지나쳐 대던전 게이트 쪽으로 다급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아직 브레이크가 터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밖은 재난 상황이었다. 전조 증상인 지진과 여진을 버티지 못한 것인지 빌딩 곳곳이 박살이 나 무너져 내려 있었고 사람의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다행히 대던전 토벌 기간 중 헌터의 출입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교통을 통제한 덕인지 인명 피해가 커 보이지는 않았다.

그리고 몇 블록 떨어진 거리에 있는 게이트 앞에는 ‘그들’이 모두 모여 다 같이 게이트가 터지는 걸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재난 상황인 데다 모인 사람이 모두 헌터이기 때문인지 200여 명의 인파가 모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멀리서 봤을 땐 크게 이상해 보이지 않았다.

김주현은 한 번의 짧은 심호흡을 한 뒤에 게이트 쪽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이미 심하게 부풀어 오른 붉은 게이트를 보아하니 곧 있으면 터질 것 같았다.

‘그래, 깨끗이 청소하려면 거기에 나도 포함돼야지.’

그는 게이트가 빠른 속도로 부풀며 불안한 에너지를 발산하자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한순간에 가루가 되어 사라질 테니 최소한 고통은 느끼지 않을 게 분명했다.

그러나 그때, 누군가 그를 끌어안는 게 느껴졌다. 그에 놀라 반사적으로 눈을 뜨자 그를 껴안은 사람의 얼굴이 턱 바로 아래에 있었다.

‘천영은……?’

하지만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콰과광―!

순식간에 폭발적인 힘이 게이트로부터 터져 나와 몇백 미터 거리에 서 있던 김주현까지 쓸며 지나갔다. 가까이에 있던 건물들과 인간들이 모두 재가 되어 사라지는 게 그의 눈에 담겼다.

그러나 김주현은 무사했다.

“대체…….”

멀리 날아간 충격으로 잠시 현기증이 일었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금방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눈을 뜨자 제가 부딪힌 건물의 잔해더미 안에 갇힌 듯했다. 그리고 그는 곧이어 왜 그가 멀쩡하게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천영은이었다.

그녀가 제 스킬로 그를 감싸며 스스로를 희생시킨 거였다. 김주현은 그 사실이 너무나도 당황스러웠다. 그녀가 제 목숨 바쳐 자신을 살릴 이유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왜……?”

당황과 혼란스러움으로 인해 그는 한동안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최근의 천영은의 행동이 조금 어색하기는 했다.

자신의 상태가 이상한 것을 인지한 상태처럼 보였고, 충분히 윗선에 제 이상을 보고하고 자신을 폐기 처분할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았다.

얼마 전에는 성녀 앞에서 그를 대신해 대답하며 감싸 주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그 누구도 믿을 수 없었던 김주현으로서는 천영은의 행동을 호의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러나 막상 생각하지도 못한 상황에 천영은이 자신을 대신해서 희생하자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마지막에 마주쳤던 그녀의 눈동자에는 이전과 다른 곧은 초록빛 시선이 담겨 있었다. 마치 모든 걸 알아차렸다는 듯이.

“아…….”

그래. 마지막에 본 그녀는 그가 알던 천영은이 아니라, 그 몸의 본래 주인이었다.

김주현은 제 얼굴을 거칠게 쓸어내렸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딱히 동료라고 생각한 적도 없거니와 지난 5년간 경계하기 바빴으니. 그녀가 자신 대신 선택한 죽음에 유감스러운 감정 따위는 들지 않았다.

5년 전의 자신이었으면 이렇게 냉정하게 굴지 못했겠지만, 과연 이 자리에 서 있는 자신이 본래의 김주현인지 무감정한 미카엘인지 구별되지 않았다.

‘아니지.’

딱히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는 걸 보니 역시나 자신은 김주현의 기억을 가진 미카엘일지도.

그는 먼지를 털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천영은은 세간에 공식적으로 B급 헌터라고 알려진 것과는 달리, 실제로 그녀는 A급 헌터였다. 그것도 S급 방어계 스킬을 가진.

그 덕에 김주현은 타박상을 제외하고는 게이트 브레이크를 겪은 사람답지 않게 아주 멀쩡했다.

“하…….”

죽어야 하는데 죽지 못했다.

그의 목표대로라면 롬바르나에서 넘어온 영혼과 융합된 자신도 죽어야 했다.

가만히 자리에 서서 생각을 정리한 김주현은 자신을 뒤덮은 잔해더미를 치우고 밖으로 빠져나왔다.

이왕 살아남은 거, 혹시라도 ‘그들’ 중 살아남은 자들을 모두 처리하고 죽는 것도 괜찮아 보였다.

그러나 얼마 뒤, 게이트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을 때 그는 무언가를 향해 시선을 고정한 채 곧바로 그쪽을 향해 달려나갔다.

아직까지 건재해 보이는 게이트 근처로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권래희.

게이트 반대편으로 갔어야 할 사람이 왜 여기에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권래희의 어깨 너머로 2차 폭발을 하려는 건지 또다시 게이트가 붉은빛으로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사이로 앞서 토벌을 떠났던 헌터들이 밖으로 뛰어나오고 있었다.

“권래희!”

김주현은 다급하게 게이트 쪽으로 뛰어나가는 권래희의 팔을 붙잡았다.

“아악!”

흥분한 탓에 강한 악력으로 손목을 붙잡은 건지 래희가 짧은 비명을 내질렀다. 그러나 김주현은 평소와 달리 그 점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는 여전히 게이트에 시선을 고정한 채 넋을 놓고 있는 래희를 향해 소리 질렀다.

“네가 왜 여기 있어! 지금 죽으려고 작정한 거야?!”

김주현은 그를 무시한 채 게이트 쪽으로 뛰어가려는 래희를 강하게 붙들었다.

래희는 신경질적으로 소리치며 몸부림쳤다.

“이것 좀 놔!”

그리고 그때, 래희가 게이트 쪽에서 누군갈 발견한 건지 눈을 커다랗게 뜨며 소리 질렀다.

“윤재언!”

그 소리에 김주현의 시선도 그쪽을 향했다. 윤재언은 방금 막 게이트 밖으로 나온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윤재언이 게이트 밖으로 몸을 빼자마자 게이트의 크기가 순식간에 축소되며 사라졌다.

‘분명, 게이트 브레이크를 막는 데 실패했었는데?’

신력이라 부르는 힘으로도 억제하지 못해 모두 가루가 되어 사라졌는데, 이렇게 아무것도 한 것 없이 게이트가 사라지다니?

김주현은 당황하며 래희를 붙잡고 있던 손의 힘을 풀었다.

래희가 연신 류정우의 이름을 부르며 그를 찾고 있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 김주현이 당황한 듯 멍하니 게이트가 사라진 자리를 바라봤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권래희!”

옆에서 놀란듯한 윤재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주현은 귓가에 꽂히는 래희의 이름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때, 한 손을 허공으로 들어 올린 래희 앞으로 게이트처럼 생긴 구멍이 점차 크기를 키우더니 순식간에 그녀를 집어삼켰다.

그것을 지켜보던 윤재언과 김주현 두 사람 모두 손 쓸 새 없이 지나간 찰나의 순간이었다.

* * *

“환장하겠네.”

래희는 눈을 질끈 감으며 미간을 꾹 눌렀다.

이번이 벌써 여덟 번째 시도였다. 래희는 마지막 선택지에서부터 계속해서 배드 엔딩으로 끝나는 결말에 퀘스트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싶은 심정이었다.

‘류정우 씨, 정우 오빠… 진짜 미안해요.’

자신이 실패한 만큼 류정우도 계속해서 회귀한 거겠지.

래희는 실패로 인해 돌아온 마지막으로 저장된 구간에서부터 계속해서 새로운 회차가 시작되자, 실시간으로 감정을 잃어 가는 류정우를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X발.”

이럴 거면 처음부터 시작을 말았어야 했다.

희망 가득한, 생기있는 표정은 점점 사라지고 지친 나머지 자신의 삶을 무감정한 태도로 무력하게 지켜보는 류정우라니.

이제 막 여덟 번째 플레이가 시작된 참이었는데, 시작하자마자 보이는 류정우의 동태눈을 보자 죽고 싶어졌다.

게임이 아니라 자아가 있는 사람을 상대로 선택지가 생성되는 거다 보니, 회차가 새롭게 시작할 때마다 류정우는 같은 상황에서 다른 행동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떤 행동을 하던 그 결과로 인해 래희에게 주어진 다음 선택지의 난이도는 계속해서 높아졌다.

“오빠…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마 제발.”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 예측 가능한 범위로 움직여 줄래?

그런 래희의 생각을 알기라도 하듯 류정우는 어느 순간부터 새로운 행동을 시도하려 들지 않았다. 덕분에 래희는 회차를 반복할 때마다 노멀 엔딩으로 갈 수 있는 확률을 점차 높일 수 있었다.

[히든 퀘스트 ‘고장난 태엽 고치기’]

(진행률 80% | 히든 엔딩 70%, 노멀 엔딩 80%, 배드 엔딩 65%)

‘하…….’

하지만 저 확률이라는 것도 믿을 수 없었다.

마치 체육 대회에서 나머지 앞의 게임을 열심히 참가해 점수를 많이 따냈다 하더라도, 그 배의 점수가 걸린 마지막 게임에서 져서 우승하지 못하는 것처럼. 항상 마지막 선택지로 인해서 배드 엔딩에 도달하고 말았다.

‘말포이 기분을 알 것 같네.’

다시 쉽게 예를 들자면 딱 지금 상황이 해리포터에서 1년 동안 부지런히 점수를 딴 슬리데린이 주인공 버프로 그리핀도르에 우승컵을 빼앗기는 상황과 같았다.

그뿐인가.

이상하게도 회차가 거듭될수록 히든 엔딩의 확률도 계속해서 올라갔다.

‘불안하게…….’

노멀 엔딩이 게이트 브레이크가 터지지 않는 것으로 예측한다면, 히든 엔딩이 무엇일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보통은 히든 엔딩이 가장 좋은 결말을 가진 진엔딩이라 볼 수 있었지만 이건 게임이 아니지 않은가.

콰과광―!

래희는 몇 번이고 반복해서 목격한 게이트 브레이크를 무감정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처음 회차를 겪은 이후에는 한동안 그 충격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지만, 이 꼴을 여덟 번 보고 나니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게이트가 터지면서 주변을 초토화했다. 래희는 이제 다시 마지막 저장 시점으로 돌아갈 것을 예상하며 두 눈을 감았다.

시간이 거꾸로 돌아갈 때 느껴지는 감각은 여전히 적응되지 않았기 때문에, 눈을 감고서 울렁거리는 감각을 참는 데 집중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지금쯤이면 느껴졌어야 할 어지러움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드디어 적응이라도 한 건가?’

치밀어 오르는 구토감에서 해방되었다는 생각이 들자 래희는 감고 있던 눈을 슬며시 떴다.

“…어?”

하지만 이상하게도 두 눈에 보이는 광경은 그대로였다. 과거로 다시 돌아가기는커녕 래희는 여전히 파괴된 폐허 한복판에 서 있었다.

“X발, 뭐지?”

욕설이 절로 나왔다. 이제는 새로운 미래를 볼 때마다 심장이 너무나도 떨렸다. 이번에는 어떤 끔찍한 배드 엔딩이 기다리고 있을지 도저히 상상조차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때였다.

[히든 퀘스트 ‘고장난 태엽 고치기’가 ‘노멀 엔딩’을 맞이하였습니다.]

“…노멀 엔딩?”

지난 일곱 번의 배드 엔딩 이후 처음으로 도달하는 결말이었다.

“노멀 엔딩이 뭔데?”

그러나 래희는 곧이어 보이는 광경에 할 말을 잃고야 말았다. 노멀 엔딩이라 적혀 있어서 비교적 평화로운 엔딩일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안 돼…….”

언제나 항상 3차까지 터진 게이트 브레이크는 서울뿐만 아니라 전 세계 곳곳에 동시다발로 터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 시점에 회귀를 반복해서 정확하게는 몰랐지만 아마도 그 이후 살아남은 인류는 없었을 거였다.

그러니 혹시라도 운이 좋아 살아남는다고 할지라도 남은 사람들만으로 오염되어 멸망 직전인 지구에서 생존할 수 있는지도 미지수였다.

그리고 류정우도 그렇게 생각한 듯했다.

이번 회차의 류정우는 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건지 여러 회차 중에서 처음으로 자살을 선택했다.

이런 결말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래희는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동안 류정우의 죽음을 직접적으로 목격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큰 충격은 없었다. 다행이었다. 아무리 퀘스트고 다시 살아난다 해도 소중한 사람이 죽는 걸 두 눈 뜨고 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하지만 이번에 래희는 소중한 사람이 저 스스로 목숨을 끊어 내는 장면을 목격하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저장된 시간으로 되돌아가시겠습니까? Y / N]

(00:00:59 시간이 끝나면 자동으로 Y를 선택합니다.)

래희는 충격으로 인해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제한 시간이 흘러가는 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 멍하니 주저앉아 있을 뿐이었다.

[마지막 저장된 시간으로 되돌아갑니다.]

[조건을 달성하셨습니다.]

[이제부터 ‘히든 엔딩’을 획득하실 수 있습니다.]

어두워진 시야 가운데 시스템 알림 창만이 홀로 반짝이며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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