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헌터네 빵집은 언제 오픈하나요-98화 (98/120)

98화

* * *

띠링―!

[‘연계 퀘스트 1: 류정우(1)를 도와주자’가 성공적으로 완료되었습니다!]

[완료된 스토리가 자동 저장됩니다.]

띠링―!

[히든 퀘스트 ‘고장난 태엽 고치기’]

(진행률 20% | 히든 엔딩 20%, 노멀 엔딩 20%, 배드 엔딩 15%)

사용자 ‘류정우’의 시스템 오류를 해결해야 합니다. 일정 조건 충족 시 해당 회차의 연계 퀘스트가 오픈됩니다.

- 연계 퀘스트 1 (1/1): 완료

- 연계 퀘스트 2 (0/1)

- 완료 보상: ???

“…X발.”

미친 시스템.

래희는 끔찍한 걸 목격했다는 눈빛으로 시스템 창을 노려봤다. 제 선택 하나로 진행되는 상황을 보니 너무나도 끔찍한 기분이었다.

마른세수하며 류정우가 있는 쪽을 바라봤다. 무슨 생각인지는 몰라도 예정대로 각성자임을 숨기는 듯했다.

구조대가 다가오자 류정우는 부상 당한 민간인 행세를 하며 박이안 헌터가 저를 구해 주고 게이트를 클리어했다고 증언했다.

박이안의 등급을 확인한 헌터들은 납득한 듯했고 곧이어 류정우도 함께 들것에 실린 채로 게이트 밖으로 나갔다.

물론 언론에 아이돌 ‘피에타’의 멤버 류정우가 게이트에 휘말려서 실종되었었다는 기사는 한 줄도 나지 않았다. 민간인 실종자의 신분은 웬만하면 비밀에 부쳐졌고 아직 데뷔 2년 차였기 때문에 소속사에서도 가급적이면 논란의 여지를 피하고 싶어 한 결과였다.

다른 멤버들 없이 혼자서 게이트에 휘말렸었다는 소식이 밖으로 알려진다면 대중은 혼자서 뭘 하다 그렇게 된 건지까지 궁금해할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예전에 저런 적이 있었다는 말이지?”

전혀 몰랐던 새로운 사실에 대해 알게 된 래희는 미간을 찌푸렸다. 어쩐지, 그때 감기몸살로 인해 부득이하게 연말 무대에 참여하지 못한다는 소식을 들었었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라 부상을 숨기려 했던 선택이었다니.

‘대기업은 역시 대기업’

류정우가 이전에 속했던 망돌일 때 사고를 당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뻔했다. 안 그래도 그룹 이미지가 좋지 않은데, 문제없는 멤버라 하더라도 말도 안 되는 루머를 피할 수는 없을 터였다.

그날 저녁, 집에 도착해 그날 하루 있었던 일을 정리한 래희는 내일은 제발 이상한 선택지가 없기를 기도하며 침대에 누웠다.

그러나 다음 날부터 일어난 일들은 래희를 미치게 했다.

* * *

헌터넷 익명 게시판

[잡담](HOT)(기사) 대던전 1차 브레이크 발생, 류정우(S) 헌터 실종.

24일 오전, 서울 대던전 1차 브레이크 이후 갑작스러운 게이트 소멸로 인해 류정우(S) 헌터가 실종…….

- 소멸한 게이트 안에 갇히면 어떻게 되는 거임?

└그런 게이트에서 돌아온 사람을 귀환자라 부르는 거. 하지만 한국에 공식적인 귀환자는 두 명밖에 없음. 죽은 거로 봐도 무방.

└류정우가 무슨 죄냐. 나라 지키다 개죽음당한 거임?

- 게이트 닫히고 그 앞에서 다른 헌터 한 명도 갑자기 사라졌다는 말 있음.

└목격담 올라왔는데 그거 그 사람임. 류정우 여친.

└ㅅㅂ 류정우 여친 아니라고.

└사람이 실종됐는데 이딴 댓글 다는 수준 진짜.

서울 대던전 브레이크 사태.

20여 년 전 생겨난 대던전 중 유일하게 소멸한 서울 대던전은 지금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었다.

소멸 과정에 S급 헌터 한 명이 실종된 것보다도 20년 넘게 유지된 게이트가 소멸이 되었다는 사실이 더 이슈가 되면서 류정우의 실종뿐 아니라 래희의 실종 또한 많은 주목을 받지 못했다.

게다가 얼마 뒤, 1차 브레이크 중 게이트 앞에 서 있다 브레이크에 휩쓸려 죽은 이들에 대한 목격담이 나오게 되면서 류정우와 래희는 금방 잊히고 말았다.

그들이 게이트가 터지는 와중에도 도망치지 않고 앞에 서 있는 장면이 고스란히 찍힌 동영상이 뮤튜브에 공개가 되면서 그들이 게이트 브레이크를 막으려던 영웅이냐, 아니면 게이트 브레이크의 원인이냐, 하는 말들이 인터넷에 양분되었다.

그러나 정부는 그에 관해 아무런 설명과 언급조차 하지 않았고, 그저 이번 대던전 토벌 결과 전 세계 대던전이 모두 연결이 된 하나의 게이트였다는 것을 알아냈다는 정보만 발표했다.

서울 대던전 게이트가 소멸한 지 하루 뒤, 뒤이어 주변 국가들의 게이트도 연이어 소멸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또한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누구도 명확하게 아는 바가 없었으므로, 무엇하나 속 시원하게 결론 짓지 못해 세상은 온갖 가짜 뉴스와 음모론으로 시끄럽게 떠들썩해졌다.

[종말의 시작인가, 종말의 끝인가?]

윤재언은 포털 사이트 메인에 올라온 기사 제목을 읽으며 헛웃음을 내뱉었다. 계속 이런 식으로 불안감만 조성하는 건 길게 봤을 때 결코 좋지 않았다.

그런데도 언론은 기사 조회 수를 높이려고 그러는지 하루가 멀다 하고 음모론을 배경으로 한 자극적인 제목을 뽑아 댔다. 물론 막상 그 제목에 낚여 기사를 클릭해 읽어 보면 아무 내용도 없었다.

“그래서, 이제 어쩔 거지?”

청해 길드 건물이 무너져 임시로 구한 사무실에 앉아 있던 윤청현이 재언의 맞은편 테이블에 앉아 있는 김유한에게 물었다.

김유한은 윤청현의 물음에도 얼마간 말없이 눈을 감고 있었다.

“하…….”

얼마 지나지 않아 김유한이 깊은 한숨을 내뱉으며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여태껏 봐 왔던 그 어느 모습보다도 피로해 보이는 안색이었다.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나.”

류정우와 권래희가 실종된 지도 벌써 여드레가 지났다. 이미 새로운 해로 넘어와 버렸고 두 사람을 찾아낼 방법은 전혀 없어 보였다.

모든 대던전 게이트가 연결이 되어 있다면 아직 닫히지 않은 다른 국가의 게이트를 통해 류정우를 수색한다?

이건 지금으로써는 불가능한 선택지였다. 서울 대던전의 게이트가 닫힌 이후 도미노처럼 다른 게이트들도 연달아 소멸하는 중이었다. 그런 상황에 실종자를 찾겠다고 멀쩡한 사람을 언제 닫힐지 모르는 게이트 안으로 밀어 넣을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권래희가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김주현이 제 아버지 김유한에게 그동안 있었던 모든 사실에 대해 털어놓았다.

5년 전, 자신이 게이트에서 실종된 이후로부터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일을.

게이트 너머 다른 차원의 인간들이 지구의 헌터들의 몸을 빼앗고 지구로 넘어와서는 기득권층으로 살고자 일부러 지구를 오염시키고 게이트를 열었다는 것까지. 그리고 이번 게이트 브레이크를 일으킨 건 자신이었다는 사실까지도.

그리고 그 모든 걸 설명하는 자리에는 윤재언과 윤청현도 함께 있었다.

‘씨X, 뭐라고 변명이라도 좀 해 봐. 진작에! 진작에 알렸으면 달라졌을 수도 있었어! 굳이 그딴 방법을 쓰지 않았어도!’

마지막에 래희가 그들에게 납치되었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윤재언은 참다못해 김주현에게 달려들었다. 그가 멱살을 붙잡고 그 위에 올라타도 김주현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마치 어떤 벌이 주어지더라도 모든 걸 감수하겠다는 듯이.

윤재언도 알았다. 지금까지 벌어진 모든 일이 김주현의 탓만은 아니었다. 그러니 게이트 브레이크를 일으킨 사실을 제외하면 다른 이유로 그가 죄값을 치러야 할 이유도 없었다. 오히려 그도 피해자로 볼 수도 있었으니까.

다만, 김유한은 김주현이 정말 제 아들이라는 확신이 들지 않는 것인지 남인 게 분명한 윤재언보다도 더 냉정하게 그를 대했다. 그 결과, 김유한은 헌터들이 구속되는 방식으로 백화 길드 감옥 안에 갇혀 있는 상황이었다.

* * *

래희가 게이트 앞에서 실종된 그날.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뒤돌아보지 마. 살아남는 것만 생각해.”

김주현은 지하실을 벗어나는 래희의 뒷모습을 조용히 바라봤다. 자신은 래희와 반대 방향인 대던전 게이트 쪽으로 향할 생각이었다.

“후…….”

이제는 제가 김주현인지 미카엘인지 정체성이 구별되지 않았다. 두 사람 중 누구의 이름을 제게 가져다 대더라도 둘 다 제 것 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 가야지.”

자신도 게이트로 가서 브레이크가 터지지 않도록 도울 생각이었다. 거기에 휩쓸려 죽든 그렇지 못해 제 손으로 그곳에 모인 이들을 모두 죽이든, 모든 건 운명에 맡기기로 한 상태였다.

그리고 그때였다.

감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던 김주현의 얼굴 위로 당황스러움이 비치기 시작했다.

타박타박, 발걸음 소리가 래희가 나간 통로 쪽 방향에서 그에게로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권래희?’

하지만 고개를 돌려 확인한 그곳에 서 있는 사람은 권래희가 아니었다.

“천영은?”

네가 왜 여기에…….

김주현은 몹시나 놀란 듯 떨리는 눈동자를 감추지 못한 채 그녀를 바라봤다. 그러다 우연히 천영은의 손끝이 빨갛게 젖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피?

뚝뚝 손끝에서부터 방울방울 흘러내리는 그것은 바로 피였다.

순간 김주현의 머릿속에 방금 천영은이 걸어온 쪽에서 래희가 뛰어나간 것을 깨달았다.

‘권래희!’

천영은도 그때 밀회를 가진 사람 중 한 명이었으니 현아린이 래희를 노리고 있었다는 것을 분명 알고 있었다. 거기에 래희를 납치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겠지.

그러니 굳이 지금 이 상황에 방금 묻혀 온 듯한 피를 뚝뚝 흘리는 천영은의 모습은, 그에게 한 가지 생각만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천영은은 김주현의 표정이 굳어지는 걸 보자, 곧바로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김주현이 이성을 잃고 자신에게 달려들기 전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안 죽였어요.”

그 말에 당장이라도 공격하려던 김주현이 잠시 멈칫거렸다.

“권래희, 안 죽였다고요. 그러니까 정신 차려요.”

천영은은 같은 말을 재차 강조하며 결백함을 주장했다. 그리고 당연히 김주현은 그 말이 이해가 가지 않는 건지 여전히 굳은 채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여차하면 바로 달려들어 천영은의 목을 칠 것만 같았다.

“그냥 보내 줬어요. 이 피는 그 여자 것이 아니라 다른 이의 것이고요.”

“그게 무슨 말이야.”

김주현이 처음으로 그녀의 말에 반응했다. 천영은은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권래희를 보내 주기 위해 걸리적거리는 걸 치웠을 뿐이라며 대답했다. 그리고 여전히 김주현은 이해하지 못한 기색이었다.

“네가 왜.”

부작용으로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구분을 못 하는 것도 아니면서 천영은 네가 굳이 왜 그런 선택을 한 거지?

그러나 천영은은 대답 대신 그의 얼굴을 조용히 응시했다. 그 물음에는 그녀도 답해 줄 수 없었다. 자신도 그 이유를 몰랐으니까.

그러다 문득, 김주현은 한 가지 달라진 점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동안 잿빛이었던 천영은의 눈동자가 순도 높은 초록빛으로 어둡게 빛나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