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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네 빵집은 언제 오픈하나요-95화 (95/120)

95화

래희는 게이트를 마지막으로 빠져나온 윤재언에게 달려갔다.

“윤재언!”

그러나 윤재언은 자신을 부르는 그녀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건지 한껏 당황한 표정으로 사라져 버린 게이트가 있던 곳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윤재언의 표정을 발견한 래희가 그 자리에서 멈춰 섰다.

불길한 예감이 피어올랐다.

“윤재언?”

래희가 재차 그의 이름을 부르자 윤재언은 그제야 고개를 돌려 래희를 바라봤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한껏 창백해져 있었다.

“류정우는 어딨어?”

윤재언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그러나 말하지 않아도 자신이 찾고 있는 류정우가 게이트를 빠져나오지 못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렇게 또……?”

절망감이 래희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정신 차리라는 듯 조금 전 확인하지 못했던 시스템 메시지가 눈앞에 떠올랐다.

띠링―!

[성좌 ‘운명의 길잡이’가 예약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확인하시겠습니까? Y / N]

확인하지 않으면 영원히 지울 수 없다는 듯이 닫기 버튼이 사라져 있었다.

‘굳이 지금 상황에?’

하지만 정말로 굳이 지금 상황에 필요한 메시지라고 주장하는 듯이, 이전보다도 빠른 속도로 반짝이기 시작했다.

차오르던 눈물을 래희는 다시 눈에 힘을 주어 참았다. 마치, 이 메시지를 확인하면 류정우를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래희는 떨리는 손으로 메시지 창의 Y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곧이어 장문의 메시지가 그녀의 시야를 꽉 채웠다.

[이 메시지는 롬바르나에서 최초로 시작되어 10년에 한 바퀴씩 전 차원을 돌아다니면서 받는 사람에게 행운을 주었고… (중략) 이 메시지를 받은 사람은 행운이 깃들 것입니다.]

“하.”

래희는 어이가 없어서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내뱉었다.

지금 뭐지, 이 성좌가 장난하는 건가?

누가 이 극단적인 상황에 행운의 편지나 보내고 있냐는 말이다.

그러나 뒤이어 내용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으므로 래희는 인내심을 가지고 뒤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그래서 당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고자 한다면 퀘스트를 잘 따라오세요?”

래희가 마지막 문장을 소리 내어 읽자마자 눈앞에 새로운 퀘스트 창이 나타났다.

[퀘스트 ‘????’을 진행하시겠습니까? Y / N]

※미리 보기 기능이 없습니다. 수락 시 퀘스트 진행자의 위치 변화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상한 퀘스트 창 상태에 래희는 두 눈을 비비며 다시 확인했다. 하지만 여전히 변한 건 없었다.

“이게 뭐야…….”

래희는 혹시나 퀘스트에 대한 힌트라도 발견할까 싶어 다시 성좌가 보낸 메시지 내용을 꼼꼼하게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 번째 읽었을 때, 성좌가 보낸 메시지의 가장 끝 문장에 아주 작은 글씨로 무언가가 쓰여 있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래희는 돋보기 기능으로 글자 크기를 확대했다.

[당신이 원하는 바(정우 오빠 구하기)를 이루고자 한다면…….]

“더럽게 치사하네.”

대놓고 알려 주면 될 걸 굳이 굳이 이렇게 꼬아서 설명하는 성좌도 어지간히도 지독한 듯했다.

그러나 류정우를 구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기자 아까 전 몰려왔던 절망감이 어느 정도 사라지는 듯했다.

래희는 죽이 됐든 밥이 됐든지 간에 류정우를 구해야만 한다는 생각 하나로 퀘스트 내용을 확인하지도 않고 망설임 없이 Y 버튼 위로 손을 올렸다.

[퀘스트를 수락하셨습니다! 사용자의 위치 변화가 있으니 추락에 대비하세요!]

* * *

쿵!

래희는 눈앞에 나타나는 경고 창을 확인할 틈도 없었다.

순식간에 어두워진 시야를 마지막으로 큰 충격이 등으로 느껴졌다.

“윽!”

아파져 오는 등을 부여잡고 몸을 일으키자 헛구역질이 나왔다.

우욱―

하지만 하루 종일 제대로 먹은 게 없어서 그런지 게워 내지는 않았다.

“저기요! 괜찮으세요?”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래희는 현기증에 시야가 어지러워 제 앞을 제대로 확인할 수 없었다.

야, 119 불러야 하는 거 아니야? 심각해 보이는데? 아니, 그 정도는 아닌가?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하는 그녀의 머리 위로 앳된 목소리가 웅웅거리며 귓가에 들려오고 있었다. 그사이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린 래희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쓰러져 있는 그녀를 주변으로 교복을 입은 남학생 몇 명이 걱정 어린 낯으로 괜찮냐고 물어 왔다. 래희는 괜찮다는 의사를 보이기 위해 고개를 끄덕였다.

학생들에게 걱정해 줘서 고맙다고 감사 인사를 전하려던 중 래희는 누군가의 얼굴을 발견했다. 남학생 중 한 명의 얼굴에 그녀의 시선이 꽂혔다.

‘류정우?’

제가 구하려는 류정우보다 열 살은 어려 보이는, 그리고 그녀가 그를 처음 봤을 때의 나이로 보이는 어린 류정우였다.

어린 그는 래희를 걱정 어린 얼굴로 응시하고 있었다.

“정말 괜찮으신 거 맞죠?”

가끔 텅 비어 보이는 듯한 공허한 눈동자를 하고 있는 류정우가 아니라 생기 가득하고 순수한 눈동자였다.

28살의 류정우와 달리 아직 각성하지 않은 건지 구슬같이 까만 눈이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뭐지?’

래희는 너무나도 당황스러웠지만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표정을 유지했다. 그러고는 제 몸을 추스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아무것도 모를 어린 류정우에게 걱정해 줘서 고맙다는 인사 정도는 해야 했다.

“고마워요.”

그러나 인사를 받은 류정우는 여전히 한 번 쓰러진 듯한 래희가 걱정이 되는지, 귀엽게도 제 손에 들고 있던 요구르트를 래희에게 쥐여 주고 나서야 친구와 함께 자리를 떴다.

래희는 여전히 상황이 제대로 파악이 되지 않아 멍하니 서서 류정우가 사라진 골목을 응시했다.

‘과거로 온 건가?’

하지만 류정유를 구하기 위한 퀘스트가 왜 과거로 연결되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의문에 잠기며 제 손에 들린 미지근한 요구르트를 내려다봤다.

겨울에 주머니에 넣고 다니느라 미지근해진 것 같았다.

‘요구르트를 먹는 어린 류정우라니.’

귀여운 앳된 모습과 꽤나 어울리는 조합이었다.

“아냐, 이럴 때가 아니지.”

일단 자신이 왜 과거에 왔는가부터 알아야 했다. 그래서 래희는 미처 확인하지 못한 퀘스트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퀘스트 창을 열었다.

[히든 퀘스트: 고장 난 태엽 고치기]

사용자 ‘류정우’의 시스템 오류를 해결해야 합니다. 일정 조건 충족 시 해당 회차의 연계 퀘스트가 오픈됩니다.

- 연계 퀘스트 1 (0/1)

- 연계 퀘스트 2 (0/1)

- 완료 보상: ???

래희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퀘스트 창을 바라봤다.

“시스템 오류…….”

류정우의 회귀와 관련된 건가? 아니면 류정우가 이 세계의 주인공이니 지구의 멸망과 관련된 걸지도 몰랐다.

아니, 그것보다도.

“일정 조건 충족이라니.”

조건이 뭔지도 모르겠는데 어떻게 충족을 해서 언제 퀘스트를 끝내냐는 말이다.

래희는 답이 없어 보이는 상황에 미간을 찡그렸다.

“이거 시스템이 문젠 건지 성좌가 문젠 건지…….”

누가 보낸 퀘스트건 정말 생각 없이 만든 듯했다.

래희는 시스템 창을 닫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류정우’의 시스템 오류를 해결해야 한다고 했으니, 결국 래희는 여기서 그의 주변을 맴돌며 그 ‘오류’라는 것을 찾아내야 한다는 뜻이었다.

‘분명 아까 세화 예고 교복을 입고 있었지?’

방금 마주친 어린 류정우의 모습을 떠올렸다. 밝은 회색의 교복 재킷 사이로 단정하게 매여 있는 하늘색 넥타이.

18살에 자퇴를 했다고 했으니 아직은 고등학교 1학년인 17살이었다는 뜻이었다.

‘17살이면 각성할 때까지 앞으로 5년은 더 남았다는 뜻인데…….’

각성도 안 한 어린애한테 시스템 오류가 있을 리가 없었다.

래희는 어디서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아, 답답한 심정으로 크게 한숨을 내쉬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12월. 겨울에는 해가 빨리 져서 그런지 이제 겨우 7시임에도 불구하고 주변은 온통 어둠에 잠겨 있었다.

퀘스트고 류정우고 그 어느 것보다도 당장 오늘 밤 지낼 곳을 찾는 게 더 급해 보였다.

‘찜찔방이라도…….’

하지만 미래의 카드는 사용할 수 없었고 현금이라고는 단 한 푼도 들고 있지 않았다. 말 그대로 빈털터리라는 뜻이다.

“추워…….”

가게에서 납치를 당한 탓에 외투 한 장 걸치고 있지 않았다. 래희는 상황을 파악하다 자신이 어디 먼지 구덩이에서 뒹군 꼴이라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아…….”

거지꼴이네.

그때, 류정우가 줬던 요구르트가 래희의 눈에 들어왔다. 아픈 것과 요구르트는 상관없어 보였는데 왜 주는가 싶었더니. 설마, 거지로 오해한 건가?

하…….

정말 그렇다면 환장할 노릇이었다.

‘춥고, 배고프고… 집도 없고.’

진짜 거지가 맞긴 하네.

래희는 그 어느 곳보다도 안락한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리고 그때였다.

[스킬 ‘나만의 작은 마을 A’를 실행하시겠습니까?]

눈앞에 생각지도 못한 스킬 창이 떠올랐다. 타이밍이 아주 절묘했다.

“스킬을 쓸 수 있었네?”

그러고 보니, 납치된 곳에서 탈출했을 때 제 상태 창이 모두 되돌아 왔었다.

여전히 성좌와의 채팅 창은 잠겨 있는 채였지만 스킬은 모두 적용 상태였다.

래희는 곧바로 스킬을 실행해 집으로 이어지는 문을 생성했다.

하지만 문을 열자 당황스러운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한창 시끄러워야 할 축사와 닭장은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은 채 고요했고. 항상 불빛이 새어 나오던 온실도 어둠에 잠겨 있었다.

래희는 곧바로 집을 향해 달렸다.

집 안으로 들어가자 항상 래희를 기다리고 있던 곰순이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스킬은 분명 그대로였지만 스킬로 연결된 집은 사람이 살았던 곳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온기 하나 남아 있지 않았다.

마치, 그럴싸하게 구현된 공간 같았다.

“아…….”

가슴에 구멍이 난 듯 싸늘해졌다. 집에서 복작복작 지냈던 흔적들이 모두 사라지자 공허함이 밀려왔다.

그래, 지금 집 같은 게 중요한 게 아니지.

그러나 이내 오히려 비현실적인 상황에 머리가 차갑게 식으며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정리할 수 있었다.

일단, 자신이 이곳에 떨어져서 해야 할 최종적인 목표는 대던전 안에 갇혀 있을 류정유를 구해 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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