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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네 빵집은 언제 오픈하나요-93화 (93/120)

93화

래희는 곧바로 집으로 이동하려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아까 전부터 상태 창을 비롯해 성좌까지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어찌할 줄 몰라 당황해하는 래희를 본 김주현이 그녀에게 나가는 길을 알려 줬다.

“이쪽으로 나가면 돼.”

그리고, 최대한 멀리. 그리고 빠르게 서울을 벗어나.

그러나 래희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대로 세상이 망한다는데 혼자 떠나서 어디를 가란 말인가.

그곳에는 제 가족이나 마찬가지인 윤청현과 윤재언도 없고, 친구 동료들도 존재하지 않으며… 류정우도 없는데.

그러나 그녀를 지배하고 있는 공포는 저도 모르게 스스로 발걸음을 옮기게 했다.

김주현이 알려 준 대로 감옥 안의 탈출구를 나가는 도중,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래희는 순간적으로 기둥 뒤에 제 몸을 숨겼다.

상대방도 주변에 무언가가 있다는 걸 알아챈 모양인지 제자리에 멈춰 선 모양이었다. 그러다 얼마 지나지 않아 타박타박 발걸음 소리가 들리며 멀어져 갔다.

“후…….”

얼핏 누군가의 초록빛이 도는 눈동자와 마주친 것도 같았지만 상대방은 그녀를 발견하지 못했는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넘어갔다.

그렇게 얼마간 일직선으로 나 있는 길을 걸었을까, 저 끝에서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출구야.’

밝은 빛을 보아하니 밖은 아침인 듯했다.

해가 지고 있던 오후에 납치되었으니 적어도 하루가 지난 거였다.

‘일단 나가서. 여길 나가서 생각하자.’

김주현의 말처럼 대던전으로부터 도망칠 생각 따위는 없었다. 모든 걸 잃고 혼자 살아남을 바에는 함께 죽는 게 나았다.

그러나 지금 상태 창도, 성좌의 메시지도 나타나지 않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우선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몸뚱이로는 그 어떤 것도 해결할 수 없었으니까.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출구에 도착했을 때, 래희는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이미 밖은 온통 폐허로 변한 상황이었다.

래희가 갇혀 있던 곳이 지하였는지 그 위에 있던 건물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무너진 뒤였다.

언젠가 본 적 있는 것 같은 기시감에 사로잡힌 채 래희는 멍하니 주변을 둘러봤다.

“아…….”

이전 생의 마지막 장면과 겹쳐졌다. 분명 이전에는 대던전 브레이크로 인해 엉망이 된 도시의 잔해 위로 망연자실하게 터질 듯이 붉은 게이트를 바라보며 멍하니 서 있었다.

잠깐.

‘터질 듯이 붉은 게이트?’

순간 래희의 눈앞에 삭제된 프로그램이 복구되는 듯이 상태 창이 지직거리며 되돌아 왔다.

[system: 시스템 재부팅 중…….

70%

90%

100%]

띠링―!

[시스템 복구가 완료되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상태 창을 열어 볼 겨를은 없었다. 저 멀리서 건물 잔해로 보이는 커다란 크기의 철근이 그녀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래희는 재빠르게 피하며 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 향했다. 분명 그 끝에 대던전의 입구가 있을 터였다.

그리고 목표했던 장소에 도착한 래희는 숨을 가쁘게 내쉬며 중얼거렸다.

‘아직이야.’

기억 속의 장면과는 달랐다.

‘여기서 나가면, 최대한 대던전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그게 무슨 소리야.’

‘게이트 브레이크가 일어날 거야. 그리고 그건 누구도 막을 수 없어.’

조금 전 김주현에게 들었던 경고가 귓가에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이미 여기까지 달려온 이상 돌아갈 시간 따위는 없었다.

아직 게이트 색깔이 파란색인 걸 보니 게이트 브레이크가 터지지는 않은 듯했다. 하지만 건물을 무너뜨릴 정도의 진동과 세찬 바람이 불어오는 걸 보니 곧 있으면 기억 속의 게이트처럼 빨갛게 부풀어 올라 터질 게 분명했다.

자세히 보니 게이트 주변으로 정체를 알 수 없는 100여 명의 무리가 게이트를 둘러싸고 있었다.

‘뭐지?’

그리고 그때, 그 무리 속에서 자신을 납치했던 앤드류 발렌타인과 현아린을 발견할 수 있었다.

‘게이트 브레이크를 막고 있는 건가?’

조금 전의 미친 사람 같은 모습과 달리 지친 얼굴의 핏기 하나 없는 창백한 혈색으로 게이트 앞을 버티고 서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려던 래희는 순간 발걸음을 멈췄다.

‘…이전 회차에서는 본 적 없어.’

아니, 제가 기억하고 있는 시점은 이미 1차 브레이크가 터진 뒤 도착한 상황이었으니 그때는 저들도 휩쓸려 죽은 상황이었을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때, 과거에 이미 터져 버린 게이트 앞에 류정우가 피를 흘리고 서 있는 장면이 떠올랐다.

“류정우…….”

류정우는 어디 있는 거지?

주변을 열심히 두리번거렸으나 그녀의 시야에는 류정우의 ‘류’자도 닮은 사람을 발견할 수 없었다. 자신은 류정우가 진흙을 뒤집어써도 알아보았을 테니 여기 없는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게이트가 터질 때까지 시간이 남았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지금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냐는 말이야.’

고작 빵 하나 잘 만드는 능력으로는 이 상황을 막을 수 없었다.

미래를 알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몰려들었다. 멍하니 이렇게 또다시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두 눈 뜨고 바라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던 그때였다.

띠링―!

[성좌 ‘운명의 길잡이’가 예약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확인하시겠습니까? Y / N]

갑작스럽게 눈앞에 메시지 창이 나타나 어서 확인하라는 듯이 깜빡이며 빛나고 있었다.

* * *

잡동사니가 잔뜩 쌓여 어지러운 방 안에 한 남자가 금테의 얇은 안경을 매만지며 밝게 빛나는 홀로그램 화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몇 날 며칠을 씻지도 않았는지 덥수룩한 수염과 산발이 된 머리가 이전의 생기 있는 빛깔을 잃은 듯했다.

남자는 목 부근이 간지러운지 피부가 빨갛게 되도록 벅벅 긁었다.

“아… 이제는 씻어도 되겠지.”

어두운 방 안에 유일한 빛인 홀로그램 화면에서 눈을 떼며 남자가 주변을 살폈다. 책상 위로 잔뜩 쌓아 올려진 책더미와 출처를 알 수 없는 천 쪼가리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리고 무언가를 만들다 그 잔해를 정리하지 않은 건지, 기계 부품으로 보이는 철 조각들이 책상 위를 굴러다니고 있었다.

“…청소부터 먼저 해야 하는 건가?”

책상에서 시선을 떼고 방 안을 둘러보니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가구들과 정체 모를 물건들이 방을 더 더러워 보이게 만들었다. 마치 폭풍이 쓸고 지나간 듯한 모습이었다.

남자는 의자에 등을 기대어 앉아 한 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손으로 허공에 알 수 없는 문양을 그리자, 방 안에 널브러져 있던 물건들이 중력의 법칙을 위반하듯이 모두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곧이어 공중에 떠오른 물건들이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책은 책꽂이에,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가구는 제자리로 옮겨가며 방 안이 깨끗하게 정리가 되기 시작했다.

정리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만족스러울 정도로 깨끗해진 방을 확인한 남자가 기지개를 켜며 일어섰다.

그리고 창가로 다가가 어둡게 쳐 두었던 커튼을 젖혔다.

“음…….”

오랜만에 쬐는 듯한 햇빛에 잠시 눈살을 찌푸린 남자가 얼마 뒤 눈꺼풀을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다. 햇빛에 황금빛 실타래처럼 반짝거리는 속눈썹 아래로 시리도록 푸른 눈동자가 드러났다.

푸른 눈이 창밖을 바라봤다.

“…그때처럼 늦지는 않아야 할 텐데.”

하늘 위 빛나는 밝은 태양과 달리 그 아래로 펼쳐진 지상은 폐허나 다름없었다.

도시는 이미 잿더미가 되어 부서지고 파괴되어 있었고, 그 위로 살아 있는 생명체라고는 단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 광경을 지켜보는 남자의 눈동자에는 딱히 유감이라는 감정은 나타나 있지 않았다.

“힌트를 그렇게 줬는데 못 찾아오면 내가 잘못 키운 거겠지.”

아니면 내가 보는 눈이 없었던가.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남자. 체자레 몬페라토는 무감정한 눈으로 창밖을 바라본 뒤 다시 방 안으로 뒤돌아섰다.

* * *

“모두 엎드려!”

누군가의 목소리가 사방에 크게 울려 퍼졌다.

다행히 이곳에 모인 헌터들은 모두 반사 신경만큼은 탈 인간급이었기 때문에 그 소리를 듣자마자 몸을 낮게 낮출 수 있었다.

쐐액―

맨눈으로 확인하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나는 무언가가 그들 위로 지나갔다.

“방금 저거 뭐야?”

빠르게 엎드린 사이 순식간에 지나간 탓인지 그 누구도 방금 지나간 것에 대한 정체를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사이 멀리서 다시 한번 그들을 향해 무언가가 날아왔다.

“도대체 뭐냐고!”

정체 모를 것에 위협을 받자, 그동안 이런 경험이 거의 전무했던 고등급 헌터들은 신경질적인 태도로 예민함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단 한 번도 이런 식으로 목숨의 위협을 느껴 본 적이 없을 테니, 혹시라도 죽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적응되지 않았던 탓이었다.

게이트 안에서 한국, 일본, 러시아 그리고 아주 먼 거리를 이동해 온 미국까지 포함해서, 총 4개국에서 모인 고등급 헌터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전투태세를 갖추기 시작했다.

“일어서면 공격하니 포복으로 이동하면서 해치워야겠군요.”

언제까지 공격해 올지 모르는데 포복으로 이동한다고? 미친 건가?

그리고 그 생각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 한 헌터를 향해 해당 국가의 대표가 소리 질렀다.

“정신 차려! 고작 그 정도로 엄살이면 네가 S급 헌터라고 말할 수 있나?!”

그 소리를 들은 헌터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등을 바닥에 대고 누웠다. 하늘 위 몬스터를 상대하는 것이다 보니 등 포복으로 이동하려는 듯했다.

다행히 헌터들이 입는 전투복 또한 아이템이기 때문에 바닥 면에 닿아 생기는 마찰 같은 것으로는 찢기거나 해지는 경우는 없었다.

“…20대 때 유격 훈련이 생각나는군.”

그 모습을 질린듯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김유한 길드장이 류정우의 곁으로 다가서며 말했다.

이 나이 먹고 다시 이 지랄을 하다니.

젊은 외양과 달리 한탄하는 말은 눈감고 들으면 제 나이로 보이는 듯했다.

류정우도 바닥에 등을 붙이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S급 헌터의 육안으로도 형태를 확인할 수 없을 정도의 속도라면, 쉽게 잡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때, 류정우의 눈에 제 손에 들린 리볼버가 들어왔다.

[멋쟁이 리볼버(S)]

- 어떤 상황에서도 정확도를 보정해 준다. (명중률 99% 보정)

이름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성좌가 후원해 준 만큼 그 어떤 아이템보다 성능만큼은 확실히 좋았다.

‘이거라면 시도할 수 있겠는데?’

류정우는 총구를 하늘로 향해 고정했다. 그리고 비행형 몬스터가 아주 낮게 그들 위로 지나가는 찰나의 순간, 직감적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탕―

이동하던 모든 헌터의 움직임이 순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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