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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네 빵집은 언제 오픈하나요-92화 (92/120)

92화

류정우가 당황하거나 말거나 성좌는 답이 없었다. 성좌가 다시 그의 채팅 창에 접속할 의사가 전혀 없어 보이자 류정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오히려 성좌가 말하다 말고 채팅을 중단한 이 상황이 안심되기 시작했다.

분명 래희에게 다시 연결됐기 때문에 자신에게 돌아올 이유가 없는 게 아니겠는가.

안심과 동시에 자신을 둘러싼 시선이 느껴졌다. 수 쌍의 눈동자가 의문이 가득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

방금 전 일어났던 일에 대한 설명을 해야 할 차례였다. 류정우는 갑자기 나타난 성좌 하나가 힌트를 주고 갔다고 간단하게 설명했다.

래희의 능력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이 태반인데 여기서 그녀의 이름을 언급할 수는 없었다.

류정우는 게이트 안에서 제대로 씻지도 관리하지도 못해 봉두난발이 된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모든 설명이 끝난 뒤, 과한 흥미를 보이며 자신에게 따라붙는 저 1세대 헌터가 몹시도 부담스러웠다.

“재각성에 성공한 건가?”

“아닙니다.”

그러나 윤해주는 반짝이는 눈빛으로 도망치는 류정우를 계속해서 쫓아왔다.

“아냐,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성좌와 대화를 하나? 그러고 보니 저번 S급 게이트 때도 망가진 무기 대신 허공에서 새로운 리볼버가 나타났었지.”

설마, 그때인 건가?

류정우는 질척이며 달라붙는 윤해주를 귀찮다는 듯이 떼어 내며 대꾸했다.

“아니라고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나도 내 성좌가 있어서 궁금해져서 그래! 성좌라고 모든 상황에 도움을 주는 게 아니니까.”

그제야 류정우는 제자리에서 걸음을 멈췄다. 갑작스럽게 그가 멈춰 서자 윤해주가 류정우의 등에 머리를 박았다. S급답지 않은 실수였다.

“아!”

그러나 류정우는 그것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태도로 입을 열었다.

“재각성자였습니까?”

“…몰랐어?”

“…….”

류정우가 윤해주의 시선을 슬쩍 피했다.

윤해주는 경악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눈앞의 남자를 올려다봤다.

세상 트렌드란 트렌드는 모두 모아 놓은 것 같이 생겼으면서 한국인이라면 모를 리 없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니. 혹시 간첩인 건가?

“…그동안 뭐 하고 살았니?”

물론 류정우에게는 억울한 일이었다. 거의 몇십 년을 같은 생을 반복하면, 알고 있던 사실도 잊기 마련이다. 심지어 자신과는 전혀 관련 없는 사실을 누가 몇십 년이 넘도록 기억하고 있겠는가.

그러나 류정우는 그렇게 설명할 수는 없었으므로 대답 없이 신기한 눈으로 저를 바라보고 있는 윤해주의 시선을 못 본 척 회피했다.

“역시, 어릴 때부터 연예인 생활을 했다더니. 세상 물정을 모르는구나? 그래, 그럴 수 있어.”

윤해주는 이해되지 않는 상황을 애써 이해하기 위해 스스로 납득할 만한 이유를 찾아낸 듯했다. 어떤 식으로 오해하든 류정우로서는 상관없었으므로 그녀 멋대로 생각하도록 둔 뒤, 다시 뒤돌아 가던 길을 걸었다.

그러다 문득 궁금한 일이라도 생긴 건지, 류정우가 다시 돌아오며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는 윤해주를 향해 물었다.

“혹시, 성좌는 다 그런 식입니까? 몹시 제멋대로 인 것 같습니다만.”

“아, 그거 원래 그래. 좀 뭐랄까. 인방 시청자가 후원하는 느낌? 말도 안 되는 퀘스트를 요구하기도 하니까. 본인들을 신이라 말하면서도 하는 걸 보면 몹시도 사람 같을 때가 있어.”

류정우는 그 설명에 공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본 성좌도 그랬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윤해주의 이어진 말에 그는 순간적으로 표정이 살짝 굳고 말았다.

“근데, 대던전에 들어오고 난 뒤부터 나타나지 않아서 걱정했거든? 내 성좌는 워낙 말이 많아서. 하지만 네게 나타난 걸 보니 문제는 없나 보네.”

그러나 류정우는 그 말에 바로 대답할 수 없었다. 연결이 되지 않는다니……. 그 말은 여전히 래희의 행방도 알 수 없다는 뜻이었다.

류정우는 윤해주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곧바로 제 귀에 걸린 귀걸이를 이용해 래희에게 연락을 시도했다. 하지만 걱정한 대로 래희는 여전히 전혀 대답이 없었다.

* * *

류정우가 모래바람이 휘날리는 게이트 안에서 헤매는 동안, 래희는 김주현과 대치 중이었다.

“너, 뭐야.”

“…….”

그러나 김주현은 래희의 말에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보는 그대로라 딱히 대꾸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일까.

아니, 그렇다기보다는 막상 마주하니 권래희에 대한 미련이 넘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저가 먼저 버렸지만, 제 입으로 상황을 설명하게 된다면 이번에야말로 권래희에게 버려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말도 안 되는 모순적인 생각을 하며 가라앉은 눈으로 래희의 상태를 훑어봤다.

거칠게 끌려온 건지 산발이 된 머리와 날카로운 수갑에 긁혀 상처 가득한 손목.

“하…….”

분명 아까까지 많이 울었다는 게 티가 날 정도로 붉은 눈가와 부은 눈꺼풀, 그리고 그 아래로 상처 난 입술을 보니 분노가 차올랐다.

래희를 저렇게 만들었을 앤드류 발렌타인을 떠올리니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찢어발겨 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김주현은 권래희의 묶인 손을 조심스럽게 잡고는 들어 올렸다.

래희는 그런 김주현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눈을 세모꼴로 뜨며 그를 노려봤다.

“그거, 현아린 아니면 못 푼다고 그랬는데?”

“아냐.”

그 여자가 널 속인 거지.

신력……. 기억대로라면 과연 그걸 신력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힘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수갑을 풀 수 있었다.

김주현은 수갑 위로 제 손을 올려 신력을 퍼붓기 시작했다.

붉은 아지랑이처럼 보이는 힘이 래희의 손목 위를 맴돌더니 잠시 뒤, 수갑이 철컹거리며 열렸다. 래희는 무거운 무게감이 사라지자 순간적으로 신음을 내뱉었다.

“으…….”

그 모습을 본 김주현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제 인벤토리를 열어 회복 포션을 래희의 손목으로 들이부었다. 상처가 낫는 속도를 보아하니 누가 봐도 S급 포션이었다.

래희는 구하기 힘든 S급 포션을 그가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보다는 앤드류 발렌타인과 같은 붉은빛의 알 수 없는 힘을 사용하는 김주현에 놀란 표정을 숨기지 못하며 그를 바라봤다.

평소처럼 깔끔하게 뒤로 넘겨진 머리에 각 잡힌 검은 정장 위로 스무 살의 김주현의 모습이 겹쳐졌다.

이마를 덮은 부슬부슬한 앞머리에 대학생다운 맨투맨을 입은. 지금과 달리 다정한 눈빛으로 미소 짓는 얼굴이 생각났다.

하지만, 이전과 달리 애틋한 감정이라고는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마주친 김주현의 눈동자를 보자 래희는 입을 열 수 없었다. 묻고 싶은 말이 너무나도 많았지만 물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그리고 그때, 김주현이 먼저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여기서 나가면, 최대한 대던전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그게 무슨 소리야.”

“게이트 브레이크가 일어날 거야. 그리고 그건 누구도 막을 수 없어.”

믿을 수 없는 소리가 김주현의 입 밖으로 내뱉어졌다. 래희는 순간, 본능적으로 제 전남친의 멱살을 붙잡았다.

이전이었다면 불가능했겠지만 현재 래희의 스탯으로는 A급인 김주현과도 맞붙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래희의 성장에 김주현은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흘렸지만, 반항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웃음이 오히려 래희의 성질을 돋우고야 말았다.

“지금 이 상황이 웃겨? 게이트 브레이크가 터지는 게? 그럼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러나 김주현은 그 물음에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자신도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작은 게이트 정도야 안에 있는 사람이 튕겨 나오는 정도겠지만 대던전 같이 끝을 알 수 없는 게이트의 경우에는 후폭풍이 어떻게 될지 몰랐다.

계속된 김주현의 침묵에 분노한 래희가 거의 울듯이 그에게 말했다.

“아니지? …아냐, 가능할 리가 없어.”

일개 인간이 어떻게 게이트 브레이크를 일으킬 것인가. 하지만 김주현은 래희의 떨리는 목소리에 그녀의 손위로 제 손을 겹치며 대답했다.

“맞아. 내가 일으켰어.”

래희는 제 귀를 의심했다. 어떻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사람이 되어서 어떻게 그런 끔찍한 짓을 저지를 수 있는 거지?

어떤 사정이 있다 하더라도 게이트 브레이크와 같은 테러를 일으켜 많은 사람의 목숨을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 래희는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이라는 말을 매우 싫어했다. 게다가 지금 김주현이 저지른 일은 소의 희생도 아니었다.

이제야 래희는 제 눈앞에 서 있는 김주현을 똑바로 마주했다. 이 남자는 더는 제가 알고 있던 그 20살의 ‘김주현’이 아니었다. 제가 아는 진짜 김주현이라면 이런 선택을 할 수 없었다.

김주현의 멱살을 쥔 손에서 힘이 풀렸다. 덜덜 떨리는 손이 그의 목덜미에서부터 가슴으로 주르륵 흘러내렸다. 떨어지는 래희의 손을 붙잡은 김주현이 다시 경고하듯 래희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니까 래희야. 최대한 멀리 도망쳐. 시간이 없어.”

그들을 막을 방법은 이것 하나뿐이야.

그동안 김주현은 롬바르나에서 넘어온 ‘그들’을 막을 방법에 대해서 오랫동안 고민해 왔다.

혼자서 그들을 상대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고, 아버지인 김유한이 알아챈 것 같았지만 그걸 알아차린다 해서 다른 헌터들이 그들을 막을 수 있을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들은 생각보다 이 사회 곳곳에 스며들어 있었고, 이미 그들이 지구에 들어온 지 2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색출할 수 없을 정도로 늦은 상황인 것 같았다.

그러니까 그동안의 노력이 모두 부질없었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모든 방법을 잃은 건 아니었다.

‘그들’은 난민이다. 멸망하는 저들의 차원을 버리고 지구로 넘어온 난민. 정착할 곳을 찾아온 이들이 이곳이 파괴되는 걸 손 놓고 두고만 보고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김주현은 도박을 하기로 했다.

대던전 브레이크가 예고된다면 ‘그들’은 모두 모여 그걸 막으려 들 것이었다.

지구의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하겠지만 ‘그들’이 롬바르나의 세계수로부터 빼앗은 힘이라면 가능했다.

그래서 김주현은 ‘그들’을 한 번에 처리하기 위해 이런 일을 벌였다.

하지만.

‘게이트 브레이크가 터지면 인류는 결코 무사하지 못할 거다.’

브레이크가 터지는 순간 지구의 운명도 거기서 끝이라고 봐야 했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만일 브레이크를 막더라도 ‘그들’은 너무 많은 에너지를 낭비한 나머지 빼앗을 육체와의 연결이 희미해지니 의미 있는 결과였고, 브레이크가 터지더라도 세상을 좀먹는 ‘그들’이 언젠가 다시 정착할 곳을 찾아 다른 차원을 파괴하는 걸 막을 수 있었다.

자신이 어느 샌가부터 지구인의 관점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았지만 상관없었다.

어떤 결과가 발생하더라도 그 미래에는 ‘김주현’ 그는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그러니 아주 희미한 가능성에 희망을 걸며 이전의 ‘김주현’이 지키고자 했던 것만은 지켜 주고 싶었다.

그래서 김주현은 래희에게 다시 한번 경고했다.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뒤돌아보지 마. 살아남는 것만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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