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헌터네 빵집은 언제 오픈하나요-91화 (91/120)

91화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듯했다. 대답 한번 잘못했다간 저 미친놈들이 무슨 짓을 할지 몰랐다. 하지만 래희는 어떤 식으로 대답해야 할지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너무 긴장한 나머지, 일단 여기서 나가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으로 충동적으로 말하고야 말았다.

“그럼 일단 풀어 줘. 어디 있는지는 모르지만 어떻게 하면 만날 수 있는지 알아.”

“음…….”

현아린은 래희의 의중을 가늠하는 듯이 실눈을 뜨며 그녀를 바라봤다. 그러다 결국 결정을 내린 건지 입을 열었다.

“당신을 어떻게 믿고요? 풀어 주는 순간 그냥 도망칠 수도 있는데?”

“내가 그 정도 능력이 되는지는 조사해 봤을 거 아냐? 설마 그 정도 정보력도 없어?”

래희는 신경질적으로 대답하며 저도 모르게 현아린을 도발했다. 하지만 이게 제대로 먹힌 건지 현아린은 자존심이 상한 듯 그녀를 노려보았다.

현아린을 좀 더 그럴듯하게 설득하기 위해 이어서 말했다.

“난 세상의 종말 그딴 건 관심 없고, 나 혼자만 잘 먹고 잘살면 되는 사람이야. 오염 지역을 정화한 건 퀘스트 때문에 어쩔 수 없었어. 그걸 안 하면 영원히 내 스킬을 막겠다고 성좌가 협박했단 말이야.”

물론 전부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현아린은 ‘체자레’의 행방에 무척이나 관심이 쏠려 있었기 때문인지 쉽게 납득하는 눈치였다.

“일단, 어떻게 만날 건지 들어는 보죠.”

“체자레에게 받은 열쇠가 있어. 그 열쇠를 이용하면 자기를 만날 수 있다고 말했어.”

현아린이 놀란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래희는 그녀에게 진정하라는 듯이 빠르게 이어 말했다.

“하지만 나만 쓸 수 있어. 지정 사용자가 나로 설정되어 있단 말이야.”

“아쉽네요.”

역시나 그냥 빼앗으려고 했던 게 분명했다.

“저희한테서 도망갈 능력이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으니, 그 구속 수갑은 풀어 주도록 하죠. 그걸 풀어야 스킬을 사용할 수 있을 테니.”

현아린이 래희의 손목 위로 손을 뻗은 그때였다.

누군가가 다급한 발걸음으로 그들이 있는 공간으로 뛰어 들어왔다.

“성녀님!”

성녀님?

지구에서 뜬금없는 성녀 소리에 순간적으로 헛소리를 들은 건가 싶었던 래희가 멍하니 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거기에는 김주현이 헐떡거리며 서 있었다.

‘저 X새끼가…….’

“큰일 났습니다. 어서 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현아린은 그 말에 래희의 구속 수갑도 풀어 주지 않은 채 그녀의 손목에서 손을 뗐다. 아쉬운 듯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바라본 뒤, 망설임 없이 뒤돌아서 방 밖으로 나갔다.

래희가 중요한 순간에 자신을 방해한 김주현을 노려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 새X를 용서할 수 없었다.

* * *

대던전 안으로 들어온 류정우는 몇 날 며칠 동안 걷기만 했다.

이미 지난 20년 동안 대던전 안을 탐험하며 몬스터를 처리했기 때문인지 꽤 오랫동안 걸었음에도 몬스터 한 마리 볼 수 없었다.

그러나 대던전 안에 흐르는 공기는 다른 어떤 S급 게이트보다도 더 무거웠다. 심지어 사막의 열기는 매우 뜨거웠다.

사하라 사막같이 모래로만 가득한 사막은 아니었지만, 지평선 끝까지 연결된 듯한 척박한 평야는 뜨거운 태양열을 반사하고 있었다.

“하…….”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체력이 절로 깎이는 듯했다. S급인 자신이 이럴지인데 A급 이하의 헌터는 당연히 게이트 안에 들어오기 힘들어 보였다.

“처음인가?”

그때, 류정우의 곁으로 백화 길드의 길드장 김유한이 다가오며 말을 걸었다.

1세대 헌터인 그는 이 던전 환경이 익숙한지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문득, 그의 얼굴 위로 누군가의 얼굴이 겹쳐지는 듯했다.

‘어디서 봤지?’

순간, 언젠가 집에서 발견했던 사진 한 장이 떠올랐다. 래희와 어떤 남자가 다정하게 껴안고 있는 사진이었다.

류정우는 순간적으로 떠오른 생각에 당황하며 대답 대신 그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다 그렇네. 몇 번 왔다 갔다 하다 보면 다 저렇게 될 거야.”

김유한이 턱 끝으로 가리키는 이는 바로 윤청현이었다.

그는 이곳에 있는 그 누구보다도 멀쩡해 보였다. 그 모습을 보니 왜 그가 아직까지도 한국을 대표하는 헌터로 자리매김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아무리 고등급 헌터일 수록 노화가 아주 느리게 진행된다고는 하지만 자기의 아버지뻘인 윤청현은 자신보다도 쌩쌩했다.

그때였다. 갑자기 뜨거운 바람이 불며 세찬 모래 폭풍이 그들을 덮치기 시작했다.

류정우는 순간적으로 눈을 질끈 감으며 얼굴을 가렸다. 팔 사이로 살짝 눈을 뜬 류정우는 앞에 보이는 광경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저건……?”

몬스터라고 보기에는 이상했다. 마치 움직임이 어딘가 고장 난 듯한 인간이었다.

그때, 윤청현이 소리쳤다.

“데드보디가 나왔으니 모두 준비해!”

데드보디. 말 그대로 죽은 몸. 쉽게 설명하자면 ‘좀비’를 뜻했다.

[성좌 ‘운명의 길잡이’가 당신의 채널에 유료 접속을 시도합니다.]

[성좌 ‘운명의 길잡이’가 채널에 접속하였습니다. (남은 접속 시간 11:59:59)]

[성좌 ‘운명의 길잡이’가 단순하게 좀비라고 말하면 될 것이지 왜 데드보디라고 이름 붙여서 헷갈리게 하는 거냐고 답답해합니다.]

류정우는 갑작스럽게 눈앞에 나타나는 성좌의 메시지에 어이가 없었다. 아니, 그것보다는 왜 래희가 아닌 자신에게 성좌가 붙어 있는 거지?

저번이야 제가 위험에 처한 상황이었다 쳐도 이번은 아니었다.

“그쪽은 래희와 함께 있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성좌 ‘운명의 길잡이’가 래희의 채팅 창에 접속이 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순간 류정우의 집중력이 흐트러졌다. 저도 모르게 총구를 당긴 리볼버가 ‘데드보디’를 명중시키지 못하고 빗겨 맞혔다.

“그게 무슨…….”

그때였다. 느리게만 움직이던 데드보디가 류정우를 향해 입을 크게 벌리며 달려들었다.

류정우는 반사적으로 성좌가 줬던 ‘멋쟁이 리볼버’로 정확하게 데드보디의 이마 정중앙을 맞췄다.

끼에엑―!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데드보디의 몸이 축 늘어졌다.

그리고 동시에 옆에서 누군가가 데드보디의 목을 잘랐다.

“집중하시고, 데드보디는 쓰러트린 직후 머리를 잘라야 합니다.”

그는 바로 윤재언이었다.

지난 1년 동안 류정우와 함께 훈련해 온 그로서는 지금 류정우가 집중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집중이 흐트러진 데에는 이유가 있겠지만, 단순한 게이트도 아닌 대던전에서는 아무리 S급 헌터라고 해도 그 목숨을 부지하기가 어려웠다.

류정우는 알겠다는 듯이 윤재언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데드보디의 목 부근을 리볼버로 명중시켜 머리를 떨구는 동시에 그의 왼쪽 귀에 걸린 귀걸이를 매만지며 누군가를 불렀다.

“래희 씨.”

하지만 몇 번을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류정우는 초조해졌다.

‘무슨 일이지?’

그동안 대답이 느린 적이 있기는 했지만 이렇게까지 답이 없던 적이 없었다. 게다가 래희의 성좌마저 그녀에게 연결이 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나.

만일 자신이 없는 동안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탕―!

끼에에에―!

사방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정신없이 들려왔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온통 래희에 관한 걱정뿐이었다.

‘하…….’

불안함이 그의 전신을 감싸고 있었다. 앞으로 며칠 뒤면 그가 죽었던 날이었다. 언젠가 그 끝을 예상하고는 있었지만, 막상 끝이 다가오니 래희의 안위가 너무나도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이런 식으로 허무하게 끝이 나길 바란 건 아니었어.’

래희에게 제대로 제 마음을 표현한 적도 없었다. 그러니 이대로 끝이 나서는 안 된다.

류정우는 빠르게 대던전을 처리하고 밖으로 나가겠다는 생각 하나로, 자신에게 달려드는 데드보디의 목을 향해 리볼버를 겨누었다.

탕―!

몇 시간에 걸친 전투 끝에 데드보디를 모두 처리하자 아주 어두운 밤이 찾아왔다. 휴식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헌터들은 지친 몸으로 사막 한가운데에서 야영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불침번을 서던 몇몇 헌터들의 놀란 목소리가 텐트 안에 누워 있는 류정우의 귓가에 들려왔다.

“저게 뭐지?”

“데드보디 아냐?”

“아냐, 사람이야. 데드보디가 저렇게 멀쩡하게 움직이지는 않지.”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소음 때문에 깬 것인지 헌터들이 하나둘 텐트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류정우가 밖으로 나왔을 때, 그는 의외의 인물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곳에는 일본, 러시아 대표 헌터들이 서 있었다.

그들도 대던전 토벌 중이었던 건지 한국 헌터들과 마찬가지로 중무장을 한 채 전투복을 입고 있었다.

어리둥절해하는 한국 헌터들과 달리, 그들은 당연히 한국 헌터들과 마주칠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인지 그다지 놀란 표정은 아니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너무나도 놀라운 상황에 모두들 잠에서 깨 어수선한 분위기가 되고 말았다.

서울 대던전 게이트 안으로 들어왔는데 그곳에서 다른 나라의 헌터들을 만나게 되다니.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류정우는 대표들끼리의 대화가 끝나자마자 윤청현을 향해 다가갔다. 그러자 윤청현이 깊이 생각하는 듯하다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대던전들이 다 연결돼 있는 듯하군.”

“예?”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윤해주 헌터가 놀란 듯이 되물었다. 그에 윤청현이 부연 설명을 하듯이 이어 말했다.

“저들도 어제 아침 대던전 안에서 마주쳤다고 하네.”

“하지만 그동안 일반 던전들은 연결되지 않고 그 규모가 비교적 작았지 않았나요?”

윤해주의 반박에 김유한이 고개를 저었다.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아. 얼마 전 권래희 헌터가 실종된 게이트가 아니라 다른 게이트에서 발견되었던 걸 보면.”

그 설명에 윤해주는 납득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때, 류정우가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보스 몬스터의 존재는 어떻게 된 겁니까? 모든 게이트에는 보스 몬스터가 존재하지 않습니까. 게이트 크기와 난이도에 비례하는 몬스터라면 큰일이지 않겠습니까?”

“큰일?”

류정우가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만일 이대로 모든 지구상의 대던전이 연결된 거라면… 저희가 감당하지 못할 만한 존재가 그 뒤에 있지 않겠습니까.”

그때, 류정우의 앞에 그동안 잠자코 있던 성좌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성좌 ‘운명의 길잡이’가 왜 없다고는 생각하지 못하냐고 말합니다.]

“보스 몬스터가 없다니, 무슨 말입니까?”

류정우가 무의식적으로 허공에 대고 대답을 하자 주변에 있던 헌터들의 시선이 모두 그에게 쏠렸다.

하지만 류정우는 지금 성좌가 아주 중요한 힌트를 알려 주고 있었으므로 자신에게 꽂히는 시선을 신경 쓰지 않은 채 성좌에게 물었다.

[접속 시간 완료로 성좌 ‘운명의 길잡이’의 접속이 끊깁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그 순간 성좌와의 연결이 끊겨 버렸다. 마치 계산한 듯한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