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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네 빵집은 언제 오픈하나요-90화 (90/120)

90화

[시스템 에러: 사용자의 제한이 풀립니다. (100%)]

“으…….”

온몸이 부서질 듯이 아파 왔다. 마치 덤프트럭에 부딪혀 사고 난 차를 탄 채로 몇 바퀴를 구른 듯한 느낌이었다.

“…읍!”

입 위로 테이프라도 붙어져 있는 건지 단단하게 고정된 채 입술을 뗄 수가 없었다.

래희는 처음 느끼는 고통에 신음을 흘리며 눈을 떴다.

눈앞에 하얀 서리가 낀 듯이 시야가 뿌옇게 변해 있었다. 래희는 제 눈에 무언가 들어간 건가 싶어 두 손을 들어 눈을 비비려 했다.

그러나 그 시도는 생각만 했을 뿐 실행하지 못했다.

“읍!!”

래희의 두 손이 무언가에 단단하게 고정된 듯 차가운 쇠에 묶여 있었다. 순간 래희는 움직이지 않는 손으로 시선을 돌렸다.

‘사슬에 묶여 있어?’

흐릿하긴 했지만, 완전히 알아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처음 보는 투박한 형태의 수갑이 그녀의 손목 위를 감싸고 있었다.

하지만 입이 막히고 손이 묶여 있어서 그녀는 시스템 창을 불러낼 수 없었다. 더군다나 속으로 성좌를 불러낼 수는 있어도 무언가로 가려져 있는 탓에, 흐릿한 시야로는 그의 메시지를 읽을 수조차도 없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무력한 상태에 래희의 머릿속은 백지처럼 새하얗게 변했다.

그녀를 납치한 앤드류 발렌타인, 아니 앤드류 발렌타인처럼 보이는 사람의 의도를 전혀 파악할 수 없었다.

‘왜지?’

자신을 납치한다고 어떤 이득을 볼 수 있는 거지?

이제는 리프를 통해 작물에 마음대로 특수 효과를 부여하거나 오염된 땅을 정화하는 능력도 없었다.

래희가 가진 특이한 스킬이라고는 단지 특수 효과가 부여된 빵 하나뿐. 그러나 고등급 포션 마스터와 크게 다를 바 없는 능력이었기 때문에 굳이 납치할 만큼 매력적인 능력도 아니었다.

날카로운 수갑에 다치기라도 한 건지 손목 부근이 따끔거렸다. 지금 래희는 무력하게도 차갑고 딱딱한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쓰러져 있기를 몇 시간이 지났을까. 래희의 두 눈에서는 눈물이 주룩주룩 흘렀다. 이렇게 무력한 기분이 든 건 어릴 때를 제외하고는 처음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때처럼 그녀를 구해 줄 체자레도 없었고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녀의 보호자였던 윤청현도 없었다.

‘이대로 이렇게 허무하게 죽는 걸까?’

아포칼립스 세상에 환생한 이후 항상 언제 어디서든 쉽게 죽을 수 있다는 각오로 살아오기는 했지만, 막상 그런 위기에 닥치니 두렵고 서럽기만 했다.

뭘 제대로 해 본 것 하나 없이 두 번이나 요절하다니.

자신의 꽃다운 청춘이 또 이렇게 가는구나 싶었던 래희는 서러움이 북받쳐 올랐다.

“으…….”

나는 왜 그렇게 열심히 살았을까? 엑스트라인 것을 알았으면서. 본능적으로 언젠가 이렇게 될 거란 걸 예상하고 있었으면서.

래희는 몸을 웅크렸다.

춥고 배고팠다.

빨리 집으로 돌아가서 류정우가 차려 주는 따뜻한 저녁을 먹고, 류정우가 내려 주는 커피를 마시며 가끔 곰순이와 투닥거리기도 하고, 하루 동안 일어났던 일을 류정우와 함께 재잘거리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냥 류정우가 보고 싶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한 순간 류정우의 얼굴이 떠오르자 헛웃음이 났다.

‘뭐야, 나 왜 자꾸 류정우만 생각나는 거야.’

몇 시간 째 차가운 공간에 방치된 상태로 버려져 있자, 그동안 그와 함께했던 지난날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설마…….’

물론 과거에도 자신이 가장 좋아하던 아이돌 오빠를 하루 종일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죽음을 목전에 둔 순간 떠오르는 건 아니지 않은가. 대부분은 이런 상황에서 사랑하는 사람인 가족이나 연인을 떠올리는 게 보통이었다.

그러나 그 떠올리는 대상이 류정우라니.

하지만 그 사실을 깨달을수록 가슴이 고통스럽게 조여들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잊고 있었던 사실을 기억해 냈기 때문이었다.

‘안 돼.’

전생에 읽었던 원작 소설을 떠올린 게 아니다. 방금 자신이 떠올린 건 완전히 잊고 있던 이전 생이었다.

래희는 이번 생에서 처음으로 류정우를 만난 게 아니다. 이미 그들은 이전 회차에서 먼저 만난 적이 있었다.

이미 래희는 한 번의 회귀를 거쳐 다시 회차가 진행되고 있는 상태였다.

‘이걸 왜 잊고 있었지?’

무척 혼란스러웠지만, 지금 당장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곧 있을 게이트 브레이크를 막지 못하면 그녀는 물론이거니와 류정우까지 죽는다. 이미 원작 같은 건 파괴된 지 오래였다. 이제는 소설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묶인 채로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얼마나 울었는지 눈 앞을 가리고 있는 천이 축축 젖은 채로 그녀의 눈 위로 달라붙어 있었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누군가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이제는 어엿한 고등급 각성자로서 예민하게 발달한 래희의 감각은 그녀에게 다가오는 사람이 두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또각또각. 어딘가 음산하게 들리는 구두 굽 소리가 주변으로 울려 퍼지고 있었다.

‘누구지?’

그때, 절대로 모를 수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울고 있었군요, 안타까워라…….”

앤드류 발렌타인. 자신을 납치한 장본인이었다.

래희는 순간적으로 분노가 치밀었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기에 이런 취급을 당하는 건가. 만일 자신의 능력을 원한 거였다면 이런 식으로 납치하지 않았을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때, 앤드류 발렌타인과 함께 온 듯한 일행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렇게까지 거칠게 데려올 필요가 있었나요? 당신 취향은 알 수가 없네요.”

“칭찬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누군가가 그녀의 바로 앞에 서서 허리를 숙이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는 손을 뻗어 래희의 눈을 가리고 있는 얇은 천을 벗겼다.

래희는 오랜만에 밝은 빛을 보는 탓에 순간적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슬며시 눈을 뜨며 눈가리개를 벗긴 사람을 올려다봤다.

‘…현아린?’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 그녀의 앞에 서서 래희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놀라서 홉뜬 눈으로 현아린을 올려다보자 현아린은 피식 웃으며 래희의 눈높이에 맞춰서 고개를 숙였다.

“그래요, 놀라셨을 수도 있죠. 하지만 절대로 당신을 해치려는 의도는 없었답니다.”

현아린이 래희의 턱을 쥐며 얼굴을 이리저리 돌려보다 입을 열었다.

“어딘가 모르게 익숙한 얼굴이네요…….”

귀환자가 자신을 언제 본 적이 있다고 익숙하니 마니 하는 거지? 만일 스치듯 지나갔다면 이전에 래희가 추측한 대로 차가운 신전의 지하 감옥 안이었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때 현아린은 의식이 없는 상태인 게 분명했으므로 그녀가 하는 말은 말이 되지 않았다.

그때, 현아린이 무언가 생각이 났다는 듯이 작게 감탄하며 입을 열었다.

“얼굴이 익숙한 게 아니라… 이 마력. 마력이 익숙한 거였어요.”

‘마력이라니?’

이건 또 무슨 개소리지?

래희는 미친 사람처럼 혼자서 중얼거리는 현아린을 두려운 듯한 시선으로 올려다봤다. 미친년은 피하는 게 상책이다.

그리고 그때, 현아린이 래희의 목을 움켜쥐었다.

“체자레와는 무슨 사이죠?”

얼굴을 보아하니 절대로 딸은 아니고… 하지만 어떻게 그의 마력이 당신 몸속에서 순환하고 있는 걸까?

그러나 당연히 래희는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 입이 막혀 있는데 무슨 수로 대답한단 말인가.

자신은 무협 소설의 주인공처럼 전음을 보내는 능력 따위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아! 그렇군요, 입이 막혀 있어서 대답을 못 한 거였어요. 당신에게 궁금한 게 많은데 대답을 못 하면 안 되죠.”

저 미친 여자의 말투는 도저히 적응되지 않았다. 그리고 곧이어 현아린이 손을 뻗어 래희의 입을 막고 있는 테이프를 뜯어냈다.

“읏!”

거친 손길에 저도 모르게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현아린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으며 제 할 말만 계속 이어 갔다.

“그래서, 대답해 주시겠어요? 무슨 사이인지?”

래희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들어 올렸다. 도대체 저 미친 여자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래희가 망설이다 입술을 달싹였을 때였다.

“허튼 생각 하지 말아요. 어차피 그 구속 수갑은 제 힘이 아니면 풀리지 않으니까요.”

물론 래희는 도망칠 힘조차 없었기 때문에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현아린의 말에 순순히 따를 생각도 없었다.

“그걸 당신이 왜 궁금해하지?”

래희의 물음에 현아린이 잠시 싸늘한 눈으로 그녀를 내려다봤다. 그러다 이내 깔깔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진짜 미친년이야.’

그리고 문득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지금쯤이면 지랄발광을 떨어야 할 성좌의 메시지 창이 하나도 뜨지 않은 채 너무나도 고요했기 때문이었다.

‘이 상황에 이 성좌는 어디로 사라진 거야? 계약자 노릇 제대로 못 하는 거 봐…….’

얼마 동안 미친 사람처럼 웃었을까. 갑자기 웃음을 뚝 그친 현아린의 얼굴 위로 다시 싸늘한 표정이 떠오르며 그녀가 새빨간 입술을 움직였다.

“음… 그래요. 원래라면 대답해 주지 않을 텐데, 당신이라 특별히 대답해 주는 거예요. 그는 나의 특별한 남자였어요. 굳이 설명하자면… 연인에 가깝달까?”

연인?

‘체자레… 제피로스건 눈앞의 여자건 애인이 많았구나.’

순간 차갑게 식은 눈빛으로 얼굴만 잘난 체자레의 잘생긴 외모를 떠올렸다. 역시 그 인간은 외모 말고는 볼 게 없었다.

‘아, 아니지 돈도 많고 능력도 좋긴 했지…….’

물론 성격은 좀 꼬인 것 같았지만 그래도 그 정도 외모면 이렇게 여자들이 목맬 만했다.

혼자서 생각을 정리하며 납득한 래희가 다시 눈앞에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현아린의 얼굴로 시선을 돌려 대답했다.

“그것보다 궁금한 게 있어. 왜 납치한 거지? 그냥 물을 수도 있었잖아.”

“아, 그거? 당신을 직접 보기 전까지는 체자레와 연관된 건 몰랐어요. 단지, 그동안의 행보를 보니 능력이 궁금해져서 말이죠.”

“그동안의 행보?”

그때, 가만히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앤드류 발렌타인이 그녀 앞에 사진 몇 장을 던졌다. 래희는 고개를 숙여 사진을 확인했다.

‘…어떻게?’

그리고 그곳에는 류정우와 함께 게이트를 오가며 오염 지역을 정화하던 모습이 몇 장 찍혀 있었다.

“오염 지역을 정화하다니… 그와 같은 생각을 하는 이가 또 있다는 생각에 얼마나 놀랐는지. 그냥 어떻게 정화한 건지 묻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우리 형제님 취향이 좀 특이해서 말이죠. 좀 거칠었다면 미안해요.”

“쏴리―”

래희는 가라앉은 눈으로 두 사람을 올려다봤다. 미친 연놈들이 쌍으로 묶여 있으니 말이 통할 리가 없었다.

“그래서, 당신도 대답해 줘야죠. 아, 그냥 체자레 그이가 어디에 있는지만 말해 줘요. 그럼 그냥 보내 줄게요.”

곤란했다. 체자레와 헤어진 지도 12년이나 지난 마당에 그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제가 어떻게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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