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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네 빵집은 언제 오픈하나요-80화 (80/120)

80화

인위적인 게이트 발생.

작년 크리스마스이브에 발생한 게이트를 기점으로 발견한 이 사안은 그때부터 조사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관련된 이들은 죄다 아무것도 모르는 비각성자들 뿐. 그 발생 원리와 배후에 대해서는 전혀 집히는 게 없어 이 사안은 미궁에 빠진 듯했는데, 거의 1년 가까이 지나서 갑작스럽게 그 원인이 밝혀지다니?

“어떻게 된 거지?”

“최근 게이트 발생 횟수가 잦아져 그 원인을 조사하던 중 작년 게이트 사건과 비슷한 에너지 작용이 최근에 관측되었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천해훈은 직관적인 그래프로 그려진 보고서를 윤청현에게 추가로 건네며 이어 말했다.

“이 게이트들이 비슷하다고 보고된 것들이고, 조사를 시작하자 특이점이 발견되더군요. 공통적으로 모두 근처에 마석 조각들이 흩뿌려져 있었습니다.”

“마석 조각?”

윤청현의 되물음에 천해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여길 보시면 이 사진에 마석 조각들이 나와 있는데 전부 등급은 상이합니다. D급부터 A급까지 불규칙적으로 발견되더군요. 물론 전부 거의 가루가 될 정도로 작게 조각난 상태였습니다.”

“이 정도면 게이트 조사관이 눈치채지 못했을 리가 없을 텐데?”

“네, 그렇습니다만 이전에는 항상 현장에 도착하기 전에 이상하게도 게이트 앞이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얼마 전부터 잦은 게이트 발생으로 조사관 파견 속도가 빨라지자 발견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윤청현은 그의 말에 잠시 생각하는가 싶더니 입을 열었다.

“마석을 들키지 않는 것보다 정체를 들키지 않는 게 더 중요했나 보지.”

“그런데 현장에서 이것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천해훈은 인벤토리에서 무언갈 꺼내 들고는 책상 위에 올려 뒀다. 그것은 바로 타다 만 쪽지였다.

윤청현은 곧바로 천해훈이 올려 둔 쪽지를 펼쳐서 내용을 확인했다. 쪽지 안에는 게이트 발생 장소, 위치, 시간이 적혀 있었다.

“이건… 일종의 지령이군.”

“예. 이 쪽지는 게이트 조사관이 발견하기 전에 저희 쪽 조사관이 먼저 찾아냈다고 합니다.”

“흠…….”

그때, 쪽지를 눈높이까지 들어 올리자 쪽지에서 특이한 냄새가 났다. 윤청현은 잘못 맡은 건가 싶어 쪽지를 코 가까이에 대며 한 번 더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이상하군. 쪽지에서 날 리가 없는 냄새인데…….”

“네?”

천해훈의 의문 섞인 반응에 윤청현은 말없이 천해훈에게 쪽지를 건넸다. 그러자 천해훈 또한 얼마간 냄새를 맡고는 인상을 찌푸리며 쪽지를 코에서 떼어 냈다.

“왜, 쪽지에서 유황 냄새가 나는 겁니까?”

탁탁탁탁.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이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던 윤청현이 문득 무언가 생각이 났는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얼마 전 죽은 알버트 로스의 사무실에서 유황 냄새가 났다는 소리가 있지 않았었나?”

“네, 그렇긴 합니다만 최초로 그의 시체를 발견한 각성자였던 보디가드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그에 관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윤청현은 고개를 저으며 관련 보고서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아냐. 뭔가 있어. 유황이 기업가 사무실에서 날 만한 냄새는 아니지 않나. 어디 용암 지대에 다녀온 것도 아니라면 말이지.”

더군다나 알버트 로스는 각성자가 아니라서 게이트에 들어갈 일도 없어.

그리고 곧이어 원하는 걸 찾았는지 종이 한 장을 들어 올리며 이어 말했다.

“최초 발견자 앤드류 칼리고… 알버트 로스 사망 다음 날인 11일 오전 10시경에 사망한 채로 발견?”

윤청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보고서 내용을 마저 읽어 내렸다.

“애초에 처음부터 타살을 주장했으나, 다음 날 오전 사망한 것으로 발견되며, 주어진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보임…….”

그의 말이 끝나자 주변의 온도가 10도는 떨어진 듯 분위기가 싸늘해지기 시작했다.

“얼마 전 용암 지대 게이트에 들어갔던 헌터 명단을 정리해서 보내 주게.”

윤청현의 말에 천해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보고를 마무리하면서 길드장실을 나갔다. 천해훈이 나간 자리를 깊게 가라앉은 눈으로 응시하던 윤청현이 답답한 듯 뒤돌아 창밖을 바라봤다.

“…이거 아무래도…….”

이번에 용암 지대 게이트에 들어간 길드는 백화 길드와 청해 길드였다. 유황 냄새는 잘 빠지지 않았기 때문에 무조건 이곳에 방문한 적이 있는 헌터가 벌인 소행이라는 뜻이었다.

윤청현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 20년을 직접 뽑아 함께해 온 길드원들을 의심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제는 어쩔 수 없었다. 부디, 저 유황 냄새의 주인이 청해 길드 소속이 아니기를 바랐다.

“후…….”

그는 각성자가 되기 전 끊었던 담배 생각이 절실해졌다.

* * *

오염 지역이 정화되었어도 당장은 식량 확보를 하기가 어려웠다. 작물이 자라는 데 몇 달이라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절대적인 자연법칙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성좌 ‘운명의 길잡이’가 기껏 고생했는데 효과가 없는 것 같다고 실망합니다.]

래희는 간만에 옳은 소리를 하는 성좌의 말에 동의하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정화된 땅의 면적이 넓어져도 당장 다가올 겨울을 버틸 식량이 필요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정부와 길드, 각 기업은 여전히 위트 아메리카가 판매하는 식량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고자 했지만 당장 효과는 보이지 않는 듯하자, 래희를 포함해 그동안 그녀와 함께한 청해 길드 소속 동료들은 허무함이 밀려오는 듯했다.

“하필이면 곧 겨울이라 당장 농사를 지을 수도 없으니…….”

“농사를 짓는다고 해도 수확하는 데 시간도 걸립니다.”

윤청현의 중얼거림에 그의 아들인 윤재언이 곧바로 대답했다.

“흐음…….”

그때였다.

“저기…….”

래희가 작은 목소리로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제 농사 스킬로…….”

그러나 래희는 말을 끝까지 마칠 수 없었다. 그녀가 농사 스킬을 언급하자마자 주변에서 곧바로 단호한 반박의 목소리가 날아들었기 때문이었다.

“안 돼!”

“너, 그러다 큰일 나.”

“이제는 들킬 위험이 있어서 안 돼요.”

모두가 래희를 향해 한마디씩 덧붙였다. 그러나 래희는 그에 물러서지 않았다.

“몰래 하면 되죠.”

“몰래, 어떻게 할 수 있다는 거지? 거기는 이제 정부에서 보낸 조사관이나 민간인들 또는 기자들로 득실거리고 있을 텐데?”

윤청현의 냉정한 목소리가 그녀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러나 래희는 그에 물러서지 않고 대답했다.

“그럼 다른 방법이 없잖아요. 정화된 땅에 작물이 자라서 수확되고 사람들에게 배분되는 그 시간을 기다릴 수는 없어요.”

그건 맞았다. 위트 아메리카와의 불공정 계약 체결 전에는 무조건 식량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다.

“만약, 한국이 식량난 문제에서 벗어났다고 치자. 그런데 주변 국가들은 전혀 그렇지 못했어. 결국 외교적인 문제로 우리가 고립될 수도 있다는 뜻이야.”

“그 문제는 둘째 치더라도 일단 살고 봐야죠.”

당장 오늘 먹을 게 없는데 어떻게 내일을 생각하나요?

래희의 말에 모두의 입이 굳게 닫혔다. 그리고 그때, 그 정적을 깨고 윤재언이 입을 열었다.

“그럼, 스킬로 작물을 자라게 한다고 치자. 안 들키고 할 수 있어?”

그에 래희가 고개를 끄덕이며 당당하게 대답했다.

“응. 일단 이걸로 하면 돼.”

그때, 래희가 꺼내 든 건 한 밀짚모자였다.

“모자?”

래희가 들고 있는 모자는 12년 전, 유일하게 게이트에서 들고나왔던 모자로 여러 가지 기능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쓴 사람을 보이지 않게 하는 기능으로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한 그녀의 스승이었던 체자레가 넣어 둔 온갖 잡다한 기능 중 하나였다.

그동안 인벤토리가 아닌 집구석 어딘가에 처박아 두고 잊고 있었는데, 할 일이 없어 대청소한답시고 집을 뒤졌더니 발견한 아이템이었다.

“이걸 쓰고 있으면 남들에게 보이지 않을 수 있어.”

물론 혼자서 농사를 짓는 건 매우 힘든 일이겠지만 이번에는 그냥 씨만 뿌리고 물만 주면 될 일 아니겠는가. 다 자란 작물을 남들이 발견하게 하는 게 목표였으니까.

그리고 그런 래희의 의견에 납득했는지 모두 순순히 받아들였다. 그때, 고개를 끄덕인 류정우가 래희에게 물었다.

“그래서, 래희 씨. 뭘 심을 생각이죠?”

* * *

황금색 물결이 호남평야 일대에 찬란하게 펼쳐져 있었다. 그건 모두 ‘벼’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오염되어 검은색 잿가루 같은 모래가 펼쳐져 있던 곳은 비옥한 토지로 변해 푸릇푸릇한 잔디밭을 보여 주더니, 어느 날 갑자기 하루아침에 자라난 황금빛 벼들이 그곳을 뒤덮고 있었다.

물론 논이니 밭이니 그런 재배법 같은 건 스킬 앞에서는 필요 없는 기술이었다.

“어떻게 된 거지?”

정부에서 정화된 토지를 조사하기 위해 파견되었던 조사관들은 넋을 잃은 채로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바라봤다.

이정도 양이면 당장 이 지역 사람들 모두 먹이고도 남을 만한 양이었다.

조사관 중 한 명이 논밭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쌀알을 매만지더니 이내 정신을 차린 듯 그의 동료에게 말했다.

“일단 당장 보고하고, 빨리 수확해야 해.”

식량난의 위기로 곧 다가오는 겨울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는데, 이렇게 예상치 못하게 해결할 희망을 발견하다니.

그리고 그것을 시작으로 전국 곳곳의 정화된 땅에서 온갖 작물이 발견되기 시작했다. 맨 처음 정화된 토양이 발견된 지역에서는 밀이, 또 다른 지역에서는 옥수수가…….

마치 너희들이 식량난을 겪고 있다는 걸 아는 것처럼 구황 작물들만이 대량으로 자라나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을 벌인 래희는 며칠 동안 고생한 탓인지 침대 위에 두 눈을 감고 뻗어 있었다. 퀘스트도 수행해야 하는데 작물을 전국 곳곳에 심느라 아무것도 하지 못했고, 심지어 이번에 자라난 작물로도 부족했기 때문에 11월이 지나기 전, 몇 번 더 작물을 심어야 했다.

그때, 래희의 방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똑똑똑.

“네… 들어오세요.”

래희의 대답과 동시에 문이 조금 열리며 류정우의 얼굴이 보였다. 그는 걱정 가득한 시선으로 래희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괜찮으세요?”

“아뇨…….”

래희는 베개에 얼굴을 묻은 채로 웅얼거리며 대답했다.

“저녁을 차렸는데 드시겠어요? 너무 피곤하면 먹지 않아도 좋아요.”

‘밥…….’

밥은 먹고 자야지.

안 그래도 육체적인 노동을 해서 그런 건지 이상하게도 평소보다 더 배가 고팠다.

래희는 일어나기 싫었지만, 배가 고팠으므로 억지로 몸을 일으켜 앉았다. 눈을 비비며 겨우 일어나 앉자 그런 그녀의 모습이 귀여웠는지 조용히 웃고만 있던 류정우가 방문을 열고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밥을 먹고는 싶은데 몸이 안 따라 주는 모양이니 직접 도와주는 수밖에.

“일어나는 거 도와드릴까요?”

“네?”

그러나 비몽사몽한 정신으로 얼떨결에 대답한 탓인지 류정우는 그녀의 애매한 반문을 긍정으로 받아들이고 말았다. 그래서 그는 그녀를 공주님 안기로 번쩍 들어 올리고는 식탁으로 데려가 앉혔다.

“아…….”

[성좌 ‘운명의 길잡이’가 저 여우 새끼 일부러 대답 잘못 들은 척하는 거라며 당신을 답답해합니다.]

아까까지 밀려오던 잠기운이 싹 달아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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