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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네 빵집은 언제 오픈하나요-79화 (79/120)

79화

윤재언은 평소보다 한층 더 가라앉아 보이는 듯한 눈빛으로 방금 막 클리어된 게이트 앞에 서 있는 두 사람을 바라봤다.

래희의 손에 뭔가 이상한 거라도 묻었던 건지 류정우가 그녀의 손을 잡고 닦아 주고 있는 듯했다.

‘왜 저렇게 딱 붙어 있는 거야.’

물론 두 사람에게는 평소와 다름없는 거리긴 했지만, 윤재언의 눈에는 그럴 필요가 없음에도 유난히 붙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두 사람에게 성큼성큼 큰 걸음으로 빠르게 다가갔다.

“수고하셨습니다.”

윤재언이 가까이 다가가며 불쑥 말을 건네자 류정우가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윤재언의 말에 짧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래희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여전히 그녀의 손을 꽉 붙잡은 채였다.

그에 윤재언은 저도 모르게 류정우가 붙잡고 있는 래희의 손으로 시선을 고정한 채 물었다.

“래희야, 이제 퀘스트로 클리어해야 할 게이트가 몇 번 남았다고 했지?”

“아, 이제 열세 번정도?”

래희는 제 손을 붙잡고 있는 류정우가 전혀 신경 쓰이지 않는 건지 맹한 눈빛으로 그에게 대답했다.

“그러고 보니… 오염 정도는 어때? 열세 번 정화했으면 이제 외부에 노출이 될 것 같은데?”

게이트 클리어 횟수가 어느 정도 쌓인 듯하자 이제는 꽤 넓은 범위의 땅이 정화되어 더 숨기기 힘들 게 분명했다.

그래서인지 윤재언도 래희의 물음에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 이제는 못 숨겨. 얼마 전에 정화된 토지를 발견했다는 기사가 뜨기는 했더라. 그래서인지 정부도 ‘위트 아메리카’와의 계약 일정을 뒤로 미뤘다는 보도가 네가 게이트에 들어간 사이에 나왔어.”

“아…….”

래희는 그의 설명에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때, 두 사람의 대화를 잠자코 듣고 있던 류정우가 입을 열었다.

“이제는 어쩔 계획입니까? 물론 앞으로도 래희 씨를 외부에 노출해서는 안 되겠지만, 이제 퀘스트도 거의 다 끝나 가니 앞으로의 계획을 듣고 싶군요.”

애초에 남몰래 게이트 정화를 하자고 계획을 세운 것도 윤재언 씨니 앞으로 어떻게 할지도 미리 생각해 뒀을 거라 짐작합니다만.

윤재언은 래희의 손에 고정하던 시선을 들어 올려 제게 물어 오는 류정우의 눈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대충 작물을 재배할 수 있을 만큼의 땅은 확보했으니 여기서 더 많은 오염 지역을 정화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미 확보한 땅의 면적도 충분히 한국 인구를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면적이니까요.”

‘위트 아메리카’가 도시형 작물 재배 기술을 발달시키는 동안 다른 이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들이 도심 한가운데 빌딩에서 농사를 짓는 기술력을 독점하는 동안 오염 지역의 확장으로 인해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은 점점 줄어들었다.

그래서 자연스레 좁은 땅에서 이전보다 몇 배 이상의 작물을 수확할 수 있는 기술 정도는 발전시켜 왔었다.

비록 언젠가는 오염 지역의 확장으로 사용할 수 없는 시한부 같은 기술이긴 했지만, 당장의 식량이 더 중요했으므로 누군가는 일말의 희망을 품고 품종 개량을 통해 생산성을 높였다.

그리고 드디어 그 노력이 빛을 발할 차례였다.

“정화한 토지는 누군가 독점하지 못하게 일단 대부분 국가 소유 땅이야.”

“…정부를 믿을 수 있어?”

그들이 미리 토지가 정화된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고 차명으로 토지를 거래할 수도 있는데?

“못 그래. 바로 기사부터 나가게 했으니까. 아마 지금쯤이면 한참 속보로 보도되고 있을 거야.”

그리고 그 작물 대량 생산 기술은 독점 기술이 아니라 오픈 소스로 공개가 된 기술이라 문제 될 일은 없을 거고.

“그럼 다행이네.”

개고생하며 게이트를 클리어했는데 허무하게 정치적으로 이용되면 좀 화가 날 것 같아서 말이야.

* * *

- …에서 정화된 땅을 발견함에 따라 정부에서 전국 토지 오염도 조사를 재진행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오염된 땅이 정화된 것은 전 세계에서 최초로 발견된 사례이며…….

삑―

뉴스 소리가 한참 흘러나오고 있던 방 안이 고요해졌다. 조용해진 방 안은 얕은 숨소리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지?”

얼마간의 정적을 깨고 누군가 입을 열었다. 들려오는 말은 한국어가 아닌 영어였다.

알버트 로스. 위트 아메리카의 CEO.

그는 일그러진 얼굴로 전원이 꺼진 텔레비전 화면을 노려보며 이어 말했다.

“분명, 오염된 땅이 다시 정화되는 경우는 없다고 했는데?”

물론 사업가로서는 모든 경우의 수를 다 열어 둬야만 했다. 하지만, 그가 얻은 정보는 그 경우의 수가 의미가 없는 확실한 정보였다.

정보를 제공하는 ‘그들’은 신의 선택을 받은 자들로 그들에게 선택받은 자신 또한 신의 선택을 받은 것과 다름없었다.

지난 20년을 그들 덕분에 이렇게까지 성장해 올 수 있었고, 그렇게 살아왔기에 그는 지금 일어난 상황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들의 예측은 단 한 번도 빗겨 나간 적이 없었어.’

한국이라는 신경 쓸 필요도 없는 작은 나라를 손아귀에 쥐지 못한 사실이 문제가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저것을 시작으로 앞으로 다른 국가들, 더 나아가 자신이 지금 밟고 서 있는 미국까지 오염 지역의 정화가 가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열린 상황이 아닌가.

미래에 대한 불안함을 조성하여 머지않아 온 지구를 ‘위트 아메리카’의 손 위에 올려 둘 생각만 하고 있던 알버트에게는 지금 이 상황이 결코 반갑지 않았다.

알버트는 곧바로 책상 아래의 맨 위쪽 서랍에 비밀번호를 입력하고는 잠금장치가 열리자마자 거친 손길로 서랍을 열었다.

그리고 그 서랍 안에 굴러다니던 오래된 기종의 휴대전화를 들어 올려 익숙하게 한 번호를 입력한 뒤 통화 연결 버튼을 눌렀다.

- 전화기가 꺼져 있어 삐 소리 후…….

“FuXX!”

그때였다.

똑똑똑.

“Come in!”

그가 신경질적으로 대답하자마자, 문 쪽에서 또각거리는 소리를 내며, 하이힐을 신은 비서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알버트는 휴대전화를 서랍 안에 집어넣으며 고개를 들었다.

혼자 들어온 줄로만 알았던 비서의 뒤로 누군가가 서 있었다.

“…여긴 어떻게…….”

비서가 걸음을 살짝 비켜서자 그녀의 뒤로 서 있던 누군가의 모습이 알버트의 초록빛 두 눈에 담겼다. 그는 방금 알버트가 전화를 건 당사자였다.

“아니, 연락도 없이…….”

“우리가 연락이 없으면 만나지도 못할 사이인가요?”

알버트가 지난 20여 년간 정보를 거래해 오던 여자는 매번 만날 때마다 모습이 바뀌었다. 언제는 중년 남성의 모습. 또 언제는 갓 성인이 된 여성의 모습. 이번에는 20대 중반의 성숙한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매번 모습이 바뀜에도 불구하고 그가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이유는 모든 이가 같은 반지를 착용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노란색 보석이 양쪽에 박힌 십자가 모양의 반지. 얼핏 보면 평범해 보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말로 평범한 디자인은 아니었기 때문에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얼굴을 마주한 것도 세 번 정도가 끝이었다. 처음에는 사기꾼인 줄로만 알았으나, 몇 번이고 그들의 조언대로 세상이 굴러가기 시작하자 정말로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오늘, 그들의 예측이 처음으로 틀렸다.

‘여태껏 투자한 금액이 얼마인데!’

이번 일이 실패로 돌아가면 그동안 그가 해 온 불법적인 일들이 모두 자신에게 되돌아올지도 몰랐다. 알버트는 분노를 감추지 못한 채 눈앞의 여자를 노려봤다.

상대방은 어떤 모습을 하더라도 항상 온화하고 차분한 태도로 그를 대했기에, 알버트는 눈앞의 여자를 만만하게 생각하며 비서가 방 밖으로 나간 걸 확인한 후 입을 열었다.

“그래서, 이제 어쩔 겁니까? 이대로 오염 지역이 줄어들기 시작하면 우리의 계획도 어그러집니다.”

“우리의 계획?”

그러나 여자는 딱히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으며 의미 없는 말꼬리만 물고 늘어졌다.

“그렇지, 일단 우리의 계획이지…….”

다른 생각에 빠진 건지, 그가 아닌 그 너머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한 초점 없는 눈이 다시 빛을 발하며 또렷하게 되돌아왔다.

“알버트, 당신 아들이 이번에 각성했다고 했죠?”

제 말에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 되돌아오는 뜬금없는 질문에 알버트는 대답 없이 그녀를 노려봤다. 그러나 여자는 딱히 대답 따위는 기대하지 않았다는 듯이 싱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지금쯤이면… 작업은 끝이 났겠네.”

뜻 모를 말을 중얼거리던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녀의 손에 들려 있던 파우치를 뒤적거리는가 싶더니 파우치 안에 손을 넣은 채로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렇다면 이제 당신은 필요 없지.”

알버트가 그 말의 뜻을 파악할 틈도 없이 작은 가방 안에서 권총을 꺼내 든 여자가 정확하게 알버트의 이마 정중앙에 총알을 박아 넣었다.

탕―!

조용한 사무실 안에 울려 퍼지는 꽤나 요란한 소리였지만 그 누구도 문을 열고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총알이 박힌 이마의 상처가 점차 사라지며 언제 총상을 입었냐는 듯 매끈한 피부로 되돌아왔다.

하지만 이미 멎어 버린 알버트의 숨은 되돌아오지 않았다.

“당신 사인은… 흔한 드라마처럼 심장마비로 할까……?”

이내, 여자의 콧노래가 울려 퍼지던 방 안은 싸늘한 정적 속에 휩싸였다. 초점 없는 알버트의 얼굴 위로 밝은 달빛이 드리웠다.

* * *

얼마 뒤, CEO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한창 모두의 주목을 받고 있던 위트 아메리카의 새로운 경영자로 알버트 로스의 아들, 케빈 로스가 새로운 최고 경영자로 위임하였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각성자이긴 했지만 C급이었기 때문에 헌터를 업으로 하지 않아도 다들 납득하는 분위기였다.

그는 CEO에 임명되자마자 아버지였던 알버트 로스보다도 더 공격적인 경영을 하기 시작했다.

“케빈 로스가 몸이 달았나 보군. 한국은 포기하고 일본이나 중국부터 손을 쓰는 걸 보면 말이야.”

정화된 오염 지역이라고 해 봤자 아직 한국에서만 발견된 게 전부니, 한국은 나중에 손대겠다는 걸 수도 있겠어.

윤청현은 혀를 차며 그와 관련된 보고서를 읽었다. 어차피 전 세계를 제 손위에 굴리고자 마음먹은 거라면 한국같이 작은 나라 하나 공략하는 건 뒤로 미뤄도 되는 문제일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때, 천해훈 실장이 노크도 없이 급하게 길드장실 문을 열며 빠른 걸음으로 걸어왔다. 그는 보고서 한 장을 자신의 상사에게 건네며 급한 어조로 말했다.

“예전에 알아보라고 하셨던 것, 실마리가 잡힌 듯합니다.”

윤청현은 천해훈에게 받아 든 보고서의 제목을 훑었다.

[인위적인 게이트 발생 원인 조사]

대략 11개월 전에 발견한 인위적인 게이트 발생에 대한 원인과 배후가 적힌 보고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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