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헌터네 빵집은 언제 오픈하나요-76화 (76/120)

76화

“오… 또 인간이네?”

김주현은 제 앞에 서 있는 정체 모를 누군가를 보며 굳은 채로 가만히 서 있었다.

‘저건 뭐지?’

A급 게이트에 휩쓸린 권래희를 찾으러 게이트 안으로 들어오자, 마주한 건 인간으로 보이나 조금은 다른 무언가였다.

‘귀 모양이…….’

마치 영화 속에 나오는 엘프와 같은 뾰족한 귀의 모양새를 가진 존재는 김주현이 만났던 그 어느 존재보다도 위압감이 컸다.

처음 겪어 보는 엄청난 위압에 김주현은 부들거리는 몸을 애써 진정시키며 눈앞의 엘프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게이트에서 마주했던 그 어떤 보스 몬스터보다도 강한 강자의 기운이었다.

‘설마, 이게 보스 몬스터인가?’

그러나 보스 몬스터와 달리 맑은 눈은 이지를 가진 듯해 보였다.

투명하게 빛나는 은발의 엘프는 초록빛 눈동자로 그를 꿰뚫어 보는 듯이 응시했다. 눈동자가 세로로 갈라지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죽는다.’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세 글자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 아름다운 외형의 엘프가 김주현에게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며 그를 관찰했다.

“오… 두 가지 영혼이 섞여 있군. 그것도 하나로 거의 융화되어서 말이야…….”

원래 몸의 주인이 몸을 빼앗기지 않고 흡수해 버렸어. 의지가 강한가 보군.

엘프는 신기하다는 듯이 그의 전신을 눈으로 훑으며 입을 열었다.

“뭐,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없어 보이니까. 그런데, 왜 개새끼들의 냄새가 나는 거지?”

그는 인상을 찌푸리더니 뭔가 생각하듯이 얼마간 침묵을 유지했다.

“…죽일까?”

그때였다. 살벌한 말과 함께 싸늘한 표정의 엘프는 코를 몇 번 더 킁킁거리더니 갑작스럽게 태도를 바꿔 반짝이는 눈빛으로 그를 내려다봤다.

“너, 그 아이 마력 냄새도 나는구나? 애인이니?”

그 아이? 누굴 말하는 거지?

수그러진 엘프에 태도에 굳어 있던 입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김주현은 겨우 입을 열어 엘프에게 물었다.

“누굴 말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사람 한 명 못 보셨습니까?”

휴대전화를 들어 올려 래희의 사진을 보이며 이어 말했다.

“이 사람입니다. 실종되었다 들어서 찾으러 왔습니다.”

“흐음…….”

엘프는 사진 속 래희의 얼굴을 보더니 의뭉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걔는 방금 떠났어. 아마 제대로 갔으면 본인이 원하는 곳으로 갔을 거야.”

“어디로 갔습니까?”

긍정적인 대답에 김주현은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급하게 되물었다. 그리고 엘프는 알 수 없는 눈빛으로 그를 내려다보더니 래희가 이동한 길을 알려 주었다.

“이 빛을 따라가면 될 거야.”

첫인상과 달리 친절해진 엘프는 구형의 작은 빛을 만들어 내고는 설명했다. 김주현은 그에게 감사 인사를 하며 뒤돌아섰다.

“안타깝네…….”

바람 소리에 묻혀 뒤 이어진 말을 듣지 못해, 김주현은 엘프의 말에 아무 반응도 없이 빛을 따라 앞만 보며 걸었다.

그리고 저 끝에서 래희의 작은 뒷모습을 발견했을 때, 그는 굳은 채로 가만히 서서 지켜만 볼 수밖에 없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그녀를 반기고 있었다.

김주현은 류정우 품에 안긴 래희를 조용히 눈에 담았다.

* * *

- 속보입니다. 지난달, 농림 축산 식품부가 발표했던 시기보다, 더 빠른 속도의 오염 지역 확산으로 인해 당장 다음 달부터 한국 내 식량 자급률이 0%로 급락할 것이라는…….

오래전부터 예고해 온 인류의 멸망이 코앞에 다다른 듯했다.

애초에 한국은 오염 전에도 식량 자급률이 높지 않은 국가여서 수입에 의존해 왔는데, 전 세계적인 식량난이 시작되자 수출 국가에서는 식량의 유출을 막기 시작했다.

정부 발표대로면 다음 달부터의 식량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부터 답이 없는 상황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환경 오염이 심각해지는 추세였고, 벌써 일부 국가는 심각한 식량난을 대처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국가가 손을 놓아 생긴 난민들이 세계 곳곳으로 떠나기 시작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걸 뉴스 화면 속의 일인 것처럼만 지켜보며 남 이야기처럼 듣던 사람들은, 당장 다음 달이면 같은 상황에 놓이게 된다는 경고를 듣자마자 패닉에 빠지기 시작했다.

- 아니, 애초에 10년도 훨씬 전부터 예고한 상황이었는데 정부는 아무런 대책도 없었다는 거야?

- ㅅㅂ 다들 사재기하는지 마트 가니까 음식 코너가 전부 텅텅 비어 있더라. 당장 내일 먹을 거부터 없음.

- 전통적인 방식으로 식량을 못 구하는 거지 도시형 식량 재배 빌딩 서울에 8개, 부산에 3개 있지 않음? 거기서 재배 못 한대?

└한국 기업이 아니라 외국 기업 거잖아. 거기서 이전 가격의 100배를 부른다던데?

└ㅁㅊ 거 아냐?

도시형 식량 재배 빌딩.

20년여 년 전 게이트가 등장한 직후에 생겨난 그것은 미국의 세계 최대 식량 재배 기업인 ‘위트 아메리카’가 만든 신개념 농사법이었다.

게이트로 인한 토양 오염으로 인해 식량 수급이 어려워질 것을 직감한 기업은 도시형 식량 재배법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도시 한 가운데 빌딩을 세워 그 빌딩 안에서 밀이나 옥수수, 쌀과 같은 주요 작물을 재배하기 시작했다.

지난 20년 동안 기술력의 발전에 따라 재배 가능한 작물 종류의 증가와 신선도 증가로 어느새 전 세계 식량 시장의 70%를 손아귀에 쥐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기술에 후발 주자가 없었을까?

아니, 후발 주자들은 당연히 존재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업계에 뛰어들자마자 경영진 비리나 각종 이유로 도산하기에 이르렀고, 만약 위기를 피해 살아남았다 하더라도 결국 ‘위트 아메리카’ 측의 기술 관련 소송으로 생긴 자금난으로 인해 사라졌다.

그래서 지금 현재, 살아남아 있는 대규모 식량 회사는 ‘위트 아메리카’ 하나뿐. 마땅한 경쟁자가 없어 가격을 어떻게 올리든 지금 이 식량난에서 기술과 식량을 가진 그들은 지구를 저들의 손아귀에 넣은 것과 마찬가지였다.

“예상대로 흘러가네…….”

래희는 아무도 없는 류정우의 사무실 소파에 앉아 뉴스 속보를 들으며 중얼거렸다.

그녀는 며칠째 가게 문을 닫은 채로 할 일 없이 청해 길드로 출근 중이었다. 모두가 식량 위기로 가게 문을 닫는 마당에 래희 혼자서 빵을 만들어 판매를 하게 되면 다들 재료의 출처에 대해 궁금해할 게 분명하기에, 그녀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청해 길드 소속의 헌터임에도 불구하고 길드에 기여할 수 있는 게 없는 비전투계 각성자였다. 아마, 래희가 길드장인 윤청현의 피후견인이 아니었다면 벌써 계약 해지가 되고도 남았을 거였다.

“심심하다…….”

래희는 허공에 퀘스트 창을 띄웠다.

- 게이트 정화하기 6/20

류정우와 함께 진행한 공동 서브 퀘스트 ‘우리 아이(세계수) 바르게 키우기’도 벌써 3분의 1을 해치웠다.

지난 경기도 게이트에서 한 번에 여러 게이트를 방문한 이후 위기 쇄신을 이유로 전국적인 게이트 발생 재조사가 이뤄져, 남들의 눈을 피해 클리어할 게이트도 찾기 어려워졌다.

게다가 최근 들어 이전보다 더 잦아진 게이트 사태 때문에 류정우나 윤재언을 비롯한 전투계 헌터들은 대부분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그래서 그동안 하루가 멀다 하고 봐 왔던 류정우나 윤재언의 얼굴을 보지 못한 지도 벌써 일주일이 되어 갔다.

‘그나저나 곧 있으면 류정우 생일인데…….’

래희는 며칠 뒤면 28번째 생일을 맞이하는 류정우의 생일에는 어떤 선물을 준비해야 할지 고민했다. 하지만 아무리 지난 한 달 동안 머리를 꽁꽁 싸매며 쥐어 짜내어 봐도 마땅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하…….’

역시 남 선물 고르는 게 제일 힘든 법이다.

그때였다.

지잉― 지잉―

딱히 연락 올 사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울리는 진동에, 래희는 휴대전화를 들어 화면을 확인했다.

[집]

“아.”

이제 사춘기에 접어들었는지,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를 원하는 리프를 위해 집에 전화기를 하나 장만했다. 신기하게도 어떤 원리인지 모르겠지만 스킬로 만들어진 공간임에도 인터넷이나 전화 모두 가능했다.

그나저나 21세기 스마트폰 시대에 전화기라니.

드워프 옹의 특별 제작으로 만든 엔틱한 다이얼 전화기는 리프와 래희의 주요 연락 수단이었다.

래희는 초록색 통화 연결 버튼을 눌러 리프의 전화를 받았다.

“왜?”

- 우에우우우.

남들이 들었다면 절대 알아듣지 못할 리프의 말은 이상하게도 래희는 그 의사 정도는 알아차릴 수 있었다. 래희는 자연스럽게 리프에게 곧바로 대답했다.

“몰라, 오늘도 류정우 씨는 바쁘대. 그리고 너, 그동안 이런 식으로 전화해서 류정우씨한테 귀찮게 군거야? 던전은 다음에 가기로 했잖아.”

세상 밖에 들키지 않기 위해 아주 제한적인 공간만을 돌아다닐 수 없는 리프에게 있어서, 게이트에 들어가는 일은 즐거운 일이었다. 비록 그게 제가 해야 할 일이 있어서 그런 것임에도 불구하고.

래희는 계속해서 웅얼거리는 사춘기 리프를 겨우 다독인 뒤, 휴대전화를 끄고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

식량난 때문에 저도 덩달아 가게 문을 닫게 되었지, 게이트가 잦아져서 류정우가 바빠지는 바람에 퀘스트를 빠르게 클리어하기도 어려워 보이지. 집에 가면 사춘기 막내 때문에 고생은 고생대로 하지.

요즘 들어 뭐 하나 마음에 드는 일이 없었다.

그리고 그때였다.

쾅―

문이 벌컥 열리고 누군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래희가 놀라 뒤를 돌아보자 그곳에는 심각한 표정으로 굳어 있는 윤재언이 문 앞에 서 있었다.

* * *

세계가 식량난으로 고통받기 시작한 이 시점, 래희는 이 난제에서 벗어날 수 있는 능력을 가졌음에도 밖으로 나설 수 없었다.

농사를 짓는 능력이 있기는 하지만 그건 단지 빵집 운영을 할 수 있는 정도일뿐, 인류 모두를 구원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공개해 봤자 좋은 소리 못 들을 게 뻔한데 어떻게 남들에게 이런 능력을 알리겠는가. 그래서 같은 맥락으로 가게도 닫았다.

하지만 래희는 제 눈앞에 굳은 표정으로 그녀를 내려다보는 윤재언의 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윤재언은 사무실 문밖을 한번 살핀 뒤, 문을 잠그고 작은 목소리로 래희에게 물었다.

“너… 저번에 류정우 헌터랑 퀘스트 때문에 게이트를 돌았다고 했지?”

“응. 그거 천해훈 실장님이 추천해 주신 게이트라 안 들켰을 텐데? 문제 생겼대?”

그러나 윤재언은 래희에 물음에 대답하지 않은 채 제 할 말 만을 이어 나갔다.

“그때, 어디 어디 돌았다고 했지?”

“강원도랑… 경기도 외곽? 그 충북이랑 접해 있는 지역에… 그런데 그건 왜?”

“하…….”

윤재언은 기가 찬다는 듯이 대답 대신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심각한 분위기에 래희는 저도 모르게 덩달아 진지해질 수밖에 없었다.

“퀘스트 내용이 뭔데?”

“별거 없어. 리프랑 같이 던전 도는 거? 클리어한 게이트에 정화를… 아니, 왜 그러냐니까?”

“…얼마 전에 오염되지 않은 땅을 발견했는데, 전부 네가 들렀던 게이트 위치랑 겹쳐. 설마 하고 확인차 물었던 거야.”

“아… 어?”

아니, 그러면 리프가 정화한 던전 주변 땅이 다시 회복되었다는 뜻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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