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화
“이거 정말 네 거 맞아?”
래희는 손에 들린 귀걸이를 살펴보며 냐옹이에게 물었다. 고양이가 어떻게 보석을 가지고 있담.
그러자 냐옹이가 기분이 나빴는지 빽, 하고 소리 지르며 설명했다.
“내 거 맞다냥! 나름 100년 묘생을 살면서 모아 온 재산을 무시하지 마라냥!”
“아, 알겠어.”
래희는 그런 냐옹이의 기백에 놀라 꼬리를 내렸다. 마법 고양이라면 냥냥 펀치도 제법 아플지도 몰랐다.
[성좌 ‘운명의 길잡이’가 고양이 주제에 마법 아이템을 어떻게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합니다.]
“이거 아이템이에요?”
래희가 성좌에게 물었으나 대답은 냐옹이에게서 돌아왔다.
“당연하지! 내 집사가 마법사였다냥.”
전 집사가 남긴 마법 아이템을 내가 몇 개 좀 챙겨 왔을 뿐이야.
래희는 그런 냐옹이에 뻔뻔한 태도에 어이가 없어 실소를 흘리며 귀걸이의 설명 창을 열었다.
[나의 반쪽 찾기 귀걸이(A)]
- 나눠 낀 상대와의 대화가 가능하다.
[성좌 ‘운명의 길잡이’가 지구에는 휴대전화가 있는데 굳이 필요하냐고 묻습니다.]
‘그렇긴 한데, 던전 안에서도 사용 가능한 거면 꽤 괜찮은 것 아닌가요?’
그도 그럴 게 현대 기술로는 게이트 안과 밖에서의 통신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직접 헌터들이 발로 뛰며 왔다 갔다 하면서 소식을 전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러니 게이트 안에서도 대화할 수 있는 아이템이라면 꽤 좋은 아이템이 아닌가.
[성좌 ‘운명의 길잡이’가 그럼 그걸 누구랑 나눠 낄 거냐고 묻습니다.]
“음… 류정우 씨?”
지금 같이 퀘스트를 하는 사이에 게이트에서 서로 소통할 필요가 가끔 있을 때가 있는데 이게 있으면 더 편하지 않을까?
[성좌 ‘운명의 길잡이’가 기침을 합니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다고 조심스레 자신의 의견을 전달합니다.]
“네? 왜요? 퀘스트할 때 가끔 게이트에서 엇갈리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 쓰면 좋잖아요.”
[성좌 ‘운명의 길잡이’가 한숨을 쉽니다.]
[그러나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는 게 인간이니 굳이 막아서 긁어 부스럼 만들지 않을 거라고 중얼거립니다.]
[보아하니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은데 영원히 그렇게 눈치 없이 굴어 줬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무슨 소릴 하는 거예요?”
래희는 의중 모를 성좌의 말에 짜증이 나서 그의 메시지를 한쪽으로 치우며 냐옹이를 바라봤다.
“그런데, 여기 지도 같은 건 없을까? 내가 길을 잃어버렸거든.”
“냥? 지도라면 집사가 가지고 있는데냥?”
“그래? 그럼 집사는 언제 오는데?”
래희의 질문에 냐옹이가 잠시 생각하는가 싶더니 입을 열었다.
“냐… 열흘 뒤에 온다고 했는데……? 잠깐, 오늘이 열흘째인데?”
냐옹이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더니 오늘이 집사가 돌아와야 했을 날이라며, 제자리에서 놀라며 펄쩍 뛰어올랐다.
“뭐? 하지만 지금은 벌써 늦은 밤인걸?”
래희는 어느덧 어두워진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게이트에 휘말린 지도 벌써 4시간째. 그녀는 지금 추운 밖에 놓인 지도 4시간이 흘러가고 있다는 걸 자각했다.
‘하지만 집주인이 없는 곳에 허락 없이 들어갈 수도 없고.’
춥고 피곤해 쉬고 싶었지만, 저 냐옹이의 집사는 집에 없다고 하지 않는가. 집주인의 허락 없이 그 집 안에 들어가 쉬다가 집주인과 마주하는 그런 당황스러운 경험은 하고 싶지 않았다.
래희는 냐옹이를 끌어안고 따끈따끈한 체온을 느끼며 눈앞의 모닥불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리고 한 30분 정도가 지났을까.
잠이 와 눈을 붙이고 쭈그려 앉아 있는 래희의 귓가에 누군가 눈을 밟으며 걸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지? 집주인이 돌아온 건가?’
부산스러운 소리가 들려오자 래희는 감았던 눈을 슬며시 떴다. 그녀의 시야에 어그 부츠처럼 생긴 신발이 모닥불 너머로 보였다.
“아…….”
래희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은발의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엘프?’
사람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외모에 뾰족한 귀, 그건 누가 봐도 엘프였다.
‘왜 엘프가 여기에 있는 거지?’
마을에서 무리를 짓고 살아가야 할 엘프가 이런 숲속에 오두막이나 짓고 혼자서 살아간다니. 래희는 지금 이 상황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아서 당황스럽기만 했다.
그때, 엘프가 래희를 보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인간,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이전 엘프 마을에서 보았던 엘프들과는 달리 시린 한기가 가득 담긴 녹색 눈동자가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다.
* * *
‘와, 지금 이 상황 진짜 적응 안 된다…….’
눈앞의 엘프를 따라온 작은 정령들이 래희를 둘러싸고 형형색색의 빛을 내며 모여들었다.
래희의 새끼손가락만 한 정령들은 래희가 신기한지 그녀의 곁에서 이리저리 둘러보며 구경하고 있었다.
갑자기 얻은 정령들의 관심에 래희는 아주 부담스러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엘프, 토레스를 바라봤다.
그러자 토레스가 그 모습을 보고선 한 번 비웃더니 정령들을 향해 말했다.
“너네는 좀 꺼져라. 쟤가 너네가 부담스럽다잖아. 정 궁금하면 쟤가 잘 때 누워 있는 거 구경하면 되겠네.”
아니, 누구 마음대로?
그러나 정령들은 토레스의 말에 납득했는지 저들끼리 고개를 끄덕이고는 폴폴 날아서 오두막 창밖으로 사라졌다.
래희는 지금 토레스의 오두막 안에 들어와 있었다. 처음에 래희를 보고선 살기를 내뿜던 모습은 어디로 가고 지금은 완전히 경계를 푼 채 그녀를 대하고 있었다.
냐옹이가 래희와 있었던 일에 대해 설명한 뒤에 그는 래희에게 무례하게 군 것에 대해 사과하고는 오늘 밤에는 자신의 집에서 하루 머물다 가도 좋다고 말했다.
래희는 토레스의 작고 아담한 오두막을 둘러보며 물었다.
“왜 여기서 혼자 살아? 다른 엘프들은?”
“다른 이들은 마을에 있지.”
“그럼 너는?”
그러자 토레스가 고개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글쎄.”
래희는 그의 모호한 대답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이내 굳이 대답하기 싫어하는데 여기서 더 묻는 건 실례라는 생각에 더 묻지는 않았다.
“뭐, 됐어. 별로 안 궁금하거든.”
어차피 하룻밤만 신세 지고 떠날 건데 자신이 그걸 알아서 무슨 상관이겠는가.
[성좌 ‘운명의 길잡이’가 저거 겉보기에만 엘프지 진짜 엘프는 아니라고 말합니다.]
네? 그건 또 무슨 소리죠?
혹시 내가 겨울 숲속에 있는 오두막 귀신한테 홀리기라도 한 거란 뜻인가?
“안 궁금해?”
래희가 성좌의 말에 당황하는 사이 토레스가 래희에게 물었다. 자신을 향한 토레스의 물음에 래희는 고개를 돌려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네가 딱히 말해 줄 생각이 없는 것 같아서.”
“그렇긴 하지.”
토래스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어딘가 마음에 드는 것 같지 않아 보였다. 뭐, 그것 또한 래희가 신경 쓸 바가 아니었다.
두 사람은 방금 막 오두막 안에 들어왔기 때문에 토레스는 그녀가 누워서 잘 만한 소파를 정리하는 중이었다. 그동안 래희는 가만히 앉아 있다가 이제야 겉옷을 벗고 소파에 앉았다.
그때, 토레스가 래희를 가만히 응시했다. 래희의 얼굴이 아닌 래희의 손가락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난롯불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반지에 저도 모르게 시선이 빼앗긴 것이었다.
래희는 자신의 손가락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토레스에 당황하며 손을 옷 사이로 숨겼다. 그러자 토레스가 그녀의 얼굴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 반지. 어디서 났어?”
“반지?”
손가락을 들어 올리자 래희의 왼손 검지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가 빛에 반짝이며 빛나고 있었다. 래희는 토레스가 반지에 관심을 보이자 의아해하며 대답했다.
“선물 받은 거야. 아주 어릴 때.”
“그래?”
그런 래희의 대답에 토레스는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걸 선물로 줬다고? 누가?”
아니, 자기는 자기에 대해서 말하기를 꺼리면서 역으로 래희 자신에게는 왜 이렇게 관심이 많은 거지?
순간, 래희는 어이가 없기도 하고 토레스가 불편해지는 기분이 들어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게 중요해?”
“아…….”
그러자 토레스는 제가 너무 무례하게 캐물었다는 생각에 민망해하며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아니, 너무 오랜만에 보는 물건이라.”
“이걸 본 적이 있어?”
그러나 토레스는 래희의 말에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마치 이걸 말해 줘야 하냐는 망설임이 담겨 있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거기에 박힌 보석에서 익숙한 기운이 느껴져서.”
“뭐?”
보석? 이 다이아를 말하는 건가?
순간 래희는 손가락의 반지를 내려다봤다. 이 다이아에서 익숙한 기운이 느껴진다니. 이게 무슨 상황이지?
“거기 고여 있는 마력, 내 애인한테서 나는 마력 향기랑 같은데 그걸 왜 네가 들고 있을까?”
토레스는 비딱한 자세로 래희를 보더니 차가운 표정으로 물었다. 온화하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변해 버렸다.
“너, 체자레 몬페라토랑 무슨 사이야?”
뭐? 체자레 몬페라토? 설마 그 체자레를 말하는 건가?
투명한 은발을 찰랑거리며 차가운 녹빛의 눈동자로 토레스는 래희를 빤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표정을 보니 이전의 모습은 모두 가식이라도 된 듯이 신경질적인 면모가 확실히 드러났다.
“체자레가 소중한 거라며 매일 품고 다니던 보석인데 네가 그것을 가진 이유에 대한 납득할 만한 답변을 내놓지 않으면 너를 가만두지 않겠어.”
토레스의 살벌한 표정에 래희는 저도 모르게 존댓말을 하며 대답했다.
“저기, 그… 체자레 몬페라도라는 사람이 혹시 롬바르나의 대공이자 마법사인 금발의 남자를 말하는 건가요?”
래희의 질문에 토레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래희는 놀란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봤다. 체자레의 애인이라니, 그렇다면 혹시…….
“혹시 당신이 그 바람의 정령 ‘제피로스’……?”
“내가 묻는 말에나 대답해.”
그, 체자레를 너무나도 사랑해서 집착하며 쫓아다녔다는 그 미친 정령? 이거 잘못 대답했다가는 질투에 눈먼 정령한테 무슨 일을 당할지 몰라 래희는 기겁하며 그를 올려다봤다.
래희는 토레스의 눈치를 보며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기, 체자레 몬페라토는 제 스승님인데요?”
아니, 게이트에서 체자레를 짝사랑하던 미친 정령을 만나다니. 지구만 좁은 게 아니라 온 세상이 좁아터진 듯했다.
래희의 대답을 들은 토레스의 눈빛이 당황스러울 정도로 반짝이기 시작했다. 마치, 짝사랑하는 사람의 흔적이 남아 있는 조카를 만난 것만 같은……?
“네가 그 꼬마구나?”
토레스는 제 얼굴을 래희에게 가까이 들이밀었다. 그러고는 점차 토레스의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다.
짧게 잘려 있던 머리는 허리까지 길어지고 얼굴선이 부드럽게 변하며 전체적인 몸의 굴곡이 여성의 것으로 변했다. 물론 그렇다고 그가 여성으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저, 체자레의 취향대로 외관이 변했을 뿐이었다.
그러고는 기대감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서, 꼬마야. 우리 자기는 지금 어디서 뭘 하는지 알고 있니?”
어… 헤어진 지 12년이 지났는데 알 리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