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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네 빵집은 언제 오픈하나요-73화 (73/120)

73화

래희가 게이트에 휘말린 날은 이미 다른 구역에서 A급 게이트가 두 개나 더 발생해 헌터들이 대거 투입된 상황이었다.

아무래도 요즘 들어 게이트가 자주 발생하는 데다 난이도가 높아져서 단시간에 게이트를 클리어하기 위해 고등급 헌터 몇을 남겨 두고는 많은 수의 헌터들이 한꺼번에 투입되었다.

그래서인지 래희가 휘말린 게이트에는 투입할 인원이 모자라 난리가 난 상황이었다.

“실종자는 몇이나 되지?”

“한 명입니다.”

“한 명?”

보통 도심 한가운데에서 발생하는 돌발 게이트에는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게이트에 휘말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한 명이라니?

조사를 나온 던전 관리청 직원이 목격자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자 인터뷰를 하고 있던 남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는 버스 기사입니다. 버스에 탄 승객 중에 헌터 분이 계셨는지 버스를 멈춘 뒤 내려서는 지나가던 길에 휘말릴 것 같은 시민들을 모두 게이트 주변에서 밀어냈는데…….”

밀어냈다고? 고등급 헌터인가?

그때 그 헌터가 누군지 안다는 한 여자가 조사관에게 말했다.

“저, 그 사람 누군지 알아요! 청해 길드 유튜브에서 봤어요. 이름이 뭐였더라… 권 씨였던 것 같은데…….”

“권래희 말입니까?”

그때, 바리케이드가 처진 줄을 넘어 한 남자가 들어오며 대답했다.

조사관은 허가 없이 넘어오는 이를 막으려다 그 사람의 얼굴을 발견하고는 그에게 인사했다.

“김주현 헌터님?”

그에게 다가오는 남자는 백화 길드 소속의 김주현 헌터로 자주 봐 온 얼굴이었다.

김주현의 말에 여자가 고새를 세차게 끄덕이며 동의했다.

“맞아요, 그 이름! 이번에 류정우 헌터랑 열애설 난 사람 맞죠?”

그러나 김주현은 그 말에는 대답할 가치가 없다는 듯이 무시하며 조사관에게 말을 걸었다.

“공략대 투입 계획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아, 그게…….”

지금 대부분 인원이 안전지대 1번가에 투입된 상황이라 당장 공략대를 부를 여유가 없었다. B급도 아닌 A급 게이트에 들어갈 수 있는 고등급 헌터는 몇 없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지금 휘말린 사람도 헌터라고 하지 않았나? 저 여자의 말을 들어보니 B급은 되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수많은 민간인이 휘말린 1번가보다는 생존 확률이 높았다. 나름 고등급 헌터니 조금만 더 버티면 되지 않을까. 고작 한 명을 구하기 위해 1번가 쪽 배정된 헌터를 부르는 건 손해 같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런 그의 생각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건지 그를 바라보는 김주현의 눈빛이 매우 싸늘했다. 던전 관리청 직원은 저도 모르게 그 자리에서 굳은 채로 움직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안 돼, 죽을 거야.’

순간적으로 죽음의 공포가 눈앞에 펼쳐졌다. 그리고 잠시 뒤 눈앞에서 김주현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그제야 공포에서 벗어난 남자는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지금, 민간인을 위협한 건가.’

A급 헌터가 비각성자를 위협한 것에 대해 따지려 고개를 들었지만, 그 어디서도 김주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이미 김주현은 게이트 안으로 들어간 뒤였다.

[뉴스 속보] 안전지대 10번가에서 A급 게이트 발생. 실종자는 한 명으로 현재 공략대 투입 예정이 없어…….

- 미친 거 아님? 공략대를 투입 안 한다고?

└실종자가 더 많은 곳이 먼저라고 봄. 지금 A급이 동시에 여러 개 생긴 건데 당연히 한 명 실종이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거 아님?

└싸패임? 그 한 명은 같은 시민 아니야? 사람 목숨에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게 어딨음?

- 실종자가 헌터라서 투입을 늦게 한다는 말도 있던데?

└A급?

└ㄴㄴ 그것보다는 아래.

└그럼 구해야 하는 거 아님? 헌터라는 이유로 오래 버틸 거라 생각하면서 안 구해 주는 건 너무한 것 같은데. 이거 헌터 역차별임.

- 실종자 비전투계란다.

└ㅅㅂ 근데도 안 구한다고? 와, 앞으로 게이트에 혼자서 실종되면 인력 아까우니 안 구해 주겠다는 소리로 들리는데?

└그건 너무 나간 거 아님?

└그게 아니면 지금 이 상황은 어떻게 설명할 거임?

헌터넷 익명 게시판

[잡담] 10번가 A급 실종자 권래희 헌터라는데?

목격자가 권래희 헌터가 민간인들 게이트 안 휩쓸리 게 다 밀어내고 혼자서 게이트에 휩쓸렸다고 증언함. 내가 가까이에 서 있어서 들을 수 있었음.

- 그거 찐임? 그러면 공략대 넣겠다는 게 왜 지지부진한지 알겠네.

└우리 사장님 비전투계임. B급 비전투계가 어떻게 A급에서 버팀?

- B급 비전투계라 들었는데 아니었나? 주변 민간인들을 어떻게 다 보호할 수가 있었지?

└숨겨 둔 스킬이거나 새롭게 얻은 거겠지.

- 류정우 헌터는?

└갑자기 류정우는 왜?

└자기 여친 게이트에 휩쓸렸는데 류정우는 그것도 모르고 10번가 게이트 투입됐잖아. 나중에 나왔는데 구출 안 되고 실종 상태라 하면 개빡치겠는데?

└그 열애설을 믿음? 믿을 게 따로 있지 ㅂㅅ아.

* * *

그 시각, 류정우는 10번가에서 발생한 게이트를 클리어하기 위해 투입된 상황이었다.

S급 3명, A급 10명.

실종자가 워낙 많은 상황이라 현재 상황에 동원될 수 있는 헌터들은 모두 동원된 상황이었다.

“현재까지 실종자 총 47명 중 사망자 5명 실종자 42명 전원 구출을 완료했습니다. 이제 어딘가에 있을 보스만 잡으면 끝이 나겠군요.”

이례적으로 실종자가 워낙 많은 상황이라 공략보다는 구출에 초점에 맞춰 공략대가 투입되었다. 게이트 발생 12시간. 대부분 민간인이 휩쓸려 사망자가 발생하긴 했지만 A급 게이트에서 그 정도면 양호한 편이었다.

그리고 그때, 저 멀리서 실종자를 게이트 밖으로 안내한 후 돌아오는 A급 헌터 최재휘가 보였다. 힐러는 전투에 필요한 인원이 아니긴 했지만 보고되지 않은 실종자 발견 시 필요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최재휘는 다시 공략팀으로 돌아왔다.

최재휘가 점차 가까워지자 윤해주는 다시 인원을 정리해 게이트를 공략할 준비를 시작하려 했다. 그러나 그들 무리에 막 합류한 최재휘의 창백한 얼굴을 보자 그녀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최재휘 헌터, 무슨 일이 있었나요?”

“아, 그게…….”

최재휘는 입을 열려다 말고 윤해주의 옆에 서 있는 류정우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같은 멤버였음에도 늘 여유롭고 능글맞은 최재휘의 당황한 모습을 볼 일이 드물었던 류정우가 눈썹을 꿈틀거리며 그에게 물었다.

“뭔데?”

“형.”

이제는 헌터들 모두가 그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최재휘는 지금 상황에 자신이 밖에서 들은 소식을 그들에게, 특히 류정우에게 전해도 될까 고민하다 더 시간을 지체할 수 없어 힘들게 입을 열었다.

“밖에 이미 A급 게이트가 두 개가 더 발생했다고 합니다.”

“두 개나?”

누군가의 탄식 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지금 한국 서울 한복판에 A급 게이트가 세 개란 소리야?”

“아뇨, 서울 두 개, 부산 한 개요. 부산에는 윤재언 헌터와 1세대 헌터들이 투입되었다고…….”

“그럼 나머지는?”

그 질문에 최재휘가 눈을 굴렸다. 이걸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러나 최재휘는 류정우가 알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현 상황을 설명했다.

“나머지 하나는 청해 길드 근처에 생겼는데, 실종자가 한 명인 데다 B급 헌터라서 지금 당장 공략대를 무리해서 투입하지는 않을 거라고…….”

“그게 말이 돼? 실종자가 헌터라고 당장 급하지 않아 미루다니?”

최재휘는 다른 이들의 말을 무시하며 류정우의 두 눈을 똑바로 보면서 말했다.

“실종된 헌터가 권래희 씨래요.”

“뭐?”

오히려 그 말에 놀란 사람은 다른 헌터들이었다. 그리고 모두들 저도 모르게 류정우의 얼굴을 확인했다. 얼마 전 접한 기사에 혹시나 하는 생각에 그를 돌아본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곧바로 놀랄 수밖에 없었다.

놀라긴커녕 작은 동요 한번 보이지 않던 류정우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류정우는 던전 공략 중 팀을 이탈하면 안 된다는 걸 알았지만 저도 모르게 게이트 입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류정우! 정신 차려, 지금 나간다고 해도 허가 없이 게이트로는 못 들어가!”

“제가 몸만 집어넣으면 들어가지는 게이트를 왜 못 들어간다고 하는 겁니까.”

“아니, 형! 이거 탈영이야! 우리 공략 중일 때는 군인으로 분류되잖아!”

최재휘가 류정우의 몸을 최대한 끌어안고 붙잡으며 윤해주와 함께 나가려는 그를 막았다.

“탈영하면 문제 생기는 거 알잖아! 목줄 차고! 안 돼 정우형, 형이 그 꼴 당하게 둘 수는 없어. 형이 그걸 못 봐서 그래 얼마나 끔찍한데!”

“그래요, 류정우 헌터. 이성을 찾고 우리 생각이란 걸…….”

“지금 상황에 제가 어떻게 생각을!”

두 사람으로는 류정우를 막기에는 역부족해 보이자, 다른 헌터들까지 달려들어 그가 게이트 밖으로 나가려는 걸 막으려 시도했다.

그리고 그때, 류정우의 발걸음이 제자리에서 멈췄다.

모두들 당장 달려나갈 것처럼 굴던 류정우가 제자리에 서자, 얼떨떨해하며 그를 바라봤다. 류정우의 얼굴이 어딘가에 시선을 고정한 채 멍하니 서 있었다.

“뭔데? 무슨 일이야?”

갑자기 아까와는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이자 그에 당황한 다른 헌터들이 류정우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곳엔 저 멀리서 점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그들을 향해 점차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사람?”

조그마한 사람 형태의 그림자가 눈을 뚫고 그들을 향해 열심히 허우적거리며 다가오는 게 보였다.

“실종자는 다 구출했다면서요?”

“신고가 안 된 사람이겠지.”

“여기서 혼자서도 살아남아서 걸어오는 사람이면 헌터인데……?”

그리고 얼추 사람의 얼굴이 육안으로 구분이 될 정도가 되자 모두 경악에 찬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절대로 이곳에서 발견될 수가 없는 사람이 그들 앞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 사람, 권래희 헌터 아니야?”

“맞는 것 같은데?”

다른 곳에서 실종되었다는 사람이 왜 이곳에서 발견이 되는 거지?

모두 지금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아 멍하니 굳은 채로 래희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굳은 헌터들 사이로 류정우가 빠른 걸음으로 래희를 향해 걸어갔다.

“잠시만! 저거 몬스터일 수도……!”

그러나 류정우는 그런 그들의 말을 무시하며 래희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언젠가 입었던 두꺼운 빨간색 망토를 걸치고 추운 듯 빨개진 코를 훌쩍거리며 걸어오는 사람은 누가 봐도 몬스터가 아니라 권래희가 맞았다.

래희는 누군가가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지자 땅바닥에 고정했던 시선에서 고개를 들어 올렸다.

“…류정우 씨?”

그곳에선 당장이라도 울 것만 같은 류정우가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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