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헌터네 빵집은 언제 오픈하나요-72화 (72/120)

72화

* * *

다행히 류정우의 말대로 두 사람과 관련된 이야기는 금방 다른 이슈에 의해서 덮이고 말았다.

물론 그다음 이슈도 결코 좋은 소식은 아니었지만.

“이제 어쩌지?”

래희는 멍하니 제자리에 선 채로 중얼거렸다.

왜? 왜 자꾸 나한테만 재앙이 닥치는 것만 같지?

분명 평화를 얻어 냈다고 생각했는데 래희가 지금 서 있는 곳은 A급 게이트 한복판이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길드 건물로 가는 길이었는데 눈 깜빡할 사이에 던전 안에 떨어져 있으니 황당했다.

‘으… 그런데 왜 이렇게 추워.’

아직 바깥은 그렇게 추운 편이 아니라 가벼운 외투 하나만 걸치고 나왔을 뿐인데 던전 안은 지독하게도 추웠다.

래희는 인벤토리를 열어 언젠가 성좌에게 받은 망토를 꺼내 들고는 밖에 걸쳤다.

“휴… 이제 좀 살겠네.”

[성좌 ‘운명의 길잡이’가 자기 같이 계약자를 아끼는 성좌는 없을 거라며 으스댑니다.]

아, 네.

래희는 성좌의 자랑에 적당히 대꾸하며 주변을 살폈다.

숲속?

그녀가 서 있는 곳은 하얗게 눈으로 뒤덮인 숲속이었다. 사방이 빽빽하게 하얗고 길쭉한 나무로 둘러싸여 있어 그녀가 지금 어디쯤 위치해 있는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해가 떠 있긴 했지만, 하늘이 구름으로 뒤덮여 있어 동서남북을 구분하기도 어려웠다. 물론 게이트 안에서는 그것도 의미가 없기는 했지만.

‘이런 데서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그때, 그녀의 뒤에서 무언가 눈 위를 뽀드득거리며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본능적으로 몸이 굳으며 잔뜩 긴장한 채 뒤를 돌아보자 그곳에는 어벙한 표정의 ‘리프’가 서 있었다.

“리프?”

집에 있어야 할 애가 왜 여기에 와 있는 거지?

그러나 리프는 제 이름을 부른 게 맞느냐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마치 자신의 이름은 리프가 아니라는 듯이.

“리프가 아니야?”

래희는 그제야 제 앞에 선 어린 세계수를 똑바로 바라봤다. 리프보다는 조금 더 풍성한 나뭇잎을 보니 그는 리프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 어린 세계수의 어깨 위로 새카만 털과 신비로운 푸른 눈을 가진 고양이 한 마리가 걸터앉아 있었다.

“냐―”

세계수와 고양이?

래희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조합에 당황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고양이나 세계수가 머물 만한 곳은 없어 보이는데.’

자신도 세계수 하나를 키우고 있는 입장에서 어린 세계수는 바르게 성장하기 위한 조건으로 뿌리를 내릴 적당한 토양과 온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물론 오전에는 두 발로 빨빨거리며 걸어 다니기는 했지만, 밤이 되고 잠이 들 때면 제자리에 뿌리를 내리고 성장할 준비를 했다.

하지만 매서운 추위와 눈으로 쌓여 있는 이 숲에서는 그건 불가능해 보였다.

“인간?”

그때, 누군가 그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래희는 주변을 둘러보며 목소리의 주인을 찾았으나 숲속에는 고양이 한 마리와 세계수 한 그루 그리고 래희 자신을 제외하고 다른 생명체는 보이지 않았다.

“인간, 널 부른 건 나야.”

“뭐?”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세계수가 멀뚱히 서 있었다.

‘세계수가 말을?’

우리 리프는 말도 제대로 못 해서 맨날 울상인데?

“널 부른 건 나라고! 냥!”

그리고 순간, 래희는 세계수 어깨 위에 앉아 그녀에게 신경질을 내는 고양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어?”

고양이가 말을 해?

래희는 방금 자신이 들은 말이 믿기지 않아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말소리에 맞춰서 입을 벙긋거리는 모양새를 보아하니 정말로 자신에게 말을 건 게 고양인 게 분명해 보였다.

“고양이인데 말을 하네?”

“냥! 말하는 고양이 처음 보냥! 산골에서라도 살다 온 거냥!”

고양이가 하얀 마시멜로처럼 보이는 손을 허공에 쭉 뻗으며 소리쳤다. 마치 래희를 향해 냥냥 펀치를 날리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였다.

래희는 저도 모르게 고양이의 손을 멍하니 바라봤다. 고양이가 하는 말 따위는 그녀의 귓가에 제대로 들려오지 않았다. 래희는 저 하얗고 조그만 발아래에 숨겨진 젤리를 너무나도 만져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너!”

그때, 멍하니 자신을 내려다보는 래희를 향해 고양이가 말했다.

“마법사냥? 마침 마법사가 필요했는데 잘됐다냥.”

“뭐가?”

래희가 도와주겠다고 대답도 하지 않았는데 고양이는 자신이 마법사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고양이의 이름은 냐옹이. 좀 직관적인 이름을 가지긴 했지만, 사랑하는 주인님이 지어 준 이름이라며 래희에게 자랑했다.

냐옹이는 단순한 고양이가 아닌 마법 동물로 사람과 대화가 통하게 만들어진 반려동물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아, 마법 동물.’

예전에 한번 체자레에게 들어본 적이 있긴 했지만 체자레는 고작 말밖에 할 줄 모르는 마법 동물 따위보다는 그가 그녀에게 친구라고 안겨 준 몬스터인 ‘곰순이’가 훨씬 나을 거라며 비웃었던 것 같기도 했다.

아무튼 냐옹이는 자신의 주인이 외출을 다녀오는 동안 집을 지킬 의무가 있었는데, 자신이 잠든 사이 주인님이 힘들게 구해 둔 식량들을 죄다 도둑놈들에게 빼앗겼다고 설명했다.

“그러니까 나더러 도둑을 잡아 달라고?”

“그래, 마법사라면 뭐든 가능하다고 주인님이 예전에 말한 적이 있다냥.”

그러나 래희는 냐옹이의 열정적인 설명에도 시큰둥한 태도로 대꾸했다.

“내가 왜?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네가 도둑맞은 걸 내가 찾아 주면 뭘 해 줄 건데?

래희의 냉정한 말에 냐옹이의 당당한 모습이 무너졌다. 마치 이렇게 단호하게 거절당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듯이.

“냐아옹. 주인님께 실망을 안겨 드릴 수는 없어…….”

냐옹이의 뾰족한 귀가 금세 뒤로 젖혀지며 눈망울이 올망졸망해졌다. 마치 언젠가 어릴 적 재미있게 보았던 애니메이션 속 장화 신은 고양이처럼.

래희가 아무런 반응이 없자 고양이의 커다란 눈망울에서 눈물이 방울방울 맺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냐옹이의 태도에 함께 있던 어린 세계수의 푸릇푸릇한 잎사귀도 축 처졌다.

“아니, 잠시만.”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죄지은 것만 같잖아.

[성좌 ‘운명의 길잡이’가 마법 동물인 고양이는 영악한 동물이라며 주의를 줍니다.]

그러나 냐옹이는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제 할 말만을 계속해서 이어 말했다.

“나는 이제 쓸모가 없어서 버림받을 거야……. 쥐 한 마리도 제대로 못 잡는데 주인님이 왜 나를 키우겠어…….”

아니, 뭘 못한다는 이유로 반려동물을 버리는 인간이 더 이상한 거 아니야?

그러나 래희는 냐옹이의 기대와는 다르게 강한 마법사가 아니었으므로 도둑을 잡아 주는 그런 것들을 해 줄 수가 없었다.

“미안한데, 마법사긴 한데 강하지는 못해서 도둑은 못 잡아 줘.”

“마법사가 다람쥐도 못 잡는다는 말이냥.”

아니, 도둑이 다람쥐였어? 그래서 쥐도 못 잡는다고 한 거였나? 그런데 다람쥐는 겨울이면 겨울잠에 들 텐데?

냐옹이가 실망한 눈빛으로 그녀를 올려다보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래희는 귀여운 것에 약했으므로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했다.

그리고 그때, 래희의 눈앞에 요란스러운 소리와 함께 퀘스트 창이 나타났다.

[돌발 퀘스트: 냐옹이를 도와주자.]

겨울잠에서 깨어난 다람쥐에게 가진 식량을 모두 도둑맞은 냐옹이.

이대로 주인님이 돌아온다면 냐옹이와 주인님은 이번 겨울 동안 식량이 없어 굶게 되겠군요.

냐옹이를 도와주고 고양이의 보은을 받읍시다.

- 냐옹이네 식량 창고 채워 주기 (0/1)

- 완료 보상: 고양이의 보은

- 실패 페널티: 게이트 조난 1년

래희는 갑작스러운 퀘스트의 등장에 매우 당황스러웠다.

안 그래도 못 끝낸 퀘스트가 많은데 이것까지 추가하라고?

게다가 게이트 조난 1년은 뭐야. 나더러 이 추운 곳에서 얼어 죽으란 건가?

그러나 래희는 눈물을 흘리며 서럽게 우는 냐옹이를 보자 마음이 약해졌다.

“그래서 냐옹아. 네 집은 어딘데?”

“도와줄 거냥?”

“음… 조금 다른 방식으로?”

“어떻게?”

래희는 인벤토리를 열어 냐옹이에게 빵 하나를 던져 줬다.

“이걸로?”

냐옹이는 의심의 눈빛으로 래희를 올려다보더니 이내 제 손에 쥔 빵을 내려다봤다.

킁킁거리며 잠시 빵의 냄새를 맡는가 싶더니 의심 가득한 표정으로 한입 베어 물었다.

‘아, 잠시만. 고양이가 빵을 먹어도 되는 건가?’

말을 하는 고양이라 아무 생각 없이 빵을 건네줬는데 혹시라도 탈이 날까 래희는 걱정이 되었다.

[성좌 ‘운명의 길잡이’가 원래 마법 동물은 음식을 가리지 않는다고 조언합니다.]

아, 다행이네.

래희는 긴장한 채 냐옹이의 표정을 살폈다. 냐옹이는 제가 먹은 소금빵을 입 안에서 음미하더니 꿀떡 삼키고는 놀란 표정으로 래희를 올려다봤다.

“어때? 맛있지?”

“냐아옹! 맛있다냥! 내 짧다면 짧은 100년 묘생 동안 이런 맛은 처음이다냥!”

……?

래희는 냐옹이의 말 중간에 조금 이상한 소리를 듣긴 했지만 이내 크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뭐, 이곳의 시간 개념은 지구와 다를 수도 있겠지. 고양이가 어떻게 100년을 살겠는가.

“더 많이 줄 수 있어. 도둑은 못 잡아도 네 주인님 식량 창고는 다시 채워 줄 수 있으니 걱정 마.”

래희는 냐옹이에게 집으로 안내해 달라고 말하며 빵 하나를 더 건네주었다. 물론 옆에서 부럽다는 듯이 바라보는 세계수의 손에도 하나 쥐여 주었다.

냐옹이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소금빵을 베어 물고는 집을 향해 앞장서며 걸어 나갔다.

* * *

[축하합니다! 퀘스트 ‘냐옹이를 도와주자!’를 완료했습니다!]

래희는 미리 만들어 둔 빵들을 꺼내어 냐옹이의 안내에 따라 식량 창고에 빵을 채워 넣었다. 이 정도면 세 명이서 충분히 석 달 정도는 버틸 수 있을 정도의 양이었다.

“고맙다냥! 꼭 보답하겠다냥!”

그리고 뒤이어 어디론가 뛰어가더니 입에 무언갈 물고 래희에게로 왔다.

손을 내밀자 냐옹이는 그녀의 손 위에 물고 온 물건을 내려놓았다. 그녀의 손에 올려진 건 다름 아닌 작은 주머니였다.

래희가 의문이 가득한 표정으로 주머니를 열자 그 안에는 귀걸이가 한 쌍이 들어 있었다. 은색의 귀걸이에는 붉은빛의 보석이 박혀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