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그동안 전체적인 스탯 상승과 스킬 등급 상승 덕분인지 래희는 류정우와 함께 이전보다도 더 손쉽게 게이트를 클리어할 수 있었다.
“그럼 이제… 리프가 움직일 차례네요?”
래희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들의 뒤에서 몬스터를 피해 숨은 채 졸졸 따라오던 리프가 앞으로 나섰다.
그 누구도 리프에게 무언가를 지시하지도 않았지만, 리프는 당연하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두 사람 앞으로 걸어 나와서는 눈을 감으며 두 손을 앞으로 뻗었다.
리프의 손에서 황금빛 물결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와…….”
“이런 식으로 정화를 한다는 의미였나.”
류정우는 자신의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흥미를 보이며 주변을 살폈다.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황금빛 물결이 주변 환경에 생기를 불어넣기 시작했다.
메말라 갈라져 있던 던전의 토양은 수분을 회복한 듯 눈으로만 봐도 부드럽고 촉촉한 모양새로 변했고, 그 위로 봄의 새싹처럼 푸릇푸릇한 풀들이 자라기 시작했다.
[게이트 ‘메마른 테라나 숲’이 세계수의 축복을 받아 정화됩니다.]
풀 한 포기 보이지 않던 공간이 순식간에 울창한 숲으로 변했다.
래희는 변화된 환경에 감탄하며 이번에 받은 퀘스트 창을 열었다.
[공동 서브 퀘스트 ‘우리 아이(세계수) 바르게 키우기’]
무서울 게 없다는 중2병이 다가온 우리 세계수.
세상에 기여하는 경험을 통해 올바른 가치관을 가진 세계수로 키웁시다.
- 게이트 정화하기 (1/20)
- 완료 보상 : 세계수의 성장
‘이제 앞으로 19번만 더 게이트를 돌면 되겠네.’
빨리 리프를 성장 완료시켜야 공동 퀘스트도 끝이 나고 말이야.
* * *
류정우와의 ‘구오빠’ 일은 흐지부지되어 넘어가 버리고 유성×밀키 카피 상품 사건도 해결되어 이제는 평화로운 일상만 남아 있을 거란 래희의 생각과는 달리, 문제는 다른 곳에서 일어났다.
물론 래희가 예상하지 못한 일은 아니었으나 그동안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 여겨 외면하고 손 놓고 있었기 때문에 일이 더 커진 걸지도 몰랐다.
[이슈 모음] 류정우 여친, 알고 보니 6년째 연애 중?
래희는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을 보며 이마를 짚었다. 기사 하나 정도야 별다른 문제 없이 청해 길드 선에서 손쉽게 정리된다지만 이번 경우는 달랐다.
‘XX, 사이버 렉카한테 물릴 줄은…….’
래희 자신이 덕질하던 시절에는 기껏해야 커뮤니티 게시물 정도가 다였고, 사이버 렉카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요즘에는 달랐다. 그것들은 고소를 때려도 바퀴벌레처럼 죽지도 않고 대놓고 고개를 내밀며 더 활개 치는 것들이었다.
‘이슈 모음’. 구독자 15만 명.
나름 유튜브 세계에서는 이슈 관련으로 유명한 채널이었다. 물론, 대부분 헛소리였지만.
‘6년째 연애 중이라니, 6년 동안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데 제목부터 틀렸잖아.’
섬네일엔 류정우의 얼굴과 네모난 스티커로 눈이 가려진 여자의 사진과 함께, ‘기만남? 경악스러운 류정우의 가식’ 따위의 자극적인 타이틀이 적힌 채 업로드되어 있었다.
래희는 머리가 아파 와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동영상 재생 버튼을 눌렀다.
‘무슨 개소리를 하는지 들어나 보자.’
조회 수가 벌써 10만 회라니, 개소리를 어지간히도 그럴듯하게 지껄인 듯했다. 래희는 홀린 듯이 재생 버튼을 눌렀다.
- 6년 전 만남으로 추측되는 이 팬 사인회 영상에서, 류정우가 한 여성에게…….
거기에는 래희가 류정우와 마지막으로 만났던 한 팬 사인회 동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어, 이거…….’
원래 팬 사인회는 영상으로 담아 올리는 경우가 많지만 이런 식으로 자신의 뒤통수까지 정확하게 맞춘 영상에 래희는 소름이 돋았다. 영상의 내용은 자신이 류정우와 친하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일단 열애설 대상이 나인 것까지는 밝혀졌나 보네.’
하지만 그것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내용은 없는 추측성 내용이 전부였다. 비판적인 시각이 아니라 하더라도 이 영상을 본 대부분이 그냥 팬 사인회 아무 영상이나 들고 와 억지 부린다고 생각할 만한 내용이라 문제는 없어 보였다.
-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은 들리지 않아 정확히 그때도 연인 관계였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류정우가 유난히 상대방에게 친절하게 굴었다는 점을 보면 아무 사이가 아닌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이 영상 속 마지막 옆모습을 자세히 보면 요즘 이슈되고 있는 권래희 헌터와 비슷해 보입니다. 교복을 입고 있는 걸 보면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데, 당시 권래희 헌터가 19세였다는 점을 볼 때 동일 인물로 추측할 수 있을 듯합니다. 게다가 두 사람 모두 지금 청해 길드 소속이라는 공통점과 함께, 촬영한 유튜브 영상을 보면…….
“대단하네.”
모든 문장의 끝이 추측성으로 마무리 맺어지는 것도 부끄러워서 못 할 짓일 텐데, 이렇게 열심히 영상을 만든 걸 보면 그 노력이 가상한 수준이었다.
그리고 댓글들에는 전부 그것을 꼬집는 내용이 많았다.
- ㅈㄴ 웃기네. 누가 봐도 걍 직장 동료로밖에 안 보이던데 저렇게 엮을 수 있는 것도 대단하다.
- 팬싸 영상 보면 모두에게 다 친절하던데 눈 없냐?
그러나 그 와중에도 채널의 주장이 맞다고 생각하며 간간이 악플도 올라와 있었다.
- 류정우 그럼 미자랑 사귄 거임? 개쓰레기네.
- 기사 사진 보면 누가 봐도 연인 관계 맞았음.
- 내 친구가 피에타 팬인데 권래희 헌터 당시에 팬들 사이에서 유명했다고 함.
└어떻게?
└류정우가 이름까지 아는 몇 안 되는 팬 중 한 명이라는 정도로. 류정우 광신도라 불리기도 했다던데.
- 권래희 성덕이네 개부럽다.
래희는 자신의 신상을 까내리는 댓글에 기분이 나빠졌다.
‘신고한다고 내려갔으면 벌써 다른 영상들도 다 내려갔겠지.’
허위 사실 유포든 뭐든 일단 사람들에게 퍼트려 졌으니, 늘 자신들을 쫓아다니며 괴롭혀 댈 게 분명했다.
그때, 류정우가 래희의 곁에 앉으며 휴대전화를 흘끗 보고는 입을 열었다.
“신경 쓰지 마요. 뭐, 몇 가지 빼고는 틀린 말도 없고. 가만히 있으면 대중들은 쉽게 잊을 거니까.”
그건 맞다.
다년간의 덕질 경험으로 류정우의 말이 틀린 게 아니라는 건 래희도 알았다. 다만, 그동안 평범한 일반인으로 살았던 래희는 이번 일이 도저히 적응되지 않았달까.
* * *
피에타의 오랜 팬이자 류정우의 개인 팬인 한 직장인은 오랜만에 업로드된 류정우의 문스타를 보고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jungwoo_ryu_official]
(사진)
@jungwoo_ryu_official
오랜만에 만난 멤버들과 함께.
그나마 피에타 활동을 할 때는 셀카와 함께 근황을 자주 올려 줬던 것에 비해서, 헌터 데뷔를 한 뒤에 그가 업로드한 게시글 숫자는 한 손에 꼽았다.
류정우가 이번에 올린 사진은 심지어 같은 피에타 멤버였던 최재휘와 주단오와 함께 웃으며 찍은 사진이었다.
S급 헌터가 되었는데도 멤버들과 교류를 하고 살았다니. 손절 쳤다고 뒤에서 류정우의 인성에 대해 욕하는 글을 볼 때마다 화병이 날 것만 같았는데 이번에 올라온 사진을 보니 속이 시원했다.
‘안 그래도 열애설 때문에 짜증 났었는데.’
6년 전부터 고등학생이었던 권래희 헌터랑 연인 관계였다고? 류정우의 오랜 팬으로서 그건 말이 되지 않는 소리였다.
‘얼굴에 분칠한 것들은 믿는 게 아니라니까?!’
첫날 기사를 보고 망연자실한 채 방 안에만 틀어박혀 있자 엄마가 자신의 등짝을 때리며 한 소리였다. 하지만 곧이어 권래희 헌터가 대학생일 당시 남자친구가 있었다는 대학 동기의 증언이 올라오자 정신을 차리고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올 수 있었다.
권래희 헌터가 팬들 사이에서 유명했던 류정우 광인이었다는 건 놀랄 만한 소식이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자신이 아는 그 류정우는 아이돌에 영혼을 받친 남자였기 때문에 절대로 그렇게 팬들을 기만할 행동을 할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류정우의 팬은 곧이어 주단오가 올린 게시글을 보고 표정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류정우의 얼굴만 확대되어 올라온 사진과 달리 주단오의 사진에는 전신이 모두 찍힌 채로 업로드되어 있었다.
‘어……?’
장소를 특정할 만한 사진은 아니었지만 세 사람이 서 있는 유리창 뒤로 사진을 찍어 주는 누군가의 실루엣이 흐릿하게 나와 있었다.
‘설마.’
류정우의 팬이라 청해 길드의 영상을 자주 찾아보는 그녀에게는 익숙한 실루엣이었다.
‘권래희?’
모르는 사람이 보면 누군지 특정할 수 없을 만한 실루엣이었지만 그녀는 한눈에 알아봤다.
사실이 아니라고 믿고 있긴 했지만 그래도 류정우와 열애설이 난 권래희한테 좋은 감정은 딱히 없었는데 이건 그녀를 더 짜증 나게 했다.
‘주단오, 예전부터 조심성이 없긴 했지만.’
분명 같은 사진인데 주단오의 게시물과 달리 류정우의 사진은 잘린 채로 업로드된 걸 보니 싸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아니다, 물론 굳이 잘라 올린 게 이상하긴 하지만 이번 열애설을 의식한 이유에서 잘라서 올린 거였겠지. 그동안 류정우는 이런 문제에 한해서는 칼같이 행동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주단오는 원래 생각이 없는 멤버이기도 했다. 해맑은 막내로 오냐오냐 키워져서 철저한 류정우와 달리 저렇게 실수한 걸지도 몰랐다.
‘뭐… 이제는 아이돌도 아닌데 연애 좀 할 수도 있지…….’
그래도 오랜 팬으로서 이런 열애설을 볼 때마다 심장이 덜컥거리는 건 어쩔 수 없는 문제였다.
그리고 그 연애가 사실이든 아니든 이 판에 오래 있어 본 경험으로 저런 증거도 부실한 추측성 열애설은 금방 사그라들 게 분명했다. 그래서 그녀는 인터넷에 올라온 류정우에 관한 모든 게시글과 기사를 먹금하는 걸 선택했다.
돌덕넷
[잡담] 주단오 문스타 게시글 확대하면 빵집 사장 있음.
창문에 비친 실루엣 보니까 여자더라.
근데 같은 사진인데 주단오 문스타에는 원본 그대로 올라와 있고 류정우 문스타에는 잘려서 올라온 거 보면 좀 이상하지 않음?
그렇다면 당연히 그 여자 실루엣이 빵집 사장이겠지.
- 니 같은 것들 때문에 류정우가 사진을 잘라서 올린 거 아니겠음?
└쌉인정.
- ㅅㅂ 난 아무것도 안 보이던데 실루엣이 누군지 보인다고? 꿈꿨음?
└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