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헌터네 빵집은 언제 오픈하나요-70화 (70/120)

70화

두 사람에 관한 기사는 하루도 지나지 않아 온갖 포털사이트의 메인 화면을 뒤덮었다.

그러나 웃기게도 열애설을 믿는 사람들과 아닌 사람들로 여론이 많이 갈려 있었다.

야미베어 베이커리를 방문해 빵을 먹어 봤던 사람들은 모두 기사를 부정하며 당연히 빵 때문에 가게를 찾았다 믿었다.

- 솔직히 S급 정도면 편의를 봐주겠지. 심지어 같은 길드 소속인데 따로 챙겨 달라 부탁하지 않았을까?

└나도 같은 생각.

- S급이 바쁜 스케줄 소화하는 와중에 티켓팅을 하고 낮에 가게를 방문한다고? 오히려 그랬다고 하면 열애설을 믿었다. 하지만 이번엔 아님.

- 저 집 빵 한 번 먹고 나면 못 잊음. 천하의 스급도 사장님의 축복받은 손길 아래서 무릎을 꿇게 될 정도임.

└ㅇㅇ 개같이 인정.

- 이 논리대로라면 윤재언도 가끔 목격담 뜨는데 그럼 양다리임?

하지만 류정우의 아이돌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달랐다.

- 우리 애가 자기 팬한테는 잘하기는 하는데 상대방을 저렇게 사랑스럽다는 눈빛으로 보진 않음.

└궁예임? 눈빛으로 짐작하게.

└내가 쟤를 10년을 지켜봤는데 모르겠음?

- 열애설 상대가 피에타 팬이었다는 목격담도 있는데? 심지어 류정우 찍사였다는 말도 있음.

└예전 팬싸 영상 보니까 뒤통수가 비슷한 사람이 있긴 했음.

└뒤통수? 그건 너무 억지 같은데.

└류정우가 유난히 반가워했던 팬이 한 명 있었던 것 같은데 그 팬이랑 같은 사람 아님?

* * *

사실 래희는 여전히 류정우를 좋아했다. 물론 그건 여전히 이성으로서의 감정이라기보다는 아이돌을 덕질하는 팬에 가까운 감정이었지만.

처음에 류정우에게 빠지게 된 계기는 소설 속 남자주인공이라는 것, 아니 무서울 정도로 잘생긴 저 얼굴 때문이었지만 그다음은 그의 프로페셔널함이었다.

연예인으로서 가장 중요한 재능인 신이 내려 주신 외모를 가지고 있어 남들보다 데뷔하기가 아주 수월할 거란 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디션 프로에서 이 악물고 노력하는 독기 가득한 모습을 보여 준다거나.

또는 오디션이 순위 조작 논란에 휩쓸려 하루아침에 망돌이 되었지만, 카메라 앞에서만큼은 항상 열정적이고 성실한 태도를 보여 준다거나.

심지어 그 태도는 성공한 뒤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렇게 고난 속에 마지막으로 데뷔한 그룹이 성공의 반열에 올랐어도 류정우는 항상 독기 넘치는 눈으로 무대 위에서 춤을 추며, 언제나 팬들에게는 지친 기색 하나 없이 웃어 줬다.

‘물론, 그가 회귀한 뒤부터는 동태눈이 살짝 보이긴 했지만.’

사실 그때는 이미 래희가 탈덕한 상태였으니 상관없었다.

‘아니,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탈덕이 아니라 휴덕인 것 같기도 하고.’

최근 들어 류정우를 매일 집에서 마주치니 그가 익숙해진 것 같기도 한데, 지금도 가끔은 류정우와의 거리감이 좁혀질 때마다 가슴이 쿵쾅거리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 걸 보면 구오빠를 잊었다고 생각하고 살았는데도 막상 마주했을 때 설레는 걸 보면, 휴덕은 있어도 탈덕은 없다는 말이 괜히 존재하는 게 아니지 않을까.

아무튼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구오빠?”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니까?

류정우는 기겁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는 래희에게 물으며 두 사람에게 달려드는 몬스터를 베어 냈다.

두 사람은 지금 새롭게 나타난 ‘우리 아이(세계수) 바르게 키우기’ 퀘스트를 수행하기 위해 게이트 안으로 들어온 상태였다.

이번 퀘스트는 공략이 되지 않은 게이트를 돌아다니며 세계수의 힘으로 그곳에 ‘세계수의 축복’을 걸고 다니는 게 주된 퀘스트 내용이었다.

자, 하지만 여기서 문제는 ‘미공략’ 게이트라는 것. 그건 바로 게이트 안에는 몬스터로 득실거리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니까 이렇게 지금 상황에 류정우가 ‘구오빠’ 타령이나 한가하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소리. ‘구오빠’ 소리를 들은 지 이틀이 지났는데도 그녀를 볼 때마다 작게 중얼거리는 걸 보면 어지간히도 기분이 상한 것 같았다.

“저번에는 나더러 탈덕한 게 아니었다면서?”

제가 그렇게 대답한 기억은 없는데요?

그런 래희의 생각이 표정에 다 드러났는지 류정우가 눈이 세모꼴이 되며 불퉁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도 좋아하고 있었으면서 모른 척해서 서운했다는 내 말에는 부정 안 했었잖아요?”

아니, 그때는! 래희는 지금 당장 어디로든 숨고 싶어졌다.

류정우는 지금 래희와 첫 동거를 하던 날 저녁에 한 대화를 언급하고 있던 것이었다. 그날의 기억은 영원히 묻어 두고 싶었는데 이렇게 어이없는 이유로 끄집어내다니.

래희가 계속해서 대답을 피하자 류정우의 표정이 순식간에 싸해졌다.

“정말……?”

“아뇨! 탈덕 아니에요! 그게 탈덕이라기보다는… 그래! 휴덕! 휴덕인 거죠! 저도 먹고사느라 바빴으니까…….”

처음 보는 류정우의 싸한 분위기에 놀란 래희가 생각할 틈도 없이 입에서 나오는 대로 대답했다. 그러나 횡설수설한 그녀의 대답이 믿음을 오히려 더 낮추고 있는 것 같았다.

래희는 굳이 탈덕했었다는 사실을 자신의 구오빠에게 말할 생각이 없었다. 앞으로 계속 얼굴을 보고 살 사이이기도 하지만, 구오빠 면전에 대고 탈덕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없지 않을까?

아니, 다시 생각해 보니 억울했다.

따지고 보면 이 모든 일의 시작은 저쪽이었다.

기다리겠다면서 다시 찾아갔을 땐 자신을 못 알아보지 않았는가. 물론 가수가 수많은 팬 중 한 명을 기억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분명 당시 류정우는 래희를 늘 먼저 알아보며 인사해 왔었다.

그러나 래희는 류정우의 웃고 있지만, 어딘가 묘하게 싸늘한 얼굴을 보자 오히려 그녀가 더 미안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아, 이건 영원히 ‘네 오빠’에게서 벗어나지 못할 거란 돌덕의 저주인 건가.

* * *

돌덕넷

[잡담] 최애랑 차애 구분하는 법 이거 맞음?

최애는 내 새끼 같이 느껴지는 모성애고 차애는 내 남편이었으면 하는 이상형이라며.

그러고 보니 나는 내 최애한테 내 새끼 귀여워 이러고 살았던 걸 보면 이게 맞는 말인 것 같기도 하고……. 님들은 어떰?

- 나도 그럼. 내 차애는 그룹에서 제일 잘생겼다고 느끼는데 내 최애는 그냥 이유 없이 좋음.

└2222 이거 찐임. 최애는 멋있다 라는 감정보다는 귀엽다는 말이 입에서 먼저 나오더라.

- 나는 최애가 이상형이던데? 물론 내 새끼라고 말하고 다니긴 하지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사람 사는 거 다 똑같음.

- 그, 최애한테는 연애적인 감정보다는 나는 좀 얘가 잘됐으면 이런 생각밖에 안 남.

└망돌이세요?

└ㅇㅇ ㅋㅋㅋㅋㅋㅋㅋ

사실 래희의 짐작과는 다르게 류정우는 ‘탈덕’ 때문에 기분이 상한 게 아니었다.

그는 이제 래희를 향한 자신의 감정을 명확하게 알았다. 그가 그녀를 이성적으로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휴덕’이라고 다급하게 변명하는 모습을 보니, 래희가 그동안 그를 보고 얼굴을 붉히거나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전부 ‘좋아하는 아이돌 오빠’를 향한 감정이었다는 생각이 들며, 기분이 급격하게 저조해졌다.

그래서 그는 평생 자연스럽게 해 오던 표정 관리를 할 생각도 못 한 채 생각에 잠기고 말았다.

‘아이돌을 좋아한다는 감정이 자신을 남자로서 좋아하는 연애 감정으로 변할 수 있는 건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감정이란 게 사람마다 다 다른 문제인 데다, 모 연예인의 팬으로 만난 인연에서 결혼으로 이어졌다는 유명한 이야기도 있지만, 그게 자신의 옆에 서 있는 래희에게는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닐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류정우는 문득 지난 10년을 넘게 래희의 곁에서 맴돌았다던 윤재언의 얼굴이 눈앞에 스쳐 지나갔다.

‘잘못하다간…….’

정말로 윤재언과 같은 꼴이 날지도 몰랐다.

처음엔 그와 다른 출발점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뭔가.

자신을 볼 때마다 움찔하고 자신의 눈도 제대로 못 맞추는 것을 보면 래희가 자신을 의식해서라고 그렇게 여기고 지냈다.

하지만 지금은 계속해서 단순히 ‘구오빠와 있는 게 불편해서 그렇게 어색하게 군 거였다면?’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게다가 방금 래희의 변명을 들으니 더욱더 속이 답답해졌다.

‘탈덕 아니에요! 휴덕인 거죠.’

휴덕이라니. 여전히 그를 ‘좋아하는 아이돌 오빠’로 여기고 있다는 말이 아닌가. 류정우에게 있어서 그건 전혀 반가운 소식이 아니었다.

그동안 저 혼자 가까워졌다고 착각한 게 우스웠다. 분명 남자로도 보이지 않았을 테니 그게 더 문제였다.

류정우는 이번 회차에서 처음으로 괴로워졌다. 그가 생각하기에는 좋아했던 아이돌 구오빠나 소꿉친구나 거기서 거기였다.

게다가 얼마전 집에서 다섯 시간 이상 머물러야 한다는 조건이 사라진 지금, 그가 수행하고 있는 이번 퀘스트가 마지막 공동 퀘스트가 아닌가. 이번 퀘스트가 성공적으로 끝나고 세계수의 성장이 완료된다면, 그는 상황상 래희의 집에서 자연스럽게 나와 줘야 할 것만 같았다.

‘절대 그렇게는 안 되지.’

래희가 원하는 결말은 퀘스트가 끝나면 그와의 불편한 동거도 끝이 나는 거겠지만, 그건 절대로 그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어차피 언젠가 퀘스트는 끝이 날 거고 그때가 되면 동거에 관한 이야기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 게 분명했다. 그러니 그때 가서도 그가 계속해서 그녀와 함께해야 하는 이유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류정우는 총구를 래희의 뒤로 달려드는 몬스터를 향해 겨누었다.

탕―!

농사에 필요한 일꾼이 필요하지 않나? 아니, 이건 좀 이유로는 많이 부족하다.

탕―!

아니면 밥해 주는 남자? 자신이 차려 준 아침밥은 맛있게 잘 먹었던 것 같은데.

탕―!

아니다. 그냥 연인 관계. 이게 그 어떤 핑계보다도 제일 간단해 보인다.

계속해서 자신을 견제하며 방해하는 래희의 성좌 때문에 어려워 보이기는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꼬셔 봐야지.

‘어쨌든 래희가 내 얼굴을 좋아하는 건 사실이니까.’

자신이 어떻게 하면 더 잘생겨 보이는지 잘 알았던 류정우는 자신의 외모를 이용해서라도 래희의 마음을 살 준비가 되었다.

기회가 없다면 기회를 만들면 된다.

윤재언처럼 언제까지고 저렇게 기회만 노리며 주변을 맴도는 것보단 스스로 기회를 만들어 내는 게 바로 제 방식이었다.

그녀를 노리는 이들이 넘쳐나는 것 같으니 가만히 있다가는 닭 쫓던 개 신세를 면하지 못할 게 분명했다.

류정우는 앞으로 래희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릿속으로 계획을 세우며 주변을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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