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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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스냅의 기자 구지필은 최근 유성×밀키 콜라보 사건으로 유명해진 ‘헌터 권래희’를 취재하기 위해 그녀가 운영한다는 가게 ‘야미베어 베이커리’를 찾았다.
‘야미베어 베이커리’의 카피캣 상품으로 인해 생긴 부작용 사태를 권래희가 자신의 능력으로 해결했기에, 그녀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했고 그에 많은 기자와 방송계에서 그녀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의 소속인 청해 길드는 수없이 쏟아지는 인터뷰나 섭외 요청을 거절했고 그래서 따로 그녀를 만나서 설득해 볼 생각이었다.
‘이번 인터뷰를 단독으로 따내기만 한다면 진급은 따 놓은 당상이야.’
게다가 보너스까지 노려볼 수도 있겠지.
권래희에 대한 소개 영상이 청해 길드 공식 유튜브에 업로드되기는 했지만, 아이템 제작 장인과 마찬가지로 그녀가 만든 빵에 특수 효과가 부여된다는 이야기만 소개되어 있을 뿐 별다른 이야기는 없었다.
그래서 구지필은 요즘 상승세인 권래희를 단독으로 인터뷰하며 세세한 것까지 취재하는 걸 목표로 야미베어 베이커리의 영업이 마감하는 시간에 맞춰 그녀의 가게로 빠르게 출발했다.
하지만 취재 요청을 하기 위해 야미베어 베이커리 근처에 주차했을 때, 그는 차에서 내릴 수 없었다.
익숙한 얼굴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저거 류정우 아니야?”
큰 키에 멀리서 봐도 눈에 띄는 잘생긴 외모. 못 알아볼 수 없는 얼굴이었다.
‘이 시간에 여기에?’
휴대전화를 들어 화면 위 시간을 확인하자 거기에는 오후 7시라고 적힌 화면이 나타났다.
“흠…….”
워낙 유명 인사에다가 같은 길드 동료니까 따로 챙겨 주는 것일 수도 있지.
하지만 한때 오랫동안 연예부 기자로 일했던 그의 직감이 그게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구지필은 카메라를 들었다.
‘뭐, 어쨌든 헌터나 아이돌이나 공인이라는 건 마찬가지니까.’
유명인들은 원래 모두 사생활이 노출되는 걸 각오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얼마 뒤, 가게의 유리창으로 두 사람이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가게 사장으로 보이는 여자와 류정우가 마주 보고 앉아서 빵을 먹는 듯했다.
구자필은 저도 모르게 카메라를 들어 올렸다.
카메라 뷰파인더 너머로 류정우의 웃는 모습이 보였다.
‘이거… 돈 좀 되겠어.’
그는 두 사람이 정말 연인 사이든 아니든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단지 자극적인 기사로 며칠간이라도 재미를 볼 생각만 할 뿐.
심지어 헌터가 된 이후 공식 석상에서도 저렇게 환하게 웃는 걸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필히 이 사진이 돈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 *
래희는 자신의 가게에 찾아온 의외의 인물에 놀라 그저 눈만 동그랗게 뜨며 그들을 주시했다.
“네가 저번에 사다 준 빵이 여기 거라고 했지?”
“그래, 그런데 그때 샀던 건 없네.”
손님이 거의 다 빠져나가고 몇 명 남지 않았을 때, 키가 큰 남자 두 명이 마지막 번호인 400번 번호표를 들고서 가게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두 사람 모두 모자를 눌러쓰고 마스크까지 쓰고 있어서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그런데도 래희는 두 사람의 눈을 보자마자 그들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와우…….’
그들은 바로 류정우의 전 동료들이자 피에타의 멤버인 최재휘와 주단오였다.
눈을 제외한 얼굴을 모두 가렸음에도 특유의 연예인 다운 아우라가 사라지지는 않는 건지 래희뿐만 아니라 가게 안에 남아 있던 나머지 손님들마저 그들을 흘끗거렸다.
‘사슴이랑 고양이가 왔네.’
래희는 저도 모르게 피에타를 덕질하던 시절 맴버들을 부르는 방식으로 그들을 지칭했다.
그때, 래희는 갑작스럽게 고개를 돌린 최재휘의 갈색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순간적으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그대로 그 자리에 굳어 있자, 최재휘는 그녀를 향해 한 번 눈웃음을 지어 보이고는 다시 시선을 빵이 비치된 진열대로 옮겼다.
‘…뭐지?’
어쩐지 그 웃음이 그녀를 놀리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순간 래희는 그와 마주했던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
‘오랜만이었어요.’
착하고 순한 사슴에서 여우의 모습이 잠시 겹쳐지던 순간.
그래서 래희는 저를 보고 웃는 최재휘의 방문 의도에는 단순히 빵을 사러 온 것만은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장님, 계산해 주세요.”
나머지 손님들이 마저 가게를 떠나가는 사이 한참을 고민하던 주단오는, 얼마 남아 있지 않은 빵들을 둘러보다 결국, 결정했는지 몇 개를 쟁반 위에 올리고선 카운터로 다가왔다.
래희의 가게 손님들은 대부분이 각성자였지만 주단오는 각성자가 아니었다. 저번에 한 번 최재휘가 사다 준 래희의 빵을 맛본 후로 그 맛을 잊지 못해 이곳을 찾은 것이었다.
주단오는 래희가 빵을 계산하는 동안 가게 안의 손님들이 모두 빠져나간 걸 확인한 뒤에, 모자를 벗고선 머리를 한번 쓸어 넘겼다.
평소 모자 쓰는 걸 답답해하는 편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기회가 있으면 무조건 모자를 벗어 던지곤 했다.
그러고는 래희가 결제한 그의 카드를 돌려줄 때, 주단오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사장님, 정우형이랑은 무슨 사이예요?”
[성좌 ‘운명의 길잡이’가 뜬금없는 소리에 놀라 모니터 앞으로 뛰어옵니다.]
“네?”
갑작스러운 질문에 놀란 래희가 질문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대답했다.
그때, 주단오의 옆에 있던 최재휘가 입을 열었다.
“그게, 조금 전에 가게에 들어오기 직전에 기사가 하나 떴거든요.”
“네?”
래희의 어리둥절한 모습에 주단오가 자신의 휴대전화 화면을 들어 올리고는 무언가를 찾는 듯 뒤적이다 그녀의 눈앞에 화면을 내밀었다.
그리고 래희는 휴대전화 화면 위로 나타난 기사의 제목을 읽었다.
[헌터스냅] S급 헌터 류정우, 핑크빛 열애 중? 상대는 바로 같은 길드 소속의 헌터?
‘이게 뭐야?’
그리고 그 아래로 상호가 가려져 있는 분홍색 가게 창가를 찍은 파파라치 컷이 업로드되어 있었다.
사진 속의 야미베어 베이커리의 창가에는 류정우가 갈색 머리의 여성 앞에 앉아 밝게 웃으며 대화를 하고 있는 장면이 펼쳐져 있었다.
얼굴이 나와 있지 않았지만, 그녀는 사진 속 여성이 누군지 바로 알았다. 절대 몰라볼 수가 없었다.
사진 속 류정우 앞에 앉아 있는 여자는 바로 권래희, 자신이었다.
래희는 주단오가 보여 준 기사를 보고 기겁했다.
“왜, 언제……?”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린 래희는 저도 모르게 다리에 힘이 풀려 제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래희의 이런 격한 반응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주단오가 놀라며 그녀에게 다가왔다.
“괜찮아요?”
중저음의 굵직한 목소리가 래희의 머리 위로 들려왔다. 그녀는 제게 말을 걸어오는 주단오를 멍하니 올려다봤다. 헝클어진 검은 머리와 고양이 같은 눈매에는 당황스러움이 잔뜩 담겨 있었다.
래희는 떨리는 주단오의 눈동자를 조용히 응시했다.
괜찮을 리가.
하지만 입이 굳은 듯 움직이지 않아 그녀는 주단오의 질문에도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어… 이런 반응은 예상하지 못했는데……?”
‘뭐?’
그러나 다시 들려오는 주단오의 목소리에 래희는 황당한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예상하지 못한 반응이라니?
주단오는 래희의 주름진 미간을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로 제 할 말만 이어 나갔다.
“아니, 사장님이라면 좋아할 줄 알았죠.”
[성좌 ‘운명의 길잡이’가 황당해합니다.]
이건 또 무슨 개소리입니까?
자신에 대해 얼마나 안다고 저런 말을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이내 래희의 머릿속에서 하나의 생각이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갔다.
‘에이, 설마… 그게 몇 년 전인데…….’
래희가 자신의 생각을 부정하며 고개를 돌리자 래희는 5년 만에 만났어도 그녀를 알아본 최재휘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최재휘는 가게 안에 그들 말고 다른 누군가가 있는지 주변을 살피다 희우를 발견하고는 멈칫했다.
하지만 희우의 얼굴이 래희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자 그녀의 남동생이라 판단해 안심하고는 래희를 내려다보며 싱긋 미소 지어 보였다.
“그럼, 이제 정우형 안 좋아해요?”
[성좌 ‘운명의 길잡이’가 저런 말은 무시하라고 소리칩니다.]
[천사처럼 생겼으면서 사탄 같은 발언을 한다며 부들댑니다.]
아니, 저보다 더 흥분한 것 같은데 좀 진정하시고요. 래희는 성좌의 메시지를 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저 질문에 대답하는 것보다 시끄럽게 눈 앞을 가리는 성좌부터 달래야 할 듯했다.
래희가 분노의 키보드질을 멈추지 못하는 성좌를 달랠 동안, 그녀의 말 없는 모습을 오해한 최재휘가 약간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 죄송해요. 탈덕하신 거였구나.”
어쩐지 돌아온다더니 수능이 끝난 뒤 열린 팬싸에서도 안 보이더라. 저는 재수라도 하시는 줄 알았죠. 형이 기억하는 팬은 그쪽밖에 없었는데…….
최재휘의 탈덕이란 단어에 꽂혔는지 주단오가 상처받았다는 눈빛으로 그녀를 보며 말했다.
“탈덕? 사장님,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예전에 분명히 우리 맏형이랑 결혼할 거라고 그랬잖아요… 나 분명 그때 사장님이 입었던 그 교복 색깔도 기억하는데? 회색에 하늘색이 섞였던가…….”
“아니, 제가 언제…….”
이번만큼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말이라 래희는 주단오의 말에 곧바로 반박했다. 물론, 설사 제가 그런 말을 했다고 해도 교복 입던 10대 돌덕 시절의 이야기인데 그걸 그렇게 진짜로 받아들였다고?
물론 생각이 다 드러나는 래희의 표정이 재밌어서 두 사람이 그녀를 놀리고 있었던 거지만, 안타깝게도 래희는 그걸 눈치채지 못했다.
오랜만에 만난 반가운 팬을 놀리는 게 재밌었던 주단오는 그들 뒤에 류정우가 서 있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말을 이었다.
“그럼, 이제 정우 형이랑 쫑난 거예요? 그냥 비즈니스 관계나 직장 동료 이런 거? 우와, 살다 보니 정우 형도 이제 구오빠 소리를 듣는구나.”
근데 진짜 신기하다. 저 탈덕한 우리 팬은 실제로 처음 만나 봐요!
‘당연하지, 탈덕하면 만날 일이 없으니까.’
“구오빠?”
그런 주단오의 호들갑이 끝나자마자 그의 뒤에서 아주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갑작스러운 누군가의 목소리에 놀란 두 사람이 뒤를 돌자 그곳에는 류정우가 눈썹을 꿈틀거리며 삐딱하게 서 있었다.
류정우는 헌터가 된 뒤에 처음 만나는 자신의 전 동료들의 얼굴을 한번 스치듯이 바라본 후, 그들의 너머 당황한 표정을 숨기지 못한 채 서 있는 래희와 눈이 마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