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 * *
[공동 서브 퀘스트 ‘세계수의 성장’을 완료하였습니다!]
[축하합니다! ‘어린이 세계수’가 ‘청소년 세계수’로 성장합니다!]
[세계수 ‘리프’의 고유 능력이 개화합니다!]
성좌가 제시한 해결책은 다름 아닌 리프를 성장시키는 것이었다.
“그럼 이제, 뭘 하면 되는 건데요?”
래희는 류정우와 함께 다른 게이트를 돌며 그곳의 몬스터나 주민, 식물들과 교류를 하도록 도왔다. 리프는 성장에 필요한 조건을 달성하자마자 몸이 점점 자라나며 어느새 래희만큼 덩치가 커 버렸다. 몇 장만 팔랑거리던 나뭇잎도 어느새 머리 위로 제법 풍성해진 상태였다.
그러나 여전히 나무줄기에 두손 두발이 자라난 모습은 변함없었다.
작고 귀여운 시절은 끝나고 무럭무럭 자라 덩치가 자신만 해진 리프를 보니 래희는 어쩐지 아쉬운 감정이 들었다.
몸이 자란 제 모습이 신기한지 리프는 이리저리 몸을 비틀어 보이며 제 몸을 구경했다.
여전히 모르는 게 많아 보이는 모습에 래희는 미소 지으며 그 모습을 바라봤다.
“우에!”
아니, 저 목소리는 바뀌지 않는 건가?
곰순이와 달리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리프의 외계어에 래희는 고개를 저었다. 뭐, 자신이 못 알아듣기는 해도 리프는 사람 말을 알아듣는 듯하니까 문제없겠지.
이내 리프는 래희의 밭 한가운데 서서는 두 손을 가운데로 모았다.
‘뭘 하려는 거지?’
리프가 제 두 손을 모아 입으로 가져가서는 바람을 후, 하고 불자 손 위에서 금빛 반짝이들이 널리 퍼지더니 밭에서 자라고 있는 작물들로 골고루 흩뿌려졌다.
[‘밀’이 세계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
[‘밀’에 원하는 효과를 임의로 지정할 수 있습니다. (단, 인과율에 어긋나는 효과는 부여할 수 없습니다.)]
뭐? 효과를 지정할 수 있다고?
[성좌 ‘운명의 길잡이’가 이제 이 밀로 빵을 만들어 판매하면 해결될 일이 아니냐고 묻습니다.]
“그렇긴 하죠…….”
나지막이 대답을 읊조리며, 래희는 저도 모르게 떨리는 손을 감추기 위해 외투 주머니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원하는 효과를 임의로 지정해서 부여할 수 있다니.
이전에 빵에 특수 효과를 부여할 수 있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위험한 능력이었다.
세상에는 다양한 클래스의 헌터가 있다. 물론 자신의 빵집 사장이라는 클래스는 특이한 편에 속했지만, 이미 포션 마스터나 아이템 제작자같이 특수 효과를 아이템에 부여할 수 있는 클래스들은 흔한 편이었다.
하지만 다들 이전의 자신처럼 아이템이 완성되면 시스템에 의해 랜덤으로 특수 효과가 부여되는 방식이었으므로 효율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제작 방법을 발견하면 계속해서 같은 효과를 가진 아이템을 만드는 방식이었지 임의로 원하는 특수 효과를 부여하는 능력을 가진다, 이런 능력은 아니었다.
‘이건, 누구도 알아선 안 돼.’
이미 그녀와 함께 공동으로 리프를 육아해 온 류정우라면 몰라도, 리프가 특수 효과를 마음대로 부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건 윤청현이나 윤재언에게도 비밀로 할 생각이었다.
래희는 리프가 축복을 줘서인지 유난히 황금빛으로 반짝거리는 밀을 수확했다.
[밀]
- 여름/가을 계절 작물 (7월~11월)
- 성장 기간: 3일
- “효과를 입력하세요.”
효과를 입력하라고 깜빡이는 창에 래희는 포션 중독 증세를 해결할 수 있을 법한 효과를 입력해 넣었다.
‘만병통치’
[인과율에 어긋나는 효과입니다.]
“여기까지는 안 되는 건가 보네.”
[성좌 ‘운명의 길잡이’가 ‘죽음’의 범주는 손을 댈 수 없는 영역이니 방금 입력한 효과는 적용 범위가 애매했다고 조언합니다.]
아, 그러면… 조금 범위를 좁혀서.
‘상태 이상 해제?’
하지만 래희는 입력 칸에 적어 넣으려다가 잠시 망설였다.
‘상태 이상 해제에 관련된 아이템이나 포션은 이미 시중에 나와 있어.’
그러나 그것들로 포션 중독 증상을 해결할 수 있었다면 일이 이렇게까지 심각해지지는 않았을 게 분명했다.
[성좌 ‘운명의 길잡이’가 포션 중독은 ‘병’이나 ‘상태 이상’이 아니라고 조언합니다.]
“그럼 뭔데요. 저주라도 된다는 소리예요?”
[방금 당신이 정답을 말했다고 박수 칩니다.]
“아.”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얼핏 들어본 기억이 있었던 것 같았다. 외국에 유명한 포션 마스터가 자신의 성좌가 그와 관련된 신이라는 것을 밝힌 적이 있었는데, 그때 말하기로는 자신이 만든 제조법을 적절하지 않게 사용하게 되면 저주에 걸릴 거라고 경고했다던가.
물론 약물 오남용에 대한 경고로 그냥 하는 소리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어디선가 박이 터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고 비웃습니다.]
래희는 급하게 입력했던 글자를 모두 지우고 새로운 효과를 빈칸에 입력했다.
‘저주 해제.’
물론 상태 이상처럼 시중에 저주를 해제하는 물품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저주와 관련된 아이템은 대부분 던전 부산물인 데다 얼마 없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치료받기도 어려웠다.
[효과 ‘저주 해제’가 등록되었습니다. ]
다행히 효과는 별다른 문제 없이 잘 입력되었다.
‘이제, 이걸로 빵을 만들어서 해결하면 되겠네.’
* * *
처음에는 이번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던 시민들이 하나둘 주변에 중독자가 증가하는 게 눈에 띄게 보이기 시작하자 불안함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미 매일 같이 뉴스에서는 원인 모를 중독 사태에 대해서 다루고 있었고 질병 관리청에서는 이를 해결하고 원인을 밝혀내기 위해 조사팀까지 꾸렸다.
하지만 이미 너무 많은 수의 중독자가 생겨나 하루아침에 해결하기에는 늦은 상황이었으며, 중독자를 수용할 병원이나 관리할 인력은 터무니없이 부족했기 때문에 조사 과정은 현저히 느려져 별다른 진척이 보이지 않아 원인을 알아내기가 어려워 보였다.
그리고 그때, 한 게시글이 인터넷에 올라오면서 사람들의 반응이 뜨겁게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헌터넷 익명 게시판
[잡답] (HOT) 이번 단체 중독 사태 원인이라고 생각되는 ‘유성×밀키 제품’(215)
포션 중독에 관한 이야기가 처음에 게이트를 자주 들락거리는 헌터들 사이에서 보고되기 시작했음.
그때도 원인은 제대로 몰라서 당분간 포션을 들고 게이트에 들어가지 말라는 길드 내 지시도 따로 있었고 그래서 다들 무기, 액세서리 같은 아이템만 무장한 채 힘들게 게이트에 들락거림. 그래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아서 뭔가 이상한 거임.
포션을 입에도 대지 않은 사람이 포션 중독으로 입원하다니. 당연히 이상한 거지.
그래서 사건이 보고될 때로 거슬러 올라가서 그때 무슨 이벤트가 있었나 생각해 보니까 다들 기억하지? 대기업에서 어떤 베이커리랑 콜라보해서 특수 효과가 부여된 빵을 만들었다고 팝업 스토어도 열고 홍보했던 거. 그때랑 시기가 정확하게 들어맞음.
그것 말고는 별다른 이슈가 없는데 의심할 여지가 없지 않음?
- 그거 카피 상품이었잖아. 오리지널은 문제없음?
└야미베어만 몇 달 동안 먹어 온 입장에서 말하자면 한 번도 문제없었음. 의리 지킨 보람이 있네.
- 그러고 보니 야미베어는 자기 고유 스킬로 만들었다는 소리는 들었는데 밀키에 대한 건 들어본 적 없음. 설마 하는 생각인데 혹시 빵에 포션 타서 팔아먹은 거 아님?
└포션을 허가받지 않고 판매하는 거 불법 아님?
└이거 진짜면 단체로 고소 때려야 함.
- 어쩐지 맛도 별로 없는 것 같은데 이상하게 계속 생각나더라.
└예전에 중국의 어떤 식당에서 손님들 계속 오게 만들려고 마약 탔었다는 거 생각나네.
└ㅁㅊ.
- 일부러 루머글 퍼트려서 불안감 조성하는 거 눈에 훤함. 작성자 찐 빵집 사장임?
└먹금.
게시글에 대한 내용과 함께 유성식품 제품에 대한 의문이 빠르게 사람들 사이로 퍼져 나갔다.
피해자 가족들과 증상 정도가 덜한 일부 중독자들이 병원복을 입고 유성식품 한국 본사와 질병 관리청 앞에서 시위 피켓을 들고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이에 주춤한 행보를 보이던 정부도 이제는 대놓고 나서서 현 사태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래희는 가게 문도 열지 않고 오븐을 돌려 저주 해제 효과가 있는 쿠키를 대량으로 구워 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많은 중독자가 섭취하기 쉬운 형태로 간단하게 만들 만한 빵은 쿠키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보통의 손바닥만 한 쿠키와 달리 한입에 먹을 수 있는 작은 쿠키를 구운 래희는 일단 만들어지는 대로 인벤토리에 쑤셔 넣었다. 그리고 일단 청해 길드 소속의 헌터들이 먹을 수 있을 만큼의 쿠키를 완성했을 때 곧바로 길드로 향했다.
[미니미니 쿠키 S]
- 맛 ★★★★★+★
- 향 ★★★★★+★
- 저주를 해제해 준다.
“이걸 먹으면 될 거라고?”
윤청현은 쿠키를 받아 들고서는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지만 래희는 단호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성좌님이 포션 중독은 일종의 저주니까 저주 해제 효과가 있는 쿠키를 먹이면 될 거라고 했어요.”
“아. 그래서…….”
래희의 설명에 그제야 윤청현은 납득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그동안 포션 중독 증상의 치료법을 찾거나 상태 이상이라고 생각했지 저주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저주 해제 관련 아이템은 구하기가 어려우니 쿠키라면 해결책이 되겠네요.”
옆에서 래희의 설명을 듣고 있던 비서실장 천해훈이 감탄하며 중얼거렸다.
그들은 당장 실험해 보기 위해 래희가 건네준 쿠키를 들고 길드 건물 내부의 의무실로 향했다.
각성자 전문 병원은 이미 사람들로 꽉 찬 데다가 국립병원이라 상주하는 힐러들의 등급이 오히려 청해 길드 소속의 힐러보다 낮았다.
때문에 중독된 헌터들을 차라리 길드 내 의무실에 수용하는 게 훨씬 나아 보여 윤청현은 청해 길드 소속 헌터들을 모두 길드 안 의무실에 입원시켰다.
침대에 누워 있는 한 사람이 열 때문에 상기된 얼굴로 힘들게 호흡을 내뱉고 있었다. 온몸이 간지러운지 벅벅 긁어 소매가 걷혀 드러난 양팔은 상처로 가득했다. 자해를 막기 위한 조치였는지 양팔은 침대 양옆에 단단하게 묶인 채로 고정되어 있었다.
“정말 이걸 먹이면 되는 겁니까?”
길드 소속의 A급 힐러 박보경이 말했다.
그는 자신의 능력으로는 중독 증상을 해결할 수 없다는 건 알고는 있었지만, 그 증상으로 인해 발생하는 부상을 치료하고 있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약이나 아이템도 아니고 쿠키라니.’
그렇지만 길드장이 자신에게 직접 건네주며 확신에 찬 눈빛으로 말하니 그로서는 잠자코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윤청현이 누군가. 1세대 전설이라 불리는 S급 헌터이자 현시대 가장 신뢰받는 헌터가 아닌가.
박보경은 묶여 있는 헌터의 침대를 의자처럼 올려서 그의 상반신을 일으켜 세우고는 한 입 거리의 작은 쿠키 조각을 그의 입에 넣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