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헌터네 빵집은 언제 오픈하나요-65화 (65/120)

65화

길드에 도착했을 때, 래희는 류정우가 잠시 자리를 비웠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리프를 사무실에 둔 뒤, 길드 휴게실에 들러 자판기에서 음료를 뽑아 들었다.

‘탄산음료는 못 만드니까.’

[성좌 ‘운명의 길잡이’가 그거 그렇게 많이 먹으면 당뇨병 걸린다고 경고합니다.]

‘이거, 나름 제로니까 괜찮을 거예요.’

래희는 엄마 같이 잔소리를 해 대는 성좌의 걱정을 모른 체하며 캔의 뚜껑을 땄다. 그리고 그때, 휴게소 한구석에서 들리는 대화 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흘러들어 왔다.

“그런데 그 소식 들었나요? 요금 포션 중독 증세를 보이는 환자가 많아진 것 같다고 하더라구요?”

“포션이요?”

포션?

왜지? 포션 시세가 그대로인 걸 보면 딱히 판매량이 늘어난 것 같지는 않았는데?

무례인 걸 알지만 모처럼 들리는 흥미로운 주제에 래희는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휴게실 의자에 앉아 휴대전화를 보는 척하며 그들의 대화 소리를 엿들었다.

“네, 어제 토벌에 참여해야 할 명단이 일부 수정되었다고 해서 알아보니까 원래 투입되어야 했던 헌터들이 포션 중독 증세 때문에 헌터 병원에 입원한 상태라고 하더라고요. 아무튼, 요즘 그것 때문에 헌터 병원 입원실이 꽉 찼다고 들었어요.”

“네?”

헌터 병원은 웬만하면 입원실이 꽉 차는 곳이 아니었다. 힐러들이 상주해 있어 외상 환자들을 바로바로 치료해 퇴원시키기 때문에 입원실이 꽉 찰 일이 없었다.

게이트에서 싸우는 헌터의 90% 이상이 외상 환자지 포션 중독 같은 증세의 환자는 보기 힘들었다. 그리고 포션 중독은 자연 치유로만 치료가 가능해서 힐러의 능력으로는 치료할 수 없는 병이었다.

그래서 래희는 류정우가 말한 입원실이 꽉 찼다는 소식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헌터가 독감일 리는 없을 테고요……?”

상대방의 의문 가득한 중얼거림에 래희가 속으로 동의했다.

단체로 포션을 오남용하지 않는 이상 이렇게까지 환자가 늘어날 일이 없는데 대체 왜 그런 거지?

“그러니까 문제죠. 처음에는 다들 별 것 아닌 거로 판단했지만 저렇게 다들 포션 중독 증세로 입원해 버리니 인력이 부족해질까 봐 정부 차원에서 조사를 나선다고 하더군요.”

물론 정부의 조사 결과를 완전히 신뢰할 수는 없겠지만요.

* * *

“이게 지금 포션 중독 사태의 원인이라구요?”

류정우와 함께 있다 길드장실에 불려간 래희가 주먹만 한 머핀이 들어 있는 포장을 들어 올리며 중얼거렸다.

[유성×밀키 초코초코 머핀(마력 10 증가, 30초)]

야미베어 베이커리의 마스코트 캐릭터 곰순이를 의식이라도 한 건지 포장지에는 귀여운 ‘토끼’ 캐릭터가 그려져 있었다.

‘확실히 캐릭터 디자인이나, 포장 디자인이나 자본의 냄새가 흘러넘치는구나…….’

비교적 평범한 자신의 베이커리와 비교했을 때 포장지부터 훨씬 보기 좋은 대기업의 제품에 래희는 한숨을 내쉬었다.

뭐, 작게 빵집 하나 운영하는 자영업자가 포장지까지 화려하게 만들 능력이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이런 겉보기보다 중요한 건 그 알맹이, 바로 판매하고자 하는 ‘상품’의 퀄리티가 가장 중요한 거였다.

원래 이런 상품은 가게에서 갓 구운 빵보다는 맛없을 게 분명한데…….

‘그런데 왜 인터넷에는 이게 더 잊기 힘든 맛이라고 하는 거지?’

래희는 유성식품의 머핀 포장지를 뜯었다.

‘어라……?’

대량 생산으로 차갑게 냉장 보관해서 유통하기 때문인지, 겉모습은 다른 제품들과 별다른 차이점은 없어 보였다.

마켓팅이 잘된 건가?

‘아니, 나를 그렇게 깎아내리고 언플한 거니 잘 돼야지.’

래희는 갑자기 나빠진 기분에 인상을 쓰며 머핀을 손으로 끝부분을 조금 뜯었다.

푸석거리며 부서지는 게 기대한 것보다도 훨씬 퀄리티가 좋지 못했다.

‘내가 이따위 빵이랑 경쟁하고 있었단 말이지?’

그때, 래희의 옆에서 그녀의 행동을 말없이 응시하던 윤재언이 입을 열었다.

“청해 길드 내 중독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그 제품이 원인이라는 결론을 내렸어. 혹시 몰라 성분 분석을 했는데, 그거 완전 포션 덩어리더라.”

“포션?”

포션이 섞인 음식이 시중에 유통되다니, 그건 불법 아닌가? 아니, 애초에 판매 허가 과정에 걸릴 게 분명했다. 그런데도 도대체 어떤 경로로 유통 판매 허가가 된 거지?

“결과가 잘못 나온 건 아니고?”

“아냐.”

그러나 단호한 윤재언의 태도에 래희는 그의 말을 신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전에 네가 다녔던 회사 말이야. 퍼펙트힐 제약 회사.”

그리고 그녀는 이어진 윤재언의 말에서 아주 오랜만에 익숙한 단어를 들을 수 있었다.

“퍼펙트힐?”

“그래, 예전에 거기서 유통하던 포션 중에 강한 중독성 위험으로 판매가 중단된 제품군들.”

아, 윤재언이 무슨 말을 하려는 지 알 것 같았다.

래희가 제약 회사에 입사한 직후 일반인들이 마약으로 각성자들이 쓰는 포션을 섭취한다는 기사가 떴고, 그 파장으로 국내 모든 제약 회사에 대대적인 감사와 제품 테스트를 다시 진행한다 해서 한동안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었다는 기억이 있었다.

“그런데 퍼펙트힐은 외국 기업의 제품 제조 및 유통 판매권을 사서 포션을 만드는 회사라… 그리고 대부분 제품이 아이템이 아니라 일반 의약품이었는데? 게다가 분명 내 기억으로는 판매가 중단된 이후 생산된 제품들은 모두 폐기했던 거로 기억해.”

“맞아. 그런데 퍼펙트힐에서 판매 금지 처분된 제품들이 검사 결과에 적혀 있더라고.”

“뭐?”

윤재언은 차분한 모습으로 소파에서 일어나 남은 빵을 하나 들어 올리고는 입을 열었다.

“나도, 처음 출시되었을 때 먹어 봤었는데 그때는 문제가 없었어. 그런데 광고한 것과 달리 효과가 아주 미미하니까 조금 더 자극적인 포션을 선택한 것 같네.”

“그럼 그걸 먹은 사람들이 그 포션에 중독되었기 때문에 계속해서 그 빵을 찾게 되었다는 거야?”

“빙고.”

래희는 그제야 조금 전 휴게실에서 들은 포션 중독 증세를 보이는 헌터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사실을 떠올렸다. 이제야 뿌연 안개가 걷히고 상황이 조금씩 명확해지는 듯했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포션을 이용해 만든 빵이 그걸 먹은 사람들을 중독시키고 있다는 말 아닌가?

“조금 전에 우연히 포션 중독 증상으로 헌터 병원에 입원한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제야 말이 되네.”

래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특수 효과가 부여된 빵을 만드는 스킬… 아니, S급 빵집 사장 따위의 클래스가 한 명 더 있을 것 같지는 않았는데 어떻게 자신과 같은 제품을 만들 수 있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냥 무식하게 빵에 포션을 섞어서 만든 거였다니.

래희보다 맛있는 빵을 만들어 낼 수는 없으니 중독성이 강한 포션을 이용해 이 제품을 먹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자신들이 만든 빵만 찾게 만든 것이었다.

거창한 기술력이라도 있는 줄 알았는데 일의 전말을 알게 되자 생각보다 실망감이 컸다.

“하지만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굳이 포션을 섞어 빵을 만들어 내는 게 이상하지 않습니까? 더 비싸게 파는 것도 아니고 일반 포션 가격이랑 같게?”

갑작스럽게 옆에서 들려오는 류정우의 질문에 래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왜 그렇게 굳이 손해 보는 일을 하는 거지?

모든 일이 어떻게 된 건지 이해가 되었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의문이 있었다. 그들은 왜 이익은커녕 손해 보면서까지 이런 일을 벌인 것일까?

단지, 계약 거절에 대한 보복으로?

한국 식품 시장 점유율 1위인 대기업의 행보로는 납득이 되지 않았다.

“뭐, 그냥 식품 시장 점유율 1위가 특수 효과 식품은 없으니 자존심이 상한 걸 수도 있지.”

윤재언의 주장이 맞을 수도 있다. 식품 시장 1위이기는 하지만 래희처럼 각성자를 대상으로 한 특수 효과가 부여된 식품은 없었으니까. 단지, 래희의 기술이나 제품이 탐이 난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적자가 나는 운영 방식을 선택하다니.

“도대체 왜 이런 일을 벌인 걸까요?”

집으로 돌아온 래희가 류정우에게 물었다.

차가운 바깥공기에 래희가 옷을 여몄다.

두 사람은 지금 닭장 앞에 서 있었다.

곰순이가 가게 아르바이트생으로 일하게 되면서 농장 일손이 부족해지자 그녀를 돕기 위해 류정우가 농장일을 거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류정우는 저녁 시간이 되자 들판에 풀어 둔 닭들을 다시 닭장으로 옮기면서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었다.

“글쎄요. 저도 짐작이 가는 부분은 따로 없어서요.”

아니면 일종에 홍보 마케팅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가령 유성식품의 기술력을 알리는 기회로 삼았다거나.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래희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전 회차에도 이런 일이 있었는지 떠올렸지만, 일반인의 삶을 선택한 데다 유행한다는 음식 같은 사소한 일에는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마땅히 생각나는 일이 없었다.

그래도 이 정도 일이라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을 게 분명한데도 기억하지 못하는 걸 보니 이전에는 없었던 일이라는 거겠지.

류정우는 마지막 남은 닭 ‘류’를 닭장 안에 모두 옮긴 뒤 산책을 위해 열어 둔 문을 잠그며 말했다.

“래희 씨는 어떻게 생각하는데요?”

“음… 그래도 아직은 모르겠어요. 대기업에서 굳이 왜 소상공인에 불과한 제 제품을 따라 만들며 저를 견제하는 건지…….”

류정우는 불안해 보이는 래희의 표정을 보고는 그녀를 위로하듯이 래희의 머리 위로 제 손을 올렸다.

“아직 밝혀진 건 없으니까 너무 안 좋은 쪽으로 생각하지 말아요. 돈이 된다고 생각했으니 도전한 거겠죠.”

그리고 그녀의 어깨를 붙잡고 집 쪽을 향해 돌리고는 그대로 걸어가도록 뒤에서 살짝 밀었다.

래희는 류정우의 의도대로 집 안에 들어와서는 소파에 털썩, 앉으며 텔레비전을 켰다.

삑―

그러자 얌전히 화분 안에서 잠든 줄로만 알았던 리프가 꿈틀거리며 일어났다.

“아냐 아냐, 더 자도록 해.”

래희는 혹시라도 완전히 깰까 싶어 리프를 화분째로 들어 조용한 제 방으로 옮겼다.

리프가 다시 잠이 든 걸 확인한 래희는 혹시라도 깰까 조심스럽게 제 방문을 닫고 거실로 나왔다.

그리고 거실에 켜져 있던 텔레비전의 화면 속에는 뉴스 화면이 송출되고 있었다.

- 9시 뉴스입니다. 최근, 각성자 전문 병원에 포션 오남용 증상을 가진 환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과 함께 비슷한 증상이 비각성자 사이에서도 관찰되고 있다는 질병 관리청…….

* * *

“네가 우리 길드 소속이라 우리 쪽에서 유성식품의 제품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 대중들은 쉽게 믿지 않을 거야. 오히려 지나친 억측이고 네가 견제하느라 헛소문을 내는 거라고 비난할 수도 있겠지.”

윤재언은 길드장실 소파에 앉아서 래희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그리고 보다시피 이미 상황은 늦은 것 같네.”

이미 절반 정도의 헌터들이 중독 증세로 길드 내부에 있는 회복실에 입원해 있었다. 포션 중독은 약도 없어 시간을 들여 자연치료를 하는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들을 당장 치료하기 위한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그럼 어떡해? 대던전 토벌이 이제 겨우 한 달 조금 넘게 남았는데 남은 인원으로는 택도 없잖아.”

12월 중순에 있을 토벌에는 대부분의 고등급 헌터들이 참여하는데 그중의 반이 신변에 문제가 생기다니. 이건 이제 청해 길드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인 문제로 발전할 수밖에 없었다.

래희의 의문에, 답답한지 눈을 감고 팔짱을 낀 채 그들에게서 등을 돌리고 있던 윤청현이 입을 열었다.

“지금이라도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야지. 질병 관리청은 짐작하는 바가 있어도 느릿느릿하게 움직일 게 뻔하고 각성자 관리청도 마찬가지일 테니 정부에 기댈 게 아니라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해.”

뭐, 매번 그래왔지만.

윤청현은 실소를 흘리며 중얼거렸다.

그때, 래희의 눈앞이 갑작스럽게 번쩍이며 성좌의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보통 이런 상황에 성좌가 끼어든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래희가 놀라서 고개를 번쩍 들고는 그의 메시지를 확인했다.

[성좌 ‘운명의 길잡이’가 포션 중독을 해결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속삭입니다.]

“정말요?”

불편한 침묵이 맴도는 길드장실에서 하이톤의 놀란 듯한 래희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방금까지 답이 없어 답답한 상황에, 모두가 해결할 방법을 찾기 위해 생각에 잠겨 있다 갑자기 들려온 래희의 목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성좌의 메시지에 육성으로 대답한 적이 없던 래희는 민망해하며 변명했다.

“아, 성좌님이 해결할 방법이 있다고 하셔서요.”

그에 윤청현이 놀란 듯이 커진 눈으로 래희를 바라봤다. 포션 중독에 해결할 방법이 있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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