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헌터네 빵집은 언제 오픈하나요-63화 (63/120)

63화

“아, 진짜. 이게 무슨 고생이람.”

래희는 지금, 류정우와 함께 게이트 안으로 들어온 상황이었다.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왔다는 것에 대한 건 잊기로 했다. 12년 전 롬바르나에서 자신이 봤던 건 시체가 아니라 의식을 잃은 사람이었을지도 몰랐고, 자신의 기억에 확신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당장 중요한 건 귀환자 ‘현아린’이 아니라 자신과 류정우가 함께 수행하고 있는 퀘스트였다.

[공동 서브 퀘스트 ‘세계수의 성장’]

어린이 세계수가 바르게 성장하기 위한 사회화 교육이 필요합니다. 던전 속 다양한 동식물들과 소통하게 해 주세요!

- 던전 생물과 인사하기 (12%/100%)

- 완료 보상: 세계수의 성장 (어린이→청소년)

래희는 이미 클리어되어 안전한 게이트 안에 비딱하게 선 채로 풀밭을 뒹구는 리프를 바라봤다. 아까까지만 해도 후르츠슬라임과 신나게 놀았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치지 않는 듯했다.

“얼씨구.”

리프는 자신의 위로 팔랑거리는 나비를 잡아 보겠다고 뛰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혹시라도 울면 달래야 한다는 걱정도 잠시, 다행히도 리프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자리에서 털고 일어나 나비를 향해 기분이 나쁘다는 듯이 주먹질하기 시작했다.

그런 리프의 주변으로 들꽃들이 리프를 응원하는 듯이 팔랑거리며 리프가 움직이는 방향으로 고개를 틀었다.

“하.”

래희와 마찬가지로 그 모습이 웃기기라도 한지 류정우가 리프를 보며 실소를 흘렸다. 애 하나 키우는 건 온 동네 사람들의 관심이 필요하다더니, 잠시라도 눈을 돌리면 사고를 쳐대는 리프의 모습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게이트 ‘봄의 정원(A)’의 친구들과의 교류로 성장에너지를 모두 흡수했습니다!]

그때, 두 사람의 시야에 시스템 메시지가 나타났다.

래희는 다시 한번 퀘스트 창을 눌러 퀘스트 진행도를 확인했다.

- 던전 생물과 인사하기 (20%/100%)

이번이 세 번째 게이트인데 이제야 퀘스트 진행도가 조금이나마 진전된 것처럼 보였다.

래희는 오를 줄 모르는 퀘스트 진행도에 눈썹을 꿈틀거리다 한숨을 작게 내쉬고는, 집으로 돌아가기 싫어하는 리프를 들어 올려 게이트 밖으로 나왔다.

“오늘은 여기까지야.”

품 안에서 떼를 쓰는 리프에게 래희는 단호하게 말했다. 어린아이라고 오냐오냐해 줬다가는 버릇없게 자랄 게 분명하니 단호함이 필요할 때는 봐주는 것 없이 단호한 태도를 유지해야 했다.

리프의 가련한 눈빛을 애써 피한 래희는 집으로 돌아와 리프를 그의 화분 위에 올려 주었다.

잠은 흙 속에 파묻혀서 자는 게 세계수의 특징이었으므로 리프는 자연스럽게 흙을 파고는 자신의 하반신을 흙 속에 묻었다.

“이제 어린이는 잘 시간이지?”

잠에들 준비를 하는 리프 위로 래희와 류정우는 번갈아 가며 물을 줬다.

처음에 하나뿐이었던 싹이 어느새 벌써 세 개가 나 있었다.

물을 먹은 세 개의 나뭇잎이 맺힌 물방울을 떨어트리기 위해 팔랑거리다가 리프의 얼굴을 가렸다.

* * *

‘뭐지……? 뭔가 이상한데……?’

래희는 오늘따라 어색하게 느껴지는 가게 분위기에 눈동자를 도르륵 굴리며 가게를 방문한 손님들을 관찰했다.

분명 어제와 같은 하루를 보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베이커리에 방문하는 손님들의 분위기가 이상했다.

뭐랄까… 뭔가 이전과 달리 기대감에 가득 찬 눈빛이 아니랄까……?

‘하긴, 가게 오픈한 지도 몇 달 된 것 같은데 아직까지 기대감이 가득한 것도 이상하긴 하지.’

베이커리에서 판매되는 빵의 가격은 이제 포션 물가에 맞게 올라 비각성자들의 접근성이 매우 떨어지고, 돈 있는 각성자들만 방문하고 있었으니.

이제는 새롭게 가게에 방문하는 손님보다는 이전에 방문해 본 손님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오늘의 가게 분위기를 전부 설명할 수는 없었다.

이미 몇 번이나 방문했던 손님들도 항상 그녀의 가게에 방문할 때면 기대감 가득한 반짝이는 눈빛으로 빵들을 바라보곤 했으니까.

그리고 심지어, 오늘은 예약 손님 중 노쇼 손님의 비율이 꽤 있었다.

그리고 래희가 느낀 그 이상함이 착각이 아니었는지, 그날 처음으로 야미베어 베이커리의 빵집이 완판되지 않았다.

“뭐야?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야?”

래희가 어쩐지 찝찝하게 끝난 것만 같은 하루를 마무리하고 침대에 누웠다. 휴대전화로 포털사이트를 열심히 찾아보았지만, 게이트 사고 같은 특별한 이벤트는 딱히 없어 보였다.

그리고 그때였다.

“이게 뭐지……?”

‘야미베어 베이커리’를 검색하던 중, 래희의 눈에 한 게시글의 제목이 눈에 띄었다.

[야미베어 베이커리 제품에 문제가 있는 것 같음.]

“문제라니?”

래희의 빵은 언제 어느 환경에 놓이든 간에 절대 상하지 않는다는 효과가 기본 옵션으로 부여되어 있다.

일반 아이템과 마찬가지 취급을 받기 때문에 유통 기한도 딱히 없었다. 그러니 문제가 있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 주장이었다.

‘뭐가 문제라는 건지 일단 확인이나 해 보자.’

래희는 호기심에 그 글의 제목을 눌렀다.

[삭제된 게시글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미 원글은 삭제가 된 건지 그 글의 내용을 확인할 수 없었다.

래희는 괜히 찝찝한 기분에 휩싸여 휴대전화 화면을 끈 채로 침대에 누워 천장으로 고개를 돌렸다.

‘…설마 오전에 손님들 분위기가 어색한 것도 이것 때문이었나?’

하지만 이미 게시글이 삭제된 후라 확인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다음 날, 래희가 가게를 오픈했을 때.

래희는 사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다는 걸 몸소 느끼고야 말았다.

헌터넷 익명 게시판

[잡담] 야미베어 베이커리 제품에 문제가 있는 것 같음 (23)

야미베어 베이커리에는 이번에 처음 가 봤는데.

뭘 사야 할지 몰라서 가을 신상 메뉴인 블루베리 조각 케이크 몇 개 사 와서 먹어 봤음.

뭐, 맛은 그냥저냥인 것 같고 그렇게 특별한지 모르겠는데 특수 효과 부여된 건 괜찮더라.

근데 나만 그런지 모르겠는데,

여기 제품들 특수 효과 부여된 거 말고는 메뉴나 레시피가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음?

잘 보면 판매 제품들 밀키 베이커리랑 모양도 비슷하고 종류도 비슷함.

아무리 생각해도 카피캣 같은데?

메뉴가 비슷한 거면 야미베어가 후발 주자니까 당연히 여기가 베낀 것 아니겠음?

*야미베어 베이커리

(사진) (사진)

*밀키 베이커리

(사진) (사진)

빵은 디자인이 거기서 거기라 그렇다 쳐도 조각 케이크는 너무 똑같음. 재료나, 디자인이나.

이 정도면 상도덕도 없는 수준 아님? 각성자라는 지위 뒤에 숨은 거라 진짜 음흉함.

- ????

└(글쓴이) 그니까 야미베어 측에서 밀키 제품 베낀 것 같다고.

- 너무 억측 아님? 밀키가 먼저 그 케이크를 만든 건지 어떻게 앎? 심지어 밀키 제품이라고 올라온 사진도 전부 이번 신상이잖아.

└222 이렇게 되면 어디가 먼저인지 알 수가 없지.

- 와, 야미베어 진짜 좋아했는데 배신감 드네. 앞으로 거기 것 안 먹고 그냥 포션이나 사 먹어야겠다.

- ㅅㅂ 난 또 뭐라고, 이거 너무 억까인듯.

└그니까. 케이크 하나에 특별한 레시피라도 있냐고. 다 거기서 거기지. 밀키라고 해서 크게 특별하지도 않지 않음?

└심지어 밀키 것도 외국 뮤튜브 영상에 올라온 레시피랑 같음.

- 중립 기어 박는다.

└누가 봐도 명백한데 불매해야지. 난 내일 예약 걸어 놨는데 안 가야겠다.

- 야미베어 맛없다고 한 것부터 주작임.

* * *

래희는 어제보다도 손님이 더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가게를 운영한 뒤, 그날 오후 오랜만에 백화점에 들렀다.

가게에 무슨 문제가 생긴 건지 몰라 답답한 마음에 바람을 쐬러 나온 것도 있고 겸사겸사 리프가 성장하느라 그동안 깨 먹은 화분을 튼튼한 제품으로 바꾸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리프의 몸집을 보니 헌터 마켓이 입점한 장인의 오프라인 매장에 들러, 그에 맞는 튼튼하고 커다란 사이즈의 화분을 주문 제작할 계획이었다.

물론 각성자인 장인에게 맡기는 주문 제작 상품이라 무척이나 비싸겠지만 돈 같은 건 래희에게 더는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백화점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 1층 식품관을 지나기 직전, 래희의 눈에 띈 한 광고판의 내용이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성좌 ‘운명의 길잡이’가 인간들의 욕심은 끝이 없다 중얼거립니다.]

[사람 사는 거 어디서든 다 똑같은 것 같다며 한숨을 내뱉습니다.]

“하.”

래희는 성좌의 말에 한숨을 내뱉으며 서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벽에 걸린 한 광고판을 부들대며 읽어 내렸다.

[유성식품×밀키 베이커리 콜라보 한세백화점 팝업 입점 소식]

밀키 베이커리와 유성식품의 콜라보 제품이 한세백화점에 10월 1일부터 한 달간 팝업 스토어를 운영합니다.

유성식품의 연구로 발견한 특수 효과 부여 기술과 제빵계의 떠오르는 혜성으로 유명한 밀키 베이커리의 콜라보.

체력 회복, 근력 증가, 마력 증가와 같은 특수 효과가 기존 A급 포션과 같은 수준으로 맛있는 밀키 베이커리의 오리지널 빵에 부여됩니다.

밀키 베이커리만의 고유하고 ‘특별한’ 레시피로 만들어진 제품으로 케이크부터 먹기 편한 형태의 머핀, 쿠키 등 다양한 메뉴가 출시될 예정이니 많이들 찾아 주세요!

이 새X들이…….

‘후회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얼마 전 자신을 찾아왔던 유성식품 직원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듯했다.

유성식품. 한국 식품 회사로 시장 점유율 1위.

래희는 그런 대기업의 횡포에 어쩔 줄 몰라 머리만 쥐어뜯으며 고개를 숙였다.

전생이나 현생이나 하여튼 있는 것들이 더했다.

“그런데… 이 새X들은 어떻게 한 거지?”

S급 빵집 사장 따위의 클래스를 부여하는 성좌가 하나 더 있지는 않을 텐데?

[성좌 ‘운명의 길잡이’가 당신의 말에 상처를 받았다는 듯 가슴을 부여잡습니다.]

[그거 혹시 욕이냐며 눈물을 훌쩍입니다.]

‘욕은… 하여튼 그쪽 욕은 아니고요.’

속으로 상도덕 없는 대기업의 행보에 대해 열심히 씹으며 지하 1층 식품관에 도착했다.

그리고 래희는 그곳을 지나쳐 위층으로 올라가기 전, 한 무리의 사람들이 웅성대며 모인 것을 보았다.

익숙한 사람들이 기다란 줄 끝에 서 있었다.

그들은 바로 얼마 전부터 가게에서 보이지 않던 단골손님들이었다.

‘저거 혹시……’

그들의 모습에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줄을 따라 시선을 옮긴 순간. 래희는 ‘밀키 베이커리 팝업 스토어’라는 간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

그제야 래희는 지난 며칠 동안 가게에 손님의 수가 점차 줄어들기 시작한 원인을 알 수 있었다.

그 원인이 바로 래희의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