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류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래희가 의문으로 가득 찬 눈빛으로 그에게 말을 걸려던 찰나, 현장을 비추던 화면이 아나운서가 앉아 있는 뉴스데스크를 비추기 시작했다.
- 지금, 새로운 소식이 제보되었는데요. 이번 게이트에서 귀환자가 등장했다고 합니다. 5년 전 그리스에서 나타난 귀환자이자 지금은 A급 헌터로 알려진 다니엘라 메르클루 이후로 5년 만에 들려온 귀환자 소식입니다. 각성자 관리청에서는 이번 귀환자에 대해…….
‘귀환자?’
귀환자라니.
본인이 귀환자인 래희는 이 소식에 놀라 굳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알기로 한국의 귀환자는 12년 전 귀환한 자신을 마지막으로 더는 등장하지 않았다고 들었다.
심지어 유일한 미성년 귀환자인 래희 자신은 철저하게 비밀이 유지된 채 보호받았으므로 지금 뉴스 속보에 나오는 귀환자는 공식적으로 한국의 세 번째 귀환자였다.
‘이번에 돌아온 사람은 성인이라 공개가 되는 건가?’
그때 각성자 관리청 건물을 비추던 화면이 갑작스럽게 또다시 뉴스데스크 화면의 아나운서를 비추기 시작했다. 이전과 달리 더 상기된 모습인 아나운서는 흥분을 애써 가라앉히며 말하기 시작했다.
- 방금 CBN에 귀환자의 모습이 촬영된 영상이 단독으로 입수되었습니다.
아나운서의 말이 끝나자 곧바로 바뀐 화면은, 던전 안에서 휴대폰으로 찍은 영상인지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단독 보도에 혈안이 돼서 확인도 안 하고 아무 영상이나 내보내는 건가?’
휴대전화의 카메라 화질이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는 이 시대에도 불구하고 영상이 흔들리는 것도 모자라 화질까지 좋지 않았다. 마치 인터넷에서 이리저리 복제되어 화질이 깨진 영상처럼.
어쨌든 심하게 흔들리는 영상에는 부서진 학교 내부가 촬영되고 있었다.
‘아, 학교에서 게이트가 발생해서 구출된 사람들이 대부분 학생이었구나.’
헌터들이 무너진 학교의 잔해 사이로 학생들을 구출하며 그들에게 달려드는 몬스터들을 쳐내고 있었다. C급 게이트라 S급 헌터를 필두로 한 공략대가 밀리는 형국은 아니었지만, 워낙 몬스터의 수가 많아 어린 학생들을 지켜 가며 싸우는 데에는 무리가 있어 보였다.
그때, 조금 떨어진 위치에서 낙오된 학생 한 명에게 달려드는 몬스터의 모습이 찍혔다.
“아!”
래희가 저도 모르게 입에서 나오는 비명을 두 손을 올려 틀어막았다. 다행히도 누군가에 의해 학생에게 달려들던 몬스터가 반으로 갈라지는 모습이 촬영되었다.
‘그런데 누구지?’
빛이 들어오는 곳을 등지고 서 있어 실루엣을 제외한 사람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 몬스터를 손쉽게 물리치는 모습을 보았을 때는 헌터인 줄 알았으나 자세히 보니 의상이 헌터의 전투복은 아닌 듯했다.
‘저거 어디서 많이 본… 아!’
어두운 실루엣 사이로 바람에 의해 팔랑이는 의상이 보였다. 팔랑이는 하얀 드레스는 한국의, 아니 지구의 복식이 아니었다.
그건 바로 롬바르나의 여성들이 입는 의복이었다.
‘저 사람이 귀환자인가?’
- 귀환자?
같은 타이밍에 래희와 같은 생각을 한 건지 영상에서 누군가의 의문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여자가 자신의 앞에 주저앉아 있는 학생에게 손을 건넸다. 마치 자리에서 일으켜 세워 주려는 모양새였다.
그리고 그때, 여자의 뒤로 또 다른 몬스터가 달려들었다.
- 뒤에!
학생이 마저 외치기도 전에 고개 한 번 까딱이지 않은 여자의 뒤로 몬스터가 재가 되어 사라졌다. 그리고, 그것을 시작으로 주변에 있던 몬스터들이 하나둘 가루처럼 공중에 흩어지기 시작했다.
윤재언이 게이트를 클리어한 게 아니었다.
‘손 하나 까딱 안 했는데, 전부 가루로 만들어 버린다고?’
지구에 있는 그 어떤 S급도 저런 힘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 영상이 끝나는 대로 저 여자는 전 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할 게 분명했다.
압도적인 힘.
그걸 모두의 앞에서 증명한 귀환자의 화려한 데뷔 순간이었다.
[헌터 이슈] 한국의 세 번째 귀환자, 현아린. 12년 전 S급 게이트 실종자…….
[헌터 코어] 현아린의 각성자 등급은 A급. 그러나 게이트에서 보여 줬던 압도적인 힘은 무엇인가?
[단독] 현아린, 백화 길드에서 둥지를 틀게 될까?
뉴스가 끝나고 휴대전화를 보자 모든 사이트 메인이 귀환자 관련 기사로 도배되어 있었다.
“방금 보여 준 건 분명히 S급 아니었나요? 어째서 A지?”
그리고 그때, 단독이라고 올라온 기사를 누르자 흐릿하지만, 대충 얼굴 윤곽 정도는 확인할 수 있는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와, 고향에 돌아오자마자 신상부터 털어 버리네. 너무하… 어?”
같은 귀환자로서 동질감을 느꼈던 래희가 그녀와 달리 피곤한 언론의 주목에 시달릴 귀환자 후배(?)에 안타까워 언론을 욕하다 말고, 놀란 듯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 사람…….”
“아는 사람인가요?”
래희와 다른 의미로 전 회차에서는 겪어 보지 못한 상황에 놀란 류정우가, 옆에 앉아 있는 래희가 귀환자를 알아보는 듯하자 그녀를 향해 물었다.
그러나 래희는 곧바로 대답할 수 없었다.
어딘가 익숙한 얼굴이기는 했지만 어디서 봤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주 익숙한데…….’
지구에서 만난 사이라면 너무 어릴 적이라 자신이 기억할 리 없었다. 그렇다는 것은 자신이 현아린이라는 귀환자를 롬바르나에서 마주쳤었다는 소리였다.
‘…체자레랑 살던 마을에서는 아니야.’
그녀의 또래로 보이는 여자를 롬바르나에서 마주쳤다면, 그건 바로 체자레에게 구해지기 전이라는 소리였다.
그렇다면 단 한 곳.
그곳은 바로 롬바르나의 신전이 운영하던 고아원. 바로 그곳뿐이었다.
‘…설마, 그럴 리가.’
고아원에서 마주친 아이들은 하나같이 옅은 색소의 머리 색을 가지고 있었다. 롬바르나의 주민들은 검은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윽!”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파 오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두통에 래희가 두 손으로 머리를 부여잡고 신음을 흘리자 그녀의 곁에 앉아 있던 류정우가 그녀를 붙잡았다.
“괜찮아요?”
그러나 래희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대답하지 못했다.
잊고 있던 기억이 그녀의 눈앞에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래희가 ‘현아린’을 마주쳤던 장소. 그곳은 고아원이 아니라 어둡고 차가운 신전의 지하였다. 그리고 그곳에 살아 있는 사람이라고는 분명 권래희 자신 하나뿐.
그 사실을 깨닫자 래희는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오다니.
말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면 저기서 살아 움직이는 저건 뭐지?
* * *
“몸은 마음에 드십니까?”
천영은의 목소리가 밀실 안에서 울려 퍼졌다.
“이전 몸보다는 훨씬 괜찮네요. 고마워요, 자매님.”
“오랫동안 공들여서 적응시켰기 때문에 이전보다는 나을 겁니다.”
“당연히 그래야죠.”
여자는 자신의 손을 들어 올리며 만족스럽다는 미소로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영혼 교환을 위한 마석은 일주일이면 몸속으로 파고 들어가 겉으로 표가 나지 않을 겁니다. 일주일 동안은 들키지 않게 조심하셔야 합니다. 오래전 기술로 미리 만들어 둔 육체라 마석이 사라지는 데 시간이 좀 걸립니다.”
“이곳의 인간들이 눈치를 채기는 한 모양이지요? 뭐, 어딜 가나 멍청한 것들만 있는 건 아니니까.”
“죄송합니다.”
여자의 말에 천영은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보인 적 없던 표정으로 여자의 앞에 굴복하며 용서를 빌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앞에 사뿐히 허리를 숙인 여자가 아래를 바라보고 있는 천영은의 턱 끝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
천영은의 눈이 자신을 내려다보는 여자의 눈과 똑바로 마주쳤다. 그녀의 시야를 가득 채운 여자는 바로 ‘현아린’이었다.
“뭐, 20년이 거의 지나서야 알아채는 것도 늦은 감이 있기는 하니까. 그렇게 잘못한 정도는 아니에요. 이 정도면 잘한 거니…….”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는 듯 현아린이 말했다.
“아, 그러고 보니 저번에 다른 몸을 사용할 때, 미카엘 사제의 상태가 좀 이상하던데……. 그는 어떤가요?”
천영은은 그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이 빠르게 대답했다.
“그동안 관찰한 결과 별다른 문제는 없었습니다.”
“음… 그렇군요. 알았어요.”
현아린은 자신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대답하는 천영은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다 시선을 거두며 허리를 곧게 펴며 똑바로 섰다. 천영은의 단호한 표정에 현아린이 별다른 의심을 하는 기색은 없었다.
“준비된 육신이 더 있겠죠? 이제는 남은 이들까지 데려와야 할 시간이 찾아온 것 같더군요. 롬바르나의 끝이 다가오고 있어요.”
“네, 비교적 어리고 버틸 수 있을 만한 육신들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다행이군요.”
천영은의 대답에 현아린은 만족스럽다는 듯이 눈웃음쳤다.
“미국 국적의 몸이었음 훨씬 좋았겠지만, 상태가 좋은 몸은 이것 하나뿐이었으니…….”
현아린은 아쉽다는 말투로 뒤돌아 문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문고리를 잡기 전 멈춰 서서는 뒤를 돌아보며 무릎을 꿇고 있는 천영은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일은 잘 진행되어 가고 있겠죠?”
“네. 문제없습니다.”
천영은은 곧바로 대답했다.
“이번에는 실패하지 않을 거라 믿어요. 기회가 두 번은 없다는 걸 자매님은 누구보다 잘 알 테니까.”
그렇게 말한 현아린은 손을 올려 둔 문고리를 잡아 돌리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밀실 밖으로 나섰다.
저벅거리는 걸음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무릎 꿇고 앉아 현아린이 나간 문 쪽을 바라보고 있던 천영은이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성녀님께 거짓을 고하다니…….’
분명 김주현, 아니 미카엘 사제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고하지 않았다.
‘왜 그랬지?’
그분께서 자신에게 특별히 묻는 질문에도 아는 대로 고하지 않고, 저도 모르게 입이 움직여 거짓을 말했다.
자신이 미카엘을 위해 성녀님을 배신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신실한 신자이자 성녀님의 기사인 자신이 그분을 배신하다니. 분명 부작용 없이 육체를 차지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저도 모르게 움직이는 입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분명 영혼 교환은 성공했어.’
미카엘 사제처럼 본래 자신과 육신의 기억 사이에서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천영은은 지금 이 상황에 계속해서 위화감을 느꼈다.
‘자매님을 믿어요.’
그때, 귓가에서 언젠가 성녀님이 자신에게 했던 말이 스쳐 지나갔다.
그렇지. 나는 성녀님의 신실한 종.
천영은은 자기 스스로를 암시하듯 속으로 되뇌며 현아린이 나간 문을 바라봤다.
그녀의 잿빛 눈동자에 잠시 초록빛이 스쳐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