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빵이랑 비슷한 능력을 가진 아이템부터 찾아볼까요……?”
래희는 우선 가장 먼저 포션 카테고리를 눌렀다.
지금 현재 A급이나 S급 제품군은 마켓에서 품귀 현상으로 쉽게 구할 수 없었기 때문에 래희는 일단 비교적 매물이 남아 있는 B급 포션의 가격부터 확인했다.
“체력 회복 포션 B급… 체력을 35% 회복.”
35% 회복이라.
다행히 이전에 가게를 다시 오픈하면서 청해 길드에서 보낸 직원분의 도움으로 시세를 파악해서 가격을 재측정할 수 있었지만, B급 포션의 효과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니 새삼스럽게 자신의 능력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아니, 이러다 어딘가에 납치돼서 빵만 만드는 기계가 되어 버리면 어떡하지?”
래희의 중얼거림을 잠자코 듣고 있던 류정우가 그 말에 웃으며 대답했다.
“그런 일 없을 거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 않나?”
[성좌 ‘운명의 길잡이’가 순간적으로 속이 울렁거렸다고 중얼거립니다.]
그 말에 래희가 저도 모르게 류정우의 얼굴을 바라봤다. 래희와 눈이 마주친 그가 생긋 웃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S급 헌터와 한집에 사는 데다가 집도 특수한 공간 안에 만들어져 있었다. 아무도 침입할 수 없는 요새에 살고 있으니 류정우의 말대로 대낮에 밖에서 납치되는 게 아닌 이상 집에서 자다가 납치될 일은 없었다.
래희는 류정우의 말에 안심하며 하려던 일을 계속했다.
“헌터 마켓도 시세는 비슷하네요. 아니, 오히려 좀 더 싼 것 같은데……?”
“그거야, 백화점 같은 곳에는 임대료도 있으니까요.”
“아…….”
어쩐지 저번에 백화점 아이템 마켓에 들렀을 때 지나치게 사람이 없다고 느끼기는 했다.
아니, 지금 이렇게 느긋하게 이야기나 할 때가 아니지 않나?
래희는 자꾸 이야기가 옆으로 새는 것 같자 고개를 저으며 다시 자신의 마켓 등록 페이지를 열었다.
헌터 마켓이 어떻게 굴러가는가 확인하기 위해 ‘근력 스탯 10 증가 (30초)’라는 그나마 무난한 부가 효과를 가진 ‘사과 곰순이빵’을 열 개 정도 등록했다.
개당 40골드.
다 팔리면 4,000만 원.
B급보다는 효과가 월등히 뛰어났기 때문에 래희는 그나마 비슷한 A급 포션보다 약간 높은 시세로 가격을 등록하고 헌터 마켓 반응을 보기 위해 기다렸다.
‘음… 아무 공지도 없이 헌터 마켓에 빵만 덜렁 올리니까 반응이 없는 건가?’
30분이 지나도록 팔리지 않자 래희는 빵에 신경을 끄고 자신의 인벤토리를 열었다. 그리고는 빵보다 빠르게 팔릴 만한 물품이 있는지 확인했다.
“오, 이거면 팔리겠네.”
래희는 그동안 류정우와 함께 게이트를 돌며 채집한 던전 부산물들을 몇 개 꺼내 들었다. S급인 류정우 덕분에 고등급 몬스터에게서만 얻을 수 있는 아이템도 몇 개 있었다.
일단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야 자신의 마켓에 들르는 사람들이 많아질 테니 이 아이템들로 마켓 계정을 홍보할 생각이었다.
류정우는 옆에서 헌터 마켓에 집중하느라 오리 입이 되어 버린 래희를 웃으며 바라보다가 자신의 헌터 마켓을 열어 접속했다.
남들이 사 가기 전에 자신이 래희의 빵을 모두 사들일 생각이었다.
심플하게 RJW라고 적힌 닉네임 아래로 적당한 금액의 골드를 충전한 뒤, 헌터 마켓 검색 창에 래희의 닉네임인 ‘S급 빵순이’를 검색했다.
벌써 옆에서 물품을 등록했는지, 그 몇 초 사이에 ‘사과 곰순이빵’을 제외한 대부분 아이템이 모두 팔린 채였다.
‘하나같이 시중에서 구하기 어려운 것들만 잘 골라서 등록했네.’
류정우는 돈 냄새 하나는 기가 막히게 맡는 래희에게 감탄하며, 순식간에 벌어들인 돈으로 기뻐하는 그녀의 얼굴을 흘끗 바라봤다. 예상대로 입꼬리가 귀 끝까지 걸려 있었다.
류정우는 ‘사과 곰순이빵’을 모두 담고는 구매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에러 메시지가 그의 헌터 마켓 창 위로 떠올랐다.
[이미 판매가 완료된 아이템입니다.]
그와 동시에 래희가 기쁜 듯이 옆에서 작게 감탄을 내뱉었다.
“오… 이렇게?”
나름 비쌀 것 같은 것들만 긁어모아다가 마켓에 등록했는데, 생각보다 수요가 있던 아이템들인지 등록하자마자 곧바로 전부 팔려 나가고 말았다.
헌터 마켓 위로 정산된 금액을 확인하자 래희의 두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이거, 고생고생해서 빵집을 운영했던 것보다 더 돈이 잘되잖아.’
순식간에 벌어들인 억대라는 금액에 놀란 래희가 얼떨떨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정산 목록을 확인했다.
“블루울프의 송곳니가 하나에 2만 골드로 팔리다니…….”
따로 공급으로 올라온 물량이 없어 임의로 높은 금액을 책정해서 올렸는데도 순식간에 10만 골드라는 금액과 함께 다 팔리고야 말았다.
“다행이네요. 블루울프 송곳니 정도면 하나에 1만 5천 골드 정도 할 텐데 워낙 공급이 없으니 비싼 가격을 불러도 팔렸으니까요.”
어쩐지 류정우의 목소리에는 불만이 가득한 것 같았다.
‘실수로 금액을 더 적게 책정했으면 손해 봤을 수도 있었겠네.’
래희는 류정우의 말대로 다행이라 생각하며 퀘스트 창을 열었다.
[- ‘(사과 곰순이빵)’ 판매 100/1,000]
다행히 이런 식으로 판매하는 게 맞았던 건지 퀘스트 창에도 문제없이 진행도가 떠올라 있었다.
류정우가 간발이 차로 놓친 래희의 빵에 기분이 나빠져 고개를 젖히고 있다가 옆에서 래희가 기분이 좋은지 사부작거리며 콧노래를 흥얼거리자 고개를 그녀 쪽으로 돌렸다.
돈 같은 건 넘쳐 흐를 정도로 많은 그에게는 방금 그녀가 벌어들인 액수가 크게 와닿지는 않았지만 래희가 너무 기뻐하니 저도 모르게 따라 웃으며 그녀를 조용히 응시하고 있었다.
“차라리 빵집을 운영하지 말고 온라인으로만 판매하는 건 어떤가요?”
그러면 얼굴도 팔리지 않고 바빠서 얼굴을 보지 못할 일도 없을 것 같은데…….
요즘 생산량을 늘린다고 희우(곰순이)와 밤늦게까지 가게 주방에서 빵을 만들지 않았던가.
[성좌 ‘운명의 길잡이’가 음흉한 새X라고 중얼거립니다.]
류정우는 제 눈앞에 나타난 성좌의 메시지 창을 본 척도 하지 않았다.
그때였다. 두 사람이 앉아 있는 소파 뒤로 하얀빛이 그들을 향해 밝게 비추기 시작했다.
‘뭐지?’
창으로 빛이 들어올 만한 시간대가 아니었다. 늦은 저녁, 이제 씻고 내일을 위해 잠이 들어야 할 시간에 밝은 빛이라니.
몇십 초 정도 지났을까, 꼭 감고 있던 그들의 눈 위로 빛이 사그라드는 것이 느껴졌다. 더는 눈이 부시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을 때, 래희는 슬며시 눈을 떠서 빛이 터져 나왔던 곳을 바라봤다.
“어……?”
그곳에는 작은 화분에 심겨 있던 세계수 가지가 아주 조금 더 성장해 있었다.
[축하합니다! ‘아기 세계수’가 ‘어린이 세계수’로 성장하였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의 눈앞에 세계수의 성장을 알리는 시스템 메시지가 둥둥 떠올라 있었다.
* * *
헌터넷 익명 게시판
[잡담] (hot)(new) 어제 올라온 앤드류 발렌타인 문스타 게시글 (153)
(사진) (사진)
앤드류가 어제 골져스한 맛이라고 올린 빵 사진인데 이거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음?
(사진)
여기 요즘 잘생긴 알바생으로 난리 났었던 빵집에서 만든 디자인이랑 같은 것 같은데?
물론 처음 보는 메뉴긴 한데 빵 위에 적힌 로고까지 같으니까 거기 맞는 것 같음. 사장님 바쁘시다면서 언제 미국까지 진출하심?
- 앤듀… ma boy……. 그 덩치에 귀염뽀짝한 취향을 공개하면 더 좋잖아 엉엉…….
└ㅋㅋㅋㅋ
- 어제 헌터 마켓 루머글 올라온 거 찐이었나 보네.
└링크 좀.
└https://hunter.net/huntermarket019283
- 아니, 사장님. 예약 인원 증원하신다면서 우릴 이렇게 배신하실 수가…….
└다른 사람이 사서 보내 줬겠지 ㅈㄴ 호들갑 떠네.
└사과 곰순이빵은 처음 본다고.
└어떤 걸 팔건 안 팔건 공짜로 주건 그건 사장 맘이지 않음?
헌터넷 익명 게시판
[잡담] 어제 올라온 야미베어 베이커리 X 헌터 마켓 정리글
앤드류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 이렇게까지 부풀려질 줄은 몰라서 내가 한눈에 보기 좋게 정리해 봄.
우선 일주일 전에 S급 빵순이라는 닉네임으로 여러 고등급 아이템이 팔려 나갔음. 이건 구매자들의 증언.
(사진)
사장님이 처음 마켓 등록해 본 건지 이것저것 판매를 등록하셨던 것 같음. 근데 문제는 등록했던 아이템이 요즘 수급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던 A급 블루울프의 송곳니였다는 것.
구매자들이 아우성치면서 간만에 등록된 아이템을 구매하려 광클하고 지랄 염병을 떨었는데도 구매 실패. 앤드류도 구매 실패한 사람 중 하나라 빡쳐서 더 안 올라오나 하고 사장님 마켓 대기 타는데 문득 귀여운 빵이 판매되고 있었던 거임.
무튼 다른 아이템처럼 뭔가 대단한 거라도 되나 싶어서 아이템 설명도 읽지 않고 구매했는데 이게 웬걸, A급 포션에 버금가는 특수 효과가 있다?
그것 때문에 요즘 조용했던 빵집 앞에 해외 바이어들이나 기자들이 몰려들어서 사장님 또 가게 문 닫았다.
그러니까 결론은… 사장님, 가게는 언제 다시 오픈하시나요? 일주일 동안 사장님 빵을 못 먹어서 던전 토벌도 못 나가고 있다는 말이에요…….
- 아니, 사장님. 이것저것 신기해서 헌터 마켓 탐색하시는 건 다 좋은데 왜 하필 빵을 올려서 외국에까지 유명해지냐고요… 우리만 알아도 부족한데…….
└2222 옆에서 말리는 사람이 없었나?
- 아무도 B급 비전투계 헌터가 어떻게 A급 블루울프의 송곳니를 구했는지 궁금해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한데?
└우리는 그게 중요한 게 아님. 당장 저 집 빵을 못 먹으면 토벌을 뛸 수가 없음.
└22 진짜로. 사장님이 힘숨찐이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 그래서 베이커리 재오픈일 아시는 분?
└나도 궁금.
└아무도 몰라. 청해 길드에서도 모른다던데? 그쪽 사내 게시판 그것 때문에 난리임.
그리고 모두의 걱정 어린 주목을 받고 있는 야미베어 베이커리의 사장 래희는 지금, 일주일 째 가게 문을 닫은 채로 류정우와 함께 고생이란 고생을 다 하고 있었다.
“아니, 이 망할 세계 읍!”
래희가 저도 모르게 그녀의 앞에 있는 ‘어린이 세계수’를 향해 험한 말을 중얼거리자 류정우가 다급하게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
“쉿!”
평소 보지 못하던 지친 기색이 만연한 그의 얼굴에는 피로가 한가득 담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