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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네 빵집은 언제 오픈하나요-57화 (57/120)

57화

띵―!

가게 주방 쪽에서 오븐이 다 돌아갔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갓 구운 빵 냄새가 주방을 넘어 가게 안쪽까지 맴돌기 시작했다.

“오, 역시. 몇 날 며칠 동안 티켓팅에 투자하기를 잘한 것 같은데?”

“야, 나온다. 저기 봐봐.”

고소한 빵 냄새에 감탄하던 손님들이 누군가의 가리킴에 일제히 주방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주방 안은 오븐의 열기로 뜨거운 탓인지 더운 듯한 희우가 양쪽 소매를 모두 걷어 올린 채 빵이 담긴 쟁반을 꺼내 오고 있었다.

한 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를 연예인 보는 듯한 손님들의 시선에, 처음에 당황하던 희우조차 이제는 완벽하게 적응하여 이 상황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물론 저가 잘생긴 줄 아는 류정우처럼 자기의 외모에 뻔뻔한 정도는 아니었지만.

빵을 진열대에 옮긴 뒤, 자신을 쳐다보는 손님들에게 의미 없이 생긋 웃어 보이는 건 누가 봐도 류정우에게 배운 게 분명했다.

‘아니, 원래 몬스터라 제 모습에 크게 관심도 없으면서 저렇게 얼굴 활용을 잘한단 말이지.’

뭐, 덕분에 실시간으로 가게의 경험치가 쌓이고 있는 게 래희의 눈에 보였다.

“주문하신 아메리카노도 나왔습니다.”

이제는 가게에 여유도 생겨 음료 주문도 받을 수 있었다. 손님들이 가게 안에서 먹고 갈 자리가 없어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래희는 여유가 있다 해도 테이블을 배치할 생각이 없었다.

‘여기서 더 일이 많아지는 건 사양이야.’

어차피 이 정도면 자신의 클래스에 맞는 S급 빵집 사장이 아닌가. 이제는 목표를 이뤘으니 적당히 워라밸을 지키면서 살아가고 싶었다.

희우가 곰순이 얼굴이 그려진 테이크아웃용 컵을 손님에게 건네자,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던 손님이 저도 모르게 손을 벌벌 떨며 희우가 건네는 아메리카노를 받아 들었다.

[100번째 ‘아메리카노’를 판매하였습니다.]

[업적 ‘이제는 나도 디저트 카페 사장?’이 등록되었습니다.]

래희는 익숙하다는 듯이 뜬금없는 업적 등록에도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시야에 걸리적거리는 시스템 알림 창을 옆으로 치워 버렸다.

남몰래 손으로 앞을 휘적거리다 문득 중요한 메시지라는 걸 알리는 듯이 깜빡이며 빛나는 시스템 메시지 창을 발견했다.

[‘야미베어 베이커리’의 레벨이 상승합니다. (Lv.39→Lv.40)]

[‘야미베어 베이커리’의 레벨 40 달성으로 보상이 주어집니다.]

[지금 확인하시겠습니까? Y / N]

벌써 레벨이 40이라고?

래희는 놀란 표정으로 허공에 나타난 상태 창을 바라보다 가게 한구석에서 열심히 손님들의 빵을 계산하고 있는 희우를 흘끗 바라봤다.

‘이제 손님도 몇 명 안 남았으니까, 확인해 봐도 되겠지.’

가게 안을 정리하던 래희는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손님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주방 안으로 들어가 망설임 없이 Y 버튼을 눌렀다.

빠밤빠바밤―!

[‘야비메어 베이커리’가 조건을 충족하였습니다. 이제는 더 많은 사람에게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없는 ‘야미베어 베이커리’의 빵을 맛볼 기회를 줄 수 있어요. ]

“……?”

‘더 많은 사람에게?’

진짜 보상이 무엇인지 아직 짐작이 가지 않았지만, 문구 하나가 눈에 계속 거슬렸다. ‘더 많은’이라는 수식어가 붙다니. 이상하게도 불안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야미베어 베이커리’의 생상성 증가로 효과 ‘대량 생산(×100)’이 오븐에 부여됩니다.]

‘대량 생산’ 효과라니.

적게 일하고 더 많은 빵을 만들 수 있게 된 거니 오히려 더 좋은 게 아닌가?

래희가 오븐으로 다가가 자세한 부가 효과를 확인했다.

[대량 생산(×100): 오븐에서 만들어진 빵 하나당 100개의 복제품이 인벤토리에 생성됩니다.]

“오……?”

그때였다. 래희가 희소식이라 생각한 부가 효과 설명을 읽고 있을 때, 갑작스럽게 그녀의 시야를 방해하는 퀘스트 창이 그녀의 눈앞에 나타났다.

[퀘스트: ‘21세기 시장에 맞춰서 빵집을 운영하자.’]

“…갑자기 21세기라니?”

래희는 의아한 표정으로 퀘스트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메시지 창을 눌렀다.

[퀘스트: 21세기 시장에 맞춰서 빵집을 운영하자.]

너도나도 온라인 마켓을 통해 물건을 사고파는 21세기 시대. 언제까지 오프라인으로만 가게를 운영할 건가요?

이왕이면 이 상태로 죽을 때까지 할 생각인데……?

시대적 감각이 뒤떨어지는 사장님을 위해 튜토리얼을 준비했습니다.

‘…시대적 감각이 뒤떨어져?’

이미 문스타로 가게 홍보에 온라인 예약 서비스까지 실행하고 있는 래희로서는 시스템이 보내온 퀘스트 내용이 어이가 없었다.

[성좌 ‘운명의 길잡이’가 명색이 헌터인데 헌터들의 방식을 사용한 적 없으니 완전히 틀린 말이 아니라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허……?”

시스템이나 성좌나. 래희는 둘 다 어이가 없었지만 퀘스트 내용을 마저 확인하기 위해 짜증을 참고 끝까지 읽어 내렸다.

헌터 마켓에서 제품을 팔아 봅시다.

- ‘(미등록 1)’ 판매 0/1,000

- ‘(미등록 2)’ 판매 0/1,000

- ‘(미등록 3)’ 판매 0/1,000

- ‘(미등록 4)’ 판매 0/1,000

완료 보상 : 가게 경험치 5,000P, 아이템 ???

실패 페널티 : ‘야미베어 베이커리’ 운영 페널티 부여.

“아니.”

퀘스트 내용을 다 읽어 내리자 래희는 저도 모르게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파 오는 듯했다.

“안 그래도 지금도 일이 많은데 온라인 마켓도 운영하라고?”

래희의 고통스러운 중얼거림이 고요한 주방 안을 맴돌았다. 점점 날이 갈수록 염병 떠는 시스템이 꼴 보기 싫어지기 시작했다.

* * *

헌터 마켓.

각성자의 스탯을 보여 주는 시스템이 운영하는 기능 중 하나였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온라인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개념과 같았다. 하지만 비각성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온라인 마켓과 단 하나가 달랐는데, 그건 바로 ‘배송’ 방식이었다.

헌터 마켓은 각성자들만 사용할 수 있는 시스템 혜택이었는데 인벤토리에 아이템을 담듯이 헌터 마켓 판매란에 아이템을 등록하면 곧바로 사고팔 수 있는 방식으로 중간 단계인 ‘배송’이 전혀 필요가 없었다.

단 하나. 단점이 있다면 그건 바로 ‘익명성’이랄까.

불법적인 아이템이 등록된다, 하더라도 거래가 어떻게 오갔는지 인터넷처럼 흔적이 남는 시스템이 아니었기 때문에 암시장처럼 사용되기도 했다.

이에 전 세계 대부분 정부는 이를 통제하기 위해 헌터 마켓에 등록된 닉네임을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규제했으며, 이를 어길 시 헌터들이 던전 활동을 통해 얻는 수익에 대한 면세 혜택을 빼앗는 등 헌터 활동에 불이익을 얻게 했다. 그래서 대부분의 헌터는 자신의 익명성을 포기한 채 닉네임을 공개하고 헌터 마켓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래희는 난생처음 접속한 헌터 마켓 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권래희’님. 헌터 마켓에 접속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입 절차를 진행하시겠습니까?]

최근 1년을 제외한 지난 폐급 헌터로서의 삶 동안 특수 효과가 부여된 ‘아이템’은 필요한 일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 아이템을 살 만한 능력이 되지 않았으므로 그동안 단 한 번도 헌터 마켓에 접속한 일이 없었다.

물론 필요한 게 생기면 말하기도 전에 윤재언이나 윤청현 길드장이 구해 줬기 때문에 더더욱 스스로 아이템을 찾아볼 일도 없었다.

“하……. 이거 진짜로 해야 하나?”

아직은 한국 안에서만 유명하다. 청해 길드 소속의 특수 효과가 부여된 빵을 만드는 헌터. 이 정도로만 적당히 알려져 있었다.

다행히 한국의 헌터 인구는 100만 정도였고, 래희의 빵에 부여된 특수 효과를 필요로 하는 고위급 헌터는 얼마 되지 않았다.

특수 효과가 부여된 음식이나 아이템은 아주 비쌌으므로 래희네 빵집의 빵이 아주 맛있다고 소문이 나 있다 하더라도 그 비싼 돈을 지불해 가며 빵을 살 수 있을 만한 능력을 가진 사람은 몇 없었다는 소리였다.

“빵 한 조각에 몇십만 원 하는 걸 당연히 일반인들은 사 먹으려 들지 않지.”

물론 자신이 유명해지고 난 뒤에 따라올 논란을 피하려 시중에 판매되는 포션 물가에 맞춰 빵의 가격을 올렸으므로 허들이 높아진 것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국내 안에서의 일이지 헌터 마켓은 세계적인 시장이었다. 국가에 대한 제한 없이 전 세계 헌터들이 자유롭게 물건을 사고파는 곳이었으므로 자신이 만든 빵이 아무리 비싸다고 한들 수요가 없을 리가 없었다.

‘이 세상에 부자는 많으니까.’

B급 헌터만 되어도 10만 원 정도의 돈은 일반인 기준으로 만 원과 비슷했다. 그러니까 래희는 자신의 빵이 등록되었을 때 따라올 유명세가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성좌 ‘운명의 길잡이’가 어이없어합니다.]

[아직 유명하지도 않은데 벌써부터 유명해지는 걸 걱정하는 게 웃긴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래희는 성좌의 말에 고개를 단호하게 저어 보였다.

“제 꿈은 부자가 되는 게 꿈이었어요. 그러니까 ‘유명하지 않은’ 부자.”

유명한 부자가 되면 삶이 피곤하지 않겠는가.

래희의 머릿속에는 당연히 자신의 빵들이 잘 팔릴 거라는 확신만 가득히 채워져 있었다.

래희는 한숨을 쉬며 거실 소파에 앉았다. 그때, 어두워진 집 밖으로 누군가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잊혀진 마을’에 그녀의 허락 없이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밖에 없었다. 당연하게도 집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남자는 류정우였다.

* * *

헌터 마켓에서 사용되는 통화는 ‘골드’. 바로 래희가 ‘잊혀진 마을’의 상점에서 사용하는 화폐와 그 가치가 같은 1골드당 10,000원이었다.

래희는 ‘S급 빵순이’라고 만든 닉네임 아래로 물건을 등록할 수 있는 빈칸을 눌렀다.

“정말 지금 당장 등록하시려고요?”

방에서 빠르게 씻고 나와 그녀의 옆에 얌전히 앉아서 구경만 하던 류정우가 물었다. 자신이 씻고 나올 때까지도 닉네임을 결정하지 못하더니. 결국, 1시간 동안 고심 끝에 닉네임을 S급 빵순이라고 지을 때까지만 해도 별생각 없이 그저 귀엽다는 생각으로 웃어 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그녀가 닉네임을 결정한 이후에는 한 치의 고민도 없이 곧장 빵을 등록하려 하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지금도 바빠서 얼굴 한 번 보기 힘든데 이보다 더 바빠지면 아니, 래희의 능력의 가치를 꿰뚫어 본 누군가가 두 사람을 귀찮게 굴면 어떡하겠는가? 물론 류정우는 당연하게 자신을 래희와 함께 엮은 채로 앞으로의 일들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아!”

하지만 래희는 류정우의 말을 다르게 받아들였는지 상품등록 페이지를 벗어나 마켓을 탐험하기 시작했다.

“시장 조사를 깜빡할 뻔했네요!”

제 걱정과 어긋난 대답에 류정우가 작게 탄식하며 머리를 짚었지만 래희는 전혀 개의치 않은 채 이것저것 눌러 보느라 바빴다.

래희가 하는 걸 지켜보던 류정우가 어느새 그녀의 곁에서 꽤 가까이에 몸을 밀착한 채 앉아 있었지만, 헌터 마켓 창에 집중하던 래희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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