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거센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매섭게 휘날리던 눈보라는 두 사람의 시야를 더욱더 방해하기 시작했다.
“씨X.”
평소 차분한 태도를 보여 주던 모습과 달리 윤해주는 욕설을 나직하게 짓씹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윤해주의 그런 모습을 신경 쓸 겨를도 없이 류정우는 자리에 가만히 서서 굳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처음 느껴 보는 소름 끼치는 감각이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죽으면 다시 시작한다는 확신이 있음에도, 본능적으로 머릿속에서 경고등이 켜지는 건 막을 수 없었다.
그때, 더 거세진 눈보라 사이로 윤해주의 모습이 사라졌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 류정우는 자신의 오감을 사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그의 시야 안으로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거대하고 어두운 무언가를 발견했다.
캬아아악!
머리가 세 개 달린 검은 드래곤이었다.
[‘단탈리온(S)’가 등장합니다.]
[‘단탈리온’이 자신의 영역의 침입자를 발견합니다.]
[S급 보스 몬스터의 존재감이 영역 전체에 전개됩니다.]
[스킬 ‘굳은 다짐(S)’이 실행됩니다. ‘단탈리온’의 존재감에 저항합니다.]
상황을 파악할 겨를조차 없었다. 류정우는 본능적으로 자신이 서 있던 자리에서 벗어났다.
쾅―!
그가 있던 자리를 향해 입을 벌린 단탈리온이 주변을 모두 얼릴 만한 입김을 쏘아 댔다.
[‘단탈리온’이 목표물을 놓쳤습니다.]
[그의 분노가 필드 전역에 펼쳐집니다.]
“류정우!”
그때, 사라졌던 윤해주가 다시 그의 시야 안으로 나타나 소리쳤다.
그와 동시에 그를 발견한 단탈리온의 다른 머리가 그를 향해 커다란 입을 쩌억 벌렸다. 머리가 세 개인 단탈리온은 주변 시야를 모두 살필 수 있었기 때문에 피하는 게 쉽지 않았다.
윤해주도 남 걱정할 상황은 아니었다. 나머지 머리 하나가 그녀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S급 용의 머리 세 개와 S급 헌터 둘.
수적으로도 불리한 상황이었다.
다행히 윤해주는 스킬을 이용해 곧바로 옆으로 이동하여, 간발의 차이로 용의 입김을 피할 수 있었다.
눈보라 사이로 윤해주가 순간이동을 하듯이 순식간에 류정우의 곁으로 다가왔다.
“이대로 우리 둘이서 저걸 상대하기는 어려워.”
무리하며 스킬을 중첩으로 사용하여 단탈리온을 피한 윤해주가 주변을 훑었다. 주변에 커다란 산악 지대가 있었다.
“일단 몸부터 피하는 게 우선이야.”
류정우가 무어라 대답도 하기 전에 윤해주는 그의 목덜미를 붙들고 이동하기 시작했다.
윤해주가 가진 이동 스킬은 순간이동 스킬이 아닌 바람을 타고 이동하는 스킬이었다. 거센 눈보라를 뚫고 이동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두 사람을 동시에 이동시키는 건 무리가 있었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이게 최선이었다.
[단탈리온이 사라진 목표물을 찾습니다.]
[단탈리온이 목표물을 찾지 못하여 분노합니다.]
윤해주는 최선을 다해 단탈리온이 자신들을 인식하지 못하도록 빠르게 이동했다.
콰콰쾅―!
분노한 단탈리온 때문에 무언가 박살이 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때, 중심이 잠시 흔들린 윤해주가 이동 중 삐끗했다. 그 때문인지 단탈리온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단탈리온이 목표물의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단탈리온이 침입자에 대한 분노를 표출합니다.]
쾅―!
단탈리온이 그들이 방금까지 지나온 자리에 정확히 입김을 쏘았다.
이전보다 더 강한 강도였는지 눈으로 덮여 있던 자리가 움푹 파여 바닥이 보이지 않을 만큼 깊은 싱크홀이 만들어져 있었다.
류정우는 각성 이후 난생처음으로 공포로 식은땀이 흐르는 듯했다. 매서운 추위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정확한 판단을 위한 생각은 사치였다.
이미 지쳐 보이는 윤해주는 더 도움이 될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류정우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리볼버를 단탈리온을 향해 겨누었다.
A급 리볼버라 먹힐 거란 기대는 없었지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탕!
총구 끝에서 날아간 총알이 일직선으로 뻗어 나갔다. 빛의 속도로 날아간 총알은 단탈리온 머리 중 하나의 눈알을 정확하게 맞추었다.
“캬아아아―!”
그러나 A급으로는 역부족이었는지 총알이 터진 눈가 주변에 약간의 화상만 입혔을 뿐, 큰 상처를 입힌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류정우는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면서 하얗게 서리가 낀 눈썹을 꿈틀거렸다.
‘역시, 무리였나.’
분노한 단탈리온이 지친 그들을 향해 세 개의 머리를 동시에 향했을 때였다.
[‘알 수 없는 별’이 당신의 채널에 접속을 시도합니다.]
[이미 소속이 있는 ‘별’은 접속이 제한됩니다.]
[‘알 수 없는 별’이 유료 접속을 시도합니다.]
류정우는 급박한 상황에 눈치 없이 끼어든 상태 창에 당황하여 순간적으로 집중력이 흐트러졌다.
단탈리온은 그때를 놓치지 않고 입을 벌려 입김을 그들에게 뿜었다.
옆에서 회복 포션으로 체력과 마력을 보충한 윤해주가 그를 붙잡고 옆으로 굴렀다.
그와 동시에 류정우의 시야 안에 성좌의 메시지가 나타났다.
[성좌 ‘운명의 길잡이’가 채널에 접속하였습니다. (남은 접속 시간 00:29:59)]
[성좌 ‘운명의 길잡이’가 ‘멋쟁이 리볼버(S)’를 후원합니다.]
[S급 몬스터를 상대로 S급 둘도 못 버티는데 A급 아이템을 사용하는 당신을 향해 혀를 찹니다.]
[성좌 ‘운명의 길잡이’가 당신 인생 N회차 맞냐며, 얼굴뿐 아니라 지능도 부족한 것 같다고 안타까워합니다.]
류정우는 성좌의 마지막 말을 확인할 겨를도 없이 바닥에 뒹군 자세 그대로 자신의 손에 쥐어진 S급 리볼버를 다시 단탈리온을 향해 겨누었다.
탕―!
총소리와 동시에 이번에는 옆모습을 보인 단탈리온의 눈을 정확하게 뚫고, 푸른 섬광을 남긴 총알이 머리를 통과했다.
* * *
1차 공략대에 참여한 윤재언은 정신을 잃은 뒤 어딘지 모를 곳에서 눈을 떴다.
사방이 온통 어둠으로 휩싸여 있었다.
다행히 윤재언은 S급 각성자였기 때문에 어둠 속에서도 주변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은 있었다.
‘여기가 어디지?’
분명 공략 대원들과 함께 머리가 세 개인 용을 마주했던 기억이 있었다.
하지만 미처 피할 새도 없이 입을 벌린 용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기억이 끊겼다. 윤재언은 나머지 공략 대원을 찾기 위해 누워 있던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차가운 철창이 그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이게 무슨…….”
힘으로 무작정 철창을 벌려 보려 시도했으나 꿈쩍도 하지 않았다.
윤재언은 그에 당황하며 자기도 모르게 한 발짝 물러났다. S급 스탯을 가진 그가 부수지 못할 쇳덩이는 없었으나 이번에는 달랐다.
혹시 몰라 화염 스킬로 철창을 녹이려 시도했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그때, 바닥에 뒹굴고 있는 무언가가 윤재언이 사용한 불꽃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윤재언은 반짝이는 물건을 주워 들었다.
“이건…….”
함께 왔던 공략 대원의 손가락에 끼워져 있던 반지였다. 다른 길드 소속이라 안면 정도만 튼 사이였다.
윤재언은 반지의 주인을 찾기 위해 자신이 갇힌 감옥 안, 그리고 바깥을 살펴봤지만 어떠한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그가 갇혀 있는 감옥 주변에 살아 있는 생명이라곤 그밖에 없는 듯했다.
일단 이곳을 빠져나가는 게 먼저라는 생각에 윤재언은 인벤토리를 열어 탈출석을 꺼내 들었다. 전 세계 몇 개 없는 탈출석이었지만, 실종된 나머지 대원들을 다시 찾으려면 게이트를 탈출했다가 다시 들어오는 수밖에 없었다.
암시장에서 구한 아이템이었기 때문에 그가 몇 없는 탈출석을 가지고 있다는 건 다른 이들은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탈출석을 사용하자 지직거리며 게이트가 열리기 시작했다. 발걸음을 옮겨 밖으로 나오자 다행히 탈출석으로 연 게이트가 그가 던전으로 들어온 게이트와 연결이 되었는지, 던전으로 들어오기 전 광경이 그의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익숙한 광경을 향해 바닥에 발을 디딘 순간 누군가가 그를 향해 소리쳤다.
“윤재언이 나왔어!”
심각하게 대화를 나누던 다른 헌터들이 일제히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버지인 윤청현과 던전 관리청 고위직으로 보이는 이들이 그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윤재언 씨.”
던전 관리청 소속 팀장이 그에게 반색한 표정으로 물었다.
“류정우 헌터와 윤해주 헌터는 만나셨습니까?”
그 말에 윤재언이 의문 가득한 표정으로 그를 내려다봤다.
“그들이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습니까?”
그의 대답에 던전 관리청 팀장이 얼굴을 구겼다. 그 옆에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서 있던 윤청현이 입을 열었다.
“어떻게 된 거지?”
윤청현에게 자신도 잘 모르겠다며 대답하려던 순간 그의 뒤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보였다.
자신과 같이 있다가 사라졌던 공략 1팀 대원들이었다.
그에 윤재언은 당황하며 윤청현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질문했다.
“1팀 대원들 모두 탈출한 겁니까?”
던전 관리팀 팀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했다.
“공략 2팀이 실종자를 찾으러 들어간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곧바로 나오더군요. 다행히 2팀도 S급 헌터들을 제외한 헌터들이 일단 모두 무사히 귀환했습니다.”
그 말에 윤재언은 홀린 듯이 그들 무리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어둡고 차가웠던 감옥 안에서 주운 반지의 주인을 향해 다가갔다.
“신주하 씨?”
백영 길드 소속 A급 헌터 신주하. 그녀는 윤재언의 목소리에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얼굴을 마주한 윤재언은 이상한 기분이 드는 탓에 일그러지려는 표정을 애써 지우고 시선을 그녀의 손가락을 향해 내렸다.
반지가 자리하던 왼손 네 번째 손가락이 비어 있었다.
윤재언은 아까보다 유난히 차갑게 느껴지는 반지를 재킷 안주머니에서 꺼내 들었다.
그러나 여자의 표정은 여전히 큰 변화 없이 입꼬리만 올라간 채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소중한 것 아니었나?’
애써 마음 한구석에서 피어오르는 의심을 무시하며 신주하에게 반지를 건넸다.
“이거, 신주하 씨 것 아닙니까? 게이트에서 주웠습니다.”
“아.”
윤재언의 설명을 들은 신주하가 그제야 깨달았다는 듯이 기쁘다는 표정으로 그에게서 감사 인사와 함께 반지를 받아 들었다. 하지만 윤재언은 그녀의 표정에서 어딘가 인위적인 느낌이 들었다.
‘뭔가 이상해.’
잃어버린 반지를 어디서 주웠냐, 어떻게 발견했냐는 등의 질문이 돌아와야 했지만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에 윤재언은 다른 헌터들의 얼굴을 훑어봤다.
하지만 평소와 다를 것 없어 보이는 그들의 태도에 윤재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래도 자신이 너무 민감하게 구는 건지도 몰랐다.
그때 윤청현이 윤재언의 곁으로 다가와 물었다.
“무언가 문제가 있나?”
짐작 가는 게 있는 듯한 묘한 확신이 깃든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