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헌터네 빵집은 언제 오픈하나요-49화 (49/120)

49화

말하고 보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어색한 침묵이 두 사람 사이를 맴돌자 래희는 눈동자만 또르르 굴리며 류정우의 눈치를 살폈다.

다행히 류정우의 얼굴에는 별다른 표정 변화가 없었다. 물론 그건 류정우가 웃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노력한 결과였다.

결국, 두 사람은 합의 끝에 한 침대를 쓰는 것으로 결정했다.

류정우가 화장실에서 엘프들이 준비해 온 잠옷으로 갈아입고 나오자 먼저 잠이 들 준비를 했던 래희가 침대 끝에서 반듯하게 누워 눈을 감고 있었다.

눈썹이 부르르 떨리는 게 잠이 든 척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류정우는 그 눈물 나는 노력에 모르는 척해 주며 침대가 출렁이지 않도록 천천히 그 옆에 누웠다.

고개를 돌리니 여전히 눈이 감긴 채로 떨리는 눈꺼풀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귀엽기는.’

류정우는 피식 웃으며 그녀의 얼굴을 한번 바라보고는 몸을 반대로 돌려 누우며 래희에게 등을 보였다.

아무래도 오늘 밤은 쉽게 잠들지 못할 것 같았다.

* * *

다음 날 아침. 지난밤 저도 모르게 언제 잠이 들었는지, 눈을 뜨자 창가로 들어온 쨍쨍한 햇빛이 래희의 눈을 찔러 왔다.

옆으로 고개를 돌리니 텅 빈 침대 옆자리가 보였다. 류정우는 벌써 일어났는지 방 안에서도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성좌 ‘운명의 길잡이’가 외간 남자 옆에서 태연하게 침이나 흘리며 잠이나 잤다고 한숨 쉽니다.]

[당신을 그렇게 키우지 않았다고 말하며 흐느낍니다.]

‘아니, 침을 흘렸다고?’

래희는 그 말에 놀라 누워 있던 몸을 벌떡 일으켜 앉으면서 입 주변을 닦았다.

다행히 아무것도 만져지지 않는 게 정말로 침을 흘린 건 아닌 듯했다.

“하여튼 엄살은…….”

래희는 일어난 김에 씻고 옷을 갈아입기 위해서 침대 위에서 비척거리며 일어났다.

엘프들이 준비해 준 외출복으로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갈 준비를 마치고 화장실을 나오자, 류정우가 책상 위에 걸터앉아 있는 게 보였다.

류정우는 화장실 문을 열고 나오는 래희를 보며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일어났어요?”

“네…….”

래희는 류정우의 시선을 피하며 어색하게 대답했다. 그는 그에 개의치 않은지 자리에서 일어서며 입을 열었다.

“엘프들에게 듣기로는 오늘 이곳에서 세계수를 키우는 행사가 있다고 하더군요.”

세계수?

“퀘스트를 어떻게 해결하나 싶었는데 실마리가 보이니 다행이네요.”

류정우는 오전에 밖에 나갔다가 들은 엘프들의 이야기를 래희에게 설명했다.

“외지인인 저희도 구경이 가능하다고 하니 한번 가 보겠어요?”

래희는 그의 제안에 흔쾌히 끄덕이며 류정우를 따라 집을 나섰다.

그녀가 늦잠을 잔 탓인지 엘프 마을의 광장에서는 한참 행사가 진행 중이었다.

엘프들이 둘씩 짝지어서 화분 안의 나뭇가지를 심고 있었다.

멀리서 두 사람이 걸어오는 모습을 발견한 엘프 ‘이엘’이 반갑게 인사하며 다가왔다.

“오셨네요!”

어제 처음 보는 사이인데 이렇게 반갑게 맞이하다니. 래희는 도저히 적응되지 않는 이엘의 인싸 바이브에 놀라며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정우 씨가 제안해 주셔서요.”

“그렇군요!”

래희의 대답이 무엇이 당연한지는 잘 모르겠으나, 이엘은 그녀의 대답이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면 행사에 참여해 보시겠어요?”

“어… 네?”

하지만 래희가 그렇다고 대답을 하기도 전에 이엘은 나뭇가지가 심어진 화분 하나를 들고 왔다.

“여기요! 이걸 들고 자리에 서 주시면 돼요.”

래희의 손에 화분을 들려준 이엘은 제 할 말만 하고 잽싸게 장로 곁으로 뛰어갔다. 누가 장로의 손녀 아니랄까 봐 제 말만 하고 들으려 하지 않는 게 아주 똑같았다.

래희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류정우와 함께 광장의 빈자리에 자리 잡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행사를 알리는 종이 치더니 엘프들이 하나둘 자신의 앞에 놓인 화분으로 손을 뻗기 시작했다.

그들을 따라 류정우가 손을 뻗자 래희도 그를 따랐다.

그때, 두 사람 앞에 뜬금없는 문장 하나가 떠올랐다.

[사랑의 힘이 필요합니다.]

‘뭐야?’

사랑이라니?

래희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자신의 옆에 서 있는 류정우를 올려다봤다. 류정우의 얼굴을 보자 놀란 건 그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아니, 애초에 이 행사는 뭔데?’

그때, 두 사람 사이로 이엘이 얼굴을 내밀며 명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 여러분! 두 사람이 힘을 합치면 세계수를 성장시킬 수 있어요!”

[성좌 ‘운명의 길잡이’가 화병으로 쓰러질 것 같다고 뒷목을 잡습니다.]

[꼭 이런 식으로 세계수의 목재를 얻을 필요는 없다고 조언합니다.]

래희는 성좌의 메시지를 치우며 이엘에게 물었다.

“이게 무슨 행사인데요?”

그에 이엘이 음흉한 표정을 지으며 속삭였다.

“사랑의 결실을 보게해 주는 세계수 키우기 행사랍니다.”

“네?”

래희가 무슨 말을 하느냐는 듯 되묻자 이엘은 외지인들이라 잘 못 알아들었나 싶어 다시 설명했다.

“거창한 것까지는 아니고, 그냥 나무 심는 행사예요. 연인이나 부부가 나무를 심고 잘 기르면 소원을 하나 이뤄 주는 그런 거요.”

뭐, 진짜로 소원을 이뤄 주는 건 아니지만요.

“그래도, 세계수의 가지를 잘 키워서 나무를 기르면 쓸모가 많으니 좋은 게 좋은 거죠.”

어떤 행사를 하든 거기에 의미 부여하기 나름이니까요.

“아…….”

래희는 이엘의 말에 아연실색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세계수의 나뭇가지를 내려다봤다.

‘연인이라니, 부부라니. 그걸 왜 우리 두 사람한테 제안하는 거지?’

혹시 전날에 침대 하나만 있는 집을 손님방으로 내어 준 것도 착각해서인가?

[성좌 ‘운명의 길잡이’가 엘프란 족속들은 워낙 변태들이라 그런 것 따위는 상관없었을 거라고 말합니다.]

‘에이 설마…….’

그러나 래희는 고개를 들다가 이상한 것을 발견하고 말았다.

모두가 있는 광장에서 서로의 엉덩이 위에 손을 올리고 있는 한 엘프 남녀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남사스러운 광경에 놀란 뼛속까지 유교걸인 권래희는 귀 끝까지 빨갛게 달아오른 채로 고개를 푹 숙였다.

[성좌 ‘운명의 길잡이’가 네 옆에 있는 놈은 다 알고 있었으면서 모르는 척했을 거라 조언합니다.]

‘적당히 해요. 류정우가 그럴 리 없잖아요.’

그러나 ‘남자주인공’ 류정우에 대한 무한 신뢰를 가진 래희는 성좌의 말을 곧바로 부정하며 고개 저었다.

래희는 자신이 전생에 활자로 읽었던 소설의 남자주인공 ‘류정우’에 대해 모르는 게 없다고 자신했다.

그리고 이내 자신과 류정우 두 사람 앞에 놓인 화분을 보며 생각했다.

‘그래서, 이건 이제 어쩌지……?’

세계수 나뭇가지 위로는 여전히 아까 본 설명 창이 떠올라 있었다.

[사랑의 힘이 필요합니다.]

나뭇가지 하나를 키우는 데 사랑의 힘이라니.

도대체 사랑의 힘이란 게 뭔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던 래희로서는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그래도 이왕 이렇게 된 거 세계수의 목재를 얻기 위해서라도 한번 키워 보자는 생각이 든 래희는 류정우와 함께 머리를 싸매며 행사가 끝날 때까지 나뭇가지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그러나 남들이 세계수 나뭇가지에 나뭇잎을 틔울 동안 두 사람의 화분에는 변화가 전혀 없었다.

그 모습을 발견한 장로는 원래 젊었을 때는 확신이 없을 수도 있다고 껄껄 웃으면서 그들을 지나쳤다.

하지만 다행히도 두 사람 모두 포기한 채 자리에서 일어나기 직전, 류정우가 화분을 챙기기 위해 들어 올리자 반짝이는 황금빛에 휩싸이기 시작한 나뭇가지 끝에서 나뭇잎이 피어올랐다.

그때, 경쾌한 소리와 함께 시스템 메시지가 나타났다.

[세계수의 가지를 깨우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성공 보상으로 세계수의 목제 ×1을 획득합니다.]

“어……?”

[퀘스트 ‘계절 메뉴는 저리 가라’가 완료되었습니다!]

[완료 보상으로 가게 경험치가 +3,000 증가합니다.]

[경험치 3,000 증가로 ‘야미베어 베이커리’의 레벨이 상승합니다. (Lv.26→Lv.29)]

[완료 보상으로 마을 상점이 업데이트됩니다.]

방심한 사이 순식간에 해결된 퀘스트에 놀라 래희는 눈을 껌뻑거렸다.

이렇게 순식간에 퀘스트가 끝이 난다고?

래희는 너무나도 놀라 두 손으로 벌어진 입을 가렸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

시스템은 두 사람을 놀리듯 새로운 퀘스트 창을 허공에 띄웠다.

[퀘스트: 사랑의 힘으로 세계수를 함께 키워 봅시다.]

“…지랄.”

래희의 입에서 욕설이 흘러나오자 그녀가 욕하는 걸 처음 본 류정우가 놀란 듯이 움찔거리며 그녀를 바라봤다.

[성좌 ‘운명의 길잡이’가 지금 내 기분이 딱 그래, 라고 말합니다.]

래희는 한숨을 쉬며 퀘스트 창을 열어 내용을 확인했다.

[공동 퀘스트: 사랑의 힘으로 세계수를 함께 키워 봅시다.]

세계수는 세상의 균형을… (중략) 사랑의 힘으로 세계수를 길러 봅시다.

- 세계수 성장 3단계

* 매일 두 사람이 함께 물과 양분을 줍니다. 연달아 끊기지 않고 30일 동안 물을 줄 경우 1단계씩 성장에 성공합니다.

* 성장 단계별로 능력을 하나씩 오픈합니다.

* 아기(완료) - 어린이(진행 중) - 청소년(예정) - 성체(예정)

- 완료 보상: ??? (두 사람 모두에게 지급됩니다.)

래희는 기가 차서 헛웃음이 나왔다. 왜 성좌가 그렇게 신경질적인지 알 것만 같았다. 알고 보니 시스템 새X는 성좌보다도 더한 미친 새X였다.

“하루 한 번씩 같이……?”

그게 가능한 건가? 같이 산 지 일주일이 되었지만, 밤에도 얼굴 한번 보기 힘들 정도로 바쁜데?

“보상이 뭔지도 안 알려 줬네요.”

류정우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그도 지금 이 퀘스트가 불만인 것처럼 보였다.

“굳이 할 필요가 있을까요?”

류정우가 맘에 들지 않아 하는 기색을 보이자 래희는 이때다 싶어 그에게 말했다.

“페널티도 없는데 안 해도 될 것 같아서요.”

그때, 퀘스트 창이 불안하게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 붉은 글씨로 경고 문구가 떠올랐다.

[세계수 성장 실패 시, 저주받은 나무로 변합니다. 저주받은 나무는 자신을 키우는 데 실패한 주인을 원망해 저주를 내립니다.]

‘…이거 협박인가?’

래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눈썹을 꿈틀거리며 시스템 창을 바라봤다.

“저주라니…….”

저주라는 단어를 읊는 류정우의 표정이 어딘가 불안해 보였다.

래희는 처음 보는 류정우의 싸늘하게 굳은 표정에 놀라 당황하며 그에게서 화분을 거의 뺏듯이 받아 들었다.

아무래도 이 퀘스트. 이번에도 어쩔 수 없이 진행해야 할 듯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