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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네 빵집은 언제 오픈하나요-46화 (46/120)

46화

“이게 뭐야!”

래희가 놀라 소리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시스템은 아랑곳 않고 제가 할 말만을 계속해서 메시지로 띄워 보냈다.

디링―!

[‘비어 있는 방2’에 입주민이 등록됩니다.]

[래희 하우스]

- 방1: 권래희, 곰순이

- 방2: 류정우

[환영합니다! 사용자 ‘류정우’가 잊혀진 마을의 주민으로 등록됩니다. 이제 마을 시설을 자유롭게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은 놀라 멍하니 허공에 떠오른 메시지 창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뒤 정신을 차린 래희가 항의하듯 격양된 목소리로 허공을 향해 말했다.

“누구 맘대로 식구니, 입주민이니 정하는 거예요?!”

[성좌 ‘운명의 길잡이’가 자신은 결백하다고 주장합니다.]

[이번 퀘스트는 시스템이 주관한 거라 자신은 몰랐다고 설명합니다. 이런 게 있다는 걸 알았다면 진작에 말렸다고 ‘래희래희’ 쿠션을 꽉 끌어안습니다.]

‘…이 와중에 래희래희 쿠션은 또 뭔데?’

그때, 성좌의 푸른 메시지 창과는 달리 처음 보는 하얀색 메시지 창이 래희의 눈앞에 나타났다.

[system: 식사=식구=가족=한집]

이건 또 무슨 논리지?

[system: ‘식구’의 정의, 1. 한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 2…….]

“아니,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래희는 시스템을 향해서 허공에다 소리치며 말했다. 그때, 류정우가 래희를 말리며 입을 열었다.

“래희 씨, 그냥 등록만 되었다고 생각하고 저는 집으로 돌아가면 되죠.”

“…아.”

그의 말에 래희는 감탄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방 주인이 되었다고 해도 집에 안 들어오면 그만 아닌가. 생각해 보면 독립한 이후에도 윤청현 아저씨네 집에 아직도 제가 머물던 방이 존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생각을 잘 알았다는 듯이 시스템 메시지 창이 또다시 떠올랐다.

[36시간 안에 등록된 거주지에서 최소 5시간 머물지 않으면, 페널티가 부가됩니다.]

[페널티: 농사 효율 30% 하락.]

그에 래희는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야!”

하지만 시스템 메시지는 확고하다는 듯 변하지 않은 채 계속해서 페널티를 띄워 올렸다.

래희가 시스템에 화를 내는 동안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조용히 곁에 서 있던 류정우가 조심스레 래희를 향해 입을 열었다.

“래희 씨. 농사 효율이 떨어지면 어떻게 되나요?”

그리고 갑작스러운 류정우의 질문에 래희는 얼떨결에 곧바로 대답했다.

“어… 지금보다 신선하지 못한 작물을 얻거나 수확량이 많지 않아질 수도 있어요…….”

“그러면 베이커리를 운영하는 데 문제가 있을 수도 있겠네요.”

“아!”

미쳐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잘못하면 구오빠랑 한집에 지내야 한다는 생각에 시스템에 항의하고 있었는데 더 큰 문제가 있었다니.

래희는 덕질 역사를 최애에게 들켰었다는 사실을 잊은 채 멍하니 그를 올려다봤다.

그에 류정우가 충격을 받은 듯한 래희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다른 방법은 없어 보이는데요?”

“그게…….”

래희가 마주해 오는 류정우의 시선을 피하며 대답하기를 어려워하자 류정우가 말했다.

“저는 괜찮아요. 어차피 던전 일이 바빠서 집은 잠만 자는 곳이니까요.”

[성좌 ‘운명의 길잡이’가 자신은 괜찮지 않다고 말합니다.]

결국, 류정우는 래희와 함께 그녀의 집에 머물게 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물론 페널티 때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기도 하지만.

래희의 얼떨떨함과 당황스러움이 가득한 표정과 달리, 류정우의 얼굴에는 딱히 큰 표정 변화가 없었다.

“그럼 앞으로 잘 부탁해요.”

어쩐지 손을 마주 잡으며 인사해 오는 류정우의 얼굴이 이상하게도 기분이 좋아 보이는 건 착각일지도 몰랐다.

* * *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는 살면서 생각도 못 했다. 어디 가서 하소연하지도 못할 일이 벌어져 래희는 비척거리며 소파 위에 주저앉았다.

동거라니. 그것도 류정우랑. 래희는 이대로 기절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래희는 얼굴을 두 손을 덮으며 말했다.

“저기… 지금은 방에 아무것도 없을 건데요…….”

“하지만 벌써 시간 카운팅이 시작되었는걸요? 내일부터는 제가 길드 일로 한동안 바쁠 예정이라 딱 잠자는 시간 동안만 이 집에 머무를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아…….”

래희는 류정우가 손짓하는 곳을 바라보자 그곳에는 정말 그의 말처럼 그가 머무는 시간 카운팅이 시작되고 있었다.

“남은 퀘스트는 다음 주 주말에 같이 해결하기로 했으니 너무 걱정 마세요.”

상황과 달리 어딘가 산뜻한 목소리로 류정우가 말했다.

“일단, 오늘 밤에는 여기서 머물러야 할 것 같으니 집에 들러서 짐 좀 들고 와야겠군요.”

“…네.”

류정우가 방의 상태를 확인해 보려는 듯 문을 열었다. 그러나 래희의 설명과는 달리 있어야 할 만한 기본 살림살이가 전부 배치되어 있었다.

집에 다녀오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류정우의 말에 놀란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다 그의 턱짓을 따라 방 안을 확인하자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뒤로 몇 발짝 물러났다. 그러다 이내 자신의 방문 앞에 등이 맞닿았다.

흐힉! 하는 소리를 내며 래희가 깜짝 놀란 듯 등을 문에서 떼며 펄쩍 뛰어올랐다.

래희가 놀랄 만도 한 게 방 안은 마치 그가 살던 집처럼 인테리어가 되어 있었다. 류정우는 자신의 방이라고 배정된 곳 안으로 들어와 문을 닫고 주변을 살폈다.

나름 따뜻하고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래희의 집과 달리, 거의 모든 가구가 흑백의 색감을 띄고 있었다. 마치 방 주인의 취향을 반영하는 듯했다.

“…웃기네. 도대체 이런 것까지 어떻게 알고.”

류정우는 지금 자신이 머무르고 있는 집의 방보다는 조금 많이 작은 아담한 방을 둘러봤다. 작은 방 안에는 검은색의 침구가 정리된 침대, 적당한 크기의 책상이 있었다. 무채색으로 꾸며진 방은 거실과의 분위기가 너무 달라 동떨어진 세상 같기도 했다.

그는 곧바로 책상 쪽으로 걸어갔다.

책상 위에는 어메니티처럼 검정 칫솔과 기초 화장품이 준비되어 있는 걸 보면, 굳이 지금 당장 짐을 찾으러 집으로 갈 필요는 없어 보였다. 모든 게 그를 위해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때, 방문이 살짝 열리며 래희는 자신의 집에 화장실이 하나뿐이라 조금 불편할지도 모른다고 설명하며, 그에게 물었다.

“혹시… 필요한 것이 있나요?”

“아, 괜찮아요.”

이만 밤이 늦었으니 저는 신경 쓰지 말고 먼저 주무세요.

류정우는 그가 어색한지 방문만 살짝 열고 소심하게 말을 걸어오는 래희에게 대답했다.

그도 그럴 것이 벌써 새벽 1시. 내일 아침 일찍 각자의 일로 두 사람 모두 집을 나서야 했기 때문에 이만 잠이 들어야 할 시간이었다.

“넵.”

래희가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류정우의 대답을 듣자마자 제 방으로 들어가는 걸 본 뒤, 그는 책상 모서리를 살며시 쓸어내렸다. 분명 시스템의 농간에 래희처럼 자신도 당황스러워야 할 게 분명한데, 이상하게도 오히려 잘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같이 래희를 만나러 가게에 들렀지만, 그런데도 류정우는 그녀를 보지 않을 때에도 머릿속에 문득문득 래희의 모습이 떠올랐다.

분명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시작했는데 과거의 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하면서부터 어느새 래희에 대한 관심이 호기심에서 호감으로 변해 있었다.

정확하게 무슨 감정이라고 정의하기는 어려웠지만 적어도 자신이 래희에게 호의적인 감정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알았다.

그게 자신의 오랜 팬이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녀가 만드는 빵 때문인지는 몰랐지만.

그렇게 래희의 생각으로 길지 않은 밤을 새우다가, 결국 한숨도 자지 못하고 몸을 일으켰다. 창밖을 보자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고 있었다. 류정우는 어느새 출근할 시간이 되자 준비를 위해 방을 나와 욕실로 걸음을 옮겼다.

욕실 안에 가득 찬 수증기 사이로 물소리가 들려왔다. 얼마간 물 아래에 서 있었을까, 거실에서 가벼운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문이 벌컥 열리며 차가운 바람이 욕실 안으로 불어왔다.

류정우는 커튼을 살짝 젖히고는 얼굴을 밖으로 내밀며 말했다.

“일어났어요?”

문 앞에 서 있던 래희가 놀란 표정으로 눈을 깜빡이더니 문을 다시 한번 닫았다가 열었다. 마치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본 사람처럼.

아무래도 아직 잠결이라 어젯밤 그가 그녀의 집에서 밤을 보냈다는 사실을 잊은 듯해 보였다. 그렇게 멍한 표정의 래희가 그가 있는 방향으로 서 있었다.

“…류정우 씨?”

류정우는 래희 얼굴을 보며 눈웃음치며 대답했다.

“내 팬이었다더니, 씻고 있는데 계속 구경하는 거 보면 그동안 많이 궁금했나 봐요?”

그에 래희가 기겁하며 눈을 질끔 감고는 문을 강하게 닫았다.

쾅!

문 앞에 등을 기대고 주저앉는 소리가 들려왔다.

류정우는 래희의 부끄러워하는 얼굴을 떠올리면서 작게 소리 내어 웃으며 속도를 내어 씻기 시작했다. 그리고 씻고 난 뒤, 미리 챙겨 뒀던 옷을 걸치고 욕실 문을 열었다.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나오자 거실에서 안절부절못한 채로 서성이고 있던 래희와 눈이 마주쳤다.

류정우는 저도 모르게 래희에게 웃으며 말했다.

“기다렸어요?”

래희는 그의 말을 무시하며 빨개진 얼굴로 그의 옆을 쌩하니 지나쳤다. 그리고 류정우가 방금 나온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며 큰 소리로 문을 닫았다.

부서질 듯 소리 내며 닫힌 문이 다시 빼꼼 열리며 작은 목소리가 그 사이로 들려왔다.

“바람이 닫은 거예요!”

그에 류정우는 큰 소리를 내며 웃었다. 회귀를 반복하던 몇십 년 동안 느껴지지 않던 즐거움이 그의 안에서 휘몰아쳤다.

* * *

상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감.

래희는 그걸 지금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다들 덕질할 때 자기가 좋아하는 아이돌과 함께 동거하는 상상 같은 거 해 보지 않는가? 물론 그렇지 않다면 래희 자신이 유난스러운 걸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5년 만에 재회한 구오빠와의 일주일간의 동거는 생각보다 별거 없었다.

가게 일이 바빠 하루 종일 가게 일을 하다 돌아오면 농사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돈 많은 백수의 삶, 여유로운 배짱이 같은 삶을 꿈꿨던 게 엊그제 같은데. 돈은 얻었지만, 일개미 같은 삶을 이어 가고 있었더니 눈 깜빡할 사이에 일주일이 지나 버렸다.

심지어 매일 저녁 그녀를 찾아오던 류정우는 요즘 길드 일이 바쁜지 잠을 자기 직전에야 집에 들어왔고, 류정우와 얼굴을 한번 스쳐 지나가듯이 마주하는 걸 끝으로 특별한 일이랄 게 딱히 없었다.

그리고 동거한 지 일주일이 된 그 주 주말. 드디어 래희는 자신의 동거인 류정우와 제대로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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