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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네 빵집은 언제 오픈하나요-45화 (45/120)

45화

래희의 제안에 류정우는 흔쾌히 좋다고 대답하며 래희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왔다.

저번에는 늦은 밤이라 그녀의 집에 들어와 볼 기회가 없어 류정우가 래희의 집 안으로 발을 들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분홍빛 색감으로 귀엽게 꾸며진 베이커리와는 많이 다른 인테리어였다.

집 안으로 들어서자 바로 넓은 거실과 주방이 보였다. 주방 쪽에는 화장실이라 적힌 문이 있었고 거실을 중심으로 방으로 연결된 듯한 문 두 개가 마주 보고 있었다.

류정우는 래희의 안내에 따라 거실 소파에 앉았다.

“잠시만 여기에 앉아 계시겠어요? 바로 저녁을 준비해 드릴게요.”

래희의 말에 류정우가 일어나며 돕겠다고 했지만, 그녀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손님이니 자신이 하겠다고 말했다.

그녀가 주방으로 들어간 사이 거실 소파에 가만히 앉아 있던 류정우에게 곰순이가 다가왔다. 밭에서 일할 때와는 달리 평소에 집에서는 몸집을 줄여 생활하는 곰순이는 류정우의 발치에서 양손을 들어 허우적댔다.

“뀨!”

류정우가 곰순이를 내려다보자 곰순이가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손짓했다. 그가 곰순이의 행동을 이해하려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고 가만히 관찰하고만 있자, 갑갑해진 곰순이가 가슴을 내려치며 강한 손짓으로 무언가를 가리켰다.

그제야 대충 의미를 짐작한 류정우가 곰순이의 손끝을 따라 시선을 옮기자 그곳에는 작은 책꽂이가 보였다.

류정우가 책꽂이 쪽으로 가만히 시선을 고정하고 있자, 곰순이는 래희의 눈치를 보는 것처럼 주방 쪽을 한번 흘끗 바라보았다. 마치 기회는 이때뿐이라는 것처럼 급한 발걸음으로 류정우를 이끌고 책꽂이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손으로 책 한 권을 가리켰다.

“내가 마음대로 봐도 되는 거니?”

그에 곰순이가 아주 당당하게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며 류정우가 대답도 하기 전에 책을 꺼내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주인 허락 없이 물건을 만지는 건 무례라고 여긴 류정우가 곰순이를 말리려고 했지만, 그보다 곰순이의 행동이 더 빨랐다.

그에게 꼭 보여 주고 싶은 게 있는 건지 S급 헌터인 류정우보다도 빠른 손놀림이었다.

그리고 류정우는 곰순이가 펼쳐 둔 책의 내부를 보게 되었다.

“아…….”

사실 책이 아니라, 책으로 위장된 사진 앨범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류정우의 아이돌 시절 앨범 포토 카드로 꽉 채워져 있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열심히 모았는지, 류정우가 망돌 시절에 냈던 음반의 포토 카드도 들어 있었다.

“이것도 다 모았네…….”

그도 래희가 첫 데뷔 때부터 자신을 쫓아다녔던 걸 기억했다. 망돌 시절에는 팬 사인회가 열리면 전국 어디든 찾아올 정도로 아주 지극 정성이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지금과 달리 아직 어리고 앳된 래희의 모습이 눈앞에 스쳐 지나갔다.

한 장이면 충분히 팬 사인회에 올 수 있었을 텐데도 책장 한구석에 앨범이 열 장씩 꽂혀 있는 걸 보니, 새삼스럽게 특별한 이유 없이 그 시절 자신을 좋아해 줬던 래희가 고마웠다.

성공한 지금에야 웃으며 옛날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그때는 내가 왜 이 길을 선택했을까 매일 밤 후회했을 정도로 힘들었는데. 그때 매번 그의 팬이라고 그를 찾아와 준 래희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것도 이번 회차에 한정해서지만…….’

챙그랑!

그때, 주방 쪽에서 무언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놀란 류정우가 고개를 돌리자, 래희가 놀란 표정으로 양손으로 입을 가린 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반짝이는 황금빛 눈동자가 그의 손위에 들린 포토 카드 앨범과 그의 얼굴을 연신 번갈아 가며 보고 있었다.

마치, 들켜선 안 되는 것을 들킨 사람의 표정이었다.

“안 돼!”

래희는 여태껏 보였던 그 어떤 모습보다도 아주 빠른 속도로 류정우가 펼쳐 보고 있던 포토 카드 앨범을 주워 들어 품속에 가렸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늦었다는 것을 직감했다.

류정우가 자신을 보며 웃음을 참고 있었다.

* * *

5년 전, 래희는 수능이 끝나고 수시 합격 결과가 발표된 이후, 곧바로 류정우를 보기 위해 피에타의 음악 방송 사전 녹화와 팬 사인회를 다시 쫓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나 찰나의 순간 류정우와 눈이 마주쳤을 때 래희는 알 수 있었다. 저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던 그 ‘류정우’가 아니라는 사실을.

표정은 평소처럼 자연스러웠지만 마주친 눈은 래희가 지난 5년간 매일같이 보던 그 밝은 눈동자가 아니라 어딘가 어둡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리고, 심지어 그는 래희를 기억하지 못하는 듯했다. 이전에는 분명 눈이 마주치면 아는 척하며 손을 흔들어 주기라도 했는데 지금은 아니었다.

‘…아.’

아이돌이 팬을 기억하지 못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무려 덕질 5년 동안 래희를 알아봤던 사람이 고작 보지 않은 지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그녀를 잊었다고? 그건 말이 안 된다.

‘회귀하면서 기억을 잊은 건가……?’

지금 이 상황이 설명되는 납득할 만한 이유는 그것 하나밖에 없었다. 그리고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을 받아들인 래희는 지난 5년간의 추억이 모두 부질없음을 느끼고 발걸음을 돌렸다. 그 길로 그녀는 다시는 피에타의 콘서트나 팬 사인회에 나타나지 않았다.

* * *

“제 팬이셨어요?”

류정우는 전부 다 알고 있으면서 괜히 모른 척하며 래희에게 물었다.

식탁 앞에 앉아 그의 눈도 마주치지 못한 채 차린 저녁만 열심히 입에 넣고 있던 래희는 부끄러운지 고개를 들지 않은 채 대답했다.

“…네.”

아주 작은 목소리였지만 S급의 청력은 무리 없이 그 대답을 알아들었다. 류정우가 작게 웃으며 말했다.

“감쪽같이 속았는데요? 저는 래희 씨가 저한테 관심이 없는 줄 알았거든요.”

제 팬이었다는걸 제가 알았다면 더 잘해 드렸을 텐데…….

류정우는 다 알면서 래희를 놀리고 있었다.

[성좌 ‘운명의 길잡이’가 저거 다 거짓말이라고 손가락질합니다.]

[저 기만자 :$;[email protected]를 빨리 집에서 내쫓으라고 발버둥 칩니다.]

[부적절한 언어 사용이 감지되었습니다. 채팅창에 필터링이 적용됩니다.]

래희는 성좌의 메시지를 무시하며 류정우 몰래 눈을 굴리며 그의 옆에 앉아 있는 곰순이를 노려봤다. 이 사달이 난 건 모두 곰순이 때문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그는 여전히 래희 그녀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아 보였고. 5년 만에 다시 만났던 작년 크리스마스 때 던전에서부터 처음 보는 사람처럼 굴었는데, 달라지는 건 없을 게 분명했다.

“오랜만에 보는데도 모르는 척하길래…….”

……?

“이제는 저를 안 좋아하는 줄 알았잖아요.”

……!

래희는 음식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분간이 어려웠다. 난생처음으로 자신이 만든 음식의 ‘대단한’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래희는 슬쩍 고개를 들어 류정우의 눈을 응시했다.

“…네?”

몹시 당황했다는 듯 격하게 흔들리는 눈동자를 보자 류정우가 소리 내어 웃었다. 저렇게 웃는 건 덕질하면서도 못 본 것 같은데…….

순간 눈앞의 절세미남이 환하게 웃으며 뒤로 넘어가자 래희는 저도 모르게 멍하니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빠져들 것만 같은 류정우의 깊고 푸른 군청색의 눈동자에서 눈을 떼기가 어려웠다.

“다시 찾아온다고 약속하고 사인까지 했었는데?”

래희는 류정우의 말에 반응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잊고 싶던 흑역사가 떠오르기 시작해 대답할 수 없었다.

“혼이…….”

“아아악―!!”

[성좌 ‘운명의 길잡이’가 설마… 라고 중얼거립니다.]

[자신이 짐작하는 그것에 정말 사인을 한 게 맞느냐고 당신에게 묻습니다.]

류정우가 ‘혼’ 자를 언급하자마자, 래희는 소리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나 곧바로 그의 입을 막았다. 그러나 류정우는 자신의 입을 막은 그녀의 손에도 아랑곳 않고 입술을 달싹였다.

손바닥 아래에서 느껴지는 따뜻하고 말랑한 입술의 움직임에 래희의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왜 약속 안 지켰어요?”

아니, 그게 안 지키려고 한 게 아니라… 잠깐만.

‘분명 다시 찾아갔을 때는 못 알아본 눈치였는데?’

갑자기 억울해진 기분에 래희가 눈썹을 움찔거렸다. 당장이라도 먼저 모르는 척한 건 그쪽이 아니냐고 쏘아붙이고 싶었다.

[성좌 ‘운며의 길잡이’가 당장 저놈을 집 밖으로 쫓아내라 소리칩니다.]

“좀 서운한데요.”

그건 래희 자신이 할 말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입에선 그를 비난하는 말이 단 한 단어도 내뱉어지지 않았다. 생긋 눈웃음치는 미남의 얼굴에 침 뱉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그것도 래희의 취향만 모아 놓은 얼굴에는.

래희가 말을 못 해 어쩔 줄 몰라 하며 어버버 거리는 동안 류정우가 그녀를 놀리듯 씩 웃으며 말했다.

“제 사진을 저렇게 곱게 보관하고 있었다는 걸 진작에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요.”

아직도 저 좋아하고 있었으면서 왜 모른 척했는지 모르겠네…….

물론 류정우가 그녀에 대한 기억을 되찾은 건 래희를 게이트에서 만난 이후였지만 빨갛게 달아오른 래희의 반응이 재밌어 놀리듯이 말했다.

“혼…….”

“아악!”

류정우가 다시 그것에 대해 언급하려 하자 래희는 눈을 질끈 감고 소리 지르며 제발 말하지 말아 달라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아무튼, …그거에 사인한 게 후회됐어요?”

그거 아니면 짐작이 안 가는데요? 래희 씨는 여전히 제 얼굴을 좋아하니까요.

‘미친.’

내가 미친 걸까? 미친 게 아니라면 이 상황은 모두 꿈일 거야.

래희는 지금 이 상황을 모면하고 싶어, 이 모든 게 빌어먹을 꿈일 뿐이라고 세뇌하듯 속으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류정우의 마지막 말에 래희의 얼굴이 아까보다도 더 터질 듯이 붉게 변했다.

부끄럽다 못해 래희가 거의 울 것 같아 보이자 류정우는 이쯤에서 놀리는 걸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의 대화가 흥미진진한지 곰순이는 밥을 먹다 말고 턱을 괴며 그들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검은색의 구슬로 만들어진 곰순이의 눈이 화르륵 붉게 타오르고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래희는 정신을 차리기 어렵다는 듯이 밥 먹는 것도 잊은 채 머리를 감싸고 고개를 숙였다. 아까까지 너무나도 고프던 배가 이제는 더는 고프지 않았다.

류정우는 그런 래희를 보며 미소 지었다. 생각보다 반응이 더 재밌어 놀렸던 건데, 이보다 더 선을 넘어 버리면 정말로 화를 낼 것 같았다. 그래서 류정우는 이쯤 하기로 하고 식탁에 수저를 내려놓았다.

하지만 그때, 류정우 앞에 이상한 시스템 메시지 하나가 떠올랐다.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뭐지?

순간 래희와 류정우의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그런 두 사람 사이에 시스템 메시지가 요란한 소리와 함께 나타났다.

디링―!

[히든 퀘스트 ‘식구 만들기’를 완료하였습니다.]

히든 퀘스트?

래희는 처음 들어보는 퀘스트에 놀란 표정을 지으며 시스템 메시지 창을 바라봤다.

[사용자 ‘류정우(동료)’와 함께 무사히 식사를 마쳤습니다.]

[사용자 ‘류정우’를 ‘동료’에서 ‘식구’로 등록합니다.]

아니, 잠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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