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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네 빵집은 언제 오픈하나요-44화 (44/120)

44화

* * *

“그래, 드디어!”

뜨거운 한여름. 마을 광장에 뒷산으로 올라갈 수 있는 길이 만들어졌다.

그 길을 따라 올라가면 보이는 아찔한 높이의 절벽. 그리고 그 아래로 오래된 광산으로 보이는 낡은 입구가 보였다. 그곳은 마치 폐쇄된 지 100년은 흐른 것 같았다.

…여기가 과연 안전한 걸까?

전혀 안전해 보이지 않는 낡고 오래된 광산 입구 앞에서 래희는 떨떠름한 표정을 애써 감췄다. 그런 래희의 반응과는 다르게 ‘드워프 옹’은 기분이 매우 좋았다.

“오! 냄새가 난다! 이건 귀하디귀한 순수한 철강 냄새야!”

드워프 옹은 기쁨을 온몸으로 표현하며 광산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의 등에는 집채만 한 거대한 짐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전혀 무거워 보이지 않는 가벼운 발걸음이었다.

“…일단 따라 들어가 볼까요.”

류정우의 말에 래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어두운 광산 안으로 따라 들어갔다.

겉보기에는 불안해 보여도 나름 시스템에 의해서 해금된 ‘광산’인데 위험하지는 않겠지.

“나는, 이곳에 자리를 잡을 거다.”

“…어디?”

“이 정도면 딱 좋아.”

래희의 물음을 못 들은 건지 무시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드워프 옹은 광산 내부를 둘러보기 바빴다.

그의 시선을 따라서 래희도 주변을 둘러봤지만, 특별한 건 전혀 없어 보였다.

“여기는 아무것도 없는데?”

“뭣도 모르는 소리!”

래희의 말에 드워프 옹은 발끈하며 소리쳤다.

그때, 그녀의 곁에 서 있던 류정우가 입을 열었다.

“이쪽에 방 같은 넓은 공간이 있네요.”

“그렇지!”

류정우의 말에 드워프가 정확하게 맞췄다면서 관찰력이 좋은 인간이라 칭찬했다.

그에 래희는 류정우가 말한 공간을 살펴보았다.

밖에서 햇볕이라고는 전혀 들지 않는 어두운 동굴 같은 공간. 서늘하고 약간의 습기가 느껴지는 곳이었다.

이런 음침한 곳에서 살겠다고?

그러나 이해 못 했다는 듯 드워프 옹을 바라보는 래희와 달리, 그는 자신에게 꽂히는 시선을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들고 왔던 짐을 풀기 시작했다.

무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하나둘 무언가를 만드는 듯, 부산스럽게 돌아다니며 곳곳에서 뚝딱거리더니 순식간에 아늑한 집 내부처럼 공간이 꾸며져 있었다.

“오…….”

나쁘지 않네.

역시 인테리어의 핵심은 조명빨이라는 소리가 여기서 나오는 건가?

동화 속에 나올 것 같이 꾸며진 방은 이곳이 광산 내부라는 것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따뜻한 빛으로 밝혀져 있었다.

“자, 이제 이 광산은 네 말대로 내가 관리해도 되는 거겠지?”

드워프 옹이 이제 볼일을 다 봤다는 듯이 손을 털며 래희에게 다가왔다. 그의 당당한 태도에 래희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원하는 걸 말해 보아라. 내가 뭐든 만들어 준다고 하지 않았나.”

“유리가 필요해.”

그 말에 래희는 혹시라도 기회를 놓칠까 잽싸게 대답했다.

“유리?”

드워프 옹이 잘못 들었다는 듯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대답했다.

“온실을 지어야 하는데 재료로 유리가 필요하거든.”

그러나 래희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드워프옹의 치켜 올라간 눈썹은 내려올 줄 몰랐다.

“…무슨 문제가 있어?”

조용한 드워프 옹의 반응에 래희는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에 그는 기분이 나쁘다는 듯이 소리 질렀다.

“당연하지!”

아까도 그랬지만 성격이 급해 보이는 드워프 옹은 흥분을 하며 말하기 시작했다.

“드워프에게! 드래곤 슬레이어가 들 만한 전설의 검이나 무기를 만들어 달라는 게 아니라, 유리 따위를 만들어 달라니! ‘유리’! 내 평생 살면서 그딴 걸 드워프에게 만들어 달라 요구하는 건 처음 본다!”

[성좌 ‘운명의 길잡이’가 드워프의 말에 비웃습니다.]

[전설의 검을 만든 드워프는 드워프 중에서도 손에 꼽는 걸로 알고 있다고 말합니다.]

[성좌 ‘운명의 길잡이’가 그 정도의 실력이었다면 떠난 무리가 어떻게든 생계를 위해 데리고 갔을 거라고 말합니다.]

…….

그게 중요한 건가?

“아니면 혹시, 절대로 깨어지지 않는 유리 이런 걸 원하는 거냐? 하지만 아무리 드워프라도 그런 건 만들지 못한다.”

흥분하면서 설명하기 시작했던 드워프 옹은 이내 시무룩한 태도로 변하며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의 쉴 새 없이 변하는 감정에 도저히 적응이 되지 않던 래희는 드워프 옹이 우울해하기 시작하자 빠르게 말했다.

“아니, 그냥 유리만 만들어 주면 돼. 온실이나 창문을 만들 수 있을 만한 유리.”

그에 드워프 옹이 말없이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얼마간 래희를 뚫어져라 쳐다봤을까 그는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드워프 자존심상 은혜를 갚기 위해 유리 따위를 만들어 주지는 못한다. 그건 드워프의 명예를 훼손하는 일이다. 그러니 이번 부탁은 그냥 들어줄 테니, 다음에 원하는 게 있다면 그때 다시 만들어 주겠다.”

그때는 드워프에게 할 법한 제대로 된 부탁을 해라.

래희는 드워프에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고맙다고 대답했다.

‘그럼 이제 퀘스트 반절은 끝난 건가?’

그러나, 래희의 감사 인사에도 드워프는 용건이 끝나지 않았다는 듯이 두 사람을 계속해서 올려다봤다. 그에 류정우가 드워프에게 물었다.

“무슨 문제라도?”

“재료가 필요하다. 아무리 드워프라도 연금술사처럼 아무런 재료도 없이 무언가를 만들어 내지는 못한다.”

그에 래희가 어서 빨리 퀘스트를 끝내야 한다는 급한 마음에 잽싸게 물었다.

“그럼 뭐가 필요한 건데?”

* * *

“쀼쀼. 쀼.”

“쀼쀼. 쀼.”

광산 지하 5층. 광산 안내판에 따라 이전에 설치되어 있던 엘리베이터를 통해 유리모래를 구할 수 있다는 지하층으로 내려오자, 래희와 류정우 두 사람 앞에 펼쳐진 건 한데 모여 춤추듯이 출렁거리고 있는 슬라임들이었다.

어두운 지하에 살아가는 슬라임들답게 몸이 푸른색 야광 빛으로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래희의 무릎 높이까지 오는 귀여운 슬라임들은 광산 엘리베이터가 열리는 소리에 일제히 놀라며 출렁거리던 몸을 멈췄다.

딩―!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두 사람은 슬라임들의 눈과 눈이 마주쳤다.

‘…마을 광산에 몬스터라니.’

그럼 여기는 던전인 건가?

혹시나 저 슬라임들이 공격해 올까 긴장한 채 래희는 자신의 인벤토리에서 마법봉을 꺼내 들었지만, 뒤에 이어진 슬라임의 태도에 다행히 그럴 필요는 없었다.

“쀼?”

무리의 맨 앞에 있던 슬라임 중 한 마리가 몸을 가볍게 통통거리며 그들에게 다가왔다.

슬라임이 다가오자 반짝이는 작은 몸 위로 작은 글씨가 떠올랐다.

[야광 슬라임(C)]

: 광산의 광부. 먹이를 주면 원하는 광석을 구해 줍니다.

‘오…….’

슬라임에 대한 설명을 읽은 래희는 고개를 들어 류정우를 올려다보았다. 마침 같은 생각을 한 것인지 그는 래희에게 작게 끄덕여 보였다.

래희는 인벤토리에 담아 두었던 빵 중 가장 무난한 곰순이 식빵을 꺼내 보이며 슬라임 앞에 쭈그려 앉았다.

“저기… 혹시, 친구야?”

“쀼?”

슬라임은 래희의 손에 들린 식빵을 발견하고는 무엇인지 궁금하다는 눈빛으로 그녀의 손을 빤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건 내가 만든 빵이거든?”

래희가 설명하며 손에 들린 식빵을 슬라임한테 가까이 보여 주자 몇 번을 킁킁거린 슬라임이 먹고 싶은지 침을 흘리며 입을 살짝 벌렸다.

“어때? 먹고 싶어?”

“쀼!”

래희의 말에 슬라임이 대답하자마자 뒤에서 그들을 경계하며 지켜보고 있던 슬라임들도 잇따라 통통거리며 의사 표현을 하기 시작했다.

쀼쀼쀼쀼.

슬라임들이 점점 래희와 류정우에게 다가오자 그들의 초롱초롱한 눈빛들이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한 래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말했다.

“혹시, 여기서 ‘유리모래’를 구할 수 있을까? 그걸 구해 오면 내가 이 빵을 모두에게 나눠 줄게.”

스무 마리 정도는 되어 보이는 슬라임들이 래희의 말에 일제히 재빠르게 흩어지기 시작했다.

특별해 보이거나 반짝이는 돌도 딱히 보이지 않고 그저 그런 평범한 동굴 같은 광산 아래에서 슬라임들은 무언가를 찾는 듯, 열심히 자신이 자리한 구역의 땅이나 벽을 입으로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저렇게 먹어 대는데 굳이 음식이 필요한 걸까?’

래희는 슬라임들의 행동을 신기하다는 듯 구경했다.

그때, 슬라임 한 마리가 땅을 퍼먹다 말고 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하더니 바닥에 토를 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입 밖으로 뱉어지는 것들은 냄새나고 더러운 것이 아닌 그냥 흙덩이들뿐이었다.

그리고 뱉을 만큼 뱉었는지 슬라임이 래희에게 다가와 래희의 발 바로 앞에서 입에 물고 있던 나머지 흙더미를 뱉었다.

“지금 뭐 하는……?!”

래희가 깜짝 놀라 뒷걸음질 치다가 이내 앞서 뱉어 내었던 흙들과 다른 모양새에, 슬라임이 뱉은 흙 앞으로 다시 다가갔다.

처음부터 래희의 옆에 차분하게 서 있던 류정우는 허리를 굽혀 슬라임이 뱉었던 흙을 한 줌 쥐어 올렸다.

[유리모래]

- 유리의 주재료. 가공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세공 등급이 정해진다.

“래희 씨, 우리가 찾던 게 맞는 것 같은데요?”

두 사람은 슬라임들이 채굴한 유리모래를 챙기고, 식빵을 하나씩 슬라임들에게 나눠 주었다. 만족스럽게 빵을 먹는 슬라임들을 뒤로하고, 두 사람은 유래모래를 들고서 드워프 옹에게 찾아갔다.

드워프 옹은 재료를 너무 많이 가져왔다고 투덜거리다가 유리는 3일 뒤에 완성이 되니 그때 찾아오면 된다고 말했다.

이제 겨우 퀘스트의 절반을 해치운 래희는 류정우와 함께 마을 광산을 벗어나 집을 향해 걸어가며 입을 열었다.

“아니, 온실 하나 지어 보겠다고 이게 무슨 고생일까요…….”

래희의 한숨에 류정우가 싱긋 웃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저번보다는 비교적 쉬웠잖아요.”

“그건 그렇죠…….”

달려드는 몬스터는 류정우가 다 해치워 준 데다가 재료는 슬라임들이 구해서 드워프가 유리를 만들어 주면 되는 퀘스였으니까. 돌이켜 보면 래희 자신이 한 일은 딱히 없었다.

‘원래 세상은 주인공 중심으로 돌아가니까 류정유 옆에 있으면 일이 잘 풀리는 것 같네.’

뭐, 좋은 게 좋은 거겠지.

래희는 남은 퀘스트에 대해서만 생각하기로 하자고 결심하며 그녀의 집 문 앞에 섰다.

분명 집을 나설 때는 해가 떠오르기 시작한 시점이었는데 주변이 벌써 어두워진 것을 보니 벌써 하루가 다 지난 듯했다.

“아…….”

집 문고리를 잡다가 문득 래희는 뒤돌아섰다.

류정우가 뒤에서 집 안으로 들어가는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드워프를 설득해서 마을로 데려와 같이 래희의 빵으로 점심을 때웠던 일 말고는 딱히 먹은 게 없었다.

벌써 자정이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지만, 래희는 바쁜 시간을 내어 자신을 도와줬는데 식사 대접도 하지 않고 이대로 류정우를 보내는 건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에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저기… 혹시, 저녁 드시고 가실래요?”

[성좌 ‘운명의 길잡이’가 탄식하며 이마를 짚습니다]

[이런 뻔한 클리셰는 이제 진부하다고 비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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