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하지만 래희는 자신의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퀘스트대로라면 자신은 저 드워프에게서 유리를 구해야 하는데 밉보이면 안 되니까.
래희는 속으로 참을 인 자를 세 번 되뇐 후 한숨을 쉬었다.
“래희 씨, 문제가 있나요?”
“아뇨, 그냥 좀 짜증 나는 말투로 말해서요.”
별일 아니라는 듯 류정우에게 대답한 래희가 그들 앞에 서 있는 작은 드워프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너, 아까 왜 울고 있었어?”
그때, 드워프가 흠칫거리며 쓰고 있던 후드를 더 깊게 뒤집어썼다. 마치 울음기가 남아 있는 얼굴을 가리고 싶어 하는 듯했다.
그리고 잠시 몇 번을 큼큼거리며 헛기침하더니 입을 열었다.
“운 적 없어.”
그 대답에 래희가 코웃음 치며 그를 내려다보자 이내 자존심이 상한 듯한 드워프가 목청껏 소리 질렀다.
“운 거 아니라고!”
“아, 알았어.”
래희가 항복한다는 듯이 양손을 들어 올리며 대답했다. 잠시 씩씩거리던 드워프가 조금 뒤 어느 정도 진정이 되었는지 입을 다시 열었다.
“추우니까 안에…….”
아.
말을 하다 말고 류정우를 올려다봤다.
“안 되겠군. 잠시만 기다려.”
작은 래희면 몰라도(대한민국 여성 평균 키를 가진 래희가 들었으면 화가 났을 법한 생각이었지만) 180 중반의 키를 가진 류정우는 드워프에게 너무나도 컸다.
그래서 자신의 집에 들어오지 못할 거로 판단한 드워프는 집 안으로 들어가서 의자와 천막을 꺼내 왔다.
그리고는 드워프의 손기술을 자랑하며 금세 류정우가 들어갈 수 있을 법한 제법 큰 천막을 세웠다.
그 안으로 의자 세 개와 작은 난로를 배치한 드워프는 손님맞이를 하는 것처럼 그들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권했다.
성격 더럽고 사람을 배척하는 기질의 드워프가 그들을 손님 대접해 주는 것도 모자라 따뜻하게 머무를 수 있는 천막까지 쳐 주자 래희는 놀라움을 숨길 수 없었다.
그런 래희의 표정을 보고 이유를 짐작한 드워프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오랜만에 만난 대화가 가능한 손님이니 대접해 주는 것일 뿐이다.”
그의 말에 래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고맙다는 의사를 전했다.
그때, 드워프는 래희의 곁에 멀뚱히 앉아서 신기하다는 듯 그를 바라보고 있는 류정우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래희와의 대화를 전혀 못 알아듣겠다는 듯이 두 사람을 보고 있음에, 드워프는 궁금해져서 입을 열었다.
“쟤는 말을 못 해?”
“아, 아니. 롬바르나 공용어를 못하는 것뿐이야. 다른 곳에서 왔거든.”
“롬바르나어를 모르는 곳? 산골 마을에서 살았나 보지?”
그러고 보니 이상했다. 게이트에서 롬바르나어를 사용하는 드워프와의 만남이라니?
“여기 혹시 롬바르나야……?”
“롬바르나가 아니면 어디겠냐.”
래희는 드워프의 대답에 너무나도 놀라 더 말을 할 생각도 못 한 채 멍하니 그를 내려다봤다.
롬바르나라니…….
[성좌 ‘운명의 길잡이’가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않냐고 말합니다.]
그렇지.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왔던 게이트에 두 번이나 휩쓸릴 수 있다는 걸 경험으로 알지 않는가. 지금은 이에 대한 의문을 해결하기보다는 당장 퀘스트를 수행하는 게 더 중요해 보였다.
어차피 롬바르나로 돌아갈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너는 왜 여기에 혼자 있어? 다른 드워프들은?”
래희의 물음에 드워프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또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는지 고개를 뒤로 젖히며 눈을 빠르게 깜빡이기 시작했다.
물론 후드에 싸인 얼굴이 그늘져 자세하게 보이지 않았지만, 드워프의 빛나는 노란 안광이 불빛이 꺼졌다 켜졌다를 반복하는 것처럼 빠르게 깜빡이고 있어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진정되었는지 래희에게 하소연을 시작했다.
“어느 날 갑자기, 광산이 사라졌어. 우리들은 광산업을 주로 하면서 무기와 장신구를 만드는 게 우리 생업인데 그게 불가능하니 모두들 떠난 거야.”
“그럼 너는 왜 그들을 따라나서지 않은 건데?”
드워프는 그녀의 말에 또 한 번 울컥했는지 울먹이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루아침에 어떻게 평생 살아온 터전을 버리고 떠나냐고! 다른 드워프들은 아직 어려서 잘 모르겠지만 이곳은 드워프 신의 축복을 받은 신선한 땅이야! 우리 조상들이 대대로 지켜 온 곳이라고!”
혼자서 소리치던 드워프는 이내 무언가를 포기하듯 탄식하며 이어 말했다.
“하지만 떠난 이들 말대로 쓸데없는 미련일 뿐이지……. 이 땅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얼마 전부터는 마을로부터 연결된 길이 감쪽같이 사라져 버리고……. 음식을 구할 수 없으니 나무뿌리나 열매 같은 걸 찾으며 주린 배를 때우는 수밖에…….”
“마을로 가는 길이 언제부터 끊겼는데?”
“12년 전 정도……?”
“…그게 얼마 전이야?”
래희의 물음에 그럼 아니냐는 듯이 드워프가 대답했다.
“그럼 옛날이겠니?”
드워프의 수명은 인간의 다섯 배 이상……. 그의 기준으로는 당연히 12년 전이 얼마 전일 수도 있었다.
“그러고 보니 너희들은 어떻게 온 거지? 마을로 갈 수 있는 길이 열린 건가?”
“그건 아니야. 단지 내가 마법사라서 우연히 이곳에 불시착한 것뿐이지.”
“아…….”
아쉬운 듯한 탄식 소리가 드워프의 입 밖으로 내뱉어졌다.
“매번 후회했어. 왜 혼자서 남았을까. 떠나간 이들이 딱히 그리운 건 아니지만 더는 이곳에 혼자 남아 있고 싶지 않아…….”
그때, 래희의 시야가 알림 창으로 가려졌다.
갑작스러운 시스템 알림 창에 래희는 드워프에게 대꾸하는 것도 잊은 채 내용을 확인했다.
퀘스트였다.
[퀘스트: 마을 광산을 다시 운영하자.]
잊혀진 마을 외곽에 운영이 중단된 광산이 존재한다는 것을 아시나요? 광산을 운영할 주민을 받아 봅시다.
※광산 운영은 드워프족이 적합합니다. 적합하지 않은 주민이 광산을 운영할 시에 광산 사고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 드워프를 잊혀진 마을의 주민으로 영입하기 (0/1)
- 완료 보상: 광산 해금
- 실패 페널티: 광산 영구 폐쇄
아니, 온실을 짓는 건 서브 퀘스트고 주민 영입은 메인이라니?
메인 퀘스트는 마을의 운영과 관계가 있는 건가?
그러나 역시 그 기준이 짐작이 가지 않은 래희는 의문을 대충 넘겼다. 계속 생각한다고 답이 나오는 게 아니니 지금은 그냥 넘어가자.
그리고 보상으로 광산 해금이라니.
시스템이 여태껏 아무 이유 없이 보상을 정한 게 아니었기 때문에 래희는 일단 광산 폐쇄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드워프를 영입하기로 마음먹었다.
나중에 혹시라도 광산이 필요하게 되는 일이 생겼을 때, 광산이 폐쇄되어서 사용하지 못하면 안 되니까. 게다가 지금은 드워프에게 유리를 얻어야 하는 퀘스트도 동시에 수행 중이지 않는가.
주저할 시간이 없었다. 래희는 드워프에게 직설적으로 물었다.
“이곳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우리랑 갈래?”
“어디로……?”
드워프의 물음에 래희는 잠시 망설였다. 퀘스트 때문에 충동적으로 제안했기 때문에 드워프에게 대답할 마땅한 답을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사는 곳도 세상과 단절되어 있어. 그래도 그곳에는 나름 상점도 있고 농사를 지을 수 있는 환경도 있고… 그리고 제일 중요한 광산도 있어.”
“광산?”
세상과 단절되어 있다는 설명을 들은 후에 드워프는 흥미를 잃었는지 래희의 말에 집중하지 않은 듯했다.
하지만 래희가 언급한 ‘광산’이라는 단어는 놓치지 않고 들었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되물었다.
“방금 광산이라고 했어? 광산?”
드워프가 자리에 서서 흥분하며 말하자 래희는 자기도 모르게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광산이 있으면 당연하지! 세상과 단절이 되어도 광산만 있으면 돼!”
갑자기 미친 듯이 광산을 울부짖는 드워프에 래희가 놀라 얼어 있자, 상황을 모르는 류정우가 자신의 허리춤에 매여 있는 리볼버 위로 손을 올렸다.
그 모습을 우연히 발견한 래희가 기겁하며 그를 말렸다.
하지만 두 사람의 모습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드워프는 흥분하며 이어 말했다.
“그동안 얼마나 미치겠던지. 배고파 굶어 죽는 건 두렵지 않았어! 하지만, 두 손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계속 놀고만 있으니 두 팔 다 잘라 버리고 싶더군. 하지만 한쪽 팔을 자르면 남은 팔을 자를 손이 없으니 실행은 못 했어…….”
래희는 드워프의 말을 들으며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말본새를 보아하니 정말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데 평화로운 마을에 저런 미친X을 주민으로 받아도 되는 건가?
“광산에 들어가게만 해 준다면, 원하는 건 뭐든 들어주지! 드래곤 슬레이어가 될 수 있는 전설의 검도 만들 기술이 있어! 재료만 있다면.”
뭐든?
래희는 드워프의 말에 눈을 반짝였다.
뭐, 조금 미친X이면 어떤가. 자신에게 피해만 끼치지 않으면 상관없었다.
“평생 다른 이들을 볼 기회가 없을 수도 있고 또 마을에 새로운 주민이 늘어날 수도 있는데?”
퀘스트가 진행되는 꼴을 보아하니 조만간 주민 몇 명을 더 영입하라는 퀘스트가 나타날지도 몰랐다.
하지만 래희의 말에도 드워프는 상관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광산에만 처박혀서 살아갈 거니 그건 상관없어.”
아… 그래.
래희는 드워프의 말에 충분히 그의 의사를 알아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새로운 알림 창이 래희의 눈앞에 나타났다.
[드워프 ‘드워프 옹’을 마을 주민으로 등록하시겠습니까? Y / N]
래희가 Y를 누르자 드워프의 앞에도 비슷한 창이 떠올랐는지 그가 깜짝 놀라며 허공을 올려다봤다.
“오… 이게 마법이로군.”
드워프가 무언가를 누르듯 허공을 손짓하자 경쾌한 소리를 내며 알림이 도착했다.
[동의를 받아 ‘드워프 옹’을 마을 주민으로 받아들입니다.]
[거주지 이전으로 자동 번역 프로그램이 진행됩니다.]
자동 번역이라니.
래희는 그들의 말을 못 알아들은 채 지루하게 앉아 있었을 류정우를 보며 이제는 그가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아 다행이라 여겼다.
앞으로 볼일이 많을 텐데 말이 통하지 않으면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래희는 저도 모르게 마을에서 드워프와 대화를 나누는 류정우의 모습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축하합니다! ‘퀘스트: 마을 광산을 다시 운영하자.’가 완료되었습니다.]
[완료 보상으로 ‘잊혀진 마을’의 ‘광산’이 해금됩니다.]
[‘파르마 협곡(B)’의 보스 ‘드워프 옹’의 이사로 필드가 클리어됩니다.]
…보스라니?
‘드워프는 몬스터가 아닌데?’
시스템 알림 창을 자세히 읽어 보니 역시 보스 위에 몬스터라는 표현은 없었다.
‘신기하네.’
그리고 곧 그들 앞에 던전 밖을 나갈 수 있는 게이트가 열리기 시작했다. 게이트는 그들이 들어왔던 문의 형태로 생겨났다.
래희는 앞장서서 문을 열고는 환영하듯이 드워프를 향해 손짓했다.
드워프는 감격한 듯 몸을 부르르 떨며 잠시 집에서 챙겨 갈 물건이 많아 기다려 달라는 말과 함께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오래 지나지 않아, 드워프가 집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래희는 그의 모습에 놀라 저도 모르게 물었다.
“혹시… 집을 통째로 들고 가는 거야?”
드워프의 등에는 그의 집 크기만 한 짐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