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헌터네 빵집은 언제 오픈하나요-40화 (40/120)

40화

물론 다 헛소리였다.

안철용이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하기에 잠시 어울려 준 것뿐이었다.

래희는 원체 허풍이 심한 안철용의 말을 진지하게 들어 줄 생각이 없었고 지금 당장은 경쟁자가 등장한다고 해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손님들이 다 빠져나가고 한적해진 가게 안을 청소하며 래희는 중얼거렸다.

“안 그래도 일이 너무 많은데 누가 제 일 좀 반만 덜어 가 줬으면 좋겠네요.”

[성좌 ‘운명의 길잡이’가 밥그릇 싸움에 그런 자비로움이 어디에 있냐며 코웃음 칩니다.]

[막상 경쟁자가 등장하면 당신은 화가 나서 잠도 못 잘 거라는 것 정도는 겪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래희가 당장에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심지어 스킬로 만드는 빵을 누가 따라 만들 수 있다는 말인가?

“설마 이 세상에 ‘빵집 사장’ 같은 이상한 클래스로 각성시킬 만한 성좌가 한 명 더 있겠어요?”

그리고 개발 비용이 더 들어서 가성비가 나오지 않을지도 몰랐다. 모든 사업의 근본은 돈을 벌고자 하는 일이 아닌가.

“일단, 알바부터 구해야겠어요. 퀘스트를 해결하려면 일단 제 몸 하나 정도는 여유로워 져야 하니까.”

* * *

일단, 아르바이트는 여전히 구하지 못했다. 구할 시간이 없었다는 건 아니고 마땅한 적임자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래희의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려면 래희가 어떤 식으로 스킬을 사용하고 재료를 공수하는지 자연스럽게 다 알게 될 텐데 대외적으로는 특수 효과가 있는 빵을 만드는 스킬이 있다고만 알려졌을 뿐, 농사를 직접 짓는다는 것은 아무도 몰랐다.

그러다 보니 ‘언젠가는, 언젠가는’을 쉼 없이 되뇌면서 가게를 운영한 지도 어느덧 8월 중순.

다행히 지난 2개월 동안 이상한 손님이 그녀를 찾아오거나 누군가 그녀를 위협하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맴―맴―

뜨거운 뙤약볕에도 여전히 래희의 가게를 찾아오는 손님은 많았다. 아이템과 달리 비록 일시적인 효과였지만 효력은 배 이상으로 높았기 때문에 래희가 만든 빵들은 여전히 시장에서 경쟁력이 있었다.

그리고 안철용이 전한 소문처럼 그녀를 따라 특수 효과가 있는 음식을 만드는 이는 여전히 없었다.

바쁘게 가게를 운영한 지도 벌써 2개월이 흘러 8월 중순이 되었으니, 이제 그만 여름휴가를 떠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래희는 하루의 영업을 마친 뒤, 가게 문을 닫고 적당한 날짜를 골라 휴가 공지를 문스타에 올리고 있었다.

딸랑―!

영업이 끝난 가게의 문이 벌컥 열렸다.

“래희 씨.”

요즘 매일매일 가게 문이 닫히는 시간에 찾아오는 익숙한 손님. 래희는 익숙하다는 듯이 그에게 자리를 권한 뒤 따로 빼 둔 빵들을 그에게 건네었다.

“오늘 만든 건 바토치예요.”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정신 차리고 보니 그녀를 매일 찾아오는 손님 ‘류정우’는 ‘야미베어 베이커리’의 1등 단골이 되어 있었다.

“바토치…가 뭔가요?”

류정우는 자신의 앞에 놓여 있는 빵을 바라보며 래희에게 물었다.

맛있게 잘 구워진 베이글 위에 바질 소스와 부드럽고 달콤한 크림치즈를 바른 뒤 잘게 썬 토마토를 올려 만든 메뉴.

“바질 토마토 크림치즈 베이글의 줄임말이에요.”

[성좌 ‘운명의 길잡이’가 별걸 다 줄인다고 혀를 찹니다.]

“아, 그렇군요.”

류정우가 반짝이는 눈빛으로 자신의 앞에 놓인 베이글 샌드위치를 보는 사이 래희는 작업대로 향했다.

[퀘스트: 빵에는 커피가 있어야지.]

빵과 잘 어울리는 아메리카노를 만듭시다.

- 빵과의 궁합이 A급 이상인 아메리카노 생산 (67/100) 진행도 67%

발견한 궁합

- 곰순이 소금빵 + 아메리카노 = A

- 곰순이빵 + 아메리카노 = B

- 베이글 + 아메리카노 = A

- 샌드위치 + 아메리카노 = C

그동안 어떻게 퀘스트를 진행하나 싶었지만, 류정우의 도움 덕분에 속도는 조금 느리더라도 조금씩 조금씩 퀘스트를 수행해 나가고 있었다.

래희는 가게 레벨 업 보상으로 받은 커피 머신에서 에스프레소를 추출했다.

그리고 미리 얼음물을 담아 둔 컵에 추출한 에스프레소를 부으려던 찰나,

[성좌 ‘운명의 길잡이’가 지금 무얼 하는 짓이냐며 소리칩니다.]

[감히 에스프레소에 물을 부어 먹는다니 이건 커피에 대한 모욕이라며 참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아.”

실수할뻔 했다.

물론 에스프레소에 물을 부어서 실수했다는 것이 아니라 류정우는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좋아했다.

매일 아침 커피 수혈을 위해 자신의 몫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내리는 버릇에 깜빡하고 저도 모르게 실수할 뻔한 거였다.

래희는 류정우가 혹시나 이 모습을 보지 않았을까 싶어 그가 앉아 있는 방향으로 눈을 슬쩍 돌려 확인했다.

류정우가 그녀의 모습을 보지 못한 듯하자 래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온수가 담긴 새 컵을 준비한 뒤 추출해 뒀던 에스프레소를 부었다.

[‘아메리카노 A’가 완성되었습니다.]

래희는 완성된 류정우 몫의 커피를 들고 그에게 건넸다.

“커피 나왔어요.”

“고마워요.”

류정우가 웃으며 컵을 받아 들자 자연스럽게 그의 앞에 앉은 래희는 자신의 몫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테이블 위에 올려 두었다.

마실 것이 나오길 기다렸는지 류정우는 곧바로 나이프를 들어 베이글을 반으로 가른 뒤, 손으로 들어 한입 베어 물었다. 부드러우면서도 달달한 크림치즈와 바질의 향이 고소한 베이글과 잘 어우러졌다.

그는 입 안에 든 음식을 삼킨 뒤, 마무리로 커피를 마셨다.

‘음.’

혀끝에서 느껴지는 적당한 산미가 그의 기대를 충족시켰다. 류정우는 한 모금 한 모금이 아깝다는 듯이 커피를 천천히 음미하며 코끝을 맴도는 커피 향을 들이켰다.

래희는 류정우의 만족스러워하는 모습을 구경했다. 그녀가 커피를 들고 홀짝이며 그를 바라보고 있자 손에 들고 있던 베이글 조각 나머지를 금세 다 먹어 버린 류정우가 래희에게 물었다.

“요즘은 어떤가요?”

“어… 가게요?”

“네.”

평소 궁금해하지 않아 보이던 가게 사정에 대해 묻는 류정우가 래희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모든 스몰 토킹의 시작은 근황 묻기가 기본이라는 생각에 납득한 그녀는 가볍게 대답했다.

“뭐, 똑같죠. 찾아오는 손님은 계속 늘어나는데 제 몸은 하나뿐이라 한계가 있어서요.”

“그렇군요…….”

류정우는 래희의 이야기를 경청하면서 그릇에 담겨 있던 나머지 베이글 조각을 들어 올렸다.

“그러면 이상한 손님은 없던가요?”

“이상한 손님이요……?”

한 달도 더 전에 안철용에게 이상한 소문을 듣기는 했지만 지난 2개월 동안 별다른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었기 때문에 래희는 그에 대해서 금방 잊고 말았다.

그래서 류정우의 질문에 래희가 순간적으로 떠올린 건 몇 달 전 밤에 찾아왔던 이상한 남자.

하지만 래희의 정체가 드러난 이후, 가게가 유명해지면서 그 남자를 또 본 적은 없었다.

“아뇨. 딱히 없었던 것 같아요.”

손님이 워낙 많으니 정신이 없었다. 정신없이 가게를 운영하는 동안 딱히 인상 깊었던 사람은 없었기 때문에 래희는 류정우의 질문에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이상한 사람이 있다거나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다면 말해 주세요.”

래희 씨에게 제가 그 정도는 해 드릴 수 있는 사이잖아요, 이제.

[성좌 ‘운명의 길잡이’가 어디서 플러팅이냐며 눈살을 찌푸립니다.]

류정우는 래희의 눈을 곧게 응시하며 말했다. 수없이 봐도 적응이 안 되는 얼굴이 그녀의 바로 앞에 있자, 래희는 괜히 간지러워지는 듯한 뒷목을 긁으며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그리고는 작은 목소리로 알겠다고 대답하며 괜히 커피를 다 먹고 비어 있는 컵을 들어 올려 입에 가져다 대었다.

류정우는 부끄러워하는 듯한 래희의 모습에 미소 지으며 손에 들린 남은 베이글을 베어 먹었다.

얼마 전, 작년에 래희와 처음 만나게 되었던 게이트를 발생시킨 배후에 대한 실마리를 찾았다. 실마리를 추적하다 보니, 제약 회사 사장이 만난 인물 중에 특이점이 있는 한 외국계 식품 기업의 직원을 찾게 되었다.

식품 회사와 게이트.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이 두 사항의 연결점을 찾기 위해 조사하던 중, 우연히 청해 길드 소속의 전투계 헌터가 흘린 이상한 소문이 있었고 그 소문이 래희의 베이커리가 연관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게이트. 배후. 그리고 권래희.

회귀 후 처음으로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평생 해 본 적 없던 헌터를 업으로 삼고, 이전에는 발생하지 않았던 게이트에 휩쓸리기도 하고. 그리고 새로운 인연들을 만나고.

‘하지만 바뀌지 않은 것들도 있지.’

예를 들면 권래희와 처음 만났던 크리스마스의 게이트라던가, 희생자가 많이 발생했던 지난 4월에 발생한 C급 게이트라던가. 크고 굵직한 사건들은 그대로 일어났다.

류정우는 창밖을 응시하고 있는 래희의 얼굴을 굳은 표정으로 조용히 바라봤다.

‘큰 사건이 그대로 일어난다는 건…….’

8월. 올해가 이제 절반도 남지 않은 시점.

크리스마스 캐럴이 길거리에 울려 퍼지기 시작하면 이번 회차도 끝이었다.

이제는 계속해서 다가오는 죽음이 아무렇지 않았지만, 처음으로 아쉽다는 감정이 들기 시작했다. 다음 회차에서도 과연 권래희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내일 봐요. 래희 씨.”

류정우는 자신의 몫으로 준비된 음식을 다 먹은 뒤, 가게 정리를 돕고 당연하게 내일을 기약하는 인사와 함께 가게를 떠났다.

* * *

“안녕하세요!”

“오랜만이네요?”

가게를 찾아 준 손님은 바로 세연이었다.

래희의 가게가 너무 유명해지는 바람에 선착순 번호표를 구하지 못해서 이제야 가게에 찾아올 수밖에 없었다고 한탄했다.

가게에 찾아오지 못하는 사이 세연은 길드 내에서 놀랄만한 사실을 알게되었다고 말했다.

알고 보니 공략팀 팀장이 길드장 아들이었다던가.

래희는 길드장 아들이라는 부분에서 ‘김주현’이 떠올라 순간적으로 미간을 찌푸릴 뻔했지만, 간신히 표정 관리를 했다.

김주현이라니. 그 이름이 들리자 새삼스럽게 세연의 소속이 백화 길드라는 것을 떠올릴 수 있었다.

이전보다 더 밝아진 듯한 세연의 표정에 래희는 잘 됐다고 맞장구치다 그녀와 함께 온 다른 손님을 흘끗 쳐다봤다.

“세연 씨, 오늘은 일행분이 계시네요?”

“네! 이쪽은 이번에 소속된 공략팀에서 알게 된 동료 천영은 헌터예요. 영은 씨도 사장님 빵집을 맛보고 싶다고 해서 저랑 함께 새벽부터 줄 서서 번호표를 받았어요!”

“안녕하세요.”

세연의 옆에서 말없이 조용히 서 있던 여자는 세연이 자신을 소개하는 말에 그제야 래희에게 인사해 왔다.

검은 머리에 회색안…….

어디서 본 것 같은 느낌에 래희는 갸웃거리다 이내 저렇게 이쁜 여자를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다, 생각하며 착각이라 치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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