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 들켜 버린 빵집 사장 】
청해 길드 익명 게시판
[잡담] ‘그분’께서 드디어 길드원들을 상대로 팝업 스토어를 오픈하신다고 합니다.
※게시판에 작성된 글을 함부로 스크랩하거나 외부로 유출시 길드 규정에 따라서 처벌될 수 있습니다.
소문 속의 ‘그분’.
지난 한 달 동안 길드에서 우연으로라도 단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어서 전설 속에 인물인 줄로만 알았는데, 오늘 아침, 1층 게시판에 ‘야미베어 베이커리’ 팝업 스토어 오픈 안내에 대한 글을 발견한 뒤에야 실존 인물이라는 걸 알았음.
아래는 팝업 스토어 안내.
팝업 스토어 장소는 10층 직원 휴게실.
혼자서 빵을 만드시는 거라 재고가 많지 않기 때문에 1인당 총 2개까지 구매 가능하다는 안내가 있음.
오픈 날짜는 7월 10일. 내일.
(10층 입구를 통과하려면 청해 길드 길드원 카드를 꼭 들고 와야 하니 잊어버리지 말 것.)
비서실장님의 사라진 모도 자라게 했으니 기대가 크다.
- 이 글은 곧 비서실장님의 분노로 사라질 예정.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추천 메뉴 없어?
└(작성자) 메뉴가 오픈된 건 없는데 소문으로는 비서실장님이 먹었던 건 에그타르트래.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글삭 아찔하다.
* * *
“에그타르트는 벌써 품절인가요?”
“네. 오늘은 품절이라 내일 일찍 와 주세요.”
“벌써요?”
그… 앞에 오신 분들이 에그타르트만 두 개씩 사 가실 줄을 제가 알았나요.
“아… 내일 오면 구매 가능할까요?”
머리가 반쯤 벗겨진 남자가 애처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건 저도 확언 드릴 수가 없네요.”
“…그럼 복숭아 타르트 하나랑 플레인 스콘 하나요.”
남자는 축 처진 어깨로 래희가 빵을 포장해 준 가방을 들고 터덜터덜 걸어 나가며 중얼거렸다.
“내일은… 새벽에 꼭 일찍 온다.”
래희도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다. 에그타르트가 천 실장님의 머리숱을 되돌려 놨다는 이야기를.
자신이 아는 에그타르트는 피로를 회복하는 게 끝이었는데 왜 저렇게 소문이 와전된 거지?
[성좌 ‘운명의 길잡이’가 탈모는 시스템도 어쩔 수 없다며 자신의 찰랑이고 풍성한 머리숱을 빗어 넘깁니다.]
‘…지금 이 상황에 자기 어필하는 건 좀 아니지 않나요?’
어차피 평생 얼굴 볼 일 없는 성좌가 틈만 나면 자신의 잘남에 어필하는 게 웃겼다. 설령 정말로 잘생겼다고 하더라고 죽을 때까지 그 얼굴을 확인해 볼 길이 없는데 무슨 상관인가.
“뀨!”
그때, 래희의 옆에서 열심히 빵을 포장하던 곰순이가 래희에게 집중하라며 소리쳤다.
“알았어, 미안.”
팝업 스토어를 오픈한 계기는 이렇다. 우선 안전하게 길드네에서 길드원들의 반응을 살피며 가게 오픈을 준비하는 건 어떻겠냐는 윤청현의 제안.
래희가 퀘스트나 성좌 때문에 빵집을 포기하지 못하니 윤청현이 먼저 양보해서 나온 제안이었다.
그녀가 능력을 오픈한 지도 벌써 한 달이 지나 주목이 덜해졌을 거라 예상했지만,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래희의 팝업 스토어는 빠른 품절로 팝업 스토어를 오픈한 기간 동안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물론 외부로 유출될 일 없이 여론을 확인할 수 있는 청해 길드 게시판도 덤이었고.
한 헌터가 래희가 만든 빵을 섭취한 뒤 그동안 잡기 힘들었던 몬스터를 비교적 손쉽게 잡을 수 있었다는 후기글을 올리면서 첫날보다 많은 수의 헌터들이 래희의 팝업 스토어를 찾기도 했다.
그동안 자신의 스탯에서 부족했던 부분을 싼 가격에 보완할 수 있었다나. 하지만 래희는 이 부분에 고개를 갸웃했다.
‘싼 가격?’
그럴 리가.
그동안 래희의 빵들은 시중에 다른 빵들보다도 약간 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었다. 게다가 특수 효과가 부여된 빵이라니. 이건 이전과 같은 가격에 팔아도 문제였다.
래희가 만든 빵들은 A급 아이템이나 포션을 훨씬 웃도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결코 그보다 싼 가격에 팔 수 없었다. 그래서 이번 팝업 스토어에서는 빵 한 덩이를 부여된 능력치에 따라 B급이나 A급 물약과 같은 가격으로 판매했다.
뭐, 이러나 저러나 금전 감각이 바닥인 헌터들에게는 껌값이겠지만.
그렇게 청해 길드 안에서 사전 시장 반응을 조사한 래희는 다시 외곽 지역으로 돌아가 빵집을 오픈할 준비를 했다.
“아니, 네 성좌님이 외곽 지역 아니면 안 된대? 길드 건물 1층에서 가게를 오픈하면 손님 관리가 더 편할 텐데?”
“됐어. 거기에 사람이 너무 많이 몰리면 그것도 길드에 피해가 갈 수 있으니까. 그냥 여기서 하는 게 나아.”
윤재언이 자그마한 가게를 올려다보며 투덜거렸지만 래희는 괜찮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주변 상가는 입점한 사람이 없어 텅텅 비어 있기 때문에 시끄럽거나 장사에 방해된다는 민원을 들을 일도 없었다.
“알았어. 하지만 혹시 모르니까 앞으로 너한테 보호를 붙이신다고 하더라.”
래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지. 그 부분은 처음부터 각오하고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 그녀를 지켜 주고 있다는 게 래희 스스로도 안심이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잘 모르겠다. 처음 겪어 보는 일이 걱정되는 건 래희도 마찬가지였다.
[성좌 ‘운명의 길잡이’가 자신이 뒤에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며 위로합니다.]
‘저기요… 그동안 하신 게 뭐가 있다고.’
그때, 래희의 앞에 오랜만에 퀘스트 창이 하나 나타났다.
[퀘스트: 빵에는 커피.]
빵과 잘 어울리는 아메리카노를 만듭시다.
- 빵과의 궁합이 A급 이상인 아메리카노 생산 (0/100)
- 완료 보상: 가게 경험치 +700, 보상 가을 작물 3종 씨앗.
[‘커피 원두(A)’가 주어집니다. 인벤토리를 확인하세요.]
“…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이제는 음료도 만들라고?”
* * *
“더는 못해… 때려치울까?”
가게 문을 닫고 한 달 만에 오픈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전보다 훨씬 많은 수의 손님들이 찾아왔다. 덕분에 여유가 없어진 래희는 퀘스트의 ‘퀘’자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가게 오픈 소식을 접한 사람들이 후기글을 생산해 내기 시작했고 결국 잊힌 듯했던 매스컴에도 등장하고야 말았다.
‘야미베어 베이커리’가 관광 명소가 되어 지역 경제 살리기에 한몫하고 있다나 뭐라나.
래희는 돈과 유명세를 얻은 대신 여유로운 삶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알바… 알바가 필요해.”
래희는 혼이 나간 채로 진열대를 정리하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빵을 만드는 건 래희 혼자서밖에 할 수 없었고 기껏 아르바이트를 뽑는다고 해도 계산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지 않은가? 심지어 요즘에는 곰순이가 계산대 담당을 하고 있어서 곰순이 실물 후기에 대한 글도 인터넷에 많이 올라와 있었다.
물론 바쁜 경제 활동 덕분에 그동안 래희의 가게 레벨도 많이 올라서 벌써 30을 목전에 앞둔 29레벨을 달성해 있었다.
“레벨이 10단위로 오를 때마다 큰 이벤트가 생기는 느낌이네.”
앞서, 가게 레벨 20을 달성했을 때, 레희의 ‘나만의 작은 마을’의 등급이 C에서 B로 올랐다.
150평의 땅과 30평의 집.
집은 비교적 넓은 평수에 비해 방 한 개와 화장실 한 개뿐이었으나 스킬 등급이 오르자 30평으로 늘어나더니 방이 하나 더 추가되어 방 두 개 화장실 한 개의 집으로 구조가 바뀌어 있었다.
‘이전에 살던 집처럼 2층짜리 집이었으면 했는데.’
뭐, 앞으로 스킬 등급이 더 오르면 언젠가는 2층도 증축이 되겠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이전에 게이트에서 만났던 안철용 헌터를 만날 수 있었다.
“어? 안철용 헌터님?”
“사장님! 드디어! 드디어 선착순에 성공했습니다!”
자신의 번호를 부르는 소리에 환호하며 들어온 안철용은 남은 빵의 종류와는 상관없이 자신이 빵을 구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감격하며 기뻐했다.
“축하해요.”
“넵, 축하받을 일이죠.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더니 드디어 열 번의 도전 끝에 가게에 입성하게 되네요!”
어…그게 이 상황에 사용할 만한 속담이었던가? 래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안철용이 가져온 남은 빵들을 포장했다.
“혹시 그 소문 들었습니까?”
“어떤 소문을 말씀하시는 거죠?”
래희의 의문 섞인 대답에 안철용이 주변을 한번 두리번거리더니 래희의 키에 맞춰 고개를 숙이고는 속삭였다.
“요즘, 래희님이 만드신 빵을 따라잡기 위해서 대기업에서 연구 계열 각성자들을 모으고 있답니다.”
“네?”
굳이……? 그렇게 연구해서 빵을 만들면 가성비도 안 나올 텐데? 그리고 이런 소문에 대해서는 전혀 무지할 것 같은 안철용 헌터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라 래희는 믿기지 않았다.
“역시, 사장님도 믿지 않으시는군요. 제가 분명 제 귀로 직접 들은 이야기입니다.”
“어디서 그런 소식을 들으셨죠?”
래희의 질문에 안철용은 아무도 없는 가게 안임에도 불구하고 남들이 들을세라 아까보다 더욱더 작은 목소리로 거의 속삭이듯 말했다.
“며칠 전 말입니다.”
티켓팅을 실패한 지도 벌써 7일째, 안철용은 오늘도 길드로 출근하기 전 선착순으로 나눠 주는 ‘야미베어 베이커리’의 번호표를 받기 위해 새벽부터 줄을 서 있었다.
지난 7일 동안 계속해서 자신의 바로 앞에서 줄이 끝이 났기 때문에 오늘은 결코 놓치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전날보다 ‘5분’ 일찍 가게로 출발했다.
잠에서 깨자마자 얼굴에 물만 묻히고 나왔기 때문에 평소처럼 청해 길드 소속을 알리는 유니폼을 입고 오지 않은 날이었다.
번호표를 나눠 주기 10분 전 오늘도 초조한 심경으로 기다리고 있는 그의 귓가에 수상한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샘플을 확보해.’
‘인당 겨우 두 개 구매로 많은 샘플을 구할 수가 없습니다.’
평소라면 그냥 지나칠 만한 대화였지만 얼마 전 기업 간의 비밀을 유출하는 음모에 관한 드라마를 감명 깊게 시청했던 안철용은 두 사람의 대화가 아주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헀다.
‘샘플?’
수상한데……?
‘더 많은 인력을 동원하면 되잖아. 대기업 출신이면서 그 정도 생각도 못 하는 건가? 그래서 회사에는 어떻게 입사한 건가?’
‘죄송합니다.’
‘연구 인력은 암암리에 알아보는 중이니… 중국… 미국… 돈을 더…….’
하지만 자신들이 누구나 의심할 법한 수상한 대화를 하고 있다는 걸 의식하고 있던 것인지 목소리는 점점 더 작아졌기 때문에 대화 내용을 더 엿들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날도 안철용은 어김없이 바로 앞 순서에서 번호표가 끝이 나는 걸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래희는 안철용의 말을 주의 깊게 들었다.
“오… 그랬군요.”
역시, 여기는 소설 속이 맞았다.
산업 스파이, 라이벌.
엑스트라가 힘을 얻게 되면 역시 악당이 등장하는 법이다.
[성좌 ‘운명의 길잡이’가 과몰입 오타쿠를 한심하게 보며 고개를 젓습니다.]
드디어 래희 자신이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