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류정우 씨, 다쳤어요?”
래희는 어색한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 먼저 입을 열었다. S급 헌터가 게이트에서 다치는 일이 드물 텐데도 손을 다친 것을 보니 의외였다. 게다가 보스 몬스터는 래희가 해치우지 않았던가.
하지만 류정우가 대답하기 전에 윤재언이 먼저 대답했다.
“별로 안 다쳤더라.”
윤재언의 무례한 태도에 래희가 그의 어깨를 내려치며 당장 내려 달라고 버둥거렸다. 윤재언의 품에서 벗어난 래희는 다친 곳이 없다고 의무실 직원에게 말한 뒤에 류정우에게 다가갔다.
“여태껏 게이트에 혼자 계셨던 거예요?”
S급 헌터가 다치다니. 그것도 총기류를 주로 사용하는 류정우의 손이 멀쩡해 보이지 않아 걱정스러운 어조로 그에게 물었다.
“네, 그나저나 래희 씨는 괜찮나요?”
류정우의 물음에 래희는 멀쩡하다는 걸 증명해 보이는 듯이 두 손을 어깨만큼 올린 채 한 바퀴 빙글 돌았다. 그 모습에 류정우가 언제 정색을 했냐는 듯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다행이네요. 래희 씨가 개미굴에 오랫동안 혼자 헤맬까 봐 걱정했어요.”
얼마나 안부 인사를 주고받았을까 류정우와의 대화를 통해 래희가 게이트 클리어를 한 것이 아니었다는 걸 들을 수 있었다.
알고 보니 보스가 두 마리였다던가?
“그럼 나중에 메시지로 뜬 여왕개미 AA급이 정말 이었다는 뜻이네요.”
AA급이라니. 처음 보는 등급이었다. 보통 A급 다음에는 S급이 아니었던가?
“저도 처음 보는 경우였습니다. A급도 S급도 아닌 애매한 AA급이라니. 어쩐지 A급 치고 강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덕분에 얼마 전 보급받은 A급 리볼버는 무용지물이었네요.
류정우는 다친 손을 들어 올리며 웃으면서 말했다. 그때, 상황 파악을 위해 잠시 밖으로 나가 다른 민간인들의 증언을 들은 윤재언이 급하게 두 사람이 있는 천막 안으로 들어왔다.
“권래희! 너 능력 들켰어?”
래희는 그 소리에 놀라 반사적으로 윤재언을 올려다봤다.
“아, 어쩔 수 없었어.”
아마 위독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회복 효과가 있는 빵을 꺼냈던 이야기가 조사 과정에 나온 듯싶었다.
래희의 대답에 두 사람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지더니 눈을 마주쳤다. 찰나의 순간 동안 두 사람이 눈빛으로 무언의 대화를 주고받은 듯했다.
“뭔데?”
류정우가 옆에 놓여 있던 담요로 래희의 얼굴을 덮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상황에 버둥거릴 새도 없이 보쌈당하듯 래희는 두 사람에게 납치되어 청해 길드 꼭대기 층 길드장실로 이동되었다.
* * *
- 속보입니다. 지난 5일 오전 8시에 발생한 C급 게이트가 게이트 발생 26시간 만에 클리어되었다는 소식입니다. 생존자의 증언에 따르면 C급 게이트 안에 연결된 A급 게이트로… (중략) 조사 결과 여태껏 발생한 게이트들과는 달리 보스 몬스터가 두 마리 존재했던 이례적인 사례로… (중략) 게이트를 클리어한 사람은 류정우 헌터와 알려지지 않은 C급 헌터 K씨…….
하루아침에 유명인이 되었다.
류정우와 윤재언이 갑작스럽게 래희의 얼굴을 가린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던 거였다.
래희는 실시간으로 얼굴이 가려진 채 류정우에게 들려서 이동되는 자신의 사진을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기자 새X들 헌터라면 다 얼굴 팔려도 된다고 생각하나 보지.”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닌데 래희의 얼굴과 신상을 알아내겠다고 다들 혈안이었다. 래희는 윤재언의 보기 드문 욕설을 들으며 죄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숙였다.
A급 보스 몬스터를 잡은 C급 헌터. 이 사실만으로도 큰 이슈거리였지만 그보다 더 래희가 건네준 빵으로 치명적인 부상을 회복하여 생존한 사람의 증언 때문에 여론은 더 난리였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래희가 건네준 빵이 일반적인 회복 포션과 비슷한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는 거랄까. 비록 A급 포션과 같은 효과긴 했지만…….
래희는 한숨을 내쉬며 휴대폰으로 보고 있던 뉴스를 마저 시청했다.
[긴급 속보] 서울 안전지대 12번가 C급, A급 이중 게이트 클리어 완료. 실종자 전원 귀환.
- …헌터 6명, 비각성자 32명 모두 무사히 게이트 밖으로 빠져나왔습니다. 게이트 발생 26시간 만인 오늘 오전 11시쯤 게이트 클리어 소식과 함께 닫혀 있던 게이트의 문이 열려 생존자들이 빠져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안전모를 쓰고 있는 기자가 게이트 앞에서 소식을 전달하고 있는 장면이 뉴스 화면으로 나오고 있었다.
- 이번에 새롭게 등장한 헌터 분도 있다구요?
- 네, 그렇습니다. A급 보스 몬스터가 총 두 마리가 존재하는 이례적인 상황이었습니다. 보통 A급 보스급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최소 S급 헌터가 한 명이 존재해야 하거나 아니면 A급 헌터가 3명 이상이 필요합니다.
- 이번에는 어땠습니까?
- 다행히 AA급이라는 특이한 등급의 보스 몬스터는 청해 길드 소속의 S급 류정우 헌터가 해결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민간인 15명과 헌터 6명이 있던 곳에는 A급 헌터가 고작 한 명뿐인 상황이었습니다.
기자의 대답에 아나운서가 놀랍다는 표정을 지으며 질문했다.
- 그렇다면 그쪽의 보스 몬스터는 그 A급 헌터가 해치운 것이었습니까?
- 아닙니다. 생존자 증언에 따르면 청해 길드 소속의 C급 헌터가 해결한 것이라는 소식입니다.
하, 미치겠다.
래희는 기자의 대답에 머리가 아파 와 미간을 찌푸리며 머리를 짚었다.
- 뜻밖이군요. C급 헌터 단신으로 A급 몬스터를 상대하다니요. 불가능하다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 아직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된 건지 정확하게 밝혀진 게 없습니다. 던전 관리팀에서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거절했다는 소식입니다. 헌터가 소속되어 있다는 청해 길드 측에서는 헌터 개인 정보를 이유로 밝히고 있지 않습니다.
- A급 몬스터를 손쉽게 해결했다고 하는데, 혹시 재각성을 했을 가능성은 없습니까?
- 그럴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추측입니다.
- 그렇다면 기쁜 소식이군요. 대한민국의 9번째 S급 헌터의 등장을 기대해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아, 그리고 생존자들의 인터뷰도 준비가 되었다구요?
아나운서의 말이 끝나자 뉴스 화면은 곧바로 인터뷰 대상을 비추기 시작했다.
많이 지쳐 보였지만 생존했다는 기쁨 때문인지 안색은 괜찮아 보이는 여자가 화면에 등장했다.
인터뷰하는 여자는 바로 잠이 들어 있던 래희를 흔들어 깨운 민간인이었다.
- 아무것도 모르는 제가 봐도 헌터분들께서 수적으로 너무 밀리는 상황이었는데요. 심지어 그때 등장한 거대한 몬스터 때문에 이제 죽겠구나 생각했었는데, 그때 청해 길드 소속으로 보이는 여성 헌터분 한 분 덕분에 살았습니다. 게다가 그 여성분이 주신 음식? 아이템 덕분에 심각한 부상을 당했던 제 친구도 무사히 생존했는데…….
연이어 류정우와 함께 있던 생존자들의 인터뷰를 마지막으로 현장을 중계하는 화면은 사라지고 다시 스튜디오에 있던 아나운서의 얼굴이 화면에 등장했다.
아나운서는 현재 게이트 앞이 정리된 상황에 대해 한 번 더 안내한 이후에 다음 소식을 알리기 시작했다.
래희는 다음 소식이 전혀 궁금하지 않았으므로 뉴스가 송출되고 있던 창을 껐다.
그때, 포털사이트 메인 기사의 헤드라인이 래희의 눈에 들어왔다.
[속보] 서울 안전지대 12번가 게이트 사태 소강. 실종자 전원 귀환. 새로운 스타의 등장?
- S급 추가 가나요!
└9명이면 아시아 최대 아웃풋임. 인구 대비 이럴 것 없이.
└제발 이렇게 빈다. 재각성자여라.
- 아직 아무 발표도 안 했는데 이렇게 김칫국 마시는 거 그 헌터한테도 무례 아님?
└222 이러다 진짜 재각성 아니면 맞아 죽을 분위기인데.
└언론사 새끼들 뇌피셜이 문제임.
- 류정우가 보쌈하듯이 냅다 들고 뛰는 거 보면 서로 아는 사이였나 보지?
└청해 길드 소속이래잖아. 안면 정도는 당연히 있겠지.
└너는 너네 회사 부사장이랑 대화해 봄?
└ㅅㅂ 그걸 왜 여기에 비교함?
└같은 거 아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기자 새끼들 혐오스러움. 죄지은 것도 아닌데 얼굴 가린 사람 끝까지 쫓아가서 사진 찍겠다고 덤비는 것 봐라. 심지어 류정우가 들쳐 멘 사진을 메인으로 걸어 놨네.
└불편할 것도 다 있다.
└인정.
- 근데 청해 길드는 신비주의가 컨셉임? 새로운 헌터가 등장할 때마다 신상 가리기 급급. 근황도 안 알려 줘. 청해 길드 보석함 좀 숨기지 말고 열어 줘라.
└연예인도 아닌데 뭣 하러 알려 줌?
└헌터면 공인 아님?
└지가 원해서 헌터된 게 아닌데 뭣 하러 자기 사생활 다 오픈함? 고등급 헌터 치고 SNS 하는 헌터 몇 명 안됨.
- 좋겠다. 류정우한테 안겨도 보고.
└ㅅㅂ 류정우 억빠 여기도 있네.
└이게 억빠냐 ㅂㅅ아.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람.’
갑작스러운 상황에 머리가 아파 왔다. 래희는 글자가 읽히지 않아 글자의 모양만 머릿속에 담으며 기사의 게시글을 읽어 내렸다.
래희가 인상을 쓰며 휴대 전화 화면을 내려다보고 있자 류정우가 그녀에게 다가와 휴대 전화의 화면을 손으로 가렸다.
“그만 보세요.”
걱정이 담긴 청안이 그녀를 곧게 응시하고 있었다. 래희는 소파에 몸을 푹 기대며 눈을 감았다.
S급. 재각성.
사람들의 추측은 모두 맞았지만, 결코 그들이 기대한 결과는 아닐 거였다. 한국의 전력이 되는 ‘특별한’ 헌터를 원한 거겠지만 래희는 고작해야 클래스가 ‘빵집 사장’이 아닌가.
언제나 특별한 삶을 원해 왔지만, 막상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세상에 떠들썩거리자 결코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이제… 어떡하죠?”
래희의 탄식 섞인 질문에 여태껏 길드장실 책상 앞에 가만히 앉아 있던 윤청현이 입을 열었다.
“어떡하긴. 당분간 몸을 사려야지.”
지금 청해 길드 정보팀과 비서팀은 비상이었다. 그들은 필사적으로 래희의 빵집에 대한 이야기가 공개적으로 드러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인터넷을 모니터링하며 관련 글이 올라오는 족족 글을 내리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지금은 네 빵집에 대한 이야기가 새어 나가지 않게 막고 있어도 그건 시간 끌기일 뿐이야. 일단, 네 능력 때문에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해결책이 있을 때까지는 당분간 가게 운영은 못 하겠구나.”
“네.”
래희는 반박하는 기색 없이 순순히 대답했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 겪어 보는 세상의 주목에 놀란 래희의 머릿속은 패닉 상태로 아무 생각이 없었다.
‘김주현이 말한 게 이런 건가?’
암암리에 자신의 능력에 대한 이야기가 돌고 있다는 말. 그래서 위험해졌다는 것.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이제야 김주현의 경고가 귓가에 맴도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