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화
래희가 통로 입구에 거의 다다랐을 때쯤, 어디서 나타났는지 은색으로 반짝거리는 개미 한 마리가 그녀를 향해 다가오며 날카로운 입을 벌렸다.
키에엑―!
래희는 급한 대로 자신이 가진 스킬 중 나름 쓸만하다고 생각하는 스킬을 시전했다.
쓱싹쓱싹.
그녀의 주변으로 강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다행히 마법 소녀 패시브 스킬 덕분에 마력량은 충분했으므로 래희는 최대한 넓은 범위로 스킬이 발동되도록 바람을 강하게 모았다.
그나마 몇 번 써 본 스킬이라고 스킬을 섬세하게 사용하는 게 익숙해졌다. 처음 겨우 빵 쪼가리 몇 개를 들어 올렸을 때와는 달리 이제 바람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감이 잡혔다.
래희가 모은 바람이 그녀의 발끝을 시작으로 주변으로 넓게 퍼져 나가며 개미나 번데기 할 것 없이 모두 쓸어 내기 시작했다.
키엑―!
그녀의 귓가로 약이 오를 대로 오른 듯한 개미의 비명이 방 안으로 울려 퍼졌다.
[스킬 ‘쓱싹쓱싹’의 숙련도가 300이 올랐습니다!]
[숙련도 증가로 스킬 ‘쓱싹쓱싹’의 등급이 오릅니다. (C→B)]
아쉽게도 낮은 등급 때문에 개미들은 아주 멀리까지 쓸어 내지 못했지만 적절한 타이밍에 스킬 등급이 올랐다는 알림 메시지가 눈앞에 떠올랐다.
‘다행이네.’
래희는 밀려난 개미들이 다시 일어서려 하는 걸 보고 간신히 시간을 벌었다는 생각에 급하게 발걸음을 옮겨 통로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었다.
여전히 통로는 그녀의 주변을 제외하고서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고 그녀가 나온 방에는 개미들이 득실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래희는 뒤따라 오는 개미를 피하기 위해 우선 걸음을 옮기면서 자신의 스탯 창을 열어 확인했다.
[스탯]
- 채력 65/75
- 근력 72
- 민첩 73
- 마력 75/100 +150
- 행운 90/95
그동안 틈틈이 모은 명성 덕분인지, 체근민 스탯 합이 이제 겨우 D급 수준으로 올라와 있었다.
‘아직 혼자서 C급 몬스터를 상대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네.’
래희는 자신의 스탯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운이 더럽게 없는 것 같은데 행운 스탯만 쓸모없이 높았다. 행운 스탯이 최대 100이라면 래희의 행운은 100에 가까운 95.
보통 운이 좋다고 알려진 각성자도 50이 될까 말까였는데, 그보다 훨씬 높은 래희는 처음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운이 더럽게 없었다.
‘…일단 지금 이런 걸 생각할 시간은 없어.’
래희는 계속해서 다른 곳으로 향하는 생각을 겨우 붙잡으며 지금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고민했다.
“아.”
그러고 보니 자신이 만들었던 S급 빵들에는 아이템과 같이 부가 효과가 존재했다.
‘빵이라도 먹어야지.’
래희는 우선 스탯을 올리기 위해 인벤토리 창을 열어 그동안 만들었던 빵들을 꺼내 들었다.
‘몬스터한테 쫓기면서 빵이나 주워 먹고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 거야.’
래희는 배가 전혀 고프지 않았지만 살기 위해서 입 안으로 빵을 우걱우걱 집어넣기 시작했다.
[체력이 일시적으로 30씩 증가합니다. (30분)]
[근력이 일시적으로 10씩 증가합니다. (10분)]
빵의 향이나 맛을 느낄 새도 없이 씹어 삼키기 바빴다. 빵을 다 먹자마자 떠오르는 시스템 메시지와 함께 몸도 한결 가벼워졌다.
‘오…….’
가진 빵들을 적당히 먹을 수 있을 만큼만 먹고 나자 어느새 C급 개미 한 마리 정도는 단신으로 상대할 수 있는 B급 스탯 끝자락까지는 증가했다.
아까보다 훨씬 몸의 움직임도 가벼웠고 스킬을 쓰는 것도 손쉽게 느껴졌다.
‘이제 바로 고등급들이 마시는 공기인가.’
이럴 때 사용하는 표현은 아니었지만 당장 마땅한 다른 표현이 떠오르지는 않았다.
강해진 것 같은 기분에 당장이라도 몬스터를 상대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고양감에 휩싸였다.
[성좌 ‘운명의 길잡이’가 진정하라고 말합니다.]
[너무 좋아하니 애송이 같다고 비웃습니다.]
“저기요, 빵집 사장이 아니라 진작에 쓸만한 S급으로 재각성시켜 주셨다면 이렇게 촌스럽게 굴지도 않았을 거라구요.”
래희는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통로를 이동했다.
어느샌가 뒤쪽에 쫓아오는 개미들을 따돌렸는지 통로 안은 고요한 적막이 맴돌았다.
개미의 번데기를 모아 두는 방까지 왔으니 조금만 더 가면 지상이었다.
물론 던전으로 형성된 개미집에 출구가 있을까 싶었지만, 홀로 A급 보스인 여왕개미를 상대할 자신이 없었으므로 래희의 입장에서는 이 방법이 최선이었다.
“그나저나 류정우는 어디로 휩쓸린 걸까…….”
동시에 사막 아래로 끌려갔으니 분명 같은 게이트에 떨어졌을 게 분명한데도 그가 보이지 않았다.
얼마간 류정우의 행방을 고민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통로 끝에서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입구!”
래희는 한층 밝아진 목소리로 감탄했다.
사지 멀쩡하게 게이트 밖으로 나갈 수 있다니. 래희는 기쁨을 온몸으로 표현하며 빠르게 빛을 향해 뛰어갔다.
그러나 기쁨은 잠시. 그곳에는 예상치 못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사람?”
비각성자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잔뜩 겁을 먹은 표정으로 방 한편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키이익―!
웅크려서 울고 있는 사람과 상반되게 몇 명의 헌터가 그들에게 달려드는 개미를 상대하고 있었다.
[성좌 ‘운명의 길잡이’가 옆을 조심하라고 소리칩니다.]
성좌의 메시지에 놀란 래희가 옆으로 급하게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아까 봤던 개미보다 훨씬 더 큰 크기의 개미가 입을 쩍 벌리고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은개미 굴의 ‘정찰병 은개미 B’와 마주칩니다.]
B급. 기껏 S급 빵으로 스탯을 올렸지만, 그녀 혼자서는 상대하기 어려운 등급이었다.
‘이런…….’
무력하게도 래희의 머릿속에는 그 어떤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머리가 백지장처럼 하얘졌다.
“정신 차려요!”
누군가가 그녀에게 소리쳤다. 마치, 몬스터의 공격에 얼어 버린 신참의 정신을 깨우는 듯한 강한 어조였다.
그 뒤, 그녀를 향해 달려들던 은개미가 반으로 쩌억 갈라졌다.
래희는 순간 정신을 차리곤 그녀를 구해 준 목소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곳에는 근육질의 덩치가 큰 남자가 그녀를 삐딱하게 내려다보며 서 있었다.
* * *
상황은 금방 일단락되었다. 달려드는 은개미들을 상대하던 헌터들은 모두 청해 길드 소속으로 다들 최소 B급 이상의 헌터들이었다.
청해 길드 소속의 일반인 직원들과 길드 건물 주변을 지나가던 비각성자나 비전투계 민간인들은 다행히 헌터들 덕분에 A급 게이트에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녀를 구해 준 헌터의 이름은 안철용. A급 전투계 헌터로 청해 길드의 게이트 공략 1팀에 소속되어 있다고 소개했다. 몬스터에게서 그녀를 구해 줄 때와의 거친 인상은 사라지고 전투가 끝나자 그는 어느새 온화하고 조금은 모자란 듯한 인상으로 변해 있었다.
안철용은 길드 내 위치가 위치인지라 래희의 이름을 듣자마자 윤청현 길드장과 관련이 있다는 걸 기억해 낸 그는 래희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래희 씨, 이 빵 정말 맛있네요. 길드장님이 백화 길드 길드장이랑 빵 하나로 싸움 났었다는 거 루머라 생각했는데 사실이었나 봐요!”
해맑게 웃으며 사람들이 많은데도 TMI를 남발하는 그는 뇌까지 근육으로 가득한 것 같았다.
[20명의 사람이 ‘곰순이 멜론빵 S’을 인식하였습니다.]
[[퀘스트] ‘곰순이 멜론빵 S’의 명성이 20 증가합니다.]
[‘곰순이 멜론빵 S’의 호감도 +200을 획득하였습니다.]
[[퀘스트] ‘곰순이 멜론빵 S’의 명성이 200 증가합니다,]
래희는 자신의 눈앞에 계속해서 떠오르는 시스템 알림 메시지를 보며 남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거의 만 하루 굶은 사람들이 헌터들이 나눠 주는 육포를 뜯으며 지친 표정으로 앉아 있자, 래희는 저도 모르게 자신이 음식을 조금 가지고 있다고 말해 버렸다.
하지만 모두가 나눠 먹기에는 충분한 양이 아니었고 그렇다고 능력을 들킬 위험이 있는 S급 빵을 나눠 줄 수도 없었기 때문에, 모자란 양은 베이커리에서 판매되는 메뉴인 곰순이 멜론빵을 사람들에게 나눠 줬다.
그나마 다행히 ‘상태 이상’ 상쇄 효과가 부여된 빵이었기에 멜론빵을 먹은 그 누구도 래희가 나눠 준 빵의 능력을 눈치챈 것 같지는 않았다.
“래희 씨! 게이트 밖으로만 나가면, 꼭 사례하겠습니다! 이렇게 맛있는 빵이라니!”
여전히 우울한 분위기와 다르게 안철용 헌터는 눈치 없이 해맑게 떠들어 대기만 했다.
그때, 청해 길드 소속 헌터 중 한 명이 래희에게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노랗게 탈색된 단발의 여성이 그녀에게 인사했다.
“아, 네. 안녕하세요?”
래희는 갑자기 훅 들어온 인사에 당황하며 얼떨결에 여자가 내민 손을 맞잡으며 인사했다.
여자의 이름은 주해윤. 그녀는 B급 힐러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소문의 주인공을 만나서 반갑다고 말했다.
“소문이요?”
“네! 길드장님이 래희 씨가 만든 에그타르트를 독점한다고 천 실장님이 우울해하신다는 소문이 있거든요.”
“그래요?”
도대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청해 길드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래희는 게이트만 나가면 바로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나저나, 혼자서 게이트에 휩쓸리신 거예요?”
“아… 아뇨.”
래희는 주해윤에게 자신의 능력에 대한 이야기를 제외하고서 그동안 일어났던 일에 대해 설명했다.
“류정우 헌터요?”
주해윤은 누가 들을세라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반문했다.
“그럼 류정우 헌터도 게이트에 같이 휩쓸리신 거라면 그나마 다행이네요! 저희만으로는 A급 보스 몬스터를 잡기는 힘들어서요.”
A급 1명, B급 4명.
부상을 감수한다면 A급 보스 몬스터를 잡을 수는 있겠지만 민간인을 보호해 가며 상대하기는 역부족이었다. 능력 부족보다는 인력 부족이 더 큰 문제였다.
“그럼, 류정우 헌터는 지금쯤 어디에 계실까요? 분명 같은 던전에 떨어지셨을 텐데 지금까지 너무 조용한 것 같아서요.”
래희는 여자의 의문에 동의했다.
류정우라면 지금쯤 개미굴을 다 부수고도 남았을 텐데 어디에 있어서 이렇게 조용한 거지?
하지만 래희는 지금 당장 류정우의 행방에 대해서 알 길이 없었고 거의 하루 종일 깨어 있었기 때문에 너무 지친 상태였다.
래희는 조용해진 주변을 둘러봤다.
민간인들은 지쳐서 벌써 잠이 든 지 오래였고 그나마 체력이 좋은 헌터들이 번갈아 가며 불침번을 서고 있었다.
모닥불을 피우려 했지만 밀폐된 지하 공간에서 불은 위험하다는 판단에 래희가 스킬을 이용해서 주변을 밝게 비추고 있었다.
“래희 씨, C급 비전투계니 내일을 위해 체력을 더 비축해 둬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도 나름 A급 전투계니 믿고 주무셔도 됩니다.”
조용해진 방 안으로 안철용의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래희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붙였다. 잠에 잘 들지 못하는 편이었지만 온종일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났기에 래희는 두 눈을 붙이자마자 잠이 들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