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 * *
김주현이 래희에게 알 수 없는 경고를 한 그날 저녁, 래희는 류정우에게 배달할 빵을 만들기 위해 스킬을 이용해 반죽을 만들고 있었다.
그때, 래희의 눈앞에 시스템 창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문스타 좋아요 수 100개를 달성하였습니다.]
[명성 획득으로 스탯이 10씩 증가합니다.]
[100명의 사람이 ‘곰순이 멜론빵 S’을 인식하였습니다.]
[[퀘스트]‘곰순이 멜론빵 S’의 명성이 100 증가합니다.]
[‘곰순이 멜론빵S’의 호감도 +60을 획득하였습니다.]
[[퀘스트] ‘곰순이 멜론빵 S’의 명성이 60 증가합니다,]
“오……?”
래희는 떠오르는 시스템 창을 대충 확인한 뒤, 시선을 다시 조리대 위로 돌렸다.
‘일단 하던 일은 마저 다 끝내야지.’
멜론 과즙을 넣어 연둣빛이 나는 쿠키 반죽을 동그랗게 굴려 밀대로 밀었다. 얇게 편 쿠키 반죽 위로 동그란 빵 반죽을 올려 감싸 주었다.
만들어진 반죽에 설탕을 묻힌 뒤 격자무늬로 칼집을 넣어 주었다. 아직 굽기 전의 멜론빵이었지만 모양은 꽤 그럴듯하게 보였다.
“이제 귀를 붙여 주면…….”
‘곰순이 멜론빵’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남은 쿠키 반죽을 작은 구모양으로 굴려 멜론빵 양쪽 위에 붙여 주었다. 이제 굽고 나서 초콜릿으로 눈, 코를 그려 주기만 하면 되었다.
래희는 완성된 반죽을 틀 위에 올려 미리 예열된 오븐에 넣고 타이머를 20분에 맞춘 뒤 오븐 문을 닫았다.
“간단하네.”
원래 제빵 일은 아주 힘든 일이다. 하지만 스킬 덕분에 반죽 과정, 발효 과정을 모두 생략할 수 있는 래희는 남들보다는 훨씬 더 수월하게 빵을 만들어 낼 수 있어 일이 고되지도, 많지도 않았다.
여유가 생긴 래희는 퀘스트 창을 열었다.
[퀘스트: 특별한 메뉴를 만들자.]
- 명성 1,000 획득 S급 메뉴 1개 만들기 (0/1): 160/1,000 (달성률 16%)
“음……. 이제야 10분의 1 조금 넘게 달성했네.”
어쩌지? 내 문스타 홍보로는 이게 최선일 텐데.
“에잇, 몰라. 어떻게든 되겠지.”
안 그래도 김주현 때문에 심란해 죽겠는데 퀘스트는 진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머릿속이 오히려 더 복잡해졌다.
‘…내가 만든 빵에 부가 효과가 있다는 소문이 암암리에 돌고 있다고?’
도대체 어디서?
기껏 팔아 본 S급 빵이라고 해봐야 에그타르트와 플레인 스콘이 전부였다. 그것도 대부분 청현 아저씨가 구매해 간 데다가 류정우의 조언으로 판매 시작을 한 지 일주일도 안 되어 판매 중단을 한 후 모두 회수했다. 물론 모두 류정우의 배 속으로 회수당했지만…….
최근에 판매한 건 최재휘였는데 그건 일반인한테 선물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어디선가 래희가 만든 빵을 먹었다는 글을 읽어 본 적이 있는 것 같았지만 자세한 내용이 기억이 나지 않아 래희는 눈썹을 씰룩거렸다.
“혹시, 그 글 때문인가?”
최근에 D급 헌터가 올린 생존기? 하지만 그 글에서도 래희의 베이커리에 대한 별다른 언급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했다.
‘그 글 때문에 류정우랑 최재휘 한번 보겠다고 손님들이 몰려들기는 했지만, 딱히 특별한 건 없었는데…….’
물론 최근에 이상한 남자가 자신을 감시하듯 찾아온 건 있었지만 그게 빵 때문일 리는 없었다.
그 유명한 S급들 중 류정우를 제외한 그 누구도 래희의 빵에 설명 창이 뜬다고 말하지 않았다. S급도 그럴지인데 S급도 아닌 사람이 그걸 알아차린다고?
‘분명 처음 보는 얼굴의 남자였어.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S급은 없다고 들었으니까 적어도 S급은 아니라는 뜻이겠지.’
그렇다면 그 남자는 자신을 왜 관찰하는 거지?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짐작 가는 것이 없어 답이 나오지 않았다.
‘김주현 말이 맞는 건가?’
래희는 한숨을 쉬며 멜론빵이 구워지는 동안 내일 가져갈 빵들을 정리했다. 혼자서 생각한다고 곧바로 대책이 생겨나지는 않을 거였다.
내일은 아침 일찍부터 류정우와의 약속이 잡혀 있었기 때문에 이제 그만 잠이 들어야 할 시간이었다.
* * *
주말 아침. 래희는 전날 밤 준비한 빵들을 가지고 류정우의 사무실을 찾았다.
얼마 전까지 분명 딱히 대외 활동을 하려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는데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류정우의 스케줄이 늘어나 이제는 짬 내서 시간을 내는 게 아니면 만나기 어려울 정도로 바빠 보였다.
‘유명해지고 인기를 얻는 데에는 별생각이 없어 보였는데?’
저번 C급 게이트 사고 이후로 방송 활동이 활발한 류정우에 적응이 되지 않는 래희는 새삼스러운 기분으로 주인이 비어 있는 사무실을 둘러봤다.
‘사람이 있는 흔적이 없어.’
심플하다 못해 썰렁한 방이었다.
책꽂이에는 길드 자료를 관련한 책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꽂히지 않은 채로 텅텅 비어 있었고, 장식이 없는 방 한쪽에는 손님들이 왔을 때 앉을 수 있게 검은색의 2인용 소파가 마주 보며 배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방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곳에 책상이 배치되어 있었고 의자 뒤로 도시가 한눈에 들어오는 전경이 펼쳐져 있었다.
래희는 류정우를 기다리며 소파 위에 앉았다.
‘언제든지 떠날 사람처럼 방을 방치하면서 길드 관련 홍보 활동이나 방송 활동을 왜 그렇게 많이 하는 거지?’
[성좌 ‘운명의 길잡이’가 뭔가 찝찝하다고 중얼거립니다.]
찝찝할 건 또 뭐예요?
‘그냥 좀 궁금한 게 다인데……?’
그 류정우가 무슨 생각인지 궁금한 걸 제외하고는 찝찝한 기분이 들지는 않았다.
[성좌 ‘운명의 길잡이’가 원래 이럴 때는 뭔가를 숨기기 위해 다른 이슈로 시선을 돌리는 것 아니냐고 말합니다.]
하지만 래희가 성좌의 메시지의 의도를 미처 생각하기도 전에 방문이 벌컥 열리며 류정우가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방으로 들어온 류정우는 자연스럽게 곧바로 래희가 앉아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틀었다. 그녀를 발견한 류정우는 얼굴에 미소를 띠며 그녀를 반겼다.
“아, 왔어요?”
“안녕하세요.”
류정우는 래희의 인사에 반갑게 답하며 곧바로 그녀의 앞으로 성큼 걸어와 소파 맞은편에 앉았다.
‘빵이 그렇게 좋은 건가?’
류정우에게 숨겨 둔 모든 능력을 들킨 그날 이후로, 바빠진 류정우를 위해 매주 주말마다 빵을 배달 온 지도 벌써 한 달.
이제는 익숙하다는 듯 어색하지 않게 서로를 대하게 된 지도 벌써 한 달이었다.
‘내가 내 최애랑 매주 얼굴을 마주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
[성좌 ‘운명의 길잡이’가 배달 같은 건 따로 배달부를 이용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립니다.]
[구오빠한테 사심 버린 거 아니었냐고 당신에게 실망합니다.]
래희는 성좌의 메시지를 무시하며 그녀의 맞은편을 바라봤다.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 잘생긴 류정우의 얼굴을 보자, 한 달 전 배달을 하기로 약속한 날을 떠올렸다.
* * *
“배달이요?”
“네. 아무래도 앞으로 바빠질 것 같아서요.”
게이트 사고 이후 류정우는 방송 이곳저곳에 불려 나가기 시작했다. S급 정도면 적당히 거절해도 문제 될 일이 없었겠지만, 류정우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방송 활동을 열심히 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래희 씨 가게는 이제 손님이 많아져서 가기도 어려워져서요.”
“아, 그럼 배달 주소를 써 주시면 댁으로 보내 드릴게요.”
래희가 머리를 긁적이며 메모지를 꺼내 들었다. 하지만 류정우가 그녀의 행동에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아뇨, 직접 오시는 건 어떨까요?”
“…굳이요?”
제가 직접?
래희가 의문 섞인 표정으로 류정우를 올려다봤다. 그런 래희의 표정에 류정우가 눈을 반으로 접으며 놀리듯이 말을 했다.
“배달 중간에 문제가 생기면 혹시라도 큰일이 날 수 있으니까요.”
능력을 들키게 된다거나…….
그의 말에 래희는 기겁하며 손사래 쳤다.
“어우, 그럴 수도 있겠네요. 제가 직접 배달 갈게요.”
래희는 그동안 처분 불가였던 S급 빵들에 대한 비밀을 지켜 주며 비싼 값에 구매까지 해 주는 VIP 손님의 말에 동의했다. 우리 가게 매출의 최대 지분을 보유하시는 분이니 배달 정도야 할 수 있지.
게다가 류정우 말대로 배달 사고로 능력이 들키기라도 하면 안전하고 평화로운 라이프가 위험에 처할지도 몰랐다.
물론 류정우가 의도한 바는 그게 아니었지만.
그는 바빠진 스케줄 때문에 보기 힘들어진 래희를 만나고자 핑계를 대었을 뿐이었다. 그 스스로도 자신이 이러는 정확한 이유는 몰랐지만 아무래도 자신의 회귀에 대한 열쇠를 쥐고 있을지도 모르는 사람이니 이렇게 신경이 쓰이는 거겠지.
류정우 자신이 바빠진 것에 래희가 한몫하기도 했지만, 그건 길드장과의 약속이라 말할 수 없었다.
래희는 그런 류정우의 생각에 대해서는 전혀 짐작도 하지 못한 채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는 중이었다.
“오늘은 신메뉴 멜론빵을 챙겨 왔어요. 퀘스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S급 빵을 판매하는 거긴 하지만 이 정도 능력이면 들킬 위험도 적지 않을까요?”
래희의 설명에 류정우가 종이 가방 안에 든 멜론빵을 꺼내 들었다.
곰순이 멜론빵의 설명을 읽은 류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상태 이상 해제면 적어도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 몬스터에게 공격을 당한 이유여야 하니 들킬 위험은 적겠군요. 잘했습니다.”
휴, 다행이다. S급이 저 정도로 말하는데 그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성좌 ‘운명의 길잡이’가 못마땅해합니다.]
류정우는 멜론빵의 포장을 뜯었다. 달달한 멜론 향기가 그의 코끝을 간질였다. 곰의 귀부분으로 보이는 작고 동그란 귀 끝부분, 노랗게 구워진 연둣빛의 멜론빵에 초콜릿으로 눈, 코, 입이 그려진 모습이 꽤 귀여웠다.
아무래도 그가 권래희를 돕는 건 앞선 이유들과 더불어 그녀의 빵이 맛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그는 저도 모르게 침을 한번 삼킨 뒤 빵을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과하지 않은 달달함과 향긋한 과일 향이 입 안을 맴돌았다. 겉은 쿠키처럼 바삭했고 속은 카스텔라처럼 부드러웠다.
‘맛있네.’
더는 이 세상에 대한 미련이 없어 세상 모든 일에 대해 점차 무감각해졌다. 노는 게 즐겁지도, 팬들과 멤버들의 무한한 애정이 반갑지도,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의 감동이 느껴지지도 않았다.
하지만 권래희와 있을 때는 자신이 살아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자신의 반응이 궁금한지 그의 앞에 앉아 있는 래희가 잔뜩 긴장한 채로 그를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관찰하고 있었다.
래희의 모습을 빠르게 한번 훑은 류정우는 그녀와 눈이 마주치기 전에 재빨리 자신의 손에 쥐어져 있는 빵으로 시선을 돌렸다.
‘음…….’
이상했다. 순간 권래희의 눈과 마주하기가 어려웠다. 처음 느껴 보는 이상한 기분이었다.
‘왜지?’
이상하게도 그동안 수없이 마주한 그녀의 얼굴이 오늘따라 보기 힘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