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윤청현은 김유한이 유난히 래희의 빵에 관심을 가지기에, 지나친 관심을 차단하기 위해 사람을 시켜 래희의 빵집의 빵을 김유한이 구매하기 전에 쓸어 올 것을 지시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다른 음식보다 유난히 맛있는 음식이라는 생각만 했을 뿐이었다.
혼자 먹을 수 있는 양보다 지나치게 많은 양의 빵을 구매했기 때문에 그냥 뒀다가는 상할 것 같아 일부는 인벤토리에 넣어 두고 일부는 비서들에게 나눠 주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나타났다.
“천 실장. 요즘 유난히 안색이 좋군.”
A급인데도 바쁜 비서팀 일에 제대로 휴식을 취하지 못해 안색이 좋지 않은 지도 벌써 몇 달.
하지만 어느 날부터 유난히 천해훈의 안색이 좋아 보였다. 마치 혼자서 보양식을 챙겨 먹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피부가 매끈했다.
심지어 조금 비어 보이던 머리숱까지 유난히 풍성해 보이기 시작했다.
“혼자서 좋은 거라도 먹고 있는 건가?”
“아, 아닙니다. 따로 챙겨 먹고 있는 건 없습니다만.”
“그래?”
괜히 기분 탓이라 생각한 윤청현은 처음에는 별생각이 없었다.
“길드장님. 래희양 가게에서 구매하고 남은 빵들은 제가 가져도 되겠습니까?”
“…자네가?”
언제부터 좋아했다고?
의문이 섞인 윤청현의 눈빛에 천해훈은 민망함에 눈을 피하며 말했다.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래희양의 빵을 먹으니 머리숱이 많아지고 있는 것 같아서요. 물론 탈모치료제 같은 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니, 달달한 음식 덕분에 머리가 잘 굴러가 스트레스도 줄고 일 효율이 높아졌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머리 좋은 천해훈 팀장이 탈모 앞에서 보여 주는 어리숙한 모습 때문에 윤청현은 의문이 들어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럴 리가?”
윤청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래희의 베이커리에서 구매해 온 빵이 들어 있는 상자로 다가갔다.
분홍색의 귀여운 포장을 뜯자, 윤기가 흐르며 맛있는 냄새가 풍기는 에그타르트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지금은 류정우의 조언에 따라 래희가 더는 S급 빵들을 판매하지 않았지만, 그들 앞에 있는 타르트는 판매 중단 전 쓸어 온 S급 에그타르트들이었다.
윤청현은 그의 앞에서 에그타르트를 향해 반짝이는 시선을 고정한 채 서 있는 천해훈의 얼굴을 한번 흘끗 바라본 뒤 타르트 하나를 들어 올려 한입 베어 물었다.
‘맛있군.’
20년 전 신선한 재료로 만들어졌던 빵들보다 훨씬 맛있기는 했지만 그것이 다였다. 맛있다는 것 외에는 천해훈의 탈모를 고치고 그가 찬양할 정도로 특별 효과가 느껴지지는 않았다.
멀쩡한 직업을 두고 위험한 외곽 지역에 빵집을 차린다고 했을 때는 잠시 의심했지만 래희의 빵을 몇 번 맛본 뒤로 그녀에 대한 의심을 접었다.
래희는 그저 정말로 빵집을 차리고 싶었던 것뿐이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천해훈의 저 부담스러울 정도로 반짝이는 눈빛은 수면 아래에 묻어 두었던 의심에 불을 지폈다.
윤청현은 유난히 오늘따라 풍성해 보이는 천해훈의 머리숱을 보며 에그타르트를 향해 간파 스킬을 사용했다.
[접근 불가능합니다.]
‘뭐지?’
접근 불가능하다니?
아이템이 아닌 아주 사소한 물건이라 하더라도 간파 스킬로는 그게 무엇이든 작은 거라도 관련 정보가 나타났다.
하지만 각성 이후 지난 20년 동안 한 번도 겪었던 없는 현상에 당황한 윤청현은 다시 한번 스킬을 사용하기 위해 시도했다.
[접근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문구만 윤청현의 앞에 떠올라 있었다.
윤청현이 에그타르트를 보다 표정이 굳자 뭔가 이상함을 느낀 천해훈이 상사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아무것도 아니네.”
찌푸려져 있던 미간을 겨우 펴며 윤청현이 천해훈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봤다.
그리고 윤청현의 입에서 나온 말은 천해훈의 기대를 산산이 무너트렸다.
“오늘부터 에그타르트는 압수네. 내 딸이 만들었다는 빵을 남들한테 미뤄서 처분할 게 아니라 내가 다 먹어야 하지 않겠나?”
그 말에 천해훈의 반짝이던 눈동자는 다른 의미로 물기 가득하게 반짝이기 시작했고 반듯하던 눈썹은 그 끝이 아래로 처지기 시작했다.
“네? 저는 괜찮습니다만……?”
“이만 퇴근하게.”
윤청현은 자신의 비서실장의 불쌍한 눈빛을 무시하며 그를 길드장실 밖으로 밀어내고는 문을 닫았다.
지잉―
그때 윤청현의 품속에서 휴대 전화의 진동이 한 번 울렸다.
남은 타르트 조각을 입에 마저 털어 넣은 윤청현은 재킷 안주머니에 있던 휴대 전화를 들어 올렸다.
[아들: 아버지, 말씀하셨던 제약 회사 사장을 길드 지하실로 데려왔습니다. 심문은 지금 할 겁니까?]
[윤청현: 그래.]
재언의 문자에 답장을 보낸 그는 전화번호부를 검색해 곧바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날세. 류정우 헌터. 지금 길드로 올 수 있겠나?”
* * *
얼마 지나지 않아 D급 헌터의 생존글은 다른 이슈로 인해서 금방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각성 이후에 매체에 얼굴을 비추지 않던 류정우가 각성 후 처음으로 방송에 출연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정규 방송이 아니라 뮤튜브 채널의 게이트 재난 생존법 강의에 잠시 얼굴을 비춘 것이긴 했지만, 그동안 신비주의를 고수하던 류정우가 궁금했던 대중들은 곧바로 그에게 시선을 돌렸다.
헌터넷 익명 게시판
[잡담] 해명글 빛삭된 거 음모론 같음.
물론 헌터라면 당연히 백수는 아니라 커뮤 지박령처럼 붙어 있는 사람이 없어서 그 30분 사이에 캡처한 사람이 없는 것도 웃기지만, 글이 올라온 뒤 30분 만에 삭제된 것도 이상함.
읽은 사람들이 모두 스탯 오른 게 ‘빵’ 때문이라는데 말이 됨?
- 그 글 사칭 계정이 쓴 바이럴 같음. 그렇지 않고서야 지금 이 상황을 납득할 수 없음.
└222.
- 근데 그 빵집 가면 류정우, 최재휘 볼 수 있는 거 사실임?
└그럴 리가 있겠냐. 류정우 목격담 한 번 이후로 또 봤다는 사람 못 봄.
간혹 수면 아래에서 일부러 청해 길드에서 시선을 돌린 거다, 바이럴이다, 하는 주장이 펼쳐지기는 했지만, 관심을 전혀 받지 못한 채 심해 아래로 떠밀려 갔다.
- 예전에 누가 에그타르트 먹고 포션 먹은 것 같다는 글 본 적 있는 것 같은데……? 김유한 헌터 관련 글이었는데 그 집 빵 아님……?
└응 바이럴~ 왜 자꾸 이런 허무맹랑한 글이 올라오는 거임?
래희의 능력이 들킬 만한 아슬아슬한 추측 댓글도 간혹 올라오기도 했다. 하지만 다행히 바이럴 취급당하며 무시받았다.
물론 모두의 입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다.
청해 길드 익명 게시판
[잡담] 비서실의 낙이 사라졌다…….
길드장님이 사 주신 ‘그것’들을 누리면서 호강했는데… 이젠 못 한다…….
심지어 이번 사건+실장님 머리숱 때문에 화가 나셨는지 금지어로 지정하심.
- 앞은 이해하는데 대체 뒤는 왜……?
└실장님이 ‘모’자라면 일을 못하잖아.
└아…….
└‘그것’의 매력에서 hair 나올 수 없어…….
- 이 글은 실장님의 분노로 5분 뒤에 삭제될 예정.
└ㅋㅋㅋㅋㅋㅋㅋㅋ
잠시 후.
[규칙 위반으로 삭제된 게시글입니다.]
* * *
“하…….”
래희는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곰순이 딸기빵 S]
- 맛 ★★★★★+★
- 향 ★★★★★+★
- 섭취 시 마력 스탯을 10씩 증가시켜 준다. (30분)
[곰순이 크림빵 S]
- 맛 ★★★★★+★
- 향 ★★★★★+★
- 섭취 시 체력이 50% 미만일 경우 3초 동안 근력을 10씩 증가시켜 준다.
“이게 도대체 몇 번 째 실패인 거지?”
퀘스트 수행을 위해 적당한 부가 효과를 가진 S급 빵을 얻기 위해 많은 시도를 하고 있었지만, 죄다 놀라울 정도로 좋은 부가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이러면 곤란한데.”
적당히 B급 포션 정도의 부가 효가만 나와 주면 좋겠는데 죄다 A급에 버금가거나 그 이상이잖아…….
다행히 퀘스트에 제한 시간이 걸려 있지는 않았지만, 이왕 가게를 운영하기로 한 거 성실하게 퀘스트에 임하고 있었다. 더해서 시스템이 자신에게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지도 알고 싶기도 했고.
[경험치 상승으로 ‘야미베어 베이커리’의 레벨이 상승합니다. (Lv.18→Lv.19)]
그러나 별다른 성과는 여전히 없었고 단지 가게의 레벨이 오르기만 했다.
딸랑―!
“어서 오세요! 야미베어 베이커리입니다!”
래희는 누군가 가게 안으로 들어오는 소리에 주방 밖으로 나와 손님을 반겼다.
‘와…….’
여태껏 마주쳤던 어떤 사람들과는 다른 묘한 느낌이 느껴지는 여자가 가게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어디서 많이 본듯한 익숙한 회색빛의 탁한 눈동자. 고양이 같은 눈매. 검은색 단발머리에 가죽 재킷과 가죽 바지. 무기가 드러나 있지는 않지만, 겉옷 사이로 보이는 홀스터 끈.
누가 봐도 헌터라는 게 티 나는 차림새의 여자는 고양이 같이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사뿐사뿐 걸으며 가게 안을 둘러봤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타이밍이 조금 늦은 감이 드는 인사가 들려왔다.
안타깝게도 10분 전 손님을 마지막으로 빵이 품절되었기 때문에 래희는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여자에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손님. 빵은 조금 전에 모두 품절이 되어서요.”
문을 일찍 닫을걸. 요즘 정신이 없다 보니 제대로 가게를 운영하지 않은 자신의 잘못이었다.
래희의 설명에도 여자는 아무 반응 없이 한쪽 입꼬리 끝만 살짝 끌어올린 채 미소 지었다. 대꾸 없이 아무것도 없는 가게 안을 두리번거리던 여자의 이상한 행동에 래희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그런 그녀를 본 여자가 그제야 붉은 입술을 열었다.
“…그래요?”
음……. 작은 침음을 흘린 여자가 얼마간의 침묵 이후에 다시 말했다.
“최재휘 헌터가 구매했다는 복숭아 타르트는 판매하지 않는 건가요?”
진열대 이름표에는 안 보이네…….
여자의 중얼거림에 래희가 대답했다.
“아… 복숭아가 워낙 구하기 어려워서 그때 이후로 판매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요 며칠 어디서 들었는지 채재휘가 사 갔다는 복숭아 타르트를 구하려는 사람이 많이 찾아왔지만, 부가 효과가 있는 S급 빵을 들킬 확률이 높은 각성자한테 팔 수는 없으니까.
물론 최재휘도 각성자였지만 그때는 예외였다.
“아, 그래요?”
여자는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한 표정으로 잠시 래희를 바라봤다. 그러고는 볼일을 다 봤다는 듯이 뒤돌고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뭐지?”
래희는 여자의 의뭉스러운 태도에 고개를 갸웃거리긴 했지만, 세상엔 다양한 손님이 존재했으므로 별로 개의치 않아 하며 다시 주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 문은 잠가야지.’
발걸음을 돌려 가게 문 쪽으로 가 ‘CLOSED’라고 적힌 안내 문구를 돌린 뒤, 문고리를 잡고 발끝을 올렸다.
철컥.
래희는 손을 뻗어 문 바로 위의 잠금장치를 잠근 뒤에 주방 쪽으로 들어갔다.
어두워진 밖과 달리 환한 주방 안에서 새로운 메뉴 개발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가게 앞에서 큰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쾅쾅쾅―!
‘이 밤중에……?’
원래라면 이런 식으로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없었겠지만, 주방 쪽에서 새어 나오는 밝은 빛에 사람이 있다고 판단한 건지 문이 닫힌 가게 앞에 누군가가 서 있었다.
“…누구세요?”
[성좌 ‘운명의 길잡이’가 이럴 때 대답이 없으면 보통 소설 속에서는 빌런이 등장할 타이밍이 아니었냐고 묻습니다.]
‘…에이, 그럴 리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