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 * *
오후 4시. 류정우가 골랐다는 에그타르트와 곰순이 식빵을 구하기 위해 멀리서부터 찾아온 손님들이 썰물처럼 다 빠져나갔다. 손님들이 쓸고 간 가게는 모든 상품이 완판된 채로 텅 비어 있었다.
래희는 영혼이 탈탈 털린 채, 지친 발걸음으로 가게 문 쪽으로 향했다.
“일단… 손님이 더 오기 전에 문부터 걸어 잠그자.”
어차피 더 판매할 빵의 재고는 남아 있지도 않았지만, 늦게 온 손님들에게 품절되었다고 말할 힘도 없었다.
‘팔지 못한 과일 타르트가 몇 개 남아 있는데… 그거라도 먹어야 하나?’
래희는 자신의 빵의 부가 효과인 체력 회복이 절실했다.
류정우의 조언대로 부가 효과가 있는 S급 빵은 판매하지 않고 만드는 대로 인벤토리 안으로 넣어 뒀기 때문에, 류정우나 윤재언에게 나눠 줘도 양이 많아 어차피 자신이 먹어서라도 처리해야 했다.
[복숭아 타르트 S]
- 맛 ★★★★★+★
- 향 ★★★★★+★
- 체력 스탯을 일시적으로 30씩 증가시켜 준다. (30분)
인벤토리를 열어 S급 복숭아 타르트를 꺼낸 래희는 타르트를 한입 베어 물며 문고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때였다.
딸랑딸랑―!
가게 문에 달려 있던 방울이 요란스럽게 울리는 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울렸다.
“큽!”
너무 놀라 잘못 삼킨 타르트 조각이 래희의 목을 찔러 왔다. 쿨럭거리며 카운터에 있는 물을 연신 들이켠 후 고여 있던 눈물을 닦자 그녀는 그제야 이 일의 원흉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저기… 괜찮으세요?”
부드러운 인상의 남자가 그녀의 앞에 서 있었다.
그는 급하게 문을 열고 들어온 자신 때문에 빵집 사장님이 사레에 걸린 거로 생각해 너무도 죄송스러웠다.
‘문을 벌컥 여는 게 아닌데… 매너 없게 너무 급했어.’
래희는 멍하니 남자를 올려다봤다.
‘오… 꽃사슴…….’
[성좌 ‘운명의 길잡이’가 당신의 말을 부정할 수 없어 힘없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이번에야말로 인정할 건 인정하겠다며 한숨을 쉽니다.]
‘아, 성좌님 취향이 저런 거였어요?’
연한 갈색 머리에 타고난 것인지 곱슬거리는 머리칼. 선한 눈매의 오묘한 빛의 갈색 눈동자.
류정우가 소속되었던 아이돌 피에타의 메인 보컬이자 그룹의 천사 최재휘였다.
‘최재휘도 B급으로 각성했다더니… 비전투계인가? 하지만 여전히 너무 여린데?’
래희는 커다란 덩치와 달리 자신의 앞에 서서 안절부절못하며 미안해하고 있는 최재휘와 정면으로 눈이 마주친 뒤에야 놀란 기색을 지우며 정신 차릴 수 있었다.
“괜찮습니다. 손님, 필요한 게 있으신가요?”
“아… 그게.”
래희의 말에 최재휘가 가게 내부를 한번 훑고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가게 내의 진열대가 모두 비어 있어, 설령 필요한 게 있다 하더라도 구할 수 없을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최재휘는 래희의 손에 들려 있는 남은 복숭아 타르트 조각으로 향하는 시선을 애써 피하며 입을 열었다.
“친한 동료한테 생일 선물로 줄 빵을 구하러 왔는데 안될 것 같네요…….”
원래라면 늦게 온 손님에게 내일 다시 찾아 주시라고 말할 래희였겠지만, 이번에는 그렇게 말할 수 없었다.
연예계 최정상에서 7년을 보냈음에도 여전히 여린 자신의 ‘차애’에게 냉정하게 말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안 그런 척하고 있지만 힐끗거리며 자신의 손에 들려 있는 타르트를 보고 있는데, 거기다 대고 뻔뻔하게 빵이 없다고 어떻게 말하겠는가.
‘생일 선물로 빵이라니. 며칠 뒤면 5월이니… 빵돌이였던 다른 멤버 선물인가?’
그런 거라면 일반인이라 S급 같은 빵의 등급은 상관없겠지. 일반인한테 부가 효과를 들킬 일은 절대 없으니까.
“종류는 상관없으신가요?”
희망적인 래희의 답변에 기회를 놓칠세라 최재휘가 고개를 빠르게 끄덕였다.
“네! 종류나 가격은 상관없어요.”
“음… 그러면 복숭아 타르트가 조금 남아 있는데 포장해 드릴게요. 몇 개 필요하세요?”
“몇 개 남았나요?”
래희는 복숭아 타르트를 시스템에 제품 등록을 한 뒤, 적당한 숫자를 대며 대답했다.
“여섯 개 정도요?”
그녀의 대답에 최재휘는 잠시 생각하는가 싶더니 모두 다 포장해 달라고 대답했다.
고급스러운 분홍색 상자 안에 정갈하게 놓인 복숭아 타르트는 누가 봐도 맛있어 보였다.
래희가 타르트를 포장하는 동안 가게 내부를 한번 둘러본 최재휘가 누가 들을세라 작은 목소리로 소곤거리며 래희에게 물었다.
“사장님?”
“네?”
목소리는 갑자기 왜 그렇게 낮추는 거지? 래희는 분주하게 놀리던 손을 멈추고 최재휘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혹시… 정우형, 아니 류정우 헌터가 여기서 빵을 사 간 게 사실인가요?”
외곽 지역의 빵집까지 최재휘가 온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최정상 아이돌에다가 지금은 B급 힐러.
돈이라고는 넘칠 정도로 많은 최재휘라면 원하는 선물 같은 거는 손쉽게 구할 수 있을 게 분명했다. 그런데도 래희의 베이커리까지 찾아온 건 올 만한 이유가 있어서였겠지.
‘류정우 성격에 그룹을 탈퇴하고 다른 멤버들을 따로 만나거나 하지는 않았을 것 같으니까.’
다른 멤버들의 성격이 나빴다기보다는 류정우가 수많은 회귀로 인해 지쳤기 때문일 거다.
래희는 다른 사람이었다면 대답을 해 주지 않았겠지만, 질문을 한 사람이 류정우와 같은 멤버로 활동했기에 특별히 그에게만 말해 주기로 했다.
“네, 그 질문은 손님한테만 대답해 드리는 건데 가끔 오세요.”
“그렇군요.”
래희가 건넨 종이 가방을 받아 든 최재휘가 그녀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감사합니다.”
결재를 마친 최재휘가 다시 한번 꾸벅 인사하며 가게 문고리를 잡았다. 처음 들어올 때와는 달리 조심스럽게 문을 열던 최재휘가 반쯤 문이 열렸을 때 아차, 하며 멈춰 섰다.
“아, 그리고.”
나가다 말고 멈춘 최재휘에 래희가 의문이 섞인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자 선하고 잘생긴 얼굴 위로 보기 드물 장난스러운 미소가 나타나 있었다.
“오랜만이었어요.”
짧게. 그러나 강하게. 한 방 먹은 듯한 표정으로 래희는 멍하니 최재휘가 사라진 문 앞을 응시했다.
[성좌 ‘운명의 길잡이’가 겉은 꽃사슴이지만 속은 여우 새끼라 불합격이라고 통보합니다.]
“…….”
그래. 외모만 천사였지 7년 넘게 연예계에서 살아남은 짬밥이 어디 갈 리가 없는데.
래희는 실소를 흘리며 문가로 향했다.
철컥.
‘이번에야말로 퇴근이다.’
최재휘의 기억에 제가 어떤 식으로 남아 있는지 상상도 못 한 래희는 재빠르게 가게를 정리하고 집으로 향했다.
* * *
또다시 찾아온 주말, 래희는 류정우에게 에그타르트를 배달하기 위해 가게로 나와 포장을 하기 시작했다.
[축하합니다! 에그타르트(S)의 판매 기록이 300개를 달성하였습니다!]
류정우가 사전에 미리 가게로 방문해 결제했기 때문에 래희가 포장을 완료해 인벤토리에 집어넣자마자 시스템 메시지가 나타났다.
[달성 보상으로 ‘야미베어 베이커리(Lv.9)’의 경험치가 증가합니다.]
[경험치 +300이 증가해 ‘야미베어 베이커리’의 레벨이 상승합니다. (Lv.9→Lv.10)]
빰빠밤 빰바바밤―!
평소와 달리 더 화려한 트럼펫 소리가 시스템 창 너머에서 요란스럽게 들려왔다.
[축하합니다! ‘야미베어 베이커리’의 레벨이 10을 달성하였습니다.]
[조건 충족으로 새로운 기능이 해금됩니다.]
[‘음료 판매’가 해금됩니다. 가게에서 음료를 판매할 수 있습니다.]
[레벨업 보상으로 아이템 ‘버그킬러(S)’가 주어집니다.]
[버그킬러(S)]
갑자기 버그킬러? 항상 청결한 가게 환경을 유지하라고 주는 건가? 래희는 인벤토리를 열어 에프킬라처럼 생긴 스프레이를 꺼내 들고는 눈썹을 꿈틀거리며 황당하다는 듯이 시스템 창이 떠 있는 허공을 노려봤다.
심지어 고작 버그킬러 따위에 S급 등급이 붙는다니.
래희가 의아해하는 그때, 카운터 뒤로 작은 조리대가 하나 생겨났다.
카운터와 세트 같은 디자인의 조리대 위로 블렌더와 커피 머신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가게 내부가 티가 크게 나지 않을 정도로 묘하게 넓어져 있었다. 10평의 작은 공간에 조리대까지 추가로 배치가 되었음에도 더 좁아진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살짝 보정한 느낌이었다.
“오… 지금도 바쁜데?”
류정우를 한 번이라도 스쳐 지나가며 만나기를 기대하는 사람 반, 우연히 래희의 빵을 맛본 후 잊을 수 없어 비싼 가격을 지불해서라도 빵을 구매하려는 사람 반.
래희의 가게는 새벽부터 오픈 런을 뛰는 사람들로 늘 붐비고 있었다.
디링―!
[퀘스트 ‘특별한 메뉴를 만들자’가 도착하였습니다.]
“특별한 메뉴?”
퀘스트 제목만으로는 내용을 정확하게 유추할 수 없었던 래희는 곧바로 퀘스트 창을 열어 내용을 확인했다.
[퀘스트: 특별한 메뉴를 만들자.]
S급 레시피를 마스터한 당신. 특별한 메뉴를 만들어 베이커리의 시그니처 메뉴로 성장시킵시다.
- 명성 1,000 획득 S급 메뉴 1개 만들기 (0/1)
- 완료 보상: 궁극의 음료 S급 레시피, 가게 경험치+500
명성 1,000이라니…….
‘문스타 좋아요 수 한 개에 명성 1인데 1,000을 달성하라고?’
물론 명성을 얻는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아직 문스타 좋아요 수 획득을 통해 명성을 얻는 방법밖에 몰랐다.
래희는 어이가 없어져서 멍하니 퀘스트 창을 응시했다. 야미베어 베이커리의 문스타는 유명세를 얻었어도 좋아요 수 300개를 넘기는 건 여전히 어려웠다.
“류정우나 윤재언은 SNS를 안 하니까… 김유한 아저씨한테 부탁해야 하나?”
물론 그 선택지를 고르게 되는 건 정말 방법이 없을 때가 되겠지만. 래희는 명성 같은 건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새로 생겨난 조리대로 다가갔다.
“커피는 그렇다 쳐도, 블렌더?”
생과일주스라도 만들어서 팔라는 건가? 래희는 분홍색의 투명한 블렌더의 병뚜껑을 톡톡 치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신기하게도 블렌더에는 어떠한 전기 콘센트가 없었다. 건전지가 들어 있나 싶어 블렌더를 들어 올려 요리조리 살펴보았지만 보이는 건 블렌딩 강도를 조절하는 버튼뿐, 건전지를 넣는 공간 같은 건 어딜 봐도 보이지 않았다.
래희가 블렌더의 뚜껑을 들어 올리자 눈앞에 아이템 설명 창이 나타났다.
[무엇이든 갈아 주는 블렌더]
- 재료만 넣는다면 특별한 음료를 만들 수 있습니다.
- 마력으로 움직입니다. (마력 충전 max 30)
굳이 마력으로 블랜딩을?
아까운 마력을 30씩이나 써 가면서 음료를 제조하는 것보다 전기를 사용하는 블렌더를 사용하는 게 훨씬 나았다.
그래도 특별한 음료를 만든다니까.
래희는 블렌더에서 바로 옆의 커피 머신으로 시선을 돌렸다.
[특별한 커피 머신]
- 특별한 커피를 내릴 수 있습니다.
퀘스트도 그렇고 앞에 있는 아이템들도 그렇고. 오늘따라 계속해서 ‘특별한’을 강조하고 있었다.
‘특별한’이라는 표현이 얼마나 애매한지 모르는 건가? 뭐, 나중에 사용해 보면 다 알겠지.
래희는 고개를 저으면서 가게를 나섰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버스가 안 오는 거지?’
도무지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며 발을 동동거리다가 버스를 기다린 지 1시간이 되었을 때, 결국 버스를 포기하고 지나가던 택시를 겨우 잡아탔다.
“기사님, 청해 길드로 가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