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헌터네 빵집은 언제 오픈하나요-22화 (22/120)

22화

“어……?”

래희는 손에 올려진 열쇠의 설명 창을 확인했다.

[차원의 열쇠 (S)]

- 주인 ‘권래희’를 찾은 열쇠이다. 차원의 문을 열 수 있다.

분명 이전에는 일부가 가려져 있어 명확하게 보이지 않았던 설명이 모두 개방되어 완전히 해석할 수 있게 되었다.

“차원의 열쇠……?”

래희가 소리 내어 아이템 설명을 읽자 옆에 서 있던 류정우가 흥미가 생겼는지 래희에게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와 물었다.

“이번에는 설명이 보이나요?”

“네… 아무래도 이 열쇠가 바로 앞에 일렁이는 이상한 문을 열 수 있나 본데요…….”

“흠…….”

래희의 대답에 류정우가 고민에 빠진 듯 인상을 찌푸린 채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열쇠가 그들 앞에 존재하는 문을 열 수 있다 해서 함부로 저 문 너머에 뭐가 있을지 모르는 곳을 개방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무작정 열 수도 없고.”

“그러게요…….”

어차피 이 공간은 래희의 스킬로 만들어진 ‘잊혀진 마을’의 공간이었다. 굳이 위험을 감수하고 눈앞에 이상하게 일렁이는 문을 열 필요 없이 집으로 이동해서 곧바로 가게로 가는 문을 열면 되었다.

래희는 뒤돌아 아까 전 열어봤던 마을 회관 입구 쪽 문으로 걸어갔다.

‘스킬을 들키는 게 차라리 나아. 이상한 공간으로 넘어가는 위험을 굳이 무릅쓸 필요는 없지.’

래희가 문손잡이에 손을 올리고는 손잡이를 당겼다.

덜컹.

“……?”

덜컹덜컹.

그러나 아까 전과 달리 마을 회관 문은 굳게 잠긴 채 어느 방향으로도 열리지 않았다. 혹시나 당겨야 하는 문을 밀었을까 생각한 래희가 두 번이나 방향을 바꿔 문을 열어 보려 시도했지만, 전혀 소용이 없었다.

래희가 하는 것을 조용히 지켜보던 류정우가 굳게 닫혀 있던 입을 열였다.

“여기가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저희가 알 수 없는 공간에 갇혔다는 사실만은 명확하군요.”

어느덧 마을 회관 밖을 비추던 창문들이 하나둘 어둠에 잠겨 밖이 보이지 않았다. 완전한 고립이었다.

“열쇠가 통하는 문은 이것 하나뿐. 결국 이 문을 열어 보라는 소리 같아 보이네요.”

덤덤하게 이어 말한 류정우가 허탈함에 주저앉아 있는 래희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그녀에게 열쇠를 받아서 문을 열려던 순간이었다.

“윽.”

래희의 손 위에 얌전히 올려진 황금빛 열쇠에 손을 대려던 순간 류정우의 손끝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류정우는 어쩔 수 없이 열쇠에서 손을 뗀 채 래희를 바라봤다.

저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한때 사랑했던 구오빠’ 류정우를 차마 외면할 수 없었던 래희는 직접 문을 열기로 결정했다.

래희가 문손잡이 위로 손을 올리는 순간 알 수 없는 감각이 그녀의 전신을 통과했다. 차가운 금속의 온도가 손끝에서부터 머리끝까지 타고 올라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문손잡이에 있는 열쇠 구멍으로 열쇠를 밀어 넣자 제 자리를 찾은 듯이 부드럽게 열쇠가 맞춰졌다.

철컥.

잠겨 있던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열린 문틈 사이로 향긋한 꽃내음이 새어 나왔다.

‘뭐지?’

그때, 류정우가 래희의 앞을 가로막았다. 래희는 얼떨결에 류정우의 뒤로 밀려나 그의 넓은 등을 마주했다.

끼익―

낡은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밝은 빛으로 가득 찬 공간이 환하게 그들 앞을 비추었다.

“…여기는.”

안으로 걸어 들어간 류정우를 따라 래희가 들어가자 열려 있던 문이 쾅, 하며 닫히는 소리가 등 뒤로 들려왔다.

놀란 래희가 곧바로 뒤돌아보자 문이 서서히 희미해져 가고 있었다.

[‘봄의 정원 (B)’ 필드에 2인이 입장하였습니다.]

[잠들어 있던 정원이 깨어납니다.]

그때, 래희의 옆에 있던 작은 관목이 빠른 속도로 자라나기 시작했다.

당황한 래희가 뒷걸음질 치다 류정우의 등에 부딪혔을 때쯤, 그들의 주변은 키가 높은 관목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이거, 아무래도 미로에 갇힌 것 같은데요?”

류정우의 차분한 목소리가 머리 위쪽에서 들려왔지만 래희는 정신을 제대로 차릴 수 없었다.

그때, 마침 수풀 사이 어둠 속에서 밝게 빛나는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한 번도 마주한 적 없던 공포가 래희의 전신을 휘감았다.

* * *

안전지대 외곽 지역.

얼마 전 출몰한 D급 몬스터 때문인지 오늘따라 유난히 더 사람이 지나다니지 않는 듯했다.

안경을 쓴 더벅머리의 남자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부서진 낡은 건물 하나를 발견했다.

“저기가 몬스터가 나타났던 장소인가 보네.”

그리고 그 옆으로 이제 막 수리가 끝났는지 외관이 아주 깨끗해 보이는 분홍색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귀여운 간판에 ‘야미베어 베이커리’라고 적혀 있는 걸 확인한 남자는 누군가에게 쫓기기라도 하는지 주변을 경계하며 두리번거리고는 가게 문을 살짝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남자가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 빵집 주위로 옅은 빛이 원구 모양을 만들어 건물을 감싸 올리더니 완전히 감쌀 때쯤 빛들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딸랑.

경쾌한 종소리와 함께 들어간 빵집은 어찌 된 일인지 열려 있는 문과 달리 적막감만 맴돌고 있었다.

10평도 되지 않아 보이는 작은 빵집 안을 둘러보다 계산대 위에 엎어져 있는 곰 인형을 발견하고는 성큼성큼 큰 발걸음으로 계산대로 향했다.

‘진짜 다이아인가?’

곰 인형의 목에 달린 분홍색 다이아를 한번 훑어본 남자는 삐뚤어진 리본을 한번 매만져 고쳐 주고는 계산대 한쪽 구석에 똑바로 세워서 앉혔다.

시간이 꽤 지난 것 같은데도 주방 쪽에서 사람이 움직이는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저기요, 아무도 안 계세요?”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사장님……?”

그제야 얼마 전까지 누군가 서 있었다는 흔적을 나타내듯, 계산대 위에 올려진 빵이 담긴 쟁반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계산을 하다가 사라진 것 같은데…….’

자신 말고 이곳을 노리는 다른 누군가가 있었던 건가?

십여 분 정도 가게 안을 더 둘러보던 남자는 오늘은 여기까지 하기로 하고 가게 밖으로 나왔다.

“…마석?”

가게 밖으로 나온 남자의 발치에 반짝이는 무언가가 걷어차였다.

허리를 굽혀 마석을 주워 든 남자는 뒤돌아 바로 앞에 위치한 빵집을 한번 보고는 갸웃거리며 바로 옆 무너진 건물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내가 잘못 판단한 건가?”

그때, 무너진 건물 사이로 먼지투성이의 잔해더미 속 반짝이는 돌이 몇 개 더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게이트 조사관이 어두운 새벽에 미처 회수해 가지 못한 마석들이었다.

“여기였었군.”

그제야 남자는 빵집을 둘러싼 반짝이는 장막을 거둬들인 후 잔해더미 속 흩뿌려진 마석들을 주워 들었다.

빠른 속도로 마석들을 인벤토리에 집어넣은 남자는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고 외곽 지역 골목을 벗어났다. 골목을 벗어나자마자 남자는 투박한 뿔테 안경을 벗어 던졌다.

뿔테 안경 속에 가려져 있던 남자의 차가운 눈동자가 드러났다. 그가 무언가를 중얼거리자 마법처럼 덥수룩한 더벅머리는 사라지고 세련되고 단정한 머리가 완성되었다.

외곽 지역을 벗어난 지 얼마나 지났을까, 한 여자가 빠른 걸음으로 남자에게 다가와 팔짱을 꼈다. 남들이 보기에는 다정한 연인이었다.

적당히 인파 사이로 섞여 들어가자 생글거리며 웃고 있던 여자가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어땠어요?”

주어 없는 물음이었지만 남자는 알아들었다는 듯 대답했다.

“별거 없던데.”

남자의 팔짱을 낀 여자의 이름은 천영은. 남자와 함께 ‘대업’을 이루기 위해 한 팀으로 일하기 시작한 것도 벌써 3년째였다.

공식적인 신분은 백화 길드 소속의 B급 헌터. 각성한 지 1년 정도로 얼마 되지 않았다는 설정으로, 아직은 현장직으로 파견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수룩한 헌터인 척하고 있는 것도 지겨워 죽겠는데, 정작 팀장이라는 인간은 3년이나 함께한 동료인 제게 제대로 전달하는 게 하나도 없어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오랜만에 ‘대업’을 위한 활동을 시작하나 싶었던 때에 이런 식으로 개인행동이라니.

얼굴 빼고는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하나도 없는 남자를 한번 째려본 영은은 다시 한번 물었다.

“얼마 전에 불안정한 마력의 흔적을 발견한 게 그곳이었다면서요.”

“그랬지.”

“그런데 별거 없었다구요? 말이 되는 소리를 하세요, 김주현 팀장님.”

김주현은 자리에 멈춰 서서 영은을 말없이 내려다봤다. 그런 주현의 모습에 영은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그를 올려다봤다.

눈빛만은 서로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었지만 능숙한 표정 관리 덕분인지 지나가는 사람들 눈에는 그저 연인이 길가에 서 있는 것처럼 보였을 뿐이었다.

“하.”

요즘 들어 계속해서 자기주장이 심해진 듯한 팀원을 바라보던 주현은 고개를 들어 건물 유리창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분명 베이커리에는 이상한 점이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흩뿌려진 마력의 흔적과 마석들은 무너져 있던 옆 건물에서 발견되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냥 넘어가기에는 무언가 찝찝한 구석이 있었다.

얼마 전 가게에서 만났던 래희의 황금빛 눈동자가 문득 떠올랐다. 오랜만에 만난 얼굴은 화가 잔뜩 담겨 있었지만 귀여운 모습은 예전 그대로였다.

“이 마석말인데.”

“마석?!”

남들이 볼세라 곁눈질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영은은 재빠르게 주현의 코트 소매 끝자락을 붙잡았다. 주현은 코트 소매 사이로 들어온 영은의 손 위로 인벤토리에서 꺼낸 마석 조각 하나를 건네주었다.

“이게 옆 건물 바닥에 흩뿌려져 있던데.”

주현의 코트 안쪽으로 얼굴을 숨긴 영은은 그 사이로 마석을 꺼내 들어 확인했다.

여전히 남들 눈에 비치는 그들의 모습은 길거리에서 애정 행각하는 연인 사이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이거, A급인데요?”

A급이라니. A급씩이나 되는 보스 몬스터를 잡아야 겨우 하나 나올까 말까 한 귀한 마석이 흩뿌려져 있었다고? 그것도 무너진 건물에?

“이거, 더 있어요?”

영은의 질문에 주현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베이커리가 아니라 옆에 있는 오래된 잡화점에서 발견했어.”

“그러면 그 잡화점이 문제였나 보네요. 마력 측정 위치는 아주 정확하게 나오는 건 아니니까.”

납득했다는 듯이 영은은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을 정리했다.

“그런데 얼굴은 왜 그렇게 꽁꽁 싸매고 찾아가셨데? 뭐, 빵집 사장님이 헤어진 전 여친이라도 되시나?”

주현은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지만 영은은 익숙하다는 듯이 자기가 할 말만을 이어 말했다.

“근데 팀장님은 어차피 안 유명해서 얼굴 그렇게 드러내고 다녀도 아무도 모르잖아요? 명색이 백화 길드 소속 A급 헌터에다 길드장 아들인데 숨기고 살고 있으니까요. 나 같으면 유명해져서 유명세를 즐기며 살 것 같은데.”

영은이 계속해서 옆에서 조잘거려 왔지만 집중해서 듣는 말 하나도 없이 주현은 모든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생각했다.

‘권래희가 그런 위험한 곳에 빵집을 차리다니. 그걸 윤재언과 청해 길드 길드장이 가만히 지켜만 봤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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