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 * *
래희는 새벽에 먹었던 스콘을 확인했다.
[플레인 스콘 S]
- 맛 ★★★★★+★
- 향 ★★★★★+★
- 힘 스탯을 10분 동안 +30씩 증가시킨다.
바쁘게 출근하느라 미처 확인하지 못한 스콘의 등급이 무려 S급이 떠 있었다. 단순히 마법봉으로 후르츠터틀의 등껍질을 내리치기만 했는데도 깨져 버린 건 스콘을 먹어서 힘 스탯이 30씩이나 증가했기 때문일 게 분명했다.
‘분명 그동안 A급만 만들어졌었는데 뭐가 달라진 거지?’
심지어 부가 효과는 일시적이지만 스탯을 올려 주는 효과가 있었다.
S급 제작 아이템도 최대로 스탯 10 상승이 전부인 걸로 알고 있었는데 완전히 사기 효과였다.
래희는 가게 안을 정리하면서 스콘을 모두 인벤토리에 쑤셔 넣었다.
오전에 각성자 관리청에 방문하여 C급 헌터로 곧장 등록한 래희는 재발급받은 각성자 카드를 품에 넣고는 건물 밖으로 걸어 나왔다.
안타깝게도 원인을 알 수 없는 사고라 게이트 관리국에서는 보상받기 어렵다는 설명을 들었다. 이건 자기들도 예측하기 어려운 사고라 이거지. 예상한 결과여서 별로 놀랍지도 않았다.
벌써 두 번이나 국가로부터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한 래희는 자신의 세금이 도대체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 걸까 고민을 하며 청해 길드로 향했다.
가게가 엉망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청현 아저씨가 이번에는 무시하지 말고 꼭 길드로 들르라는 연락을 남겼기 때문이었다.
청현 아저씨는 래희의 스킬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에, 어릴 때 함께 살았던 집에 그녀의 방이 그대로 남아 있으니 당분간 그곳에서 머물라 하셨다. 하지만 래희는 그 제안을 거절했다.
그때, 래희가 청해 길드 로비로 들어섰을 때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바로 오전에 만났던 베이커리의 손님이었다.
“어! 사장님? 청해 길드 소속이셨어요?”
“아… 아뇨.”
반갑게 그녀를 맞이한 남자는 제작 길드로 알려진 주온 길드의 B급 제작계 헌터 최원우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청해 길드에는 계약 관련으로 파견을 왔다나.
한참 최원우의 이야기를 들어주던 그때, 길드장 직속 비서실의 직원이 내려와 길드장인 청현 아저씨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전해 왔다.
오랜만에 만난 청현 아저씨와 안부 인사를 나눈 지 일주일 뒤, 청해 길드에서 파견한 건축팀 덕분에 래희는 가게로 예정보다 일찍 돌아갈 수 있었다.
다만 손님이 많았던 한 주는 한여름 밤의 꿈처럼 래희 가게 앞에는 또다시 손님 한 명 보이지 않았다.
“하…….”
안전지대 외곽 지역이 위험하다는 것을 몸소 보여 준 이후, 나름 등급이 높다 하는 전투계 헌터들을 제외하고서 찾아오는 손님이 없는 듯했다.
‘…또다시 지루한 기다림의 시작인 건가?’
대박 나나 싶었던 가게가 또다시 한적해지자 바빴던 때를 그리워하며 래희의 기분이 울적해졌다.
그때, 요즘 보이지 않던 류정우가 모처럼 래희네 빵집에 방문했다.
“오랜만이에요.”
류정우는 아주 자연스럽게 가게 안으로 걸어 들어와서는 쟁반과 집게를 집어 올렸다. 그러곤 전에는 보지 못한 에그타르트 앞에 멈춰 섰다.
“…S급?”
들리지 않아야 할 소리가 들려오자 래희는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번쩍 들어 올렸다.
류정우가 에그타르트 위 허공을 멍하니 응시하고 있었다.
“…류정우 씨, 혹시 설명 창이 보이는 거예요?”
래희가 당황스러움을 숨기지 못한 듯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 오자 류정우가 래희를 바라봤다.
류정우도 무언가에 충격을 받은 듯한 떨리는 눈동자를 감추지 못한 채였다.
류정우가 입을 열려던 그때, 그는 하려던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가게 안으로 한 무리의 손님이 소란스럽게 떠들며 들어오고 있었다.
“거봐! 여기가 맞잖아. 저기 있네 스콘!”
“얼마 전에 몬스터가 나왔… 헙?!”
손님들은 가게 한가운데에 서 있는 류정우를 발견하고는 놀란 듯이 그를 올려다보았다. 평소라면 류정우의 실물을 봤다고 좋아했겠지만, 방해를 받았다는 듯이 류정우는 표정 관리를 하지 않은 채 그들을 무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그들이 잘못 보았다는 듯이 싱긋 웃으며, 류정우가 순식간에 표정을 바꿔 막 들어온 손님들에게 눈인사했다.
그런데도 손님들은 류정우의 눈치를 보는지 재빠르게 소문 속의 주인공인 스콘을 사고는 바람처럼 사라졌다.
‘또 루머글 올라오겠네…….’
래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지금 이 시대의 아이콘 류정우를 지켜봤다.
손님들이 사라지고 나서야 류정우가 아까 하려던 말을 이어서 하려는지, 쟁반 위에 빵을 담아 카운터로 다가와서는 진지한 눈으로 그녀를 내려다봤다.
‘뭐 또. 또 뭐가 문제인 건데?’
래희가 눈썹을 꿈틀거리며 그를 올려다보자 류정우가 작게 한숨을 쉬더니 피곤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난번에 던전에 같이 휩쓸렸을 때는 이런 말씀 없으셨는데요?”
래희가 무슨 소리냐는 듯이 어깨를 으쓱거리자 류정우가 에그타르트를 눈짓하며 말했다.
“S급. 거기다 체력 회복이라니.”
“그게 보여요?”
그럼 눈에 떡하니 보이는데 안 보인다는 게 말이 되냐는 표정으로 류정우가 래희를 응시했다.
“남들 눈에는 안 보인단 말이에요.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몰라요.”
그 말에 류정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누가 들을세라 작은 목소리로 래희에게 말했다.
“위험한 능력이에요. 저만 보이는 거라고 어떻게 단정하나요. 누군가 알게 되면 래희 씨는 꼼짝없이 이용당하지 않을까요?”
뒷배에 청해 길드가 있다 해도 고등급 전투계 헌터가 아니니까요.
래희는 반박할 말이 없다는 듯이 류정우의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알아요…….”
그래서 나름 생각하면서 빵을 판매하는 중인데 류정우 씨가 이렇게 알아챌 줄은 꿈에도 몰랐네요.
“그렇다고 저한테 무슨 다른 방법이 있겠어요……?”
래희가 한탄하듯 말하자 류정우는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했다. 그리고 이내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씩 웃으며 그녀를 바라봤다. 곱게 접힌 눈 사이로 푸른빛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X발. 더럽게 잘생겼네.’
“이렇게 된 거, 제가 제안 하나 해도 될까요? 이를테면 계약이라던지… 처분이 곤란한 S급 빵 독점 판매 정도는 괜찮지 않아요?”
“…이 맥락 없는 제안은 뭐죠?”
갑자기? 기다렸다는 듯이 류정우가 계약을 제안해 오자 래희는 찝찝한 기분에 곧바로 답하지 않았다.
마치 이때를 기다린 사람처럼 빈틈을 보였을 때 곧바로 계략에 빠진 기분이랄까? 마치 낚싯줄에 미끼가 눈앞에 왔다 갔다 하는 기분이었다.
그때였다. 그동안 래희의 손가락에 얌전히 끼워져 있던 반지가 반짝이기 시작했다.
‘아니, 얘는 또 왜 이래?’
래희의 반지가 몇 번 깜빡이더니 순간 환한 빛을 내뿜으며 베이커리 안을 빛으로 꽉 채웠다.
잠시 후 가게 안은 적막이 맴돌았다.
빛이 사라진 자리에는 류정우가 계산대 위에 올려 둔 빵만 있을 뿐 아무도 없었다.
* * *
“여긴 어디죠……?”
류정우가 그녀에게 답을 바라지는 않은 듯 주변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저번이랑 비슷한 상황에 잠시 어리둥절하게 서 있던 래희는 빛이 사그라들자마자 들려오는 류정우의 말에 곧바로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폈다.
“…건물?”
이번에 그들이 서 있던 곳은 던전이 아닌 한 건물 안이었다. 비록 가구를 비롯해 아무것도 놓여 있지 않은 빈 건물이었지만 곧바로 던전에 떨어지지 않은 게 어디냐 싶었던 래희는 남몰래 안심할 수 있었다.
“여기에 알 수 없는 글자가 적혀 있네요.”
류정우의 말에 래희가 그의 곁으로 다가가자 지구에는 사용하지 않는 문자로 적힌 명패가 벽에 걸려 있었다.
“마을 회관.”
알 수 없는 문자를 거침없이 읽어 내리자 류정우는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래, 분명 저번에 지금은 반지가 된 열쇠를 보고서도 저런 비슷한 언어를 쓴 기억이 떠올랐다.
“래희 씨, 정체가 뭐죠?”
“정체라뇨?”
하지만 류정우는 진지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저번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처음 들어보는 언어를 읽고 말하는군요.”
“아…….”
래희는 그제야 자신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류정우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주변에 있던 어른들은 래희가 게이트에서 실종된 이후 5년 만에 귀환한 사실을 다들 알고 있었지만, 최연소 귀환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일반인들에게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성인이었던 귀환자들과 달리 자기 결정권이 없는 어린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윤청현 길드장이 그녀의 신변과 관련 사건을 비밀로 덮어 버렸다.
‘어차피, 수십 번은 회귀하는 사람 앞에서 귀환자는 별거 아니겠지.’
“귀환자라고 아시나요?”
그제야 류정우의 눈이 놀란 듯이 커진 채 그녀를 응시하기 시작했다.
“네. 요즘에는 몰라도 불과 몇 년 전까지는 귀환자에 대해서 방송에서 분석하고 그랬던 기억이 나긴 하는군요.”
“제가 그 귀환자예요.”
“네?”
그럴 리가. 공식적으로 발표된 귀환자는 모두 성인이었다. 회귀 후 얼마 전 되찾은 지금 회차의 과거 기억에는 그의 앞에 서 있는 권래희는 어린 학생 시절부터 그를 쫓아다니는 팬이었다.
“이건 비밀이긴 한데 이제 와서 알려진다고 크게 놀랄 일은 아니니 말씀드리는 건데요. 꽤 오랫동안 실종되었고 초등학생 정도의 나이에 돌아왔어요. 그래서 그곳에서 배운 언어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네요.”
완전히는 아니지만요.
래희는 별것 아니라는 어투로 그에게 설명했다. 누군가에게 입 밖으로 게이트에서 실종되었던 사실에 대해 말하기는 처음이었다.
실종 당시 부모님을 잃었기 때문에 그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그때의 일을 두 번 이상 언급하지 않았고 래희도 굳이 나서서 말하고 다니지 않았다.
말하는 날이 오게 된다면 감정을 주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예상과 달리 아무렇지도 않았다.
전생의 나이까지 합하면 그런 거에 연연해하지 않을 세월을 살아와서 그런 건가?
래희의 설명을 들은 류정우는 그제야 모든 게 이해가 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왜 갑자기 마을 회관이라는 거지?’
그때, 래희의 시야에 마을 회관의 입구로 보이는 문이 들어왔다. 래희가 문을 열자 눈앞에 보이는 광경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여기는…….”
여기는 바로 마을 광장인데? 래희는 순간적으로 놀라 문을 소리가 나도록 쾅 닫아 버렸다.
‘류정우가 본 건 아니겠지?’
집과 같은 공간을 생성하는 스킬에 대해서는 재언을 제외하고선 알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재언도 래희가 만든 ‘잊혀진 마을’ 공간에 들어와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어이없게 류정우와 함께 오게 된다고?
래희는 흘끗 뒤돌아 류정우가 서 있을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다행히도 류정우는 자신의 눈앞에 보이는 오묘한 빛을 반사하고 있는 이상한 문에 시선이 팔려 래희를 보고 있지 않았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래희가 류정우의 옆으로 차분하게 걸어갔다. 그녀가 곁에 나란히 서자 류정우는 그녀를 힐끔 보고선 입을 열었다.
“이게 어떤 문인지 알 것 같나요? 문이 이상하게 일렁이고 있군요.”
마치 마력이 소용돌이치고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어요.
류정우의 말대로 일렁이는 문을 보자 래희는 무의식적으로 문을 향해서 손을 뻗었다.
그때, 래희의 손가락에 걸려 있던 이 모든 일의 원흉인 반지가 점차 빛을 내며 모양을 바꾸기 시작했다.
반짝이는 빛 사이로 반지의 모양 변형이 완료되었을 때는, 처음 발견했던 모습 그대로 열쇠로 변한 채 래희의 손 위에 얌전히 올려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