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헌터네 빵집은 언제 오픈하나요-20화 (20/120)

20화

* * *

“우리 헤어지자.”

“…이렇게 갑자기?”

그것도 크리스마스이브에?

래희는 자신의 남자친구의 크리스마스 선물로 준비한 것을 등 뒤로 숨기며 물었다.

“…왜? …이유가 뭔데?”

쏟아져 나올듯한 눈물을 애써 참아 가며 떨리는 목소리로 묻자 남자친구의 목소리엔 짜증이 한가득 담겨 있었다.

그는 손으로 흘러내린 앞머리를 쓸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수준 안 맞아서. 얼굴이 이뻐서 만나기 시작했는데 수준이 안 맞아도 너무 안 맞잖아.”

뭘 해도 돈 때문에 벌벌 떨어 대는데 뭐라도 제대로 마음 편히 할 수가 없으니까 말이지.

“그냥 서로 수준 안 맞는 거 질질 끄는 것보단 여기서 이만 정리하자.”

래희는 떨리는 목소리를 차마 숨길 수 없어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서서 남자친구를 올려다보고 있자 그는 한숨을 내쉬더니 냉정하게 돌아섰다.

이별을 고하고 멀어져 가는 남자친구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수많은 인파 속으로 그가 사라지자, 그제야 래희는 다리의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그녀가 손에 이쁘게 포장된 작은 종이 가방을 든 채로 쪼그려 앉아 울고 있자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녀를 흘끗대며 쳐다보았다.

하지만 래희는 아랑곳 않고 더 큰 소리로 울며 주저앉아 있었다.

20살의 첫 크리스마스이브. 래희는 그렇게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첫사랑에게 차였다.

* * *

“…X발.”

내가 이걸 아직도 안 버리고 있었던가?

래희는 손에 쥔 남성용 명품 지갑을 들어 올렸다.

쪽팔리는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그건 당장 버려도 모자랄 판에 방구석에 처박혀 있었다니. 그 뜻은 지난 4년 동안 이 물건이 자신과 함께 있었다는 것 아닌가.

래희는 상자째로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예전에는 저것도 비싸서 벌벌 떨었지만, 이제는 아니지.’

대학 시절 청현 아저씨에게서 용돈을 받았지만, 식비와 생활비를 제외하고는 저런 고가의 선물은 염치없이 용돈으로 구매해선 안 된다는 생각에 알바를 뛰어 돈을 모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직장 생활을 하고 돈도 나름 잘 버는 지금은 몰라도 갓 20살의 어린 대학생이었던 그녀에겐 당시에는 부담스러운 가격이었다.

[성좌 ‘운명의 길잡이’가 저따위 물건보다 더 좋은 것들을 자신이 줄 수 있다고 자신합니다.]

“…갑자기 왜 기억이 떠오르는 건지.”

거지 같은 기억, 더 떠올려서 좋을 건 없었다.

래희는 자리에서 일어나 출근 준비를 했다. 요즘 부쩍 스콘을 찾는 손님들이 늘어나 새벽부터 미리미리 준비해 둬야 했다.

1인 2개 제한으로 판매되고 있음에도 여전히 인기가 식을 줄 몰랐다.

“퀘스트를 받은 지 벌써 5일이나 지났는데…….”

아직 퀘스트의 ‘퀘’자도 시작 못 했다.

래희는 퀘스트에 대한 걱정을 안은 채로 방금 막 완성된 스콘을 하나 입에 물고 나머지 스콘을 품에 안은 채로 가게로 출근했다. 가게에 도착하자마자 아직 미처 해도 뜨지 않은 밖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쾅!

“……?! 뭐지?”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확인하기 위해 래희가 가게 문을 열고서 고개를 빼꼼 내밀자 옆 건물이 일부가 무너져 있었다. 까딱 잘못했다간 래희네 건물도 타격 입을 뻔할 정도로 아슬아슬한 위치였다.

래희의 다리 옆에 뒤뚱거리며 서 있던 곰순이도 래희를 따라 가게 문밖을 살펴봤다.

“뀨! 뀨우뀩? (래희야! 저기에 뭐가 있는 것 같은데?)”

곰순이의 손끝을 따라 시선을 돌리자 먼지가 휘날리는 어둠 속에서 무언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래희는 잔뜩 긴장한 채 한 손에 마법봉을 든 채로 천천히 다가갔다.

‘확인만, 확인만 하고 곧바로 신고하는 거야.’

원래라면 고민 없이 신고했을 래희지만 몇 번 게이트에 휘말리더니 간이 커진 것만 같았다.

래희는 따라오는 곰순이를 품에 안아 들고는 천천히 무너진 건물로 향했다. 마법봉을 쥔 손에서 땀이 차는 것만 같았다.

‘이야……. 다 부서졌네?’

다행히 외곽 지역이라 비어 있는 집이었다. 낡고 오래된 잡화점이긴 했지만 지난 두 달 동안 오픈한 걸 한 번도 목격한 적 없기에 래희는 당연히 인명 피해는 없을 거라 판단했다.

그때, 흙먼지 속에서 꿈틀거리던 그림자가 래희 쪽으로 뒤돌아서는 느낌이 들었다. 새벽이라 어둠이 빠르게 가시고 밝아지기 시작한 하늘에 서서히 드러난 그림자의 윤곽은 다름 아닌 몬스터였다.

“…뭐야?”

거북이? 하지만 거북이긴 거북인데 등껍질이 뭔가 이상했다.

“왜 거북이 등껍질이 화분이지?”

거대한 거북이의 등껍질 위로 식물이 자라나 있었다. 식물에는 붉고 동그란 과일이 맺혀 있었다.

‘…딸기?’

래희의 눈앞에 있는 거북이는 바로 D급 몬스터 후르츠터틀이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살펴봤지만, 거북이가 나올 만한 게이트는 보이지 않았다. 근처의 하양 곰순이 던전은 겨울 산악 지형이라 따뜻한 지역에서 거주하는 후르츠터틀이 빠져나올 만한 게이트가 아니었다.

그때, 부서진 건물 잔해 사이로 무언가를 열심히 씹어 먹고 있던 후르츠터틀과 눈이 마주쳤다.

“꾸엑?”

‘뭘 먹고 있는 거지?’

바닥에 반짝이는 무언가가 잔뜩 흐트러진 채로 쌓여 있었다. 후르츠터틀 발치에 늘어져 있는 반짝이는 잔해는 누가 봐도 마석이었다.

“…마석?”

마석이라니. 보스급 몬스터를 처치했을 때나 얻을 수 있는 마석이 왜 외곽 지역의 사람 없는 잡화점에 쌓여 있단 말인가?

그때였다.

“꾸에에엑!”

자신을 계속해서 쳐다보고 있는 래희가 거슬렸던지 후르츠터틀이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

‘아… X됐다.’

래희는 재빠르게 게이트 긴급 신고 센터 번호를 휴대전화 위로 누른 뒤 전화 연결을 시도했다.

‘일단 몸부터 숨기자.’

우선 후르츠터틀의 시야에서 벗어나는 게 먼저겠지. 래희가 급하게 가게 안으로 자리를 옮기자 그제야 휴대전화 너머로 누군가가 전화를 받았다.

“서울 안전 구역 11-3 하양 곰순이 던전 앞에 D급 후르츠터틀이 나타났어요!”

콰광―!

래희가 헐떡거리며 급하게 말하자마자 가게의 1층 창문이 부서졌다.

“꺄악!”

급하게 전화를 끊은 래희는 카운터 뒤로 몸을 숨겼다.

‘진작에 신고부터 할 걸. 내가 뭘 할 수 있다고 여유롭게 구경이나 하고 있었을까?’

우선 몸이라고 피하기 위해 스킬을 이용해 집으로 이동할까 싶었지만, 엉망이 되어 가고 있는 가게 꼴을 보니 미처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꾸에엑!”

그러다 우연히 널브러진 래희의 빵을 킁킁거리다 맛본 후르츠터틀이, 빵이 마음에 들기 시작했는지 가게 내부에서 더 난동을 피우지 않고 정신없이 허겁지겁 빵을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마치 조금 전, 잡화점의 마석을 주워 먹고 있던 모습과 비슷했다.

조용해진 주변에 래희가 슬쩍 카운터 위로 고개를 올리자 부서진 진열대 위로 고개를 박은 채 빵을 먹고 있는 후르츠터틀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제 어쩌지……?’

빵을 건네주는 대상이 래희가 아니었던지라 후르츠터틀로부터는 호감도가 상승했다는 메시지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때였다.

“야, 곰순아! 너 지금 뭐 해?!”

얌전히 자신의 곁에 있을 줄 알았던 곰순이가 후르츠터틀 위로 기어 올라가고 있었다.

래희는 곰순이의 기행에 경악을 금치 못한 채 차마 말리지는 못하고 조용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주섬주섬 후르츠터틀 등 위에서 무언갈 열심히 하더니 제 할 일을 마쳤다는 듯이 곰순이는 의기양양한 발걸음으로 등 위에서 내려와 래희에게 걸어왔다.

래희는 얼떨결에 곰순이가 건네주는 무언가를 받아 올렸다.

“…딸기?”

곰순이가 래희에게 건네준 건 다름 아닌, 후르츠터들등에서 자라고 있던 딸기였다.

[딸기]

- 봄/여름 계절 작물 (3월~8월)

- 성장 기간: 씨앗 7일 / 열매 3일

- 나무 / 한 번 심은 후 지속적인 수확 가능

띠링―!

[퀘스트 일부를 진행하였습니다!]

- 봄 작물 3종 구하기(1/3): 딸기, (미확인), (미확인)

(봄을 대표하는 작물을 구해 밭에 심어 봅시다. 던전에서 구한 작물만이… 더 보기)

“…이걸 심으면 되는 거였어?”

래희는 얼떨결에 진행된 퀘스트에 당황한 채로 멍하니 퀘스트 창이 떠오른 허공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 탓인지 벌써 널브러진 가게 안의 빵들을 다 먹어 치운 후르츠터틀이 래희에게 다가오고 있다는 것도 알아채지 못했다.

“킁킁.”

뜨거운 바람이 래희의 발치에서 느껴지자 그녀는 곧바로 그녀의 발아래를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녀가 발견한 건 침을 질질 흘리며 콧바람을 불어오는 후르츠터틀이었다.

래희는 너무 놀라 저도 모르게 후르츠터틀을 힘껏 내려쳤다.

물론 평소라면 꿈쩍도 하지 않을 후르츠터틀이었겠지만, 이번에는 이상하게도 달랐다.

쩌억.

평소와 다른 느낌에 래희가 꼭 감았던 눈을 뜨자 눈앞에 후르츠터틀이 꼼짝도 않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후르츠터틀의 등껍질에 금이 가기 시작하더니 금세 갈라져 버렸다.

“으악!”

래희는 못 볼 꼴을 봤다는 생각에 놀라 고개를 돌리자 그녀의 눈에 들어온 건 방금 막 가게로 오픈런을 도착한 손님과 눈이 마주쳤다.

“아…….”

[D급 몬스터 후르츠터틀을 처치했습니다.]

[업적! ‘맨손으로 첫 몬스터 처치!’가 생성됩니다.]

[업적 보상으로 경영 지원금 100G가 지급됩니다.]

파직.

어디선가 래희의 평화로운 일상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 * *

“그나저나 아무리 외곽 지역이라지만 게이트가 열린 흔적이 보이지도 않는다니. 이상한 일이네요.”

그동안 있었던 일에 대해 래희의 증언을 듣던 게이트 조사관이 어딘가 찝찝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자 래희의 빵집 손님이었던 남자가 끼어들었다.

“저도 봤습니다.”

“아, 목격자님. 저분, 빵집 사장님이 하시는 말이 다 맞나요?”

“네, 처음부터 본 건 아니지만 후르츠터틀을 때려잡으시는 모습은 목격했네요.”

“알겠습니다.”

파일을 몇 번 뒤적거리던 게이트 조사관은 래희를 한번 힐끔 보고는 입을 열었다.

“권래희 씨? E급 헌터로 등록이 되어 있던데 언제 C급이 되셨나요?”

아……. 깜빡하고 각성자 등록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작년 12월 게이트에 휘말리고 나서요. 죄송합니다. 워낙 정신이 없어서 재등록을 잊고 있었네요.”

“아직 3개월이 지나지 않았으니 벌금은 없을 겁니다. 이번 달 안으로 빠르게 신고하셔야 합니다.”

다행히 조사관은 별일 아니라는 듯 그녀에게 유한 목소리로 설명을 했다. 그러곤 부서진 가게를 둘러보더니 보상금에 관해 설명하고 곧바로 뒤돌아섰다.

“아이고, 완전 박살이 났네… 그리고 이건 뭐야?”

뒤돌아 상황을 정리하던 조사관이 후르츠터틀의 사진을 찍다가 허리를 굽혀 무언가를 들어 올렸다.

그건 바로 조금 전 곰순이가 수확한 딸기의 줄기였다.

그 줄기를 발견한 살짝 경직된 곰순이의 몸이 래희의 손끝에서 느껴졌다.

“식물? 그런데 왜 이렇게 쥐어뜯겨 있어? 후르츠터틀 등에 있던 것 같은데……. 죽어서 이 꼴이 난 건가?”

그때 조사관이 래희를 흘끗 쳐다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마치 연약한 동물을 때려잡은 괴인을 바라보는 듯한 시선이 얼굴 위로 스쳐 지나갔다.

“뭐, 후르츠터틀은 워낙 알려진 게 없는 몬스터니 잘 모르겠네. 일단 수거하자.”

조사관은 래희에게 추가로 던전이 열릴 것 같은 기미가 보인다면 다시 신고해 달라고 부탁한 뒤, 후르츠터틀 사체와 마석들을 수거하고 돌아갔다.

래희는 모든 상황이 정리된 후 망연자실하게 부서진 가게를 올려다봤다.

‘이거… 또 보상 안 해 줄 게 뻔한데?’

그녀는 한숨을 쉬며 부서진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일단 당분간은 가게를 운영할 수 없을 것 같으니 우선 뒷정리부터 하고 공지를 붙여 둘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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