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헌터네 빵집은 언제 오픈하나요-19화 (19/120)

19화

* * *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다음 날 아침, 래희는 가게 앞을 확인한 뒤 경악을 금치 못했다.

‘왜? 갑자기 무슨 일이람?’

오전 7시 30분. 가게 오픈까지 남은 시간 30분. 래희네 빵집 앞에는 일렬로 길게 줄이 늘어서 있었다.

분명 개업하고 두 달 동안 다섯 손가락 안에 손꼽히는 적은 수의 손님들을 제외하고선 개미 한 마리조차 가게 근처에 얼씬거리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손님이 없다고 징징거리지 않았던가? 깜짝 방문으로 빵들을 휩쓸고 간 몇몇 손님을 제외하고선 그 뒤로는 손님 그림자 하나 구경할 수 없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이렇게 손님이 늘어났다고?’

물론 손님이 많아진 건 분명 좋은 일이었다. 드디어 외곽 지역 빵집에 찾아오는 사람이 생기기 시작했다니. 하지만 기쁨도 잠시, 손님이 많아졌다고 마냥 기뻐하기에는 문제가 하나 있었다.

그 문제는 바로…….

“사장님, 이곳에 김유한 헌터가 추천한 스콘을 판매한다고 들었는데 맞나요?”

“그게… 스콘을 판매 중이긴… 한데요……?”

그런데, 갑자기 김유한 백화 길드 길드장님 추천이라뇨?

“아! 제가 맞게 찾아왔네요! 다행이다. 아! 저기 있는 게 그 스콘이죠? 사진이랑 똑같이 생겼네!”

“저기요! 당신이 그렇게 많이 집어 가면 뒷사람은 못 사잖아요! 배려란 것도 없어요?!”

“제가 왜 뒷사람을 배려해요? 늦게 온 사람 잘못이지.”

“야! 지금 너 뭐라고 했어?!”

많은 손님을 받아 본 적 없던 래희의 가게 안은 말 그대로 난장판이었다.

“사장님, 스콘 더 남아 있나요?”

스콘이 진열되어 있는 곳에만 손님들이 몰리자 래희는 난감한 미소를 지었다.

‘아니, 왜 스콘만 잘 팔리는 거야?’

스콘의 가격이 다른 것보다 훨씬 더 싸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 물론, 다른 빵들의 가격이 워낙 비싸니 원하는 제품만 딱 구매하고자 하는 것도 이해가 갔다.

그렇다고 해도 다른 빵을 구매하는 사람이 한 명도 보이지 않다니…….

래희는 가게를 오픈한 지 30분도 안 되어 품절된 스콘의 진열대를 멍하니 바라봤다.

‘저것도 많이 만든 거였는데…….’

겨우 스콘을 구한 사람들은 웃으면서 가게 밖을 나섰고 대기 줄에 서 있던 사람들은 괜한 아쉬움에 가게 밖으로 발을 떼지 못한 채 남아 있는 빵들을 한번 둘러본 뒤 떠났다.

래희는 순식간에 조용해진 가게 내부를 둘러보며 혼이 나간 표정으로 카운터에 기대어 앉았다.

“아니, 스콘만 사 가지 말고 다른 것도 사 가지…….”

어쨌든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손님들이 매출을 올려 준 덕분에 경험치가 쌓여 가게 레벨이 벌써 7까지 상승했다.

이전처럼 등록 가능한 빵의 슬롯이 증가하는 새로운 혜택이 주어졌으니 어쨌든 좋은 게 좋은 거겠지…….

래희는 스콘이 있었던 진열대와 달리 잔뜩 빵이 쌓여 있는 다른 곳들을 둘러봤다.

지금 시대의 빵들은 맛이 없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보증한 스콘을 제외하고서는 다른 빵들에 대한 믿음이 생기지 않는 거겠지.

누가 개당 만 원이 넘는 빵을 맛도 모르고 구매하겠어. 물가는 올랐지만 전생과 마찬가지로 시급이 만 원이 조금 안 되는 세상이었다.

“뀨……. (온몸이 쑤신다…….)”

가게에 모처럼 놀러 왔던 곰순이는 손님들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꼼짝없이 작은 인형인 척하고 있어야 했다.

사람들이 우르르 밖으로 나간 걸 확인한 뒤에야 굳어 있던 몸을 편 채로 래희의 곁으로 걸어와 카운터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래희는 카운터에 엎드린 채 자신의 머리맡에 주저앉은 곰순이의 머리를 조몰락거렸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뀨우. (그건 래희 네가 잘 알겠지.)”

래희는 곰순이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또 다른 손님들이 찾아와 스콘을 찾기 전에 미리 공지해야 했다.

이면지에 큼지막하게 ‘스콘 품절’이라 적은 래희는 가게 문 앞에 사람들이 잘 보이는 위치에 붙였다.

[문스타 팔로워 수 50명을 달성하였습니다.]

[명성 획득으로 스탯이 5 증가합니다.]

그때였다. 오랜만에 명성 획득으로 스탯이 증가했다는 시스템 알림이 나타났다.

래희는 재빠르게 휴대전화로 문스타 계정을 확인했다.

[내 계정을 태그한 사람 @limitedS_whiteflower]

‘…김유한 길드장님?’

계정을 눌러 들어가니 래희를 태그한 게시물에 어제 구매해 간 스콘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limitedS_whiteflower]

(사진)

좋아요 3678

limitedS_whiteflower

요즘 빠져 있는 스콘.

2시간 전.

(댓글)

└bluesea_boss 글 내려라 새X야.

래희는 이마를 짚으며 휴대전화 화면을 껐다.

“하…….”

이럴 줄 예상 못 했다. 김유한 길드장님이 유난히 SNS 중독인 걸 알고는 있었지만 개인 계정에 이렇게 누군가를 홍보하는 글을 올린 적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팔로워 수 128만 명.

글을 올린 지 한 시간도 되지 않아 래희의 가게 앞에 줄을 서 있던 손님들을 보니 대형 인플루언서의 영향력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문스타 팔로워 수 100명을 달성하였습니다.]

[명성 획득으로 스탯이 10 증가 합니다.]

래희가 다시 한번 사진을 확인하려 새로고침을 하니 김유한 길드장님이 올린 글이 그새 삭제가 되어 있었다.

‘아까 글 내리라던 청현 아저씨 댓글이 있던데 또 두 분이 한판 하신 건가?’

래희가 카운터에서 문스타를 확인하는 몇 분 사이에 벌써 여러 손님이 가게 문 앞에 적힌 ‘스콘 품절’ 안내문을 보고선 발걸음을 돌렸다.

그때, 한 손님이 발걸음을 돌리지 않고 그대로 가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어서오… 어?”

래희가 들어온 사람을 보며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김유한 길드장님……?”

“래희야. 며칠 만에 다시 보네?”

이 모든 사태의 원흉. 김유한 백화 길드 길드장이 가게 안으로 뻔뻔하게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래희는 피곤함을 숨기며 대꾸했다.

“오전에 글 쓰신 거 길드장님이죠?”

“안 그래도 그 일로 방문했지.”

조금은 민망한지 헛기침을 하며 김유한이 고개를 돌렸다.

“그냥, 윤청현이 놀리려고 글 하나 올렸을 뿐인데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아니, 나도 글 올린 지 한 시간도 안 되어서 사람들이 네 가게를 찾을 줄 알았겠니……. 아침부터 윤청현부터 그 집 아들래미 연락까지 받아 내느라 죽는 줄 알았다.

래희는 백만 명이 넘는 인플루언서의 말도 안 되는 변명에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며 그를 흘겨보았다. 물론 김유한 헌터 몰래.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우리 백화 길드랑 계약하는 건 어떻겠니? 길드 건물 1층에 입점하면 손님 관리도 쉽고 우리 길드 홍보도 되고…….”

물론 요즘 아이돌이었다는 류정우 헌터 때문에 바로 맞은편 청해 길드의 방문자가 더 많다는 게 배알 꼴린 건 아니었다.

래희가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거절하려는 찰나, 빵집의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걸어 들어왔다.

“아버지. 글 올릴 땐 좀 더 생각하고 업로드하시라니까요.”

익숙한 목소리에 래희의 고개가 절로 문가로 향했다. 김유한 길드장에게 투덜거리며 따라 들어온 남자는 래희를 보더니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어……?”

“…아.”

남자의 얼굴을 보자 래희는 순간적으로 치밀어 오르는 화를 겨우 억눌렀다.

‘…아버지라니?’

래희는 전혀 닮지 않아 보이는 두 남자의 얼굴을 번갈아 봤다. 도저히 지금 상황이 납득이 되지 않았다.

“…베이커리 사장님이시죠? 오전에 아버지께서 실례가 많았습니다.”

“네, 그랬죠.”

래희는 이를 악물며 대답했다. 이 새X가 뻔뻔하게 모른 척을?

[성좌 ‘운명의 길잡이’가 얼굴만 밝히다 이 꼴이 난 거냐며 혀를 찹니다.]

“아버지께서 어렸을 때부터 봤다고 하던 친구 따님분이…….”

“네, 그게 바로 저일 거예요.”

청현 아저씨가 자식이라고 소개하는 건 재언과 자신뿐이었으니까.

“…그렇군요.”

“그러게요. 세상이 참, 좁아요. 그렇죠?”

내용을 알 수 없는 두 사람의 겉도는 듯한 대화에 김유한이 의문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두 사람 아는 사이였니? 그럼 잘되었구나!”

“얼굴만 잠깐 알던 사이었어요. 길드장님.”

이름 같은 건 모르는 사이랍니다.

“그래? 하긴 주현이도 한국대 다녔었으니까 만났을 수도 있겠네. 오히려 잘 됐어. 이마 안면이 있는 사이니 더 편하겠구나.”

래희가 김유한의 말에 할 말은 많지만 참는다는 눈빛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자, 김주현은 김유한의 어깨를 살짝 붙잡고 돌렸다.

“아버지, 오늘은 일단 돌아가시죠.”

“아니, 잠깐. 아직 계약 의사를 못 들었는데?”

두 사람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김유한은 얼떨떨한 표정을 지우지 못한 채로 물러섰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그의 아들을 응시하는 래희의 눈빛은 S급도 찢어 죽일 것 같은 살기가 가득 담겨 있었기 때문이었다.

“안녕히 가세요.”

차마 발걸음을 떼지 못하는 김유한의 뒤로 래희가 인사하며 쐐기를 박았다.

래희는 멀리 사라져 가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이를 갈았다.

A급 전투계 헌터이자 김유한 길드장의 아들 김주현. 그는 바로 래희가 대학 시절에 만난 첫사랑이자 ‘전 남자친구’였다.

* * *

헌터넷 익명 게시판

[인기] 오늘 자 삭제된 백화 길드 길드장 김유한 헌터의 인스타 내용 (321)

자기애가 강해서 자기 사진이나 자랑 아니면 안 올리는 사람이 갑자기 뜬금없이 스콘 사진을 업로드해서 다들 어리둥절함.

광고비가 전혀 충당이 안 될 텐데도 어디서 광고를 받기라도 했는지 친절하게 베이커리 계정 태그도 되어 있었음.

여기 고등급 헌터들만 아는 맛집이라던데 유출돼서 빡쳤는지 청해 길드 윤청현 길드장이 댓글로 글 내리라고 욕 박음.

+추가) 오픈런으로 빵집 다녀왔는데 스콘 진짜 인생 맛집이었다. 30분 만에 품절 나서 못 먹은 사람도 많았었음. 사장님은 갑자기 늘어난 손님에 당황한 눈치더라.

- 그 빵집이 어딘데?

└@yammybear_bakery

└서울 안전지대 11-3 (하양 곰순이 게이트 앞) 외곽 지역이라 사람이 없었던 듯.

└비싼 베이커리를 위험한 외곽 지역에 오픈한다고? 사장이 힘숨찐이라거나 재벌이라도 됨?

└(게시판 규칙 위반으로 삭제된 댓글입니다.)

- 오픈런 뛸 정도였음? 빵이 다 거기서 거기 아님?

└사람이 충격을 받으면 기억을 잃는다잖아? 나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음식에 대한 기억을 잃었어. 스콘밖에 머릿속에 안 들어 있음.

└ㅈㄹ 호들갑 좀 적당히 떨어라. 누가 봐도 광고 글이구만.

- 오늘 늦게 베이커리 갔다가 류정우 헌터 봄.

└뭐? 그럼 오늘부터 매일 거기서 대기 탄다. 류정우라는데 가 줘야지.

└명색이 헌터인데 쪽팔리게 사생짓 그만할 때도 되지 않음? 예전엔 일반인이었다지만 이젠 스급인데 적당히 몸 사려야지.

└류정우 헌터 뭐하고 있었음?

└야무지게 구석에서 빵을 흡입하고 있던데? 뭘 먹는지는 잘 모르겠더라. 사장님이 요리해 주는 것 같았음.

헌터넷 익명 게시판

[잡담] 김유한픽 빵집 후기

야근하고 잠도 한숨도 못 잔 채로 새벽부터 오픈런 뛰었는데도 스콘 구매 실패. 그렇게 유명하다는 스콘 품절 돼서 에그타르트 먹었는데 이상하게도 기운이 나는 것 같은 기분임.

C급 따리지만 게이트 돌고 나와서 포션 먹었을 때보다 더 개운한 기분인데? 원래 맛있는 걸 먹으면 이렇게 행복해지는 건가요?

- 렁~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에그타르트 후기에 갑자기 회복 포션 비교하는 거 무리수 아니냐? 바이럴도 적당히 해라.

└(글쓴이) 아니, 기분이 그렇다고.

└원래 단것 먹으면 힘나는 거 아니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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