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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네 빵집은 언제 오픈하나요-16화 (16/120)

16화

* * *

커튼까지 꼼꼼히 쳐진, 문 닫힌 가게 안.

래희는 집이 아닌 가게 부엌에서 조금 늦은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너무나도 배가 고팠기 때문에 곧바로 스콘을 만들어 퀘스트 먼저 완료하지 않고, 간단하게 저녁부터 먹기로 결정했다.

이대로 계속 굶었다간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을 지경이니까…….

‘무조건 10분 안으로 끝낸다.’

오늘 하루의 감격스러운 첫 끼이자 저녁 메뉴는 바로 잠봉뵈르.

가지고 있던 재료로 빠르게 저녁을 만들기 위해 정해진 메뉴였다.

래희는 가게 테이블 좌석에 앉아 주방 쪽으로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 정우를 애써 무시하며 조리대에 놓인 재료들을 내려다봤다.

‘얼마나 먹는지는 모르지만, 혹시 모르니까 조금 많이 만들어야겠지?’

래희는 얼마 전 재언이 가게에서 곰순이빵을 잔뜩 구매해 갔던 걸 떠올렸다.

‘헌터들이 단체로 탄수화물 중독인가?’

분명 그렇지는 않을 거였다. 자신도 각성자이긴 했지만 아무리 빵을 좋아하는 래희라도 잼이나 다른 곁들임 없이는 빵을 그 정도로 많이 먹지 못했다.

물론 이번 생엔 과일 잼도 귀해서 잘 못 먹지만…….

하지만 그녀를 찾아오는 헌터들은 재언과 다를 것 없이 죄다 걸신들린 듯이 담백하기만 한 빵을 먹어 치웠다.

띵―!

오븐이 다 돌아간 소리에 래희는 오븐에서 구워진 바게트를 꺼내어 조리대 위에 올렸다. 시간상 오늘 새벽에 미리 만들어 둔 빵을 그저 데우기만 했다.

갓 구운 듯이 고소한 빵 냄새가 주방은 물론 가게 전체로 퍼져 나갔다.

[바게트 B]

- 맛 ★★★★★

- 향 ★★★★

- 어느 음식과 함께 먹어도 조화롭다.

래희는 바게트의 양쪽 끝을 살짝 자른 후 이등분한 뒤 단면을 반으로 잘랐다.

‘직접 수확한 우유로 버터를 만들었으면 더 맛있었을 텐데.’

래희는 아쉬움을 뒤로 삼키며 바게트의 양쪽 면에 버터를 듬뿍 올려 발랐다. 어차피 곧 있으면 퀘스트도 완료인데 조금만 더 참으면 되지.

바게트에 버터만 발랐을 뿐인데 벌써부터 군침이 도는 듯했다.

버터를 바른 빵을 잠시 조리대에 올려 둔 뒤 래희는 얼마 전 구한 잠봉 햄을 꺼내 들었다.

래희는 먹을 만큼 잘라 낸 잠봉 햄을 버터를 바른 바게트 위에 겹쳐 올린 뒤 나머지 바게트를 얹어 주었다. 분홍색의 햄과 연노란색의 버터 그리고 잘 구워진 갈색빛의 바게트 조합은 아주 간단한 요리이면서도 무척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그럴듯한데?”

아주 오랜만에 만들어 보는데도 불구하고 꽤 괜찮은 모양새에 래희는 만족스럽게 미소 지으며 이쁜 그릇을 꺼내어 들었다.

‘아, 그릇보다는 나무 도마 위에 올리는 게 나아 보이나?’

음식의 완성은 플레이팅이라는 신념을 가진 래희는 손에 그릇을 든 채로 얼마간 서서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완성된 잠봉뵈르 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정신없이 만들었는지 잠봉뵈르로 탑이 쌓여 있었다.

‘큰 도마 위에 올려야겠네.’

래희는 커다란 도마 하나를 조리대 위에 올린 뒤, 우선 잠봉뵈르를 인원 수에 맞춰 담았다.

“제가 들까요?”

곰순이와 함께 테이블 세팅을 마쳤는지, 정우가 다가와 래희에게 물었다. 대답을 들으려고 질문했던 건 아니었는지 정우는 제집처럼 주방으로 자연스럽게 걸어 들어와 완성된 요리를 들고서 테이블로 향했다.

래희는 어색함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정우의 뒷모습을 잠시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정우가 자리 잡고 앉자 앞치마를 벗어 두고 테이블로 향했다.

정우는 래희가 자리에 앉을 때까지 잠봉뵈르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앉아 있었다.

“안 드세요?”

“아.”

래희 옆에 앉아 있던 곰순이가 제 몫의 빵을 자기 앞접시에 옮기자 정우는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이 하나 남은 잠봉뵈르를 집어 올렸다.

상황에 맞지 않게 무척이나 경건한 태도로 손에 쥔 잠봉뵈르를 보던 정우는 한번 군침을 삼키더니 크게 한입 베어 물었다.

바사삭.

‘……!’

정우는 밀려들어 오는 다양한 감각에 절로 미간을 찌푸렸다. 바삭한 바게트 겉면 속에 숨겨져 있는 촉촉한 식감, 햄에서 느껴지는 짭짤함과 버터의 부드러움. 그리고 여전히 입 안을 맴도는 바게트의 고소한 향.

얼마 전 구매한 ‘곰순이빵’보다 한층 더 풍미가 깊어진 듯한 맛이었다.

정우는 손에 쥐고 있던 잠봉뵈르를 순식간에 먹어 치우고는 아쉬운 눈빛으로 텅 비어 있는 테이블을 바라봤다.

‘그렇게 배가 많이 고팠나?’

래희는 어울리지 않게 아쉬움이 잔뜩 남은 정우의 표정을 발견하고선 만들어 둔 잠봉뵈르가 주방에 더 있다며, 원한다면 남은 것도 마저 먹으라고 권했다.

정우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베이커리의 주방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는 잔뜩 쌓여 있는 잠봉뵈르를 모두 들고 나왔다.

“그걸 다 먹을 수 있어요?”

래희의 걱정이 무색하게 류정우는 앉은 자리에서 탑처럼 쌓여 있던 잠봉뵈르 열 개를 매우 빠른 속도로 먹어 치웠다. 차가운 남자, 광공 콘셉트를 유지하던 전직 아이돌의 고상함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S급들의 위장은 남다른가? 바게트 열 개를 순식간에 위장으로 집어넣은 건데 다 들어가는 게 신기하네.

래희는 조금은 질린 눈빛으로 류정우를 바라봤다. 분명 자기가 알던 남자 주인공 류정우는 저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말이지.

마지막 한입이 아깝다는 듯이 천천히 음미하던 정우가 이제야 정신을 차린 건지 래희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래희 씨. 이 요리 이름이 뭐라고 했죠?”

그것도 모르고 그렇게 많이 드신 건가요?

“잠봉뵈르요.”

“잠봉뵈르…….”

래희에 대답에 꼭 이름을 기억하겠다는 듯이 이름을 다시 한번 따라 말한 류정우가 래희의 눈을 똑바로 맞춰 왔다.

류정우의 눈빛은 매우 진지했다. 열망, 집착, 열정… 처음 가게를 찾아왔을 때 보다 한층 더 강해진 눈빛이었다.

류정우의 뜨거운 시선에 래희는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이상하게도 예감이 좋지 않았다.

* * *

다음 날.

밀린 문자와 부재중 전화를 해결한 뒤, 래희는 이번 주까지는 휴업을 선언하며 가게 문을 닫았다.

오늘 아침, 류정우가 부은 발목에 효과가 좋을 거라며 힐링 포션을 주고 가서 발목은 다 나았지만 래희는 정신적인 휴식이 필요했다.

더불어 퀘스트도 빨리 해결하고…….

“아니, 코끼리가 먹을 만큼의 양이 만들어지고 있는 거 안 보이세요?”

래희는 허공을 향해서 이게 정말 맞냐는 눈빛으로 재차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타조알만 한 계란 세 개, 우유 3L를 이용해 반죽을 만들자 조리대만 한 반죽이 완성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진짜 반죽 만들 때 고생 안 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지.’

재료만 한군데 모아 거품기 아이템으로 몇 번 휘젓기만 하면 발효 과정 필요 없이 곧바로 굽기만 하면 되는 반죽이 완성되니까.

래희는 새삼스럽다는 표정으로 거품기를 들어 올렸다.

“하…….”

어쨌든 지금 거품기 기능이 중요한 게 아니라 저 반죽을 어떻게 처리하냐는 거지.

“퀘스트 생각 안 하고 전부 다 스콘으로 구워 버려?”

래희는 반죽을 하나하나 떼어 내어 대충 동그랗게 뭉쳤다. 그렇게 뭉친 반죽만 해도 수십 개.

래희는 일단 철판 위에 깔리는 만큼만 먼저 굽자고 판단했다.

‘이걸 다 만들어서 어떻게 처분하냐.’

가게를 오픈하지도 않는데 미리 많이 만들었다가는 다 먹지도 못하고 곧바로 음식물 쓰레기통 행이 될지도 몰랐다.

첨가물을 따로 넣지 않기 때문에 래희의 빵들은 유통기한이 짧았다.

“몰라. 전부 다 미래의 내가 알아서 하겠지.”

래희는 동그랗게 뭉친 반죽을 철판 위에 팬닝했다. 스콘 반죽을 팬닝한 철판 두 개를 예열된 오븐에 넣었다.

“자, 이제 25분만 지나면 지긋지긋한 퀘스트 창도 안녕이다.”

띵―!

25분이 25년 같이 느껴지는 기다림이 끝난 후, 오븐이 다 돌아갔다는 소리에 래희는 재빠르게 오븐을 열었다.

“와…….”

래희가 맡아 본 스콘 향, 아니 음식 냄새 중에 가장 맛있는 냄새가 그녀의 코끝을 스쳐 지나갔다.

두꺼운 주방 장갑을 끼고 오븐 속에 잘 구워진 스콘의 철판을 꺼내 조리대 위에 올렸다.

군침이 절로 돌게 만드는 노란 빛깔과 눈으로만 봐도 바삭함이 느껴지는 표면.

꿀꺽.

래희는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와.”

감당 못 할 정도의 퀄리티인데? 안 그래도 맛있는 빵이 이보다 더 맛있어지면 이번에는 정말로 가게가 감당 못 할 만큼 대박이 날지도 몰랐다.

띠링―!

[축하합니다! 퀘스트 ‘맛있는 빵이란’이 완료되었습니다!]

[완료 보상이 지급됩니다!]

[닭장과 축사의 건축이 시작됩니다. 남은 시간 01:59:59]

[경영지원금 2,000G가 지급됩니다!]

2,000만 원!

‘이 돈으로 닭이랑 소를 구매하면 되겠다.’

아직 닭장과 축사 건물이 완공되려면 두 시간은 남았기 때문에 래희는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래희는 완성된 스콘을 집어 들었다.

[플레인 스콘 A]

- 맛 ★★★★★

- 향 ★★★★★

- 오래 보관해도 절대로 상하지 않는다.

[축하합니다! 업적 ‘A급 비법을 가진자’를 획득하였습니다!]

[업적 보상으로 경험치가 주어집니다!]

빠밤―!

[‘야미베어 베이커리’의 레벨이 상승합니다. (Lv.2→Lv.3)]

[등록 가능한 제품 수가 증가합니다. (4→5)]

“오…….”

오래 보관해도 상할 일이 없다니. 이건 혁명이었다.

‘그럼 이 반죽을 지금 다 구워 버려도 상관없겠네.’

래희는 손에 들린 스콘을 크게 한입 베어 물었다.

앙―

‘와… 내가 만들었지만 정말 미친 맛이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니, 이것이야말로 모두가 외치는 ‘겉바속촉’인 건가? 래희는 후두둑 떨어지는 스콘 표면의 가루마저 아깝다는 듯이 손으로 받쳤다.

손위에 떨어진 가루까지 한 톨 남기지 않은 채로 스콘을 순식간에 다 먹어 치운 래희는 눈을 끔뻑거리며 철판 위의 나머지 스콘을 바라봤다.

아……. 뭔가 좀 아쉬운 것 같은데…….

“레몬 스콘, 블루베리 스콘, 초코 스콘, 쿠앤크 스콘, 얼그레이 스콘…….”

먹고 싶은 스콘을 나열한 래희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과일은 도저히 어떻게 구할 방법이 없어…….”

하지만 시중에서 과일을 구하는 건 쉽지 않았다.

하다못해 플레인 스콘에 딸기잼이나 버터 아니면 생크림을 발라 먹는다면 얼마나 맛있을까?

[성좌 ‘운명의 길잡이’가 얼마 전 마트에서 딸기맛 잼을 본 기억이 있다고 말합니다.]

…딸기‘맛’ 잼이라뇨. 그런 근본 없는 음식은 취급 안 합니다.

래희는 답답함에 계속해서 한숨이 나왔다.

‘일단, 이 반죽부터 다 구워 버리자.’

당장 어디 가서 과일을 구할 방법이 없으니 지금은 플레인 맛이라도 만들어야지. 우유를 수확하기만 하면 곧바로 버터와 생크림부터 만들어야겠다.

그렇게 얼마 동안이나 반복 노동을 하며 스콘을 열심히 구웠을까.

마지막 스콘이 다 구워지고 래희가 오븐에서 꺼내 든 순간 시스템 메시지가 눈앞에 나타났다.

[축하합니다! 닭장과 축사의 건축이 완료되었습니다!]

드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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